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5)
제 999화
244화. 적명족을 기습(3)
‘빌어먹을, 메이실에서 본 그 공중요새들이군…….’
메이실에서 마주했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때는 진이 함께 있었으니 공중요새의 위용을 직접 마주하고도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이 없고, 적천왕 시마트가 그녀를 압박하고 있다.
공중요새들은 마치 시마트의 날개처럼 보였다. 피빌과 파틀은 두 사람이 근접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루나만을 타격할 터였다.
콰득-!
테탈론이 루나를 내리찍었다. 루나는 크란텔을 수평으로 들어 막아냈으나 지면이 무너지며 자세가 무너졌다.
다만 그 순간 루나도 오른발을 굴렀다. 그 충격에 땅이 꺼지며 시마트의 몸이 일순 허공에 떠올랐고, 창성이라 할지라도 그 상태로는 루나에게 추가 공격을 할 수 없었다.
본래라면 그래야 했다.
그러나 루나는 난데없이 거리를 좁히며 들어온 칼날에 하마터면 심장을 찔릴 뻔했다.
“호오, 이걸 피해?”
칼날은 루나의 어깨를 스쳤다. 대체 시마트가 어떻게 공격을 이어간 건지, 루나는 다음 순간 알아볼 수 있었다.
‘적뇌 파장인가……!’
피빌과 파틀, 공중요새에서부터 내려온 적뇌 파장이 그 순간 시마트가 바로 자세를 잡을 수 있도록 보조를 해준 것이다.
시마트는 적뇌 파장이 형성한 붉은 판 위에 서 있었다. 때문에 루나만 충격파가 만든 구덩이 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런 식의 전투 지원은 겪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심지어 시마트는 아주 익숙해 보였다. 그는 실제로 태양전쟁 시절부터 강자들을 상대할 때 공중요새와 연계해 싸우는 걸 선호했다. 누구와 싸우든, 절대로 질 일이 없도록.
“하? 단순 포격 지원도 아니고, 발 디딜 곳까지 만들어줘? 반칙 아닌가?”
“전쟁에 반칙이 어디 있나, 백경. 농담이라면 사부만은 못하다고 평하지.”
“그래, 사부님이 재미있긴 하지.”
루나가 좌측으로 보법을 밟으며 구덩이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그녀의 바로 앞에 또 붉은 판이 떠올랐다.
당연히 공중요새는 시마트의 움직임을 도울 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이동을 가로막을 수도 있었다.
“칫!”
루나는 당황하지 않고 크란텔로 붉은 판을 갈라버렸다. 판은 쉽게 무너졌으나, 쉴 새 없이 생기는 게 문제였다.
판을 제거하려는 작은 움직임들 때문에 빈틈이 생기면 여지없이 시마트의 검이 날아들었다. 검을 피하면, 공중요새의 정밀 포격이 루나의 등을 후려쳤다.
“너, 인간이 맞긴 한가? 포격을 보호막도 없이 맨몸으로 버텨내다니.”
깊지는 않다고 하나, 벌써 몸에 찢어지고 터진 상처가 열댓 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등을 타고 뜨끈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곤두선 감각이 한층 더 선명해졌고, 두 눈은 보이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비로소, 루나는 ‘위기’를 절감하고 있었다.
‘아…… 정말로 죽을 수 있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시론, 원정대와 함께 흑해에서 넘나들던 사선보다도 더 깊고 진창 같은 위기가 그녀를 죄어오고 있었다.
“뭘 이 정도로 놀라고 그러나, 내 동생은 나보다 더 튼튼한데.”
“진 룬칸델이?”
“아니, 룬티아라고 있어. 어차피 알아둬도 의미는 없을 테지만…….”
“룬칸델의 3기수를 말하는 것이군. 왜 의미가 없다는 것이냐?”
쩌엉-! 루나가 오른발을 앞으로 걷어차 붉은 판을 깨뜨렸다. 시마트는 앞서 계속 그래왔듯이 그 틈에 테탈론을 휘둘렀는데, 루나는 왼손으로 그 칼날을 붙잡은 후 그의 머리 위로 크란텔을 내리쳤다.
시마트도 크란텔의 칼날을 손으로 잡았다. 루나의 손에선 핏물이 흘러내렸고, 시마트의 손은 전혀 베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널 죽이기로 결심했거든. 내 일생을 걸고…… 그러니까, 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광기.
시마트는 루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그 속에 담긴 깊고 어두운 광기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본래부터 루나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막 불꽃처럼 피어난 기질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시마트는 별안간 옆구리 쪽으로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드는 걸 느꼈다.
‘노인네인가?’
아직 루나의 검을 붙잡고 있으므로, 당연히 시마트는 어딘가 숨어 있던 엘티엇이 기습한 것이라 예상했다.
‘잔뜩 약해져서 숨어 있는 것이 고작일 줄 알았더니, 용케 직접 나를 찌르러 들어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시마트가 마주한 건 엘티엇이 아니었다. 그가 사용하는 푸른 뇌기도 아니었다.
마치 적명족의 뇌기처럼 붉게 번들거리는 기운이, 검처럼 그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루나의 붉은 힘이었다.
‘어떻게?’
예상치 못한 공격이나, 시마트는 여유롭게 몸을 돌리며 루나와 붉은 힘을 한 번에 쳐냈다. 루나는 반동에 뒤로 튕겼으나, 붉은 힘은 잠시 칼날의 형태를 잃었을 뿐 완전히 흩어지진 않은 채 다시금 시마트를 노렸다.
“염동검, 우리 시대엔 이걸 그렇게 불렀지. 다소 형태가 괴이하긴 하지만, 이런 것도 쓸 줄 아는 줄은 몰랐군.”
“글쎄, 난 널 죽이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시마트가 처음으로 흠칫하며 놀란 순간이었다. 전투 도중 각성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나, 갑자기 특정 기술을 체득하는 일은 드물었다.
‘……염동검이 아니다! 그저 살의가 붉은 힘을 통해 실체화된 것이었나. 이런 경우에는 보통 이성을 잃을 터인데, 멀쩡해 보이는군.’
루나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광기에 잠식되어 짐승이 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상태를 즐기는 중이기도 했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전심을 바친다는 마음이, 그녀를 단순하고 원초적인 쾌감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혼기를 통제하지 못하던 시절의 요나가 된 듯한 기분, 루나는 제 몸이 다치는 줄도 모른 채 시마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죽어라!”
루나는 웃고 있었다. 공중요새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적명족들은 미친 듯 쇄도하는 루나의 모습에 온몸이 오싹해지고 있었다.
시마트와 공중요새가 한없이 안전한 방벽이 되어주고 있는데도 마른침이 넘어갔다.
다만 시마트는 마치 노련한 조련사가 맹수를 다루듯 루나의 공격을 흘려냈다. 크란텔이 전보다 광폭해지긴 했으나, 그것만으론 시마트와 공중요새의 방어력을 뚫을 수 없었다.
운명을 초월하는 힘.
창성이 아니고서 만전 상태의 시마트를 상대로는 사실 분전조차 할 수가 없다. 만약 시마트가 도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루나를 상대했다면, 그녀는 이미 치명상에 빠졌을 것이다. 시마트는 큰 기술에 도시가 파괴되지 않도록, 일부러 루나와 초근접 공방만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루나가 쓰러지는 건 결국 시간문제다. 시마트는 스친 상처만 몇 있을 뿐인데, 그마저도 모두 적뇌 파장에 치유되고 있었다.
“자멸하고 싶은 모양이군, 백경. 도망칠 생각은 못 하는 건가?”
“네 알 바가 아니다.”
“아니면 네 동생이 널 구하러 오리라 믿는 모양이구나. 그러나 내가 직접 왔다는 건, 이 일대의 공간 도약이 막혔다는 뜻이다. 진 룬칸델이 여길 오려면 최소 여덟 시간은 필요할 테지. 그때까지 과연 네가 살아 있을까?”
루나는 진의 지원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힘의 광기가 그저 계속 검을 휘두르도록 만드는 까닭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살의만이 루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제 칼날에 불과하던 그 살의는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마치 루나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시마트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엔 이목구비가 없고, 도끼검을 쥔 손은 손가락이 없다. 시마트는 루나처럼 변한 붉은 힘을 보며 불쾌감을 느꼈다.
‘이 힘은 다듬어지면 위험하겠어.’
그냥 지금 베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시마트의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다듬어지지 못하고 깨진다면, 오히려…….’
시마트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루나는 피와 재,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납게 크란텔을 휘둘렀다. 그녀를 아는 그 누가 보더라도 낯선, 악귀 같은 모습.
“하아, 하……!”
루나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내내 전신을 두들겨댄 포격과 시마트의 칼날로부터 누적된 충격이 마침내 그녀의 육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저 붉은 힘이 실체화된 형상만 남겠군.’
루나는 지금 죽더라도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한 붉은 힘에 깃들어 싸울 것이다.
“그아아아!”
이어 루나가 온 힘을 다해 크란텔을 올려치려는 찰나, 별안간 둘 사이에 시퍼런 뇌기가 치솟았다.
“에잇! 이놈, 싸움을 하라 했더니 무너지고 있으면 되겠느냐!?”
엘티엇, 그가 무언가 가득 든 보따리를 등에 멘 채 전투에 난입하고 있었다. 엘티엇은 시마트의 검을 흘린 후, 루나의 이마로 주먹을 꽂았다. 뻐걱-! 루나는 하마터면 엘티엇인 걸 확인하고도 반격할 뻔했다.
분명 방금까지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루나는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엘티엇이 루나의 이마를 후려칠 때 ‘청기’를 불어넣은 덕분이었다.
“스승님?”
“일단 튀자!”
“네!”
루나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방금까지의 광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노인네…… 무엇을 하나 했더니, 하찮은 도둑질을 하고 있었군.”
시마트는 엘티엇이 거리를 벌리기 전에 그가 멘 보따리를 베었다. 후두둑! 적명족 공공시설의 부품들이 쏟아지며 부서졌다.
“아앗, 안 돼! 어떻게 모은 건데, 이런 망할 놈이! 노인 공경도 모르는 막돼먹은 놈이로세!”
“시끄럽소.”
시마트의 칼날이 엘티엇의 콧등을 스쳤다. 엘티엇은 구르듯 몸을 뒤로 빼내며 루나의 품에 안겼고, 루나는 그대로 도약해서 시마트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다. 이젠 루나도 계속 싸웠다간 죽음밖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스승님, 빨리 상쇄 준비! 곧 보호막 나와요!”
“지쳐서 못 한다, 그냥 무식한 네 힘으로 부숴라!”
“꼭 말을 그렇게 하셔야?”
“어서!”
공중요새와 함대들이 즉시 진을 펼치며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마트는 그들을 직접 추격하지 않았다. 시마트의 팔찌 위로 창이 떠오르며 라키만의 얼굴이 나타났다.
{투신 동포! 포위망을 구축하며 놈들을 도시 외곽으로 유인해 제거하겠습니다.}
그 말에 시마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적당히 추격하는 척하다가 놓아주어라.”
처음부터 시마트는 오늘 루나와 엘티엇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중간에 루나의 살의와 그 위험성 때문에 잠시 고민했을 뿐.
다만 시마트가 보기에 그 살의는 명백히 양날의 검이었다.
{예?}
“아직 다른 적들이 많은데, 굳이 최대 강적인 바멀 연합과 벌써 전면전을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청풍제도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릴 걸 알고 찾아온 것이다. 노인네…… 약해지더니 안 쓰던 머리를 다 쓰는군.”
라키만은 시마트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투신 동포.}
시마트는 영상 통신을 종료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부품들을 내려다보았다.
“위대한 청풍제가 겨우 이딴 하급 부품을 얻으려고 이런 모험을 하다니, 씁쓸한 시대로군.”
시마트가 남은 부품을 짓밟으며 어깨를 으쓱인 순간.
엘티엇은 코트 안주머니에 숨겨둔 ‘핵심’ 부품들을 매만지며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양전쟁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수 싸움에서 시마트를 처음으로 이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