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6)
제 888화
213화. 균열, 대격변의 전조(4)
이야기의 탑, 엘로나의 집무실.
“백경과 제드 룬칸델, 전대 흑기사들이 돌아왔다라…….”
베라딘이 탁자 위에 놓인 소식지를 살피며 말했다.
모든 소식지가 루나를 비롯한 룬칸델 복귀자들의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휴페스터의 소식지들은 디노 재글런을 필두로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시아텔로의 대균열을 소멸시킨 활약을 상세히 묘사했다.
“백경이 누구죠?”
“시론 룬칸델과 함께 흑해로 떠났던 룬칸델의 1기수입니다, 엘로나 경. 명실공히 기수 최강, 아니. 시론을 제외하면 룬칸델 최강의 기사로 알려진 인물이죠.”
로닐의 설명에 엘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런가요?”
“이제는 검가의 소가주, 진 룬칸델이 있으니 확실치는 않습니다. 흑해로 떠난 탓에 백경이 실질적인 전공을 세운 것도 꽤 되었고요. 하지만 백경이 한창 활동할 때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아마 지금도 진 룬칸델에게 크게 밀리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고요. 백경 또한 성취를 이뤘을 테니.”
“반역자, 켈리악 지플이 백경에 대해 했던 평가가 떠오르는군요.”
“어떤 평가였나요? 사트린.”
“루나 룬칸델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와 싸워도 승리할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다, 설령 그게 시론이나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실제로 반역자는 가주였던 시절 시론 룬칸델 다음으로 백경을 가장 경계했었죠.”
“누구와 싸우더라도 승리 가능성이 반드시 존재하는 인물이라…….”
엘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테마르와 염제가 떠오르는군요. 지금의 진 룬칸델과 루나 룬칸델처럼 그 두 사람도 우애가 좋은 남매였죠.”
당연하게도 그 두 사람은 당시 엘로나가 가장 껄끄러워하던 상대였다. 둘 다 명백히 자신보다 약한데도 싸우다 보면 왠지 마음이 조급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둘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있던 것 같은데…… 누구였지? 어쨌거나 지금의 룬칸델도, 그 시절처럼 강하구나.’
진 룬칸델, 루나 룬칸델.
엘로나는 속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되뇌며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싸울 수밖에 없을 테니, 그 시기는 자신이 모든 힘을 되찾고 각성했을 때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제가 얼마 전 흑해 쪽에서 느낀 그 엄청난 기운…… 시론 룬칸델이 직접 돌아온 건 아니라는 사실이로군요. 아, 또 한편으로는 시론이 아닌데도 그 정도 인물이 또 있다는 사실이 문제 같기도 하고……! 백경은 창성이 아닐 텐데, 저처럼 균열도 말끔하게 소멸시켰고……! 으으.”
“엘로나 경.”
“예, 가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천 년 전처럼, 엘로나 경 혼자 그들을 상대해야 할 일이 없을 겁니다.”
엘로나는 흠칫하며 베라딘과 눈을 맞췄다. 그는 늘 자신의 속내를 다 알아주었다.
“가주께서 그렇게 말해주니 좋군요.”
“돌아오시자마자 룬칸델뿐만이 아니라 적명족, 게다가 이제는 또 다른 지하세력으로 추정되는 놈들까지 활개를 치기 시작했으니. 마음이 여유롭지 않으셨을 겁니다.”
균열.
루테로 연방에도 마계 전이의 전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무명이 파악한 대로, 적명족과의 전투에서 지플이 한 차례 대패를 한 이유는 엘로나가 균열을 제거하느라 전장을 이탈한 까닭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탑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아마 마족……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종류의 마족입니다. 아직 직접적인 소통은 한 번도 못 했으나, 허락 없이 우리 영토에 차원문을 만들고 있으니 분명 적이 될 테죠.”
지플은 그 균열이 소환 마법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마족들의 차원문은 결국 루테로 어딘가에 자신들의 주둔지를 소환할 겁니다.”
“저와 탑이 모든 균열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일 테죠…….”
“그것도 엘로나 경의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멀 연합처럼 공간 이동 수단을 만들지 못한 저희의 무능이 책임입니다. 어쨌거나 놈들의 주둔지가 형성되면, 즉시 놈들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베라딘은 진마계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명족과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그들까지 더해지는 건 벅찬 일이었다.
“놈들이 대화가 통하는 부류라면, 적명족을 완벽하게 몰아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선 무녀의 기도가 끝나는 대로 마족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보라고 하겠습니다.”
태양신교의 무녀, 산나. 그녀는 현재 켈리악 지플을 찾기 위해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쉬누와 켈리악의 힘은 여전히 마신석과 이야기의 탑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또한 마족이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겠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놈들과 적명족의 관계일 테니…… 일단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 *
진마계, 검마성.
“지토 님께서 지상과 중간세계에 형성한 균열 서른 개 중 스물셋이 파괴되었다는 말인가…….”
파엘리토가 유리잔에 든 영혼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윤회의 굴레에 들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 지상과 중간세계의 영혼들을 빚어 만든 술이었다. 술에 농축된 영혼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혀주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지토 님의 마법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하군. 내가 지토 님의 기운을 처음 상쇄하기까지 걸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토록 수명이 짧은 인간 따위가 해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정도야.”
“그렇기에 인간은 고통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태양신이 죽은 후, 그들은 너무 많은 가능성을 품게 되었죠.”
“옳은 말이다, 사키엘.”
“이번에 마녀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균열을 벤 건 루나 룬칸델이라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시아텔로의 균열 말이로군. 흑해에서 돌아온 시론 룬칸델의 딸인가.”
“그렇습니다.”
“붉은 기운을 사용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루나라는 인간은 시론 룬칸델과 더불어 지금 지토 님께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사키엘이 루나의 정보를 기입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파엘리토는 영혼주를 음미하며 보고서를 자세히 살폈다.
루나를 어떤 식으로 고통에 몰아넣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파엘리토는 금방 그녀의 약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한 힘을 가진 것에 비해, 마음이 약하고 정이 많은 인간이로군.”
“지상의 인간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최고 요주의 인물인 진 룬칸델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진 룬칸델과 달리, 이 루나 룬칸델이라는 친구는 특히 혈육들에게 미묘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이내 파엘리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키엘.”
“예, 파엘리토 님.”
“지금부터 영혼주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그리고 지옥을 샅샅이 뒤져서, 루나 룬칸델의 형제들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해라. 아마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긴 했었을 것이다. 이미 영혼주가 되지만 않았다면 분명 남아 있을 테지.”
“죄책감을 통한 정신적인 고통 유발,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려 하시는군요.”
“고전은 언제나 모범이 되는 법이지. 아, 그 벌레 같은 바셋 놈의 생사는 확인이 되었나?”
바셋 비셉스.
그는 진마계 비셉스가의 수장이자, 지토에게 저항하는 저항 세력의 핵심 간부였다.
“다일러스 님의 추격조가 한 번 꼬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참 끈질긴 놈이야, 내게 치명상을 입고도 그렇게 또 도망을 갈 줄은 몰랐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도주지? 이쯤 되면 내가 무능한 건지, 놈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군.”
“제 생각엔 바셋의 운이 좋았습니다. 추격조를 더 늘리라고 전달할까요?”
파엘리토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버려 둬. 보아하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추후 지상의 세력들과 뭔가 연계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때 더 큰 절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지옥이나 잘 살펴보도록.”
“알겠습니다.”
* * *
검의 정원.
“아, 갑자기 귀가 간지럽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루나가 자신의 귓가를 매만지며 말했다.
“지금은 온 세상이 누님과 복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귀가 간지러운 정도면 양호하네요.”
“뭐, 그건 그렇지.”
막 루나와 제드, 전대 흑기사들의 복귀식이 성대하게 끝난 참이었다. 그리고 진은 실로 오랜만에 루나와 단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밀린 이야기가 산더미였다.
루나가 흑해로 떠난 이후 진은 일곱 개의 테마르의 무덤을 찾았고 가주 선언을 했으며, 티칸을 발전시키고 검황성전과 글리엑전을 겪었다.
조슈아를 몰락시키기도 했으며, 끝내 흉신전을 끝마쳤고,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감내해왔다.
루나는 그중 형제들의 죽음을 가장 마음 아프게 들었다. 또한 마지막까지 힘을 합쳐 가문을 지킨 형제들의 이야기를 가장 즐겁게 듣기도 했다.
“조슈아, 뮤, 앤, 란, 뷔고…… 걔들한테 지나치게 무심했어. 엇나가지 않도록 내가 더 챙겨줬으면 좋았을 텐데.”
“누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진은 당연히 그 말에 루나가 고개를 저으리라 생각했다. 분명 자신에게 큰 책임이 있다며 괴로워하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루나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내 책임은 아니지, 결국 자기 삶은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거니까. 엇나가고 망가지라고 내가 걔들을 등 떠민 적도 없으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건 아니고, 형제끼리 살육전을 벌였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그것보다 룬칸델로서 더 옳았던 네가 자랑스럽고, 네게 더 미안하다.”
“제게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십시오, 누님. 어디까지 미안해지실 참입니까. 흑해에서 놀다 오신 것도 아니면서.”
“그럼 그럴까? 흠, 어쨌든! 언젠가 그 엇나간 녀석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라도 꼭 혼을 내줘야겠다.”
“다시 만날 일이 있겠습니까.”
“나도 언젠간 늙어 죽을 테니 사후세계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사후세계가 실존한다 해도 누님과 그들은 아마 다른 곳에 있을 겁니다.”
“그런가? 아무튼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꼭 혼내준다. 언제가 됐든, 만나기만 하면.”
진은 루나가 과장되게 주먹을 그러쥐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제 얘기는 많이 들으셨으니, 누님의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그간 흑해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