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94
노아가 한 칸씩 승급을 향해 전진하는 와중에도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싸움은 폰의 전진에 맞춰 중앙에서 시작되었다.
백의 룩이 한쪽 방향에 몰린 것 등을 이유로 구도가 달라질 법도 했지만, 양쪽의 퀸이 서로 안 빼고 붙어버린 점이 컸다.
노아와 비타의 경우와는 달리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더 아군과 합류해서 싸우려는 방식으로 움직였고, 덕분에 모두가 중앙으로 몰린 것.
그리하여 중앙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양측의 왕이 직접 맞붙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는 혹시 끝나 버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간담이 서늘했지.’
비타와 끝장을 보길 포기하고 그녀를 따돌린 참이었다.
그런데 뭔가를 해볼 새도 없이 경기가 끝나 버린다?
만일 그랬다간 억울해서 밤에 잠도 안 오리라.
“일단 맵에 보이는 것만 보면 내가 여기서 움직이고 있는 동안 중앙은 이렇게 된 건가?”
랭킹 3위와 4위. 왕들의 싸움은 한 라운드로는 끝나지 않았고, 라운드가 끝나자 다음 턴에 합공당할 위험이 있는 율리우스 쪽이 먼저 물러났다.
아니스는 굳이 율리우스를 쫓지 않고 계속 전진했는데, 그 결과 흑의 룩을 하나 잡아냈다.
“이쪽이 가이잭 선배였나?”
평범하게 상황을 보고 움직인 걸 수도 있겠지만 회의 때의 상태를 생각하면 아니스가 그렇게 이성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대강 설명이 되는군.”
로젤리아와 리나리아는 우측에서 합류했으나, 놀랍게도 로젤리아를 상대했던 흑의 룩과 폰은 살아서 그곳을 벗어났다.
“이쪽의 폰이 비타 선배였으니 저쪽 폰도 부동의 15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한 라운드 만에 결판이 나긴 쉽지 않겠지.”
살아남은 흑의 폰은 승급을 위해 전진, 그러나 쌍둥이는 굳이 그 뒤를 쫓지 않았다.
대신 그녀들은 전장의 우측에서 중앙으로 향하며 흑의 병력을 밀어버렸다.
아니스는 쌍둥이가 놓쳤던 룩을 제 손으로 잡으면서 그들과 합류.
왕과 두 룩이 전장의 우측을 먹으면서 모이게 되었다.
“반면에 왼쪽은 흑이 먹는 형세인가.”
백의 전력이 우측에 몰린 만큼 흑은 흑대로 왼쪽을 털어먹었다.
그러한 와중에 흑의 나이트 하나가 왼쪽에서 승급까지 도달한 노아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도 얼른 중앙의 전장에 합류해야 하는데…….”
체스에서 퀸이 나이트 하나를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턴마다 모두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체스.
빠르게 움직여 길을 막아버릴 수도 있었다.
‘어차피 돌아간다고 해도 그만큼 턴이 소모된다. 그렇다면?’
싸워서 뚫어낸다.
노아는 상대를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중앙을 향해 대각선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추격자와 마주했다.
“역시 너였군.”
“펠릭스?”
노아를 쫓아온 흑의 나이트는 바로 펠릭스였다.
“내가 이쪽 폰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백색의 폰 하나가 우리 진영을 돌파했을 때부터 대강 느꼈다. 다른 폰들은 모두 막혔는데 무려 비타 선배를 뚫고 들어온 폰이니까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
펠릭스는 노아가 승급을 위해 이동하는 동안 중앙의 싸움에 끼어들어 이미 몇몇 폰을 쓰러뜨렸다.
그 과정에서 적군이든 아군이든 여러 번 만났을 테니 대부분의 기물이 누가 누군지 알고 있을 터였다.
“너라면 그새 당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게 몇 자리 없더군. 그뿐이다.”
“기가 막히네. 얼마나 나와 싸워보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다. 기껏해야 네가 나와 붙어보고 싶어 하는 정도랑 비슷하겠지.”
저 딱딱한 놈이 농담도 한다.
노아는 펠릭스의 말을 듣자마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앞선 전투로 만전이 아니라곤 해도 피차 비슷한 상태인 것 같네. 이 정도면 원 없이 싸워볼 수 있겠어.”
펠릭스는 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주간에서 끝내지 못한 결판을 내자.”
* * *
“검의 정원을 전수했다니, 저 녀석을 제자로 삼으시려고요?”
검의 정원이라는 말에 정신이 나가 있던 비타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경악했다.
레지나의 오의인 검의 정원은 간단히 말해 1,000개의 무형검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1,000개.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이것만 봐서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오러만 충분하다면 수백 개의 무형검을 다룰 수 있는 고위 기사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허나 검의 정원은 그런 단순한 무형검 기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의 정원은 분명 황실 제2기사단 분들의…….”
“망령이지.”
제국 황실 제2기사단.
대전쟁 당시 레지나가 기사단장으로 있었던 최정예 기사단.
제2기사단은 8대 가문이나, 4대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중앙기사단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함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허나 단원 대부분이 대전쟁 당시 순직.
남은 인원은 1기사단이나 3기사단으로 재편되고 단장이었던 레지나는 나이트레이로 내려와 있었다.
“무형검은 사람의 팔다리에 구애되지 않지만, 그걸 조종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검술에 구애되지.”
무형검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봐야 그 검들이 펼치는 검술 체계는 모두 똑같다.
때문에 무형검을 익힐 때는 한 번에 컨트롤 할 수 있는 무형검의 숫자가 일정량을 넘어가면 마스터했다고 취급한다.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에.
“반면 검의 정원은 천 개의 검이 모두 다른 검술을 펼친다. 이 때문에 검의 정원이야말로 무형검의 완성형이라고 떠드는 놈들도 있지만, 그건 바보 같은 소리야.”
레지나가 검의 정원으로 다루는 무형검은 천 자루가 모두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검의 정원에 들어 있는 모든 검이 전부 ‘실존했던’ 것이기 때문.
때문에 레지나가 사용하는 무형검은 모두 다른 검술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상대하는 이는 그야말로 천 명의 기사를 동시에 상대하게 되는 셈.
이러한 강력함으로 인해 검의 정원이 오의라 불리게 된 거지, 딱히 레지나가 오의라 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바보들의 묘비다. 오의니 뭐니 하며 이름 붙일 만한 게 아냐.”
“그러면 그걸 왜 저 애한테…….”
“마침 저 녀석에겐 이런 게 필요한 상황이었거든.”
노아가 익힌 기승전결의 승은 외부의 힘을 다루는 것.
아직 자연 상태에 놓인 힘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지만, 승은 최종적으로 ‘남의 힘’마저 다루는 기술이었다.
“며칠 정도 검의 정원만을 사용해 저 녀석과 대련해 준 것뿐이다. 거기서 뭔가를 배웠다면 그건 저 녀석이 알아서 깨달은 거겠지.”
레지나는 노아가 원한다면 검의 정원을 진짜로 넘겨줄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노아는 검의 정원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선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며칠간 날마다 레지나를 찾아와 검의 정원에 당하고 돌아갔다.
“애초에 오의라는 건 그 검술에서 최대한의 힘을 쏟아내기 위한 기술. 심검을 가진 마스터 나이트에겐 심검이 오의다.”
테오도르처럼 강화형 심검이라면 기존 기술에 심검을 더하면 될 일이었지만, 레지나처럼 필살기형일 경우 그리 대단한 의미는 없다.
“부우…….”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였으나 비타는 대놓고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검의 정원은 상징적인 기술이잖아요.”
순직한 제2기사단과 살아남아 마스터 나이트로 각성한 단장.
만일 그녀가 노아에게 정식으로 검의 정원을 전수했다면 당시의 2기사단과 연결된 수많은 전, 현직 기사들이 모여들었으리라.
“그것만 있으면 졸업과 동시에 전설의 2기사단을 재편하고 단장이 될 수도 있을걸요? 학교장님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요.”
“쟤는 내 후계자 아니야. 엄밀히 따지면 서류상 리히테나워 가문의 후계자지.”
“예?”
벌컥!
“하앗, 하아, 이런 날에는 수업 좀 빼주시지! 다 듣고 가라니 너무하시네.”
“유니아 왔니?”
“수업 끝나자마자 달려왔는데 다행히 경기도 아직 끝나진 않은 모양이네요.”
유니아는 근처에 놓여 있는 의자를 레지나의 옆자리로 끌고 오다 비타를 보곤 인사했다.
“앗, 비타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응, 안녕.”
비타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유니아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봉문에 놓여 있던 리히테나워 가문이 이번 학기 들어 바깥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다.
유니아는 확실히 8대 가문의 이름을 잇는 자라고 할 만큼 실력도, 재능도 출중했다.
언젠가 부동의 15인에 들어올 것이 분명했으니 그녀가 이번 경기에 관심을 갖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노아는 거기서 왜 나오는가?
‘분명 사도 학생일 텐데…….’
비타의 이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노아는 학기 초에 유니아, 미하엘과 만나 자신이 리히테나워 가문의 양아들로 등록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딱히 어디다 공지한 적은 없었던 것.
게다가 유니아 또한 첫날 노아를 만났을 때만 도발을 위해 오라버니라고 불렀을 뿐, 그 후로는 오라버니라는 말을 쓴 적이 없었다.
때문에 검은 달을 들락날락하는 와중에도 그저 ‘거기에 유명인들 많으니까’ 라는 이유로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즉, 노아가 리히테나워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극소수라는 뜻.
심지어 검은 달에 같이 사는 시바도 이 사실을 몰랐다.
다른 이들은 대충 중간에 눈치채고 노아에게 물어봤지만 말이다.
“경기는요?”
“마침 노아와 펠릭스가 만난 참이다.”
“앗, 오라버니 결정전이네요. 저기서 지면 아빠한테 역시 호적 파자고 말해야지.”
“오라버니라고……?”
비타가 혼돈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유니아는 아차 싶은지 잽싸게 입을 가렸다.
그러나 뒤늦게 입을 막아봐야 내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은요…….”
이윽고 노아가 리히테나워 가문의 양자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비타는 입을 떡 벌렸다.
“설마 학교장님 그래서 검의 정원을……?”
“그거랑은 다른 문제다. 혹시라도 이상한 데 갖다 붙여서 소문내지 마라.”
결과적으로 레지나의 오의를 전수하진 않은 셈이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노아가 검의 정원을 통해 익힌 기술은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초승달 군도에 선물을 남겨놨다더니.’
단순히 검술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방법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원석을 뜯어다가 뭔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레지나는 괜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원석을 이용해서 완성된 검술을 체험시키고, 그걸 따라 배우게 만들 줄이야.’
스승이 시원석을 깎아낼 수 있는 마스터 나이트라면,
또한 제자가 결과물만 보고 과정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천재라면.
만나지 않고도 검술을 전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이야.’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며 웃어넘겼으리라.
허나 여기 그 성공 사례가 실존했다.
사실상 노아만이 가능한 수련법.
“처음부터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는 말이지.”
노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이제는 레지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