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16)
제 999화
228화. 격전의 그로쉬에 성(13)
카아아아앙-!
역천의 마력구가 회전하며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실의 장 때문에 생긴 이명을 덮어버릴 정도로 끔찍한 소음과 충격파, 각 함내와 성 곳곳에 주저앉아 있던 이들이 역천에 반응하며 신음을 토했다.
그건 마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고 깨어나는 일과 같았다.
만일 역천의 충격이 덮치지 않았다면, 인세의 병력은 모두 의식이 그대로 상실의 장으로 흡수되는 걸 경험했을 것이다.
“크아아악!”
“아악……!”
연합의 기사들, 연방의 생체 골렘과 마법사들, 킨젤로의 명인과 마족, 전투 수인들 모두가 악을 쓰고 있었다.
그들도 사키엘이 펼친 마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나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잃지 않고자 어떻게든 악을 쓰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잃는 순간, 곧바로 끝이라는 걸 그로쉬에 성에 모인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지금 억지로라도 의식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역천이 사키엘의 마법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를테면 지금 그로쉬에 성에서 싸우는 전원의 목숨은, 진의 손아귀에 달려 있었다.
[킨젤로! 전 병력 최대한 역천의 구체 아래로 들어가라. 역천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곳으로 모여야 한다. 역천을 벗어나면 끝장이다!]오르갈이 소리쳤다.
그는 최근 되살아난 과거의 기억 덕에 상실의 장이 어떤 마법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토의 치세가 얼마나 근본이 없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군. 설마 상실의 장을 사용할 줄이야…… 진 룬칸델의 역천이 이걸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 전 세력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거다.’
베티 지플 역시 오르갈과 비슷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역천의 구 아래에서 버텨야 한다. 인간과 용들은 침착하게 그 아래로 이동하라. 마령들은 얼마든지 방패로 삼아도 좋다.”
마령, 생체 골렘은 이 자리에서 잃게 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제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역천은 늘 연합의 적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목숨을 지켜주는 동아줄이었다.
물론, 진은 그들까지 완벽하게 지켜줄 마음이 없었다.
공공의 적을 퇴치하느라 한자리에 모였을 뿐, 그들은 근본적으로 동맹이 아니며 명백한 적이다.
‘운들이 좋군. 사키엘의 마법을 막느라 역천을 뜻대로만 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살고 싶다고 역천 밑으로 들어와도 내가 쳐낼 수 없다.’
하지만 배려까지 해줄 이유는 없다.
역천은 그 범위 안에 놓인 모든 생명체의 마력 역류를 유발하는 대마법.
그리고 지금 역천에 가까이 붙는 이들은 대다수가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 킨젤로는 명인과 수인을 제외한 마족 전원이, 지플은 전원이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웁……!”
“케헥!”
살기 위해 역천을 이용하는 적들은 모두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진보다 낮은 마력을 가졌거나,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이들은 예외 없이 전부 마력 역류를 겪고 있었다.
역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핏덩이를 토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바멀 연합에도 마력을 보유한 이들이 많았다. 진은 상실의 장에 대항하는 와중에도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역천을 조절하고 있었다.
“탈출은 늦었다. 바멀 연합은 전원 역천으로 모이도록, 놈의 마법은 이미 지옥의 벽 바깥 저 멀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
{알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바멀 연합이 가장 빠르게 역천의 안전지대를 차지했다.
역천과 상실의 장에 반쯤 미쳐버린 타 세력 인원들이 때때로 연합인 척 안전지대를 노렸다. 그들은 모두 연합 초인들의 검에 죽음을 맞이했다.
아군이 역천 아래로 피신한 걸 확인한 후 진은 다시 사키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상실의 장이 펼쳐지고 약 3분이 흐른 시점, 단테는 그동안 계속 사키엘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녀의 육신은 이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상태다. 수정구도 산산조각 깨져서 어디론가 흩어졌다.
대신 사키엘이 서 있던 자리엔 연기처럼 보이는 자줏빛 기운이 남아 있었다. 지토의 진기로 죽음을 유예한 덕분에 영혼이 남은 것이다.
[진 룬칸델…… 끝까지 발악을 하는군요……!]“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지, 사키엘. 뭔지는 몰라도 꽤 짜증 나는 마법이었다.”
키이잇, 카아아앙-!
역천은 점점 더 사납게 사키엘의 마법을 흡수하고 있었다.
상실의 장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벽도 함께 무너뜨리고 있었다. 수축이 끝난 죽음의 벽은 이내 역천에 모조리 분해되어 성 바깥의 풍경이 드러났다.
‘죽음의 벽 바깥까지 이 마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피와 마기에 젖은 바다 위로 해무처럼 보이는 새하얀 기운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키엘은 처음부터 인세의 병력이 상실의 장을 피해 도주하는 것까지 계산한 것이다.
역천이 과연 저 전부를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마력의 양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엔야가 사용 중인 거울을 가져온다 해도 도움이 안 돼.’
진이 판단하기에 지금 필요한 건, 역천을 증폭시킬 수단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어둠계 술식’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리고 오르갈은 진의 고민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진, 이건 상실의 장이라는 진마계의 금기 마법이다.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것 같군. 우리 측에 적용되는 중인 역천의 힘을 통제해준다면.]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르갈, 지금 내게 네가 필요할 것 같나?”
[흠, 한번 찔러봤는데 역시 안 통하는군.]“내 덕에 병력을 지키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만 가져라. 내가 이 불쾌한 기분을 당장 킨젤로 쪽에 쏟아낼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수틀리면 역천으로 킨젤로부터 족치겠다는 뜻, 오르갈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무서워서 말도 못 걸겠군. 좋은 정보를 줬을 뿐인데 말이지.]굳이 오르갈에게 빚을 질 필요는 없었다.
지금 연합엔, 세상에서 마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 있으니 말이다.
“진.”
발레리아 히스터.
진은 역천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곁으로 날아든 발레리아를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발레리는 사키엘이 자폭하자마자 그녀의 마법을 분석하고 있었다.
“발레리아.”
“오르갈이 마법명을 말한 덕에 더 확실해졌어. 술식이나 마법진 모두 처음 보는 구조라서 애를 먹긴 했는데, 역시 이건 지플의 역사 조작과 유사한 종류의 마법이야.”
“역사 조작과?”
“대상의 기억을 훼손하는 효과일 거야. 마법의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적들이 알아서 떠벌려주네.”
오르갈은 상실의 장이라는 마법명을 알려주었고, 사키엘은 ‘모든 것을 잊은 채 빈 껍데기가 된다’는 효과를 떠벌렸다.
발레리아의 말을 듣자마자 진은 홱 고개를 돌려 다시 오르갈을 쳐다보았다.
‘오르갈…… 처음부터 발레리아가 나설 걸 염두에 두고 일부러 슬쩍 마법명을 흘렸군. 발레리아가 해법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오르갈은 엄지를 척 치켜든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지금 진이 상실의 장을 완벽히 파훼하는 게 이득이었다. 도움 운운한 건 말 그대로 진에게 빚을 지우기 위해 한번 떠본 것일 뿐.
“그러네, 한 놈은 다소 불순한 의도가 있었지만.”
“마법명과 목적을 알았으니 이제 차근차근 난해한 술식과 진들을 역으로 풀어가면 돼. 알지? 내가 그걸 맡을 테니 상실의 장이 더 확장되지 않도록 계속 막아줘.”
“알았어.”
“네가 상실의 장이 시작된 순간을 적절하게 망친 덕에 술식이 전반적으로 이미 무너졌어. 역천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풀 생각은 못 했을 거야. 정말 위험했던 거지…….”
사키엘은 어이가 없어 일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목숨을 걸고 진마계 최고의 금기 마법을 펼쳤건만, 그걸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마족들을 제물로 바쳤건만.
진은 너무나 쉽게 상실의 장을 파훼하고 있었다. 심지어 발레리아 히스터라는 인간은 마치 공부를 하듯이 마법진을 분석, 해체하는 중이고 말이다.
‘이럴 수는 없다…… 감히 인간들 따위가 내 일생을 건 마법을, 이토록 쉽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거대한 모멸감이 사키엘의 마지막 남은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눈앞에서 상실의 장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 어떤 대응도 할 수가 없었다. 마법을 더 전개할 육신은 이미 사라졌고, 제물도 사라졌고, 수정구도 사라졌으니까.
사키엘은 그저 사그라지는 중인 영혼 상태로 진과 발레리아가 상실의 장을 분해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멈춰라, 멈추란 말이다!]결국 사키엘은 그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소리치는 순간 밑천이 바닥난 사실이 밝혀지는 것임에도, 적들의 눈에 더 구차하게 보일 뿐임에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충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돌아보면 처음 진을 상대한 순간부터 늘 그런 식이었다. 지토의 살점은 매번 의미 없이 사라졌고, 어렵게 고른 수들은 번번이 빗나갔으며 어떤 대마법도 통하질 않았다.
말하자면, 사키엘은 절망하고 있었다.
“곧 그렇게 될 테니 가만히 기다려라. 네놈들도 죽으면 지옥으로 가는 건가? 어디로 가든, 먼저 가서 네놈들의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되겠군. 곧 지토도 끝장을 낼 것이니.”
[으아아아아!]사키엘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그녀는 상실의 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절규를 멈추지 않았다.
과거 지토에게 고문당하던 때와 비견되는, 아니. 그보다 더욱 거대한 고통과 허무감이 사키엘의 내면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지토 님…… 저는 지토 님께 결국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이렇게 끝납니다. 새로운 질서의 깃발을 들어 올리지 못한 채. 파엘리토 님,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키엘은 자신을 비웃는 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토의 목소리였다. 사키엘의 내면에서 울리는.
‘푸흡, 푸흐흐흣. 아, 미치겠네. 그래, 바로 이거다, 사키엘. 내가 원한 게 바로 이런 거야. 그러니까 나한텐 미안할 필요가 없다.’
‘지토 님……!?’
‘크학학학, 어쨌거나 그간 고생했고. 파엘리토는 걱정 마라. 그 녀석도 내가 잘 갖고 놀아줄 테니까.’
‘지토 님, 이게 대체 무슨.’
‘아직도 내게 꼬박꼬박 존칭을 하네. 야, 사키엘. 지금 뭔가 막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냐? 가령, 파엘리토랑 너랑 아주 좋았던 과거의 어느 한때라든가.’
사키엘에게 걸렸던 지토의 세뇌가 풀어지고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하염없이 밀려들었고, 사키엘은 또 한 번 절망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토에게 저주의 언어를 퍼부으려던 찰나.
“끝이다, 사키엘.”
역천이 상실의 장을 완전히 깨부쉈다. 동시에 사키엘은 마지막 남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로쉬에 성 공략이 종료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