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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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겁혈신(天劫血神)
대결은 한 식경동안 계속되었다.
명목상으로 대결일 뿐, 권강한이 느긋하게 손을 휘두르면 유천영이 그 때마다 검로(劍路)를 새롭게 전개하는 과정이 계속될 뿐이었다. 산새가 어둠 속을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고요 한가운데서 두 인영(人影)이 대치하는 모습은 희극에 가까웠다.
하지만 누가 알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본질(Quintessence)이 – 한 순간 한 순간마다 세계를 이루는 가장 작은 요소가 뒤틀리고, 다시 복구된다는 걸. 고작해야 인간의 한 동작으로 찾아올 수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인 변화가 두 사람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인과율(因果律)이 맥동하며 안개처럼 흩어진다.
스으
유천영의 검로가 오십 번째를 넘어가는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권강한이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 만변(萬變)과 불변(不變)의 싸움이라. 흥미롭다기보다는 지치는군.”
퍼엉!
권강한의 몸이 터져나가는 환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환상이 아니다. 찰나의 헛점도 놓치지 않고 유천영의 무형검(無形劍)이 용서치 않고 꿰뚫은 것이다. 변수가 없다면 실제로 일어나야 마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환상처럼 스쳐지나가버린 이유는 권강한이 초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권강한에게 불리하거나 패배하는 미래(未來)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다.
가능성의 ‘끈’을 절단해 버리고, 다시 현실을 개변(改變)해 버린다. 한없이 무적(無敵)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천영또한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그 사실은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권강한을 공격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약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유천영의 표정에 어떠한 변화도 없자, 권강한은 재미없다는 듯 흥하고 웃어넘겼다.
” 뭘 노리는지는 알 거 같군. 뭐, 9할 9푼 정도는 정답이라고 해 둘까.”
” ……”
” 네 생각대로다. 나는 초끈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무적이지만 다루는 시간과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반전(反轉).
” ……!!”
피를 토한다. 선혈이 눈 앞에 희뿌옇게 터져나왔다.
권강한의 말이 끝났을 때 유천영은 자신의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권강한의 발 밑에 깔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지만 정신차리고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 뭐 그래도 이 정도는 간단하지.”
” 이건…”
게다가 유천영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무혼 3단계, 육합성만조천하의 힘으로 초끈의 변화를 막아낸다고 생각하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권강한은 유천영의 머리를 밟으면서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 초끈을 조작한다는 건, 소설의 한 줄을 바꿔쓰는 것과 같아. 내가 쓰는 소설이라면 내용이 이어질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모든 게 내 뜻대로니까.”
파밧
유천영은 죽을 힘을 다해서 권강한의 발밑에서 빠져나왔다. 원래 무위(武威)라면 유천영이 훨씬 위였으므로 권강한을 당장 찢어죽이는 게 옳았다. 하지만 의문의 압력이 조여오는 통에 몸을 빼내는 것에 그친 것이다.
유천영이 다시 전투자세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권강한의 발이 다시 한 번 유천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 상황은 그대로다.
” ……”
” 아, 너는 초끈을 조작하는 게 ‘손을 흔드는’ 행위로 이뤄진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육체의 행위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니 편향적이니까 초끈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유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권강한이 초끈을 이용해서 현실을 조작한 탓에 엄청난 부상이 전신에 아로새겨져 있어서 몸을 회복시키는데 모든 힘을 써야만 했다.
” 그 뭐냐. 손오공도 기공파를 발로도 쏘잖아. 마찬가지로 이건 기술(技術)같은 게 아니라서 신호를 할 필요가 없지.”
쿠웅
” ‘현재’와 ‘미래’의 시점차이도 상관없고.”
유천영이 다시금 일어섰지만 1초도 되지 않아서 권강한의 발 밑에 깔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치 부처님 앞의 손오공이 되어버린 양, 권강한의 능력은 현실을 무시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유조차 필요하지 않다.
유천영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조롱이라도 하듯 권강한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네 경지는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계진입자들과 결투를 했었는데.”
퍼엉!
무형검이 몇백 갈래로 쏘아져서 터졌다.
‘ 통하지 않아…!!’
한 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유천영이 권강한을 쓰러뜨리는 환상, 아니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반응속도같은 건 상관없었다. 저절로 권강한이 패배할 가능성은 이 세계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초끈의 권능.
” 제각기 자기 세계에서는 그랜드소드 뭐시기, 나인클래스 뭐시기, 데몬로드, 반신같은 거라서 명패는 대단했는데~ 그 중에서 유천영 너처럼 ‘초끈’으로 만들어진 변화를 차단한 녀석은 한 놈도 없었다.”
흙냄새가 났다.
굴욕.
유천영이 전투에 나선 평생, 지금처럼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당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따금 절대자들을 상대로 패배했지만 그 때도 나름대로 당하는 이유는 있었다. 지금은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박살나고 있는 중이었다.
‘ 아직 진 건 아니다.’
보통 무인이라면 이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즉시 절망하거나 굴복할 것이다. 하지만 유천영은 한 줌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권강한과 대치하려고 일어섰다.
권강한은 이번에는 억지로 유천영을 발 밑에 두지 않았다. 검을 들고 마주선 유천영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바위에 걸터앉았다. 잠시 쉬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유천영이 말했다.
” 너와 싸운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 주제도 모르고 잘난체 하길래 실컷 갖고놀다가 묻어버렸지. 어차피 살아있어봤자 세계에 혼돈만 초래하는 게 진입자니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각기 진입자로써 엄청난 힘과 재능을 부여받은 자들이라서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다. 권강한과 대치하는 상황까지 갔어도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강한은 본래 성격이 나쁜 편이므로 그런 ‘강자’들의 자만심을 하나하나 조롱하면서 찢어죽였을 것이다. 압도적인 초끈의 힘으로 절망을 보여주면서.
최강의 마법도, 최강의 초능력도, 이계의 검술도 소용없다. 심지어 신조차도 초끈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권강한은 자신도 진입자이면서 진입자의 자만심을 경멸하고 혐오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건 그가 초끈능력을 얻게 된 과정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권강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눈빛에는 희미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 너도 예외는 아냐. 지금도 ‘유천영’을 갖고놀다 죽이려는 생각에 변화는 없다구. 그런데… 이것 참 쉽지 않네.”
쿠웅
유천영은 전신의 뼈와 근육이 뒤틀리며 박살났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절망적인 치명상은, 잠시 후 없었던 일처럼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역(逆) 현실조작!
유천영이 묵묵히 검을 다시 들자 권강한이 골치아파했다.
” 이것 보라구. 방금 전에는 그냥 널 죽이려고 했어. 이제 너는 내 방해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것만큼은 초끈의 힘으로도 안 된다니까? 그래서 아까 전부터 곤혹스러워하던 참이야.”
권강한은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은 유천영의 육합성만조천하와 대치하던 한 식경동안에, 권강한은 자신이 얼마든지 방어를 뚫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육합성만조천하가 만물의 변화를 제어하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초끈의 차원(次元)을 달리하면 현실조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육합성만조천하는 신력(神力)조차도 억제할 수 있지만 초끈의 힘은 우주적인 수준이었다. 권강한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유천영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만큼은 되지 않았다.
‘ 대체 뭐야?’
초끈으로 현실을 바꾸는 건 되는데, 그 가능성만큼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도해 봤지만 방금 전처럼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오래 전에 초끈의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이래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유천영은 조용히 자신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권강한의 현실조작 때문에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의념의 힘으로 충분히 메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천영이 말했다.
” 나야말로 모르겠군.”
” 뭐가?”
”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 어째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건지.”
” ……”
권강한은 침묵했다. 그는 유천영이 이 질문을 한게 예상 외인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던 권강한이 피식 웃었다.
” 힘… 이라. 하하.”
” ……”
” 옛날 얘기나 잠깐 해 볼까…”
권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방금 전과 같은 광기어린 살의를 약간 버린 표정이었다. 그건 ‘진심’을 발휘하는 자신에게 이 정도로 맞선 진입자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유천영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었다.
어차피 결판은 한 순간에 날 것이다. 조금 정도라면 진솔해지고 싶었다.
그는 달을 한 번 쳐다보았다.
” 예전에 어떤 소년이 있었지.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에 알 수 없는 불쾌감과 허무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놈이었다. 차라리 중2병이 되어서 스스로 행복해졌으면 좋았을텐데 자기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그럴수도 없는, 그런 멍청한 놈이었지.”
약간은 길지만, 누구에게도 평생 한 적이 없었던 ‘권강한’이라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 그러던 중에 바뀔 기회가 몇 번인가 찾아왔었다. 소중한 인연도 생기고, 사랑도, 우정도, 바람처럼 찾아들었다. 소년은 당혹스러워하면서 어떻게 인연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지. 그런데 고민하는 동안에 소중한 건 순식간에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눈물도 안 나왔다고 해.”
달을 바라보는 권강한의 얼굴에 애수는 없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권태롭고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 괴물같군.’
유천영은 그를 보면서,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같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짐짓 이야기꾼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격렬한 절망감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 어떻게든 인연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 여행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서 내달렸다.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가리지 않고 살인기계처럼 학살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그것밖에 없었다. 소년이 바라는 게 여행의 끝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 그는 원하는 걸 여행 끝에 얻어냈나?”
유천영의 물음에 권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아. 멋지게 얻어냈지. 영계의 지배자를 박살내면서 일시적으로 초끈의 힘은 사라졌지만, 인연의 혼재를 모두 원상복구시켰어. ‘소중한 일상’이란 건 당연한 것처럼 품속에 돌아왔다.”
여기까지라면 – 분명히 행복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더 이상 현실을 뛰어넘는 영역에 발을 들이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기에 소년은 방황하며 다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권강한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 … 그런데, 정작 소년은 헷갈려져 버린 거야.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십여 년을 보냈는데 – 결국 자신이 만나는 ‘소중한 인연’은 덧씌워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疑心)이 덧칠되었다.”
잠을 잘 때도, 계속.
그 때문에 권강한은 한동안 자살충동에 시달렸었다.
” 무슨…?”
” 인연의 혼재란 건 덧씌워진 기억 때문에 영혼이 뒤엉키는 현상이다. 진입자가 강력한 세계일수록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세계가 연결되면서 모든 인연의 끈이 병렬식으로 연결되어버리는 거다.
… 소년의 모험은 모두 이걸 해결하는 임무였지. 그런데 일상생활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년 자신은 뒤죽박죽 엉터리가 되어버렸던 거다. 모두가 해피엔딩에 도달했는데 소년만 줄곧 과거의 인연에 시달리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야.”
정체성.
영혼의 동시성(同時性).
의심을 하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었다. 게다가 현실에 마모되어가서 점차 사람들이 피폐해져가니 괴로워져만 갔다.
” 결국 미쳐버리기 전에 결론을 내려버렸지.”
되돌리자.
되돌릴 수 없다면, 답을 찾자.
그리고 – 두 번 다시 자신과 같은 불운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입자(進入者)는 악(惡)이다.
” 의식하지 않고 있었을 뿐, 소년은 이미 초끈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뜻으로 창조한 세계에서 도망쳐서 삼천세계의 진입자를 찾으면서 – 진실이 뭔지 알고싶어하면서.”
물론 소년이 누구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권강한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천영은 권강한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괴이(怪異)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 여기까지가 옛날 얘기야.”
눈 앞의 존재는 멀쩡하게 미쳐버렸다.
자신이 미쳤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유천영은 권강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 넌 화산규약지회 때 거짓말을 했었군.”
” 무슨 거짓말?”
” 네 목적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따위가 아니다. ‘소년’의 이야기대로라면 그럴 가능성은 없지.”
” 그럼 진짜 목적이 뭘까?”
권강한이 무심하게 물어오는 태도는 마치 자기 얘기가 아닌 듯 했다. 유천영은 검을 다잡으면서 씹어뱉듯이 말했다. 유천영도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 눈 앞의 ‘권강한’이라는 진입자는 광기로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 진입자를 찾아내서, 절망을 보여주며 척살하는 것이다! 그래야 ‘소년’은 만족할 테니까.”
권강한의 무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마음푸근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 세계에 온 이래, 처음으로 자기 본심을 알아차린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다.
” 정답.”
정확히 말하자면 척살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세상에 뒤틀림과 일그러짐을 가져다주는 진입자들을 볼 때마다 권강한은 죄책감과 자기혐오감이 들었다. 겉으로는 밝은 인격을 만들어서 포장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극심한 뒤틀림 때문에 스스로 절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온갖 이변을 만들어내며 광대처럼 활약한 이유도 간단했다. 이 세상에 꼭꼭 숨어있는 진입자들을 들쑤셔서 튀어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유천영이나 연화는 그 목적을 위한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권강한의 행동은 틀리다고 볼 수 없었다. 권강한의 경우에는 이계진입의 부작용이 세계간 인연의 혼재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 모든 진입자는 세계에 불균형과 뒤틀림, 혼돈을 가져왔다.
진입자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원흉(原凶)이므로, 권강한의 행동은 지극히 옳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진입자의 경험이 있던 유천영은 권강한의 의도와 심계를 파악하자 소름이 돋았다. 유천영의 경험으로 지금껏 보고 경험했던 게 있으므로, 진입자를 죄다 없애버리려는 권강한의 생각에 차마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화산규약지회 때 이 사실을 몰랐던 게 다행이다.’
알았다면 아무리 유천영이라도 당황하고 동요했을 것이다. 권강한은 신살자(神殺者)이자 초끈의 지배자 – 무슨 수를 써도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권강한이 월승혼을 두려워할 리가 없다.
고작 용안 따위로는 초끈조작에게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태왕의 아수라파천무만큼은 두려워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천영을 화산규약지회 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유천영은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이야기가 끝났으니 권강한은 다시금 자신을 잡아죽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손쉽게 되지 않는 일이니 다른 수단을 쓰려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천영의 승산은 무(無)였으나 실낱같은 희망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권강한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 때였다.
” 그가 벌써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