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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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雷神)
5일째.
유천영과 대공자가 맞닥뜨렸을 그 시간에 무신마(武神魔)는 한 괴인과 마주했다.
” ……”
서로의 눈을 마주 본지 벌써 반 식경.
한참동안 고민하던 무신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요즘들어 천하가 넓은 것을 많이 느낀다네.”
” 저도 그렇습니다.”
” 겸손해하지 않아도, 그대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소…”
무신마가 탄식하듯이 말을 맺었다.
이 무슨 일인가.
천하에 왜 이리도 고수가 많단 말인가.
천하에 고수가 많으니 방심하지 말라고 늘상 훈시하던 건 무신마 자신이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자신에 버금가는 절대자를 맞닥뜨릴 줄은, 꿈에도 생각치 않은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시진 전, 무신마는 팔왕과 조우했다. 하은천(河銀天)과 금포염왕이라고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제자를 찾아다니다가 불가피하게 무신마와 맞닥뜨린 모양이었다.
하은천은 노골적으로 딱딱한 표정을 짓고는 실소를 지었다.
이것 참 운이 없군, 이라면서.
개개인의 실력이 천무삼성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인 절대고수들. 무신마도 팔 하나정도는 각오하고 상대하려 나섰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하은천과 금포염왕은 일백 초 정도를 부딪히다가 물러서서 도주해 버렸다.
” 아!”
그 광경에서 무신마는 아차하고 말았다.
‘ 저들은 승산없는 싸움을 하려들지 않는구나! 누군가가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천하의 그 누구도 저 둘을 붙잡을 수 없으리라.’
보고로 들었던 제일왕세제, 월승혼을 먼저 제압하지 못한 게 이토록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통한의 후회다. 아무리 무신마라도 하은천쯤 되는 고수를 추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주하는 하은천을 잡으려면 무신이 함께 있어야 한다.
만일 태극무신 혁월린에게 변고가 없었더라면, 그도 이 규약지회를 암중에 참관하러 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둘의 합공으로 팔왕을 잡아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천하제일의 도객으로 불리는 무신마, 갈중혁은 쓴 입맛을 다셨다.
이 강호에서 무신이 빠진 공백은 너무 컸다.
벌써부터 그걸 느끼게 되다니 가슴 한구석이 썰렁했다.
그래도 팔왕을 쫓다보면 천무삼성이 가세해서 그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무신마는 잡념을 버리고 팔왕의 추적에 나섰다. 하은천이 기괴한 술법을 부려서 발목을 붙잡았지만 무신마 정도의 고수에겐 통하지 않았다.
부웅하면서 사람의 신형이 바람보다도 빠르게 화산 등성이를 갈랐다.
바람냄새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신랄한 추격전이었다.
이윽고 막다른 골목에 몰아서, 금포염왕의 팔 한쪽을 가져갈 수 있겠다고 여겼을 때였다. 무신마는 구십구도리귀의 제 칠십오 식이 괴이한 일 초(一招)에 틀어막히는 것을 느끼고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퍼엉!!
금포염왕은 의문의 공격 덕분에 몸을 빼서 한결 수월해 졌다. 하은천과 금포염왕은 무신마가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한달음에 절세신법으로 도주했다. 무신마는 응당 그들을 쫓아야 했다.
” 으음.”
무신마의 선택은 멈춰서서 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상식에 맞지 않다.
하지만 새벽안개가 흐르는 바위, 그 위에 올연히 나타난 창두(槍頭)의 존재가 무신마의 전신을 겁박하고 있었다. 무신마는 알 수 있었다. 저 창도 무섭지만, 창의 주인은 더더욱 무섭다는 것을.
‘ 그렇다 해도 이 나를 멈춰세울 정도라니! 도대체 누구인가?’
상대는 소리없이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흰 승포자락이 안개에 촉촉히 젖어서 나빌레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합장인양, 그 움직임은 차라리 고아하기까지 했다.
나예린을 일컬어 절대미(絶對美)라고 숭앙한다면, 이것은 극고의 천연미(天然美).
소유자의 얼굴이 추하건 아름답건 상관없이 그 동작의 절예와 기개만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루는 경지였다. 이건 동시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번이 첫 대면인데도 마치 여러번 본 것처럼 친숙했다.
마주선 두 절대자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실력을 간파했다.
‘ 같은 영역!’
‘ 같은 사선(死線)!’
그렇다.
굉천혈류도(宏天血流刀)만이라면 백식관음(白式觀音)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십이도까지의 위력이 초절정고수를 짓누를 정도라고 해도, 백식관음은 차원을 달리하는 무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삼천외일도(十三天外一刀), 구십구합리귀(九十九合理歸)의 존재가 있으므로 둘은 같은 차원에서 대결할 수 있다. 백식관음이 인식시간의 최적화라면, 구십구합리귀는 동작의 최적화이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차이인지 실전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팔왕이나 천무삼성급 고수들 뿐이다.
단기대결에서는 백식관음이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어느 쪽이 우세한지 모르게 되는 원리였다. 그래서 상대는 섣불리 무신마에게 [회피할 수 없는 절대선공]을 행하지 않았다.
무신마가 입을 열었다.
” 이름은?”
여승의 까만 눈동자가 살포시 들어져 무신마를 직시했다. 천연미를 지닌 자가 나예린에 비견되는 외모마저 지니고 있으니 마치 무의 여신이 강림한 듯 했다. 빙백봉 나예린 앞에 외모로 뒤지지 않는 자였다. 여승의 입술이 열리자 무신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연화.”
” 그 연화였던가… 강호의 소문은…. 역시.”
연화에 대한 강호의 소문은 파란만장하고 다양했다.
혈모니(血牟尼)와 마주치면 즉시 도망쳐라.
연화와 관련된 유명한 강호의 소문이었다. 그녀와 마주쳐 적대한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심지어 흑천맹의 실세고수조차도.
우습지만 그 때문에 연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백흑양도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천하의 미인을 고르는데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현재 염도, 빙검등과 마찬가지로 천하오십대고수(天下五十代高手)의 한 명이며 사파의 최절정고수로 알려져 있다. 주무기도 창이 아니라 주먹이라 했다. 사천에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지만 흑천맹에서 좌시했던 이유는 근 십 년간 회자되어 왔다.
‘ 강호의 호사가들은 영 쓸모없는 것들이군!’
무신마 갈중혁은 천하오십대고수의 칭호는 지나치게 연화를 과소평가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연화는 강호를 돌아다니면서도 진짜 실력의 오 푼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것만으로 염도와 대등해 보이는 실력으로 보인 것이다.
” 염사흑 그 아이는 영광스러워 해야겠군.”
” 암천(暗天)에 결원이 생기게 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무신마는 고개를 저었다.
” 나를 따르는 자들중에, 강자와의 대결을 목숨보전 때문에 꺼리는 소인배는 없소. 그저 일격에 고통없이 숨을 거둬준 자비에 염사흑의 군주로써 감사를 표하네.”
” 감사는 받지 않겠습니다. 염치는 알고 있어요.”
염사흑은 무신마를 따르는 4인의 암천 중 한 명이었다. 암천중에서 실력이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염사흑의 실력은 검마 초월조차 한 수 아래로 둘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초월이 막 화산규약지회에서 우승했을 때, 염사흑은 이미 백십사 세가 넘은 노고수였다.
천하제일인 갈중혁을 호위하려면 그 정도 실력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염사흑이 예고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사천에서 일어난 혈사를 조사하러 갔다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꺼지듯이 죽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암천 휘하의 밀장대(密藏隊)가 나서서 은폐했지만 그 때 갈중혁이 받은 충격은 심대했다.
단 일 초.
염사흑 정도의 초절정고수가 상대방의 일 장에 상반신이 뭉개져서 생명이 꺼진 것이다. 천하에 그럴 수 있는 실력자는 거의 존재치 않았다. 불가일세의 고수라 불리는 마천각주쯤 되면 모를까?
뒤늦게나마 혈모니의 짓이란 걸 알았지만 강호의 소문과 너무 달라서 깊게 생각치 않았다. 그녀의 뒤에 천겁령이 있거니 생각했었다. 연화의 뒤를 좇으려 하니 부하들의 희생이 막대할 것 같아서 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연화가 창두를 내렸다.
” 그가 저를 제자로 삼고 싶어했죠.
전 그가 제 스승이 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했습니다.”
” 어리석은 친구…”
갈중혁이 혀를 끌끌 찼다. 염사흑은 무신마를 제자로 삼으려 한 거나 다름없는 짓을 해버린 것이다. 아마 죽을 때는 백식관음에 당해서 자신이 죽는지도 몰랐으리라. 갈중혁은 염사흑의 명복을 마음속으로 빌며 본론을 꺼냈다.
” 비켜주게. 난 그들을 좇아 없애야 하네.”
연화가 창두를 중단으로 올렸다.
” 그럴 수 없습니다.”
” 왜?”
” 도(道)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신마는 한 순간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천하의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런데 승려라지만 이럴 때 도 타령이라니? 그것도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 허허! 도(道)라니. 그대는 도가 무엇인지 안단 말인가?”
” 길이지요.”
” ……”
내심 선문답을 기대했지만 연화의 말은 태연자약하고 객관적이었다. 무신마가 약간 실망했지만 연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당신과 저의 길이 다르니 오로지 공(空)에 이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유고 인과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그도 그렇겠군.”
무신마는 무림인답게 그 말을 이해했다.
어찌보면 저 말이야말로 무림인들에게 진리이다. 서로의 뜻이 다르고 충돌하니 힘으로 끝장을 보는 수밖에 없다. 기이하게도 승려답지 않은 승려의 말이 무신마의 마음을 강하게 고동치게 만들었다.
‘ 이런 긴장감은 위천무 앞에 섰을 때 이래로 처음이다.’
아니, 사실 그 때가 더 무섭긴 했다. 지금은 백여 년 전보다 더 강해지긴 했으나 – 그 때의 위천무는 말 그대로 실력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마왕이었으니까. 지금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연화의 실력이 전에 없을 정도의 호적수이기 때문이다.
긴장감의 종류가 달랐다.
말하자면 무신과 무신마가 늘상 꿈꾸고 있었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던 그 상상이 눈 앞에 밀어닥친 셈이다. 만일 대등한 실력을 지닌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 라는 유치하면서도 원초적인 상상이.
끝내 그들은 그 상상을 이루지 못하고 무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틀림없이 연화와 싸우는 것은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울 만한 상대가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이 무신마의 마음 속 투쟁심을 크게 자극했다. 처음 도를 잡았을 때의 생경한 불안감과 기대감이 마음을 좀먹으며 차올라왔다.
‘ 갈까?’
상대방의 무학은 짐작할 수 있다. 백식관음에 대해 잘 몰랐지만 느낌만으로도 뭔지 알 수 있었다. 연화에게 선공을 가하는 것은 틀림없이 바보짓이다.
하지만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연화의 심공, 불존군림(佛尊君臨)에 계속 압박을 받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열세에 놓이게 되니 무신마로써는 입맛이 좋지 않다.
한편 연화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연화불창을 겨눈 채로 움직임이 없었다.
둘의 대치가 점차 길어지고 있을 때 연화가 말했다.
” 시간의 광대놀이가 끝날 때가 되었어요. 바로 오늘이지요.”
” 무슨…?”
쿠구궁
그 때 저만치에서 둔중한 파괴음이 메아리가 되어서 울려왔다.
무신마는 흘끔 그쪽을 바라보았다가 놀랐다.
놀랍게도 산봉우리가 절반이나 파손되어서 날아간 게 아닌가! 보통 사람 눈에는 흙먼지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무신마의 안력에는 모든 정황이 똑똑히 보였다. 그 봉우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무신마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 율령자들이 집결되어 있는 곳…!!’
연화의 말이 무신마를 더욱 일렁이게 했다.
” 모든 게 끝날 때까지는 보내드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