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4)
제 999화
244화. 적명족을 기습(2)
콰득, 퍼엉, 치이이잉……!
포성과 더불어 무언가 으깨어지고 깨지는 소리, 물체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1급 방위 장비가 가동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돌연 루나의 발밑이 꺼졌다. 그 속에선 수천 마리 뱀 같은 붉은 광선이 튀어나왔는데, 결국 루나는 평소처럼 그중 일부를 몸으로 받아 내며 위치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러면 곤란한데. 여기도 1급 방위 장비가 배치되어 있었네……?”
“스승님?”
“하지만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으니, 마저 가 보자꾸나. 적뇌 파장 농도도 곧 방금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질 것이다.”
그 말처럼 루나는 이미 몸놀림이 무거워진 걸 인지했다. 엘티엇의 상쇄를 흉내 내는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평소 네 식대로 싸우되, 여유가 있을 땐 이 스승이 말한 것들을 행하려고 노력해라. 쯧, 진한 훈련이 될 줄 알았는데 다 텄구나, 텄어.”
엘티엇은 연신 입맛을 다시며 몰려드는 적뇌 파장과 포격, 각종 함정을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양새가 썩 아름답지는 않았다. 때로는 다리를 일자로 쫙 벌린 채 앉아서 고개를 좌우로 틀었고, 때로는 그 상태로 땅을 짚고 일어나 공중제비를 돌다가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졌다. 탄성 좋은 공이라도 되는 듯 이리저리 튀는 것이다.
마치 절대 깨지지 않는 방패처럼 우직하게 다 맞으며 버티는 루나와는 전혀 달랐다.
‘저 인간 뭐야 대체…… 저렇게 움직이면서 다 피한다고?’
루나는 일순 엘티엇이 바람처럼 보였다.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고, 잡아서 가둘 수 없는.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두 사람이 도시 내부로 진입한 후에 1급 방위 장비가 가동된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가동됐다면 애초에 접근부터 문제가 됐을 터였다.
크각, 쩌억-!
크란텔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시커먼 방벽을 반으로 갈랐다. 그러나 방벽은 계속 새로 솟구치고 있었다.
통상적인 공격으로는 방벽이 형성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루나는 결전기 쇄천을 펼쳤다.
용솟음처럼 땅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거대한 광파가 방벽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 틈에 도시 내부로 더 가까이 진입할 수 있었다.
“스승님 조언들을 실천할 틈이 없군요.”
“재량껏 하는 수밖에. 한데 이상하구나, 슬슬 병력이 직접 나설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한 놈이 나오질 않는군. 어디 보자, 기함 라비에트가 있으니까. 바클을 관리하는 건 라키만과 휘하 투왕들일 텐데.”
이내 두 사람은 완전히 도시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리엔 사람은 물론이고, 건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드넓은 허허벌판이었다.
“다 지하로 감췄거나, 하늘로 띄운 것이다. 기존 루테로 연방의 주민들도 그렇게 대피했을 테지.”
이번 기습의 목적은 적명족이 배치한 공공시설 일부를 탈취하는 것이다. 거리가 이렇게 휑해서는 챙길 수 없었다.
“얼마나 깊은 땅 아래로 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물건을 찾겠다고 지상을 다 파괴하기 시작하면 일반인들도 다치겠군요. 하늘을 뚫으면 됩니까?”
“그래.”
루나의 시선이 붉게 물든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 으득, 이를 악물었다.
카하아아-!
이내 루나가 기합을 내지르며 도끼검을 올려치자 일순, 눈부시게 환한 빛이 적뇌를 걷어 냈다.
현재 바클엔 공중요새가 없다.
라비에트와 일반 함대의 화력만으로는 그 광대한 검기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다. 1열에 위치한 함선들은 일부 파손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루나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붉게 물들어 가는 상공을 노려보았다.
크란텔에서 쏟아진 거대한 광파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함대 보호막에 닿지도 못한 채 흩어지고 있었다.
소용돌이였다.
온 하늘을 휘저은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발생한 척력이 루나의 검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신이 강림하듯 한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적명족 투신 시마트.
하늘을 밟고 선 그의 광심장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정작 지플은 아직도 복수를 하러 오지 않았건만, 룬칸델이 우리 영토를 함부로 들쑤셔대는군.”
시마트가 루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루나에게 시선을 오래 두지 않고 곧바로 엘티엇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잉, 제자야. 저놈이 나오고 말았구나.”
루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마트를 응시했다. 그에게서 흐르는 기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오랜만이오, 노인네.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대봉인에서 살아남았군. 아니면, 역시 큰 뱀이 당신을 배려해 준 건가?”
“세월로 따지면 만 년도 더 흘렀을 터인데, 보자마자 흰소리를 하는구나, 적천왕. 그 시절 큰 뱀이 그리 무른 작자였더냐? 네놈은 머리를 좀 쓴 모양이더군. 1급 투왕인 척 숨어서 대봉인을 면했으니.”
“완전히 면하지는 못했소. 1급 투왕 시마트로서 봉인이 됐던 것은 사실이니.”
“그래도 지금은 그때처럼 쌩쌩하지 않더냐? 예부터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더니, 기어이 멸망을 면했어.”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시오. 그러게 노인네도 머리 좀 굴리지 그러셨소.”
“부러울 리가? 태양전쟁은 우리 청명족의 판정승이라 할 수 있느니라. 너흰 후손을 남기지 못했으나, 우리에겐 라프라로사의 명왕족이 남았거든.”
“재미없는 농담도 여전하군. 내 알아보니 그 명왕족은 사실상 멸절했고 진 룬칸델이 유일한 계승자라더군. 반면에 우린 숫자가 줄었을 뿐, 나머진 거의 그대로요. 대봉인에 오랜 시간 갇혀 있었을 뿐.”
“그러니 1차전은 우리 청명족의 판정승이고, 지금부터 할 싸움은 2차전이라 봐야지.”
“후후…… 형제들은 다 죽어 먼지가 되었는데, 바멀 연합에 빌붙어 나와 싸울 생각이신가?”
“뭐, 정확히는 앞으로 여기 내 제자가 청명족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엘티엇이 자신 있는 얼굴로 루나를 가리켰다. 시마트는 그때야 다시 흥미가 생긴 듯 루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위대한 청풍제가 인간 제자라…… 확실히 세상이 이상해지긴 했군. 뭐, 백경이 그 시절 강자 중에도 극히 뛰어난 수준인 건 사실이오. 하지만 정말 한 사람만으로 붉은 하늘을 무너뜨릴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잊었느냐? 우리 청명은 하나가 곧 전부다.”
“아니, 하나는 하나일 뿐이오. 그것은 겨우 혼자 살아남아 초라해진 당신이 이미 증명하고 있소.”
엘티엇은 대답을 고르다가 루나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저런 재수 없는 것들이 바로 적명족이다, 제자야. 오늘 그냥 끝장을 봐!? 말리지 말거라!”
“안 말렸습니다, 스승님.”
루나는 사실 지금은 전혀 농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투신이 등장했고, 적명족의 공중요새들도 언제든 지원을 올 수 있다. 만일 적명족이 지금 바클에 전력을 집중시킨다면 루나라 할지라도 생존은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루나는 엘티엇의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며 그에게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엘티엇은 전성기가 아닐 뿐, 격은 창성이기도 하니 말이다.
“회포는 이만하면 대충 푼 것 같군, 청풍제. 이제 적명의 땅을 기습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오.”
시마트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위로 순식간에 태양처럼 거대한 붉은 구체가 빚어졌다. 함대와 지상 위로 거대 구체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구체는 과거 적명족이 행한 파괴와 학살을 상징하는 힘이다. 이내 시마트가 들어 올린 손을 아래로 내리자, 구체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엘티엇도 광심장을 증폭시켰다. 이제껏 부드럽던 엘티엇의 뇌기가 해일처럼 맹렬하게 적뇌 파장을 걷어 냈다.
“시마트를 맡아라, 제자야. 신호할 때까지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먼저 엘티엇이 도약했다. 그는 구체로 뛰어올라 물에 빠지듯 그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루나는 알 수 없었다.
‘일부를 상쇄하며 안에서부터 길을 만든 것인가, 대단하긴 하군. 그럼,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으니…….’
크란텔에 붉은 검기가 맺혔다.
심검 적월, 그녀는 엘티엇이 들어간 구체를 향해 망설임 없이 붉은 검기를 쏘았다. 구체가 너무 큰 탓에 루나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을 열 수 없었다.
태어나 받아 본 일격 중 가장 무겁다 해도 좋을 것이다. 검과 구체가 닿자, 루나는 뼈가 뒤틀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쓰아아악-!
하지만 이내 구체를 양단해 다시 시마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마트는, 미리 구체가 반으로 나뉠 걸 예상하고 이미 루나와 거리를 좁힌 상태였다. 태양검 테탈론이 루나의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도끼검과 적뇌에 휘감긴 장검이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검들 사이에서 기운의 파편이 묵직한 핏덩이처럼 튀어댔다.
“호오, 한 차례 검을 섞자마자 청풍제가 왜 너를 제자로 삼았는지 알겠군. 아직 창성에 도달하지 못하였는데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느껴지는구나.”
“적명족엔 늘 얻어맞은 개처럼 도망이나 치는 놈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너 같은 인물도 있었군.”
부서진 구체의 잔해가 벼락처럼 빗발치고 있었다. 모두 시마트의 의지를 따라 루나에게만 떨어졌다.
때문에 루나는 시마트와 검을 섞는 동안 계속 잔해에 피격되었다. 아직은 거슬리는 수준이나, 그녀의 강체가 무한한 건 아니다.
싸움이 길어지면 언젠가는 금이 갈 것이다.
‘스승님이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시간을 버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후엔 어떻게 탈출할 계획이신 거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시마트를 따돌리는 건 불가능할 텐데.’
시잇! 테탈론이 루나의 뺨을 스쳤다. 크란텔은 그의 옷깃 바로 앞을 지나쳤는데, 루나는 그 순간 시마트와 자신의 격차를 절감했다.
창성과, 창성 근처를 헤매는 자의 격차였다.
“그러나 창성조차도 운명을 매번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너는 아직 내 상대가 아니다.”
“그래? 난 할 만한 것 같…….”
대답을 하던 중 루나는, 함대 사이로 또 적명족에 지원군이 추가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피빌과 파틀, 두 기의 공중요새가 하늘에 열린 차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백경.”
시마트는 미소를 지었고, 루나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