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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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雷神)
그로부터 약 4일 전.
투두두둑
신경질적으로 내리던 빗살은 한층 기세를 더해서 어둠 속에서 대지를 관통했다.
살과 피가 섞여서 뒤범벅이 된 대지가 비참하게 신음성을 흘렸다.
핏덩어리 방울방울.
이미 인간이 아닐 정도로 조각조각난 ‘그것’이 빗물의 흐름에 거역해서 융기했다.
죽음의 체현따윈 이미 벗어 났다.
이미…
” … 아,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구현.
월승혼 부활.
유천영에게 생명활동을 강제로 정지당한지 정확히 두 시간만의 일이었다.
무변무진광에 전신이 수십 조각으로 찢어지고, 머리가 박살났지만 살아났다.
계산대로다.
월승혼은 눈에서 시퍼런 광기를 흘리며 히쭉 웃었다.
모든 진입자는 저마다 하나의 능력과 상징을 지닌다. 그 능력, 상징이란 것은 이른바 진입자가 살아왔던 인생(人生) 그 자체였다. 예를 들어서 이전의 세계에서 검으로 세계를 구원했던 자는 검과 관련된 능력이나 재능을 지닌다.
권강한은 업(業)이라고 표현했다.
진입자에게 부여된 최고의 특권이자, 월승혼이 이전 세계에서 참극왕(慘劇王)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모든 진입자가 천재에 영웅인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 권능때문에 마음대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참극에 이르는 병에 중독되어버린 유희의 왕은 더 이상 이상성을 감추지 못했다.
월승혼은 최초로 진입한 세계에서 곧장 최단시간최고효율로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개발했다.
폭왕의 허언(暴王之噓言).
유천영이나 팔왕 등은 막연히 새로운 이계(異界)의 기술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비장의 무기, 재능같은 걸로 파악하고 있었다. 막연히 절대신공을 익혔느니 생각했었다. 타고난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천만에.
월승혼은 원래 천재가 아니었다.
한없이 평범한, 평범해서 곡해되어버린 괴인이었다.
그런 월승혼이 저 천재 모용휘, 나예린조차 뛰어넘는 재능의 화신이 된 것은 모두 이 능력 덕분이다.
폭군의 말은 법이다.
폭군의 명은 목숨이다.
폭군의 휘하에 있는 존재들은 부당(不當), 불합리(不合理)를 깨달으면서도 말하지 못한다. 설령 그의 허언(실속없는 말)에 목숨과 소중한 것을 빼앗긴다고 할지라도.
이 어찌 최강의 능력이 아닌가.
이 어찌 만족스럽지 않으랴.
월승혼은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세계를 여행했다. 처음의 세계에서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마음에 안드는 자의 목숨을 모조리 취하고, 약탈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졌다. 무한히 싸우고 무한히 빼앗는 – 그런 인생은 한 번 월승혼을 망가뜨리자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세계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곳에서 또 다른 진입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자는 터무니없이 강력해서, 폭왕의 허언조차 잘 먹히지 않았다. 월승혼은 끝내 죽음을 맞았지만 분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였다. 격으로 치자면 권강한의 전성기와 비슷한 권능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
월승혼은 이미 이 세계를 알고 있었다.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조역]인지. 누가 [악역]인지. 그 중에서도 누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 어떤 식으로 역사(歷史)가 진행될지. 그걸 모조리 알고 있으니 제일 쉬울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웃음을 터뜨렸다. 역사를 알고 있다면 이보다 쉬운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빼앗고 모든 것을 약탈하겠다. 그것이 쾌락이고 행복이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팔왕(八王)이란 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 뭐지?’
월승혼은 곤혹스러웠다. 저런 고수들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걸 보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모순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월승혼에게 팔왕의 존재는 상상보다 큰 충격이었다.
이건 이미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한 번 [망가져버린] 세계.
그렇다면 역사를 알고 있다고 한들, 크게 득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망가진 부분에 끼어들자. 그러면 어떻게든 망가진 부분을 고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팔왕 중에서 하은천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생각대로라면, 다소 밀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폭왕의 허언을 이용해서 무신마를 처치해버릴 수 있었을 텐데…
” ……”
종남파의 유천영이 끼어들어서 그를 죽여버렸다.
‘ 뭐냐고 대체.’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다. 난데없이 남양에 있던 길가던 파락호가 그의 배때기를 쑤신 것 같은 황당한 일이다. 원래 월승혼은 유천영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몰랐고, 원한을 지닐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대의(大義) 때문에 월승혼을 벤 것도 아니다.
되살아난 건 정말로 천운이다.
월승혼은 천천히 아물고 있는 살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 … 부활능력이 이렇게 발동하다니.”
원래는 허접한 자신을 죽이고 나서 방심하는 무신마, 그를 기습하려고 준비했던 건데.
하지만 그 준비가 없었으면 월승혼이고 뭐고 차디찬 시신이 되어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월승혼은 아까운 듯이 킥킥 웃었다.
” 이걸로 170년 분의 운명이 날아가 버렸군… 응…?”
부활이란 건 생사에 정면으로 맞서는 권능. 그런 걸 발동시켜 버렸으니 당연히 월승혼도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 아무리 진입자라도, 아니 진입자니까 더더욱 그 댓가는 피할 수가 없었다.
월승혼의 심장에서 시퍼런 게 삐져나와서 공기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월승혼은 잠깐 창백한 표정을 짓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폭왕의 허언.
세계의 법칙에게 댓가를 지불하고 무엇이든 얻어내는 능력이다.
말하자면 고리대금업과 같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라도, 재능이라도, 권능이라도 월승혼은 제멋대로 얻어낼 수 있다. 그 능력을 얻는 대신에 지불하는 댓가는 바로 월승혼에게 남아있는 전생(轉生)의 행복이다. 월승혼이 큰 능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행복은 사라지고 공허가 가득 채워지게 된다.
죽어서 천국도, 지옥도, 저승도, 윤회도, 인간이 생각하는 어떠한 형태의 저승도 볼 수 없게 된다. 무간지옥처럼 무한히 이승을 떠돈다.
즉 현재 월승혼의 행복을 위해서 삼생(三生)이라고 불리는 윤회의 틀 – 거기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갈아넣고 있는 짓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감합(減合)이 0에 수렴하게 되기 때문에 부작용은 없다.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지도 않았다.
얼핏 그럴듯하고 완벽해보이는 능력이지만 승려나 도사들이 보면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만일 윤회가 존재한다면, 월승혼은 결국 남은 생이 공허로 메워지고 – 윤회할 권리를 잃게 된다.
윤회할 권리를 잃는다는 건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삶의 행복을 다시 느낄 기회를 박탈당한다. 결국은 세상을 떠도는 망령이 되어서 영겁의 세월에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즉물적인 행복을 위해 영겁의 고통을 선택한 괴이(怪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한 것이 월승혼이었다.
부활한 월승혼은 골똘히 고민했다.
아무리 폭왕의 허언이라고 해도 두 번씩이나 부활할 수는 없다. 이번엔 운 좋게 되살아 났지만 다음에는 이런 우연이 없다. 어떻게든 남아 있는 적들을 처리할 생각을 해야만 했다.
문제는 역시 유천영이었다.
사륜, 윤회, 백안의 능력을 끌어내서까지 싸웠지만 패했다. 일회용이었기에 다시 불러올 수도 없다. 그걸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유천영에게 도저히 무공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화산지회에 있는 동안에 유천영을 격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열흘의 하루]를 이용해서 괴물이 되어버린 놈을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바로 그 때였다.
‘ 열흘의 하루? … 아. 그래. 그런 게 있었지.’
월승혼의 눈이 잔인하게 번득였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후회할 거라고, 자신이 말했던가.
빨리도 후회하게 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 폭왕의 허언.”
생각을 마친 월승혼이 다시금 운명을 바치고 전능을 얻는 허언(噓言)을 읊었다.
” 유천영의 열흘의 하루에 따라가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