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89
0189 / 0343 ———————————————-
뇌신(雷神)
다음 날 대공자 비를 찾아갔다.
이걸로 5일째다.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게는 여유가 없다. 이변이 일어난 이상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부작용이 돌아올지 모른다. 열흘의 하루란 저주는 그만큼이나 강렬한 압박감이 되어서 나를 옥죄고 있었다.
푸른 수목의 한가운데.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 간만이군.”
대공자 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조의 무인들과 함께 있었다.
독고령은 다시 나를 보자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며, 혹자는 내가 부상입은 것에 신경쓰는 눈치였다. 이 정도로 병신이면 이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대공자가 입을 열었다.
” 원하는 걸 찾았나?”
”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나는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대공자는 눈에 이채를 띄더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마검익 추명을 앞세웠다. 내 실력이 어떤지 시험해 볼 요량인게 분명했다.
마검익 추명은 사나운 눈빛을 숨기지 않으며 자신의 흑익을 들었다.
이전에 내 기합 때문에 제대로 공격해 보지도 못한 게 그에게 수치로 남은 듯 했다. 내가 무표정하게 추명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그는 마주 눈을 흡떴다. 내 기(氣)를 읽어버리고 만 것이다.
부들
” …. 큭.”
추명의 다리가 흠칫거렸다. 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오는 게 멀리서도 느껴졌다. 내가 그저 검계(劍界)를 펼친 것 뿐인데, 거미줄처럼 사로잡혀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얼굴은 압도적인 실력차를 깨달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제법이군.’
나는 한 마디의 칭찬을 속으로 남겼다.
보통이라면 전의를 잃거나 자포자기하듯이 동귀어진하는 게 보통인데, 그래도 마검익 추명은 일말의 전의를 잃지 않았다. 까마득한 태산이 덮쳐오는 듯한 공포가 몰아치고 있을 텐데도 저렇게 버틸 수 있다니. 마검익 추명이 겪어온 전투와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뜻이리라.
마검익 추명의 생각이 눈빛으로 읽혔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네게 벌레처럼 죽는다.
하지만 벌레답게, 하나의 상처라도 내고 죽겠다.
지금의 내 실력은 당금 천무삼성과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내가 아까부터 분출하는 검계는 거의 전력을 다하는 것. 그런데도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마검익 추명은 강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투사라는 것이다.
감탄과 동시에 대공자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초일류 무인을 호위로 7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니. 물론 강호 대세력의 주인쯤 되면 그럴수도 있다. 허나 마검익 추명같은 자는 단순히 조직의 명령이나 상관관계로 주군을 모시지 않는다. 괴팍하리만큼 출중한 자존감을 꺾을 정도로 대공자 비의 권위가 크단 뜻이다.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추명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입술을 깨문 게 아니라 어금니를 부숴뜨려서 흘러나오는 피다. 기세에 밀려서 기절하기 싫어서 악다구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파아앗!!
추명이 자신의 전력을 다해서 한 순간, 절기(絶技)를 내뿜었다.
이름도 위력도 모르는 절기 – 그러나 마검익의 이름을 지닌 자로써 펼치는 최상의 절학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농락하거나 조소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의령수를 뻗어서 마검익을 붙잡았다.
퍼걱
마검익이 산산히 부숴지고, 다음 순간 반사적으로 튕겨나간 이기어검이 마검익 추명의 어깨뼈를 관통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추명은 이 정도의 실력차이가 나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 떴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내 삼초지적이 되지 못한다.
” 크흐윽!!”
주변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예 입을 다물었다. 독고령과의 전투는 그나마 그들의 실력으로 분석이 가능했지만, 이 일초의 공방이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세 명 뿐이었다.
추명은 어깨뼈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도 전진하려 했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독고령이 순간 그런 추명을 안쓰럽게 바라보았지만 대공자는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부추기듯이 말했다.
” 쓰러져도 좋다.”
” 속하, 결례를 범했습니다!!”
추명은 이를 악다물고는 갑자기 전신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는 잠력을 끌어올려서 억지로 근육을 활성화시켰다. 저런 짓을 하면 나중에 근육이 괴사해 버리는데도, 뒷일을 생각지 않는 듯 했다.
나는 힐끔 대공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추명은 지금 내 한 손도 감당하지 못한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을 거 같나?”
” 상관없다.”
대공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 나는 내 마검익을 믿는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마검익 추명의 눈이 붉게 물들며 그의 전신이 미친듯이 기를 내뿜었다. 진신잠력을 격발시키면서까지 몸을 완전히 회복시킨 것이다. 전신에 벌레를 파먹는 듯한 고통이 찾아올 텐데 대단한 근성이었다.
마검익 추명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 크흐… 흐… 질 수 없다.”
” 포기해라.”
나는 조용조용하게 진실을 말했다.
” 여기까지 버텼다면 인정해 주지. 네가 나와 싸우기엔 5년은 이르다.”
” 크… 크. 과찬이군. 뭐, 그런 건 상관없다.”
마검익 추명이 괴소를 흘렸다.
감정없게 대공자를 수행하기만 하던 자로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검익 추명이 씨익 웃었다.
” 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공자께서는 내게 그 때의 불명예를 설욕할 기회를 주셨다. 나는 이 기회를, 결코 저버릴 수가 없다!”
” 기회라고? 죽을 기회 말이냐.”
내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마검익 추명이 순간 움찔했다.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은 하나하나가 진실이었다.
” 그래. …죽을 기회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마검익 추명은 – 익히 알고 있던 마도인 답지 않게 편안하게 웃었다.
” 육체는 살아있으나 내 영혼이 죽는 때가 있다. 내 검은 날개가 스러지고 꺾이는 것은 오로지 한 분, 대공자를 지킬 때의 전장 뿐이다.”
” ……”
나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입을 다물었다. 마검익 추명은 틀림없이 잔인하고 악독무도한, 마도인 중의 마도인이다. 대공자의 명이라면 갓난아이나 임산부라고 해도 거리낌없이 베어버릴 마두(魔頭)다.
하지만 동시에 무골 중의 무골, 무인 중의 무인이다. 한 번 충성을 맹세한 상대는 죽는 한이 있어도 배반하지 않으며, 차라리 영혼의 결속으로 보아도 좋을 정도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전장을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다.
더 이상 말을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검을 들자, 마검익 추명은 훗하고 웃었다.
” 고맙다.”
일 초.
결판은 순식간에 나 버렸다. 내 눈없는 검은, 그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추명의 전투능력을 상실시켜 버렸다. 전신의 혈도를 박살내 버렸으니 무공을 되찾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다.
쿠웅
마검익 추명이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다. 나는 뺨에 생채기가 난 것을 닦았다.
추명은 끝내 내게 상처 하나 내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독고령이 분노해서 외쳤다.
” 어떻게, 이런 짓을…!! 아무리 그래도 규약지회에서 살상을 저지를 수 있느냐!”
나는 독고령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 상황은 내가 그리 원하지 않던 것이다.
” 뭘 생각하는 건가. 부하를 애꿎은 사지(死地)에 몰아넣고도 아무 생각이 없나.”
대공자는 내 힐난을 듣더니,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냉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 물러!”
” ……”
” 너는 너무 무르다. 그래서는 끝까지 이길 수 없다. 그를 이길 수 없다.”
나는 대공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라는 건 또 누구란 말인가. 내가 검을 거머쥔 채 가만히 서 있자 대공자는 모든 것을 간파한 듯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 네 행동방식은 파악했다. 상대에게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어서 기를 죽인 후, 다소 과격하게 몰아쳐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뱉어내게 한다. 능숙하고 빈틈없는 기선제압이다.”
” 그래서?”
” 너무 무르다.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대공자는 힐난하듯이 내게 전음을 꽂았다.
[ 그 경지에 도달했으면서 인도(人道)에 연연하는 건가? 그래서는 팔왕도, 북천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려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네 녀석.”
나는 대공자를 내려보았다. 역시 대공자의 눈에는 부하를 하나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분노는 없었다. 대공자는 처음부터 마검익을 잃을 생각을 하면서 내 태도를 살핀 것이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때문에 마검익만한 고수를 버려가면서까지 내 태도같이 사소한 걸 관찰하려 한 것인가. 대공자가 바보가 아니니, 마검익을 잃으면 자신의 야심이 주춤하리란 걸 알고 있을 텐데. 마검익의 가치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컸다.
대공자가 말했다.
” 네가 알고 싶은 것은 내가 알고 있다.”
” 뭘 말이냐.”
” 네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이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대공자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었다. 대공자의 손은 엄지손가락을 굽히더니 장인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나직하게 보낸 전음이, 내 심중을 뒤흔들었다.
[ 월승혼은 지금 너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뭐?”
나도 모르게 반문해 버렸다.
그것은 생각해 봤던 일이지만, 어째서 대공자가 그걸 알고 있는가.
아니, 그걸 말했다는 것은.
분명히 대공자도 [열흘의 하루]을 알고 있다는 소리다.
어떻게?
[ ‘오늘’ 내에 모든 걸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네게 남은 ‘오늘’이다.오늘 모든 것이 끝나야 한다.
절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퍼억!!
갑자기 예정도 예고도 없이 대공자 비의 가슴이 터져 나갔다. 심장이 있던 부위가 뜯기고, 선혈이 허공에 비산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 …..!!”
독고령의 안색이 질려서 창백해졌다.
심지어 나조차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언제 대공자를 공격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의 나라면 설령 무신마가 암습을 하더라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의 무공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천하의 대공자 비, 실력만으로는 현재의 모용휘와 비등비등한 수준이 아닌가?
이건… 이런 건…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대공자가 쓰러지면서 훗하고 웃었다.
그가 보낸 마지막 전음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쿠웅
그 말을 끝으로 대공자 비의 숨이 멎었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허망하고 확실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