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9)
제 999화
240화. 위기의 적명족(3)
파틀록과 피빌록.
두 성채가 공중요새 가동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 엘로나는 두 성채를 공격하지 않았다. 가일라로부터 얻은 정보를 정리하느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황실은 적명족이 하필 이 시점에 배신하는 걸 예상치 못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우선 황실은 엘로나의 타락을 상대적으로 늦게 파악했다. 지옥에 직접 내려간 세력, 그중에서도 켈리악과 직접 전투를 한 인원만들이 그녀가 변한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이후 엘로나가 곧장 켈리악의 명에 따라 지플 내 친베라딘 세력을 정리하며 만천하에 루테로의 권력 구도가 변경된 사실을 알렸으나, 적명족까지 바로 공격하는 건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엘로나에게 성수관을 통한 ‘정신 지배’ 능력이 생겼다는 사실은, 기록 마법사를 보유한 바멀 연합만이 추정한 상황이다. 황실로서는 단지 엘로나가 켈리악의 편에 섰고, 더 강해졌다고만 알고 있었다.
치이이이잉……!
제3도시 상공, 파틀과 함대는 공간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명족의 공중요새들은 마치 거대한 팽이 같은 형상이다. 모든 면에 기함급 함선을 뛰어넘는 포문이 있고, 날카롭게 깎인 하부는 그 어떤 단단한 대지도 유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명족 입장에선 어쩌면 최종 결전이 될 수도 있는 싸움이었다. 도시엔 최소한의 경계 병력조차 남지 않았고, 불사군이 되지 않은 적명족은 모두 파틀과 예하 함대에 탑승하고 있었다.
“이젠 시마트 동포의 판단이 옳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군.”
라키만의 말에 시마트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일라 동포와 4도시 동포들의 죽음이 헛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린, 곧 투신 동포를 만날 수 있게 될 겁니다.”
처음엔 미친 소리라며 반대했으나, 막상 일이 시작되니 라키만은 동포들의 희생으로 늘어난 자신의 힘과 처음으로 가동된 파틀의 동력원에 전율하고 있었다.
파틀은 당장 그 어떤 적이라도 남김없이 섬멸할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피가 부족해서 5할 정도의 위력으로 세 시간쯤 가동하는 게 한계임에도 적명족들을 기대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차원문을 열도록!”
라키만이 소리치자 입이 벌어지듯 파틀의 중앙부가 열렸다. 붉은 태양처럼 보이는 동력원이 훤히 드러났다.
동력원이 드러나는 그 순간이 공중요새가 유일하게 약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대규모 차원 이동을 할 때를 제외하면 동력원이 외부에 드러날 일은 없었다.
파아아아……!
동력원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쏟아졌다. 빛줄기는 마치 붓처럼 움직이며 정사각형을 그리며 차원문을 형성했다.
“좌표, 피르올. 침공을 시작한다.”
파틀을 필두로 함대들이 차원문 너머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 정도 대규모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세력은 적명족과 킨젤로, 그리고 진마계의 실키아 셋뿐이었다.
좌표가 없는 지상을 칠 땐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테지만, 중간세계를 이동할 때는 10분이면 충분했다.
예고도 없이, 어떠한 전조도 없이.
소도시 피르올의 하늘이 피가 번진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과거 고대 명왕족들이 지하를 제패했을 때, 하늘이 붉게 변하는 현상은 곧 멸망의 상징이었다.
적명족의 공중요새가 나타난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 무슨…… 적명족, 이 미친 작자들이 무슨 개짓거리를!”
마노프 비먼트.
비볼 비먼트와 더불어 황제의 수족 중 하나나 다름없는 그는, 하늘을 올려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난데없이 오르갈이 찾아왔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 년 이상 이어진 그의 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놈들이 배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벌써!?’
황실은 지금껏 적명족을 완벽히 통제하는 중이라 착각했다. 특히 그들이 멋대로 공중요새를 가동하는 일만큼은 절대 없도록, 보급하는 피를 세밀하게 조절해왔다.
‘미친놈들, 아군의 피를 사용했구나……!’
동포들을 희생시켜 가동하는 건 경우에 없었다. 황실은 적명족이 동포를 희생해서 공중요새를 가동하는 판단은 멸망 직전에나 선택할 수라고만 생각해왔다.
마노프는 허겁지겁 창밖으로 뛰쳐나가 도시를 살폈다. 마인들이 청명족 매몰자들의 시신을 분주히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자아가 있는 일부 마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이것들이 놈들의 손에 넘어가면.’
제3도시의 공중요새, 파틀은 완전에 가까워진다.
고대에 지하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 그 끔찍한 무기가 하나라도 완성되면, 지금의 황실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문제였다.
하필 오늘은 황실이 ‘가장 많은’ 청명족 매몰자를 피르올로 옮긴 날이었다.
최근 청명족 투신 엘티엇이 인지 능력을 되찾아가고 있으니, 그로부터 매몰자들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던 까닭이었다.
어차피 청명족 매몰자들은 조금씩 적명족에게 지원해야 하니 피르올에 잠시 보관했다가, 오늘 이후 각 거점으로 나눌 요량이었건만.
결국 그 선택은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마노프의 머릿속이 하얘진 그 순간, 적명족들은 흥분에 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 청명족! 그 달콤한 청명족의 피가 대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인가! 시마트 동포, 저길 봐라! 눈으로는 바로 셀 수도 없는 숫자다!”
라키만은 거의 어린애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시마트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청명족 매몰자들을 확인했다. 그는 많아야 오백여 구의 매몰자를 찾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얼추 보아도 오천 이상의 매몰자가 있었다. 게다가 도시 내에 매몰자들이 더 보관되어 있을 터.
“인간 세상에 복권이라는 게 있다더군요, 라키만 동포. 극히 낮은 확률로 거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우린, 지금 복권에 당첨된 겁니다.”
“크하하핫, 카하하하학!”
물론 이송 중인 매몰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마인도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적명족들은 막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중인 마인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백병전이라면 모를까, 공중요새가 있는 한 마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황실 고위 관료, 마노프 비먼트 확인됐습니다! 라키만 동포, 명령을!”
“반드시 생포한다! 놈은 파틀의 위력을 알고 있을 테니 항전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야. 마인들을 방패 삼아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겠지. 즉시 놈의 희망을 무너뜨려주어라!”
“적명!”
라키만의 말대로 마노프는 바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르올은 마인의 주요 연구지 중 하나였던 만큼 자폭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자폭을 설정하고 미리 설치한 차원문을 타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쉽게 공중요새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면, 고대 지하세계의 강자들이 그렇게까지 치를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억, 헉……!”
마노프는 차원문을 향해 뛰다가 갑자기 숨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미 공간 도약에 성공한 순간, 적명족은 파틀을 통해 적뇌 파장을 피르올 전체에 퍼뜨렸다.
그 파장은 테스의 중압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파장에 닿은 이들은 모두 몸이 무거워지며 탈력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파장은 두 종류였다. 나머지 하나는 적들의 통신기나 차원문 등의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파장으로, 해당 기물들의 동력을 강제로 끊어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꾹, 꾹꾹! 텅!
마노프는 미친 듯이 요새 내 벽을 개방하는 단추를 누르고 있었다. 황실이 피르올에 지은 요새 겸 연구실은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되는 각종 장치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먹통이 되었다.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마노프는 공중요새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사실 이미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내내 목줄 붙잡힌 개라고 생각한 이들에게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 뿐이었다.
억지로 몇 개의 차단벽을 부수고 자폭 장치와 차원문이 있는 방까지 도달했으나, 이미 그것들도 기능하지 않는 상태였다.
마노프가 따로 마력을 주입해도 마찬가지였다. 손상된 마력 회로는 한순간에 고칠 수 없었다.
“하.”
마노프는 바깥 상황이 어떤지를 볼 수 없으나, 알 수는 있었다.
공중요새 파틀과 함대의 주포는 청명족 매몰자들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마인들만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테마르 비먼트가 여기 있었다면 탈출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하필 테마르마저 메이실에 있군. 아니, 차라리 메이실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놈들이 대체 무슨 수로 공중요새를 가동해 배신을 감행한 건지는 모르나, 여길 치고 폐하가 계신 메이실을 냅뒀을 리 없어.’
마노프의 예상대로 요새 바깥은 붉은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인들은 공중요새 아래로 떨어진 수만 가닥의 붉은 빛줄기에 닿아 산화하는 중이고, 청명족들은 실시간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현재 요새에 남은 청명족 매몰자들을 다 합치면 파틀의 동력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그 남은 매몰자들은 차례대로 적명족의 다른 공중요새들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메이실을 친 놈들이 폐하와 엘티엇에게 당하는 것뿐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마노프는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적뇌 파장의 농도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마노프 비먼트. 고대부터 그 끈질긴 생명력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알려진 멜카족이 자살이라니?”
어느새 요새를 빠져나온 시마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인들은 이미 완벽하게 제거되었다. 적명족들은 모두 함대에서 뛰어내려 피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시마트…… 설마 이 시점에 우리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군.”
“감히 멜카족 따위가 위대한 적명족을 잠시라도 개처럼 부렸다는 사실이 더 모를 일이었지. 뭐, 그건 너희 생에 최고의 영광이었을 것이다.”
이내 시마트가 마노프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내가 네놈을 살린 이유는 오직 하나다, 마노프 비먼트.”
“……무엇이냐?”
“우리 투신의 행방을 알려라. 적명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리하면, 너희 황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흥, 지금껏 우리가 네놈들을 부렸듯이, 우릴 이용하겠다는 뜻인가?”
그 말에 시마트는 어이가 없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힘을 되찾은 우리에게 멜카족의 도움 따위가 필요할 것 같나? 아직 믿는 수가 있는 모양인데, 바멀이나 루테로 같은 거대 세력이 너흴 돕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지금 끝났다. 내 말은, 황실의 핏줄을 하나는 남겨주겠다는 뜻이다. 딱 한 놈만 살아서 적명족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지. 너희 멜카족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그저 생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족속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