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9)
제 111화
33화. 적 혹은 친구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단테 하이란. 이놈 설마…… 내 마력과 영기를 눈치 챘단 말인가?’
최근 들어 그 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꽤 많아지긴 했다.
그러나 아직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되는 힘. 진이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단테와 시선을 맞췄다.
“숨겨 둔 힘? 무슨 소리냐, 그게.”
“뭐야, 진. 너 설마 벌써 룬칸델의 결전기를 익힌 거냐?”
곧장 흥미를 드러내는 베라딘. 그는 본인도 최근 7성 마법사가 되었으니, 진 또한 그에 걸맞은 성장을 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아… 그냥 내 직감이오. 싸움에 있어 내 감은 틀린 적이 없거든. 검을 맞댄 순간부터 알 수 있지. 내가 이길 수 있다, 없다…… 이런 것들 말이야. 그리고 그대는 나보다 검술 성취가 낮은 듯 보이지만, 왠지 내가 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
“그래? 신기하군.”
“결과적으로 내가 패배했으니, 이번에도 그 감은 맞았소. 하지만 그대에게 숨겨 둔 기술이나 힘이 하나도 없다면 나는 내 기분에 속아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셈이겠지.”
단테의 말에 진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으나, 속으로는 좀 놀라운 마음이었다. 실로 엄청난 직감인 것이다.
“아무튼, 다음에 다시 싸우게 될 땐 기대해도 좋을 것이오. 그땐 아낌없이 내 모든 것을 쏟을 테니.”
“진, 단테. 나도 마찬가지야. 미래에 우리가 각자 가문을 이끌며 싸울 날만 기대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단테와 베라딘의 눈빛엔 진한 투지가 가득했다.
둥글게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더라도, 장차 세 사람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는 것은 필연.
적이자 친구, 친구이자 적. 세 사람의 관계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왔을 때, 내가 과연 그대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잠시 정적이 흐르자 단테는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데 말이야, 다 싸우고 나서는 그냥 동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승패만 가르고, 사이좋게 지내는 방향으로…….”
베라딘은 이런 뒷말을 이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플의 차기 가주가 이렇게 물렁한 이야길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바람이지, 바람! 수틀리면 너희 둘 다 나한테 죽는 거야, 흐흐. 아, 그보다. 나 최근 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러시오? 베라딘.”
단테가 장단을 맞춰 주자 베라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킨 왕국이라고 알아? 루테로 마법 연방 소속의 왕국인데, 작년에 거기서 날 사칭한 놈이 있었다더라고.”
진은 하마터면 머금고 있던 술을 뿜을 뻔했으나 간신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허! 그게 사실이란 말이오? 루테로 마법 연방의 땅에서, 그대를 사칭하다니…… 간덩이가 복부를 한참 벗어난 인간이로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놀랍게도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어. 당시 내 이름을 팔아먹은 놈은 테싱이라는 암흑 조직을 괴멸시킨 모양인데, 행방이 묘연해. 가문 수사관들도 도무지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지.”
“수배령이라도 내려 보는 건 어떻소?”
“그건 지플이 스스로 위신을 깎아 먹는 짓이야, 단테. 초거대 가문인 자신들이 그깟 사칭범 하나 잡지 못한다고 광고를 하는 꼴이니까.”
진이 차분히 말하자 베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우린 최근 안드레이 숙부도 잃었으니…… 안 그래도 체면이 말이 아니거든. 아, 진. 널 불편하게 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야. 아직 숙부를 돌아가시게 만든 범인이 룬칸델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룬칸델이 맞다면?”
진의 물음에 단테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살폈다.
정작 베라딘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역시 룬칸델을 죽인 적은 많아. 어차피 서로 빚을 갚아 주는 관계니, 때가 되면 청산하겠지. 음……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숙부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오히려 싫어했지.”
“지플의 차기 가주가 고인이 된 부가주를 싫어했단 말이지. 함부로 이야기해도 좋을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이냐, 베라딘.”
무덤덤하게 말한 진은 베라딘이 안드레이를 왜 싫어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안드레이가 마신석의 힘을 빌려 순수한 마법사의 길을 벗어났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변태적인 기질 때문인가. 어쨌거나 마신석은 분명 지플 전체 차원의 일이 분명한데…….’
그 전에, 베라딘은 과연 마신석의 존재를 알고 있나?
‘그간 내가 본 베라딘은 생체 실험이나 마신석으로 신을 모으는 행위 같은 것에 거부감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성격이야. 안드레이가 싫은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물어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딱히 생각 없이 한 말이야. 그냥 싫은 사람을 싫다고 한 거지. 우리가 그 정도 이야기 할 사이는 되잖아? 난 그렇다고 믿고 있어!”
“허허……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갑자기 가문 내에 역겨운 작자들이 떠올랐소. 언젠가 내 손으로 직접 다 해치울 것이오!”
적 앞에서 가문 내 사정을 이렇게 의미 없이 떠벌리는 건, 바보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단테는 진짜로 바보 과가 맞는 것 같지만, 베라딘은 묘하게 속을 알 수 없는 구석이 있군. 확실히 보통 녀석은 아니야.’
누메루스의 피를 단테에게 사용한 것도.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고인이 된 안드레이의 이름을 꺼내 ‘그가 싫었다’고 강조하는 것도. 사실 진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아,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졌군. 어쨌거나! 그 사칭범 말이야. 수배령을 내릴 순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찝찝해서…… 가문 특급 마법사들을 수색에 투입해 볼까 해.”
이내 베라딘이 다시 분노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오오, 그깟 사칭범 하나 잡는데 8성 마법사들을 투입할 수 있단 말이오? 과연 지플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군.”
“에이, 하이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면서. 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라면 사칭범이 아니라 테싱을 내가 무너뜨린 걸로 여론을 조작할 것 같군.”
“뭐라고?”
“네 말대로라면 범인이 한 일은 네 이름을 사칭해 암흑 조직을 괴멸시킨 일밖에 없잖아. 아니면 양민들이 피해를 입었나?”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요즘 아킨은 날마다 축제 분위기라더라. 테싱의 횡포가 어마어마했나 보던데.”
“그렇다면 네 미담으로 덮어씌우기 좋은 소재지. 게다가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으니, 범인은 널 또 사칭할 거다. 꼬리가 길어지면 자연스레 잡힐 거고. 특급 마법사들을 투입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음, 그것도 그렇군. 역시 특급 마법사를 투입하는 건 너무 나갔나? 돌아가서 고민 좀 해 봐야겠어.”
“혹시 잡게 된다면 내게도 알려 주시오. 얼마나 겁 없는 인간인지 궁금하니까.”
“좋아, 단테는 조만간 우리 연회장에도 한번 놀러 오라고. 초대장을 보낼 테니 말이야.”
이후 세 사람은 밤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러나 진은 단테나 베라딘과 달리 되도록 말을 아꼈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더 이상 정을 붙이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이 온전히 친구였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되는 밤이었다.
* * *
“도련님! 대체 어쩌자고 누메루스의 피를 단테 하이란에게 사용하신 겁니까?”
“게다가 진 룬칸델은 그 자리에서 반드시 죽이셨어야 합니다. 경쟁자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고요!”
“진을 죽이지 않은 건 아버지께 비밀로 해 줘. 그리고 이 보물 상자 말이야, 가문으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 흠집 하나 나지 않게 잘 챙기고. 흐흐, 아주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야.”
“이깟 보물 상자 따위가 대체 뭐라고요. 나중에 누메루스의 피가 없어서 큰 화를 입으셔도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만, 그만. 단테 하이란에게 호감을 사서 나쁠 게 하나도 없어. 누메루스의 피 한 방울을 잃은 대신, 장차 룬칸델과 싸울 때 하이란이 우리 편에 설 가능성을 높인 셈이니까.”
“하지만……!”
“그리고 진을 죽이지 않은 건, 확인할 사안이 몇 가지 있어서야.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좀 잘 거니까, 두 사람은 나가 보도록 해.”
호위들이 구시렁대며 물러나자.
베라딘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아버지와 원로들의 귀에 다 들어가긴 하겠지. 누메루스의 피에 대한 건 저 녀석들에게 한 것과 똑같이 변명한다고 쳐도, 진을 죽이지 않은 건 뭐라고 설명한담……? 못 이길 것 같았다고 둘러댈까? 거짓말이 아니긴 한데.’
벌써부터 앞이 캄캄한 베라딘이었다.
* * *
“죄송합니다, 조부님. 이번엔 우승하지 못한 데다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습니다.”
“그 저열한 대회에서 두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대체 어찌 된 것이냐? 검의 성취가 부족했던 것이냐, 아니면 돈과 놀음에 눈이 먼 고수가 숨어 있던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하이란의 가주, 론 하이란은 내용과 달리 꽤나 인자한 표정이었다.
돌아온 손자를 보자마자 느낀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워서 깨물어 죽이고 싶을 지경인 손자가 뭔가 깨달음을 얻어 왔다는 것을.
“검의 성취가 부족하진 않았으나, 소자의 기백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돈과 놀음에 눈이 먼 고수는 없었으나 마음이 이끌리는 소년을 둘이나 만났습니다.”
“허허,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곧장 궁금한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가문을 드나드는 절세미인들에게도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 녀석이…… 그래, 우리 손자의 마음을 흔든 녀석들은 이름이 무엇인고.”
“조부님, 송구하게도 이름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또 한 번 더 송구하게도, 감히 조부님께 한 가지 부탁을 올리고 싶습니다.”
“이 고얀!”
론이 단테를 와락 끌어안아 장난스럽게 목을 졸랐다.
그러나 소년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지는 않았다. 한번 마음먹은 손자의 고집을 꺾는 건, 자신이 창성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켁켁. 수, 숨이.”
물론 10성 기사의 완력은 장난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괴로운 것이었다.
“오자마자 이 할아비를 섭섭하게 만드는구나! 그러나 용서해 주겠다. 부탁은 무엇이냐?”
“어떤 상황에서라도 딱 한 번, 제가 그들을 살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 *
“어, 왔냐? 뭐야, 꼬마. 설마 가서 단테인지 돈테인지 하는 놈한테 발리고 왔어? 애가 좀 표정이 어두운 것 같은데. 안 그래, 딸기파이?”
“표정이 어둡긴, 당연히 우승하고 왔지.”
“도련님, 피곤하신가요? 정말로 얼굴이 조금 안 좋아요. 단테를 꺾은 건 축하드릴 일이지만…… 가서 뭔가 고민이라도 생긴 거예요? 혹 독 같은 것에 공격당해 기운을 잃으신 건.”
“아냐, 길리.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 다들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엇, 진 공자! 돌아오셨군요! 오오! 이번엔 투기 대회 우승! 빨리 기념으로 제 셔츠 등짝에 사인!”
후다닥 달려온 엔야가 언제나처럼 사인을 해 달라며 펜과 등을 내밀었다.
‘기념이라.’
펜을 받아 든 진이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상어 뼈 상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멍청한 놈들. 정말로 금화 액자를 만들거나, 찌그러진 보물 상자를 기념품으로 보관하려나.’
슥슥.
진이 피식 웃으며 엔야의 셔츠에 사인을 남겼다.
“매번 특별하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엔야 양.”
새삼 편한 우정을 툭하면 나눠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