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5)
제 888화
213화. 균열, 대격변의 전조(3)
루나, 제드, 바네사, 투벤, 헤이진.
시론의 명령을 받아 가문으로 복귀한 다섯 기사. 진은 자신을 반기는 루나의 목소리를 듣고도 순간 이것이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붉은부엉이가 다섯 사람 옆에 하강하는 동안에도 행여 그들이 허상처럼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꿈이 아니다.
붉은부엉이에서 내린 진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으나, 오랜만에 만난 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와락!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루나와 진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나머지 일행은 남매가 오랜만에 상봉의 감격을 느끼는 사이 전해지는 충격파를 막아 주었다.
“더 듬직해졌구나, 막내.”
“크하하! 이놈 지금 울려던 걸 참았어.”
“막내한테 그러지 마세요, 제드 숙부. 숙부도 아버지 만났을 때 그랬으면서.”
“제드 숙부, 바네사 경, 투벤 경까지. 그리고……!”
헤이진은 진이 이름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진은 기쁜 마음에 복귀자들을 부르던 진이 잠시 멈칫하자 헤이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가주. 저는 헤이진 크리엘이라고 합니다. 가주의 명령을 받아 앞으로 소가주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헤이진 경. 그런데 방금 소가주라고……?”
진이 소가주가 된 건 전대 가주들의 판단이다. 흑해의 원정대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을 리 없었다.
‘아, 아버지께서 혹시 내계를 통해 내가 소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신 것인가?’
물론 아니었다.
“룬칸델 가주, 시론 룬칸델의 명입니다. 나, 시론 룬칸델은 가문의 12기수 진 룬칸델을 소가주로 임명하며, 그가 나의 정당하고 적법한 후계자임을 선포한다.”
루나가 그렇게 말하며 한쪽 무릎을 꿇자, 제드와 전대 흑기사들이 뒤따라 무릎을 꿇고 검례를 올렸다.
“가문 제1기수 루나 룬칸델, 원로 제드 룬칸델, 전대 흑기사 바네사 올슨, 헤이진 크리엘, 투벤. 이상 다섯은 현 시간부로 소가주의 가장 충실한 검이 될 것입니다.”
“충!”
“전력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이미 소가주로 활동하고 있던지라 진은 왠지 모르게 양심에 찔리는 기분을 느꼈다. 또한 가문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검례를 받으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드디어, 라는 마음도 함께였다.
‘드디어…… 아버지께 정식으로 인정을 받은 건가.’
회귀 전 28년.
회귀 후 23년.
도합 51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간 겪었던 수많은 일이, 비참했던 전생과 눈부셨던 현생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 모든 일이 한 방울의 눈물로 변해 뺨으로 흘러내릴 듯했다. 하지만 진은 한 번 더 눈물을 삼키고 루나와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감상에 취할 때가 아니다.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것도 아니며, 가문과 세상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온 시기도 아니었다.
지금은 소가주로서 일을 해야 할 때였다.
“설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게 될 줄 몰랐습니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거하게 환영식을 열고 싶지만 하필 룬칸델의 영토가 공격을 받고 있군요. 그러니 회포를 푸는 건 조금만 미루고,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 보랏빛 균열은 진마계의 마왕, 지토라는 마족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며 생긴 것입니다. 복귀자들은 지금 즉시 균열과 균열에서 비롯된 적들을 제거하십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루나와 제드, 전대 흑기사들이 일어서며 검을 들었다.
‘가문 최강’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이들의 귀환을 아군 모두에게 알리는 시작은, 루나의 결전기였다.
룬칸델 제3결전기
유성우
예비 기수 시절 진을 구했던 그 눈부신 검이, 다시 한번 보랏빛으로 물든 시아텔로의 보랏빛 기운을 걷어내고 있었다.
“헛, 저건…… 막내의 유성우가 아닌 것 같은데? 그쵸, 메리 누님?”
“……설마. 저건 루나 언니의 유성우야!”
메리가 가장 먼저 루나의 유성우를 알아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루나’라는 이름이 나오자 토나 형제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루나? 루나라고 하였느냐? 내가 이야기로만 그렇게 많이 접한 그 첫째 증손녀?]발라스와 다른 기사들도 유성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의 유성우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사들 사이에 섞인 지토의 의지들을 관통하는 모습이었다.
이내 루나가 전장 한가운데로 도약하며 본격적으로 도끼검 크란텔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루나 언니!”
“지, 진짜 루나 누님이다! 세상에!”
“백경……!”
“1기수, 백경께서 돌아오셨다……!”
“가문의 기사들은 두려움 없이 싸움에 임하라. 나와 제드 원로, 전대 흑기사들이 그대들을 지켜줄 것이다!”
루나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리고 있었다. 진은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가문 최강의 기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무인이었다.
그간 진이 강해졌듯이, 루나 또한 흑해를 탐사하며 몇 번이나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또한, 가주께선 아직도 건재하시며, 흑해를 탐사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의 복귀가 혹 가주께 어떤 변고가 생겼기 때문은 아닌가 염려하지도 말라. 다시 한번 말한다. 가주께선, 오히려 더 강해지셨다. 마성화를 극복하고 입신의 경지에 이르셨다!”
전장 곳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이제 전장은 정체 모를 진마계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혼란한 싸움이 아니라,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었다.
“못 본 새에 얼굴이 좀 상했구나, 이 녀석. 형님 말대로 이래저래 많이 바쁘고 위험했던 모양이지. 네가 수련을 끝내고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하다. 오늘 여긴 우리가 처리할 테니 마음 편히 구경이나 하거라.”
“흑해에서 오즈도크 덕분에 소가주를 처음 뵈었을 때, 왠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 같다는 직감이 있었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가주.”
“가주께선 마성에 가장 심각하게 잠식되었을 때도 소가주를 자주 떠올리셨습니다. 적들을 멸하고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제드와 투벤, 헤이진이 진을 지나치며 말했다.
한 박자 늦게 뒤로 돌아 그들이 전장으로 쇄도하는 모습을 보며, 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룬칸델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이야, 저 녀석들. 돌아온 건 너무 좋은데 난 안중에도 없었어…… 그래도 내가 가문의 어? 수호룡 아니냐? 어이가 없네?”
“이 몸에게도 인사 한마디 없더구나.”
“아 그거야 댁은.”
“댁? 자꾸 정신을 놓고 미쳐가는구나, 무라칸. 정녕 내가 미샤처럼 너를 괴롭혀야 하는 것이냐?”
“저들은 아메리스 양반! 이 누군지 모르니까 말이요. 거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맙시다. 다들 일단 꼬마한테 복귀 보고 하고 바로 명령을 수행하느라 그런 것 같으니. 이 상황에 우리보다는 꼬마가 주인공인 게 맞잖아? 아이구, 대견해 우리 꼬마.”
“인사가 없었다고 먼저 투정을 부린 건 네놈이다, 무라칸.”
“큭큭, 깐깐하게 굴지 말재도.”
서운한 듯 말했으나 실은 무라칸과 아메리스도 그저 기쁜 마음이었다. 두 사람은 최근 진이 어떤 압박감에 시달려왔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쿠르르륵!]실체화된 지토의 의지들이 신음을 토하며 물러나는 모습이 이어졌다. 복귀자들이 추가되자마자 룬칸델은 대번에 기세를 잡아 압도적으로 적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설령 이 자리에 지토의 의지가 아니라 진짜 지토가 있더라도 마냥 든든할 것 같았다. 실제로 진은 앞으로 어떤 적을 마주하더라도, 이전만큼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다.
[키라아아악……!]복귀자들의 검에 분해된 지토의 의지들이 맥없이 균열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균열 속에서 새로운 의지가 나오긴 했으나, 전황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복귀자들이 없었다면 아마 저 의지들은 대부분 너 혼자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진. 지토의 의지는 균열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힘이 있어야만 벨 수 있다. 네 누이를 포함해 돌아온 이들의 검엔 모두 그런 기운이 깃들어 있군.”
몇 번이나 흑해의 가장 끔찍한 괴물들과 왕들에 맞서 승리한 만큼, 복귀자들의 검은 모두 권능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괴물을 상대하기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순혈 룬칸델이 아닌 전대 흑기사들도 일종의 마검을 구사하는 셈이었다. 단지 검에 권능을 더해주는 게 마력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일 뿐.
실체화한 지토의 의지들은 채 십 분이 지나기 전에 모두 사라졌다.
다만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건 아니다. 의지가 모두 환원된 균열은 처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균열을 뚫고 어떤 강대한 마족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서야 진은 처음으로 검을 뽑았다.
시아텔로의 균열은 부상을 각오하더라도 반드시 베어서 소멸시켜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부상에 빠져 치료를 받더라도 그 기간 동안 이전만큼 전력 공백이 막대하지 않을 터였다.
“막내야, 저걸 베면 다치지 않겠어?”
진이 영검을 준비하려는 찰나 루나가 다가왔다.
“예, 누님도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하지만 내버려 두면 저 균열은 시아텔로에 진마계의 주둔지나 도시 하나를 통째로 소환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균열을 방치한 상태입니다. 여기 시아텔로처럼 최중요 지역의 균열을 없애야 할 때를 대비해서요.”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이었네. 그런데 이 누나는 말이다, 너랑 다르게 좀 많이 튼튼하다?”
루나가 과장되게 몸을 풀며 크란텔을 들었다.
“예?”
“난 저 균열을 없애도 별다른 타격을 안 받는다는 뜻이지. 아, 아버지께서 말해주신 횟수가 좀 차감되긴 하겠네…… 그래도 뭐, 시아텔로를 지키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어느새 루나는 붉은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눈동자와 함께 도끼검 크란텔에도 홍련처럼 진한 붉은 기운이 깃든 모습.
“그러니까 이건 내가 소멸시킬게. 이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예전에 너를 구했을 때도 이 검을 펼쳤었는데.”
심검
적월
루나가 크란텔에 언령을 덧씌우며 속삭이자, 잠시 온 하늘과 땅에 붉은 광휘가 번졌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크란텔이 휘둘러진 순간을 인지할 수도 없었다. 이내 한 줄기 붉은 섬광이 균열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 거대한 균열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