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78)
제 999화
242화. 엘티엇(2)
“뭐라고? 나를, 가르쳐?”
엘티엇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엘티엇이 청명족 투신이었다는 건 알고 있으나, 다짜고짜 가르침을 주겠다니.
“그렇다, 루나 룬칸델.”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무례한 놈을 다 보았다고 해야 할까. 루나는 자신이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엘티엇을 빤히 쳐다보았다.
“음…… 자신감이 대단한걸. 그래, 창성이라고 했으니.”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믿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좀 난데없는 이야기인지라?”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위대한 명왕족, 그것도 푸른 투신이 직접 배움을 주겠다는데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니. 고대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루나는 계속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진은 그런 루나의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어 끼어들지 않았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내게 배움을 청했는지 아느냐? 모르겠지, 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나는 그 간곡한 청을 모두 거절하였다. 왜냐? 그들은 모두 내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아하. 그……래? 그렇다면 나는 네 기준에 부합한다는 뜻인가.”
“오만하기가 짝이 없고 경솔하기는 굶주린 닭보다 더하구나.”
하마터면 그 대목에서 진은 풉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뭐? 오만…… 굶주린 닭?”
“물론 너 또한 나의 기준에는 미달이다. 네 무예가 그 시절 강자들에 비해서도 특별히 고강한 건 사실이나, 네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루나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엘티엇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쨌거나 그는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니까…….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하겠지.”
“아니.”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짓밟혀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원한과 복수심이다. 보아하니 너는 심히 곱게 자랐어. 그런데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의지를 갖고 있기는 하나, 그뿐이다. 너에겐 처절함이 없다.”
반박하고 싶지만, 엘티엇은 최근 루나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시론이 직접 루나에겐 가혹한 패배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니.
“그래서, 네가 내게 처절한 마음을 일깨워주겠다는 것이냐?”
“정확하다. 그리고 다소 근본이 부족한 너의 검술도 다듬어주마. 너는, 평상시의 호흡부터 틀려먹었다.”
엘티엇은 그야말로 루나가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막말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대체 그 누가 룬칸델 1기수, 백경의 검술이 근본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론조차 그런 표현을 한 적은 없었다. 오만하다느니 경솔하다느니 함부로 떠들던 이들은 몇 존재했으나, 모두 대가를 치르고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후우,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군. 네 뜻은 잘 알겠다, 엘티엇. 몸이 낫는 대로 내게 연락해라. 대련 한번 하지. 네가 과연 내뱉은 말들을 책임질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그 말에 엘티엇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때까지 기다린단 말이냐? 마땅한 장소가 있다면 지금 바로 가자꾸나.”
결국 루나의 이마와 목에 굵직한 핏대가 치솟았다.
“막내야, 들었지. 더는 참을 수가 없구나. 오늘 이 친구를 내가 반쯤 다시 죽여놓아도 괜찮겠느냐?”
“또 굶주린 닭 같은 소리를 하는군. 진 룬칸델, 걱정 마라. 적당한 선에서 봐주도록 할 테니.”
이미 루나의 온몸엔 이글이글 일렁이는 오러가 휘감기고 있었다.
“이런 무례한 도발을 그냥 넘길 수는 없죠. 누님, 뜻대로 하십시오. 단, 지금은 전시인 만큼 두 분 다 깔끔한 대련을 하셔야 합니다. 감정이 들어가서 서로 죽이네 마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그렇게 해보마.”
“걱정하지 말래도.”
그렇게 일행은 갑자기 지하 대련장으로 가게 되었다.
“진, 대충 들었다. 나도 가서 구경해도 되냐?”
“나 또한 가고 싶소!”
옆 병실에 있던 베라딘과 단테였다. 요즘 단테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베라딘을 찾아오는 중이다.
질문은 진에게 했으나, 베라딘과 단테는 쭈뼛거리며 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루나는 상관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단테와 베라딘에겐 진보다 루나가 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두 사람 다 어릴 적부터 백경의 일화와 위엄들을 들으며 자란 것이다.
물론 객관적 무위는 이제 창성인 진이 더 우위이지만, 그들에게 진은 친구다. 당연히 친구보다는 루나의 검을 직접 보는 게 더 신나는 일이었다. 여전히 루나는 두 사람에게도 묘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대단한 인사를 바라고 널 구한 건 아니다만, 설마 인사보다도 도발을 먼저 듣게 될 줄이야.”
엘티엇은 훈련장 무기고에서 적당한 검을 한 자루 골랐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명검이라 불릴 만하나 루나를 상대로 쓰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너를 가르치겠다고 한 건 내 나름대로 최선의 감사 표시였다. 그게 불쾌했다니 통탄할 일이지…… 루나 룬칸델, 싸우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하자꾸나.”
“무엇이냐?”
“지는 쪽은 군말 없이 상대의 뜻 한 가지를 따르는 것이다.”
“좋다.”
루나가 내뿜는 오러와 마력 때문에 대련장 전체에 뜨겁고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두 사람 가운데 서 있던 진이 뒤로 물러났다. 시작하라는 의미였다.
쩌엉-!
선공은 루나였다. 그녀는 시작부터 엘티엇을 죽일 듯 크란텔을 내리쳤는데, 앞선 도발 때문에 흥분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침착하고 냉정한 눈을 하고 있었다. 굳이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려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큭!”
엘티엇은 루나의 공세를 받자마자 한 움큼 핏물을 토했다. 오랜 봉인과 폭주로 인한 내상이 바로 도진 것이다.
다만 핏물을 내뱉는 와중에도 매섭게 떨어지는 크란텔을 대부분 흘려내거나 피하고 있었다. 검의 끝에 다다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기였다.
“거칠어, 역시 지나치게 거칠구나.”
그런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루나의 신경을 긁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엘티엇은 싸움에 돌입한 루나가 귀를 닫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몰두, 루나는 그런 상태로 싸움에 임했다.
“이런 거친 검은 처절한 자에게 어울리지. 지금 너의 검은 보다 고상해야 한다. 균형이 맞지 않으니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것이야.”
진은 마치 해설하듯 말하는 엘티엇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가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엘티엇은 누님이 평상시의 호흡부터 잘못됐다고 말했었지…… 저 말을 들으니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군.’
무인에게 호흡이란, 그 사람을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루나는 말할 것도 없이 늘 천적이 없는 맹수같이 숨을 쉬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해 숨죽인 채 웅크리는 시간을 가질 이유가 없고, 사냥감을 속이기 위해 잠시 멈출 필요도 없다.
따라서 루나의 호흡은 그녀가 줄곧 강자의 입장에서 패도를 실현해왔다는 증거였다.
엘티엇은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천적 없는 삶 속에서, 루나의 검은 저도 모르게 고여갔다고 말이다.
콰아악-! 루나가 엘티엇의 품을 파고들어 크란텔을 올려쳤다. 엘티엇이 공중으로 떠오른 순간, 그녀는 이미 도약해서 엘티엇의 뒤를 잡고 있었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크란텔, 엘티엇은 가까스로 뒤돌아 검으로 크란텔을 막았다. 그러나 추락한 후 다시 자세를 잡은 엘티엇의 검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모를 것이다, 방금은 네가 이 승부를 끝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에도 루나는 대답하지 않고 재차 엘티엇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엘티엇은 부러진 검을 뇌기로 붙이지 않고 짧아진 상태 그대로 사용했다.
그런데 오히려 처음보다 크란텔을 더욱 유려하게 흘리는 모습이었다. 검이 짧아진 만큼, 엘티엇은 오감을 더 끌어올려 대응하고 있었다.
“일격에 태산을 무너뜨리는 검도 훌륭하고, 빛처럼 빨라서 쉽게 적의 목숨을 앗는 검 또한 훌륭하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검은, 바람을 닮아 있다.”
엘티엇이 그렇게 말한 순간, 정말로 훈련장 한가운데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껏 루나가 매섭게 불러낸 검기의 폭풍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오러가 사방에 격류처럼 흐르는 와중에도 흩어지지 않고 훈련장 중심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루나는 몇 번 그 바람을 흩어놓으려다 포기하고는 그냥 뛰어넘어 다시 엘티엇과 거리를 좁히려 했다.
엘티엇은 지금까지와 달리 벼락처럼 떨어지는 루나를 피하지 않았다.
대신, 크란텔이 닿으려는 찰나 반 박자 빠르게 루나의 목으로 부러진 검을 찔러넣었다.
굉음이 일었다. 크란텔이 일으킨 충격파에 훈련장 바닥이 전부 깨지고 있었다.
‘사고다……!’
‘헉, 죽었겠는데!?’
단테와 베라딘이 기겁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눈엔 분명 크란텔이 엘티엇을 반으로 가른 것처럼 보였다.
진조차 처음엔 그렇게 보았다. 설령 엘티엇이 마지막에 보법을 밟아서 크란텔을 피했다 한들, 그 충격파 때문에 온몸이 걸레짝처럼 찢겼을 터였다.
“승부가 났구나, 루나 룬칸델.”
그러나 엘티엇은 검을 찌른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크란텔 역시 엘티엇의 왼 어깨에 닿기 직전 멈춘 모습이었다. 훈련장 바닥을 모조리 부순 충격파는, 크란텔이 멈춘 순간에 발생한 것이다.
물론 엘티엇의 몸 왼쪽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뺨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고, 어깨와 가슴팍, 허벅지까지도 근육이 보일 만큼 찢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치명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정도 상처는 엘티엇의 전투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루나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부러진 검이 그녀의 얼굴 한 뼘 앞에 멈춰 있었다. 검이 멀쩡했다면, 머리를 관통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루나는 한동안 눈앞에 놓인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물론 검이 부러진 사실을 알기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엘티엇이 이런 식으로 응수하는 건 루나의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검이…… 멀쩡했어도 피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아니었다.
‘대신 나는 자세가 심각하게 무너졌을 거고, 그 틈에 엘티엇이 역공을 시작했다면. 그때부터는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었을 게 분명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끝까지 싸운다면 어떻게 될지는 루나도, 엘티엇도 알 수 없다. 애초에 지금은 두 사람 다 전력을 쓰지 않은 싸움이었다.
루나는 엘티엇의 상태와 대련의 목적을 생각해 결전기와 비기, 붉은 검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엘티엇은 전성기의 위용을 다 보여줄 수 없는 상태니까.
다만 루나는 ‘대련’에서 자신이 패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먼저 검을 멈춘 건 자신이니 말이다.
“후, 내가 졌다. 엘티엇.”
“뭐!? 야, 단테, 진. 이게 어떻게 백경 님이 진 거냐? 저기 엘티엇이란 친구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대충은 알 것 같소만…… 설명해주기가 복잡하오. 이따 정리해서 말해주겠소.”
“그래, 단테한테 들어라.”
그사이 엘티엇은 마치 개처럼 몸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는 루나에게 다가갔다.
“뭐라고 하였느냐?”
“내가 졌다고 하였다.”
떼에에엑-!
별안간 엘티엇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루나는 흠칫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네 이놈! 제자가 스승에게 반말을 하게 되어 있더냐!? 어서 예를 갖춰서 다시 말하거라!”
루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