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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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훈련
진혼제가 열렸다.
갈효봉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백도측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어찌보면 굉장히 유치한 잡짓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면 진짜로 정천맹과 흑천맹은 서로 한판 붙게 될지도 모른다. 마진가가 손을 잘 썼다고 생각했다.
나예린의 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수한 세월 동안 감정이 메말라버렸다. 게다가 아무리 아름다운 춤이라고 한들 열 번이나 보게 되면 질리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진혼제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수련장에 틀어박혔다.
그로부터 한달동안, 나는 미친듯이 검과 내공에 매달렸다. 한달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열 달이었으니 내 자신의 검을 갈고닦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매일 무미건조한 생활을 반복하던 중이었다.
천무식당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 … 저 자가 구정회와 정면으로 반목했다고…”
” 어린 나이에 오만한데다가 하늘 높은줄 모르는군…”
” 그래도 대단하지 않나?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내게 대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공이 극치에 이르고 노화순청에 가까워지면서 발달한 청력 때문인 것 같았다. 나에 대한 소문은 대체로 전형적인 것이었다.
모용휘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엄청난 초천재.
그런 주제에 개독종.
지는 건 무지하게 싫어한다.
오만하고 냉정하다.
인간같지 않다.
싸가지 없는 어린 놈.
나는 수련을 하다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 안좋은 것밖에 없군.”
그나마 천재라는 부분이 좋아보이지만, 나는 천재란 말도 싫어했다. 즉 학관에서의 내 평판은 최악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판타지나 SF에서는 나름대로 밝으면서도 의지가 된다는 평을 들었는데, 무림에서 이런 말을 들을줄은 몰랐다. 씁쓸해져서 그 날은 하루종일 검을 휘둘렀다.
다음 날부터, 나는 비류연에게 학식을 사주기로 했다. 열 번씩이나 같은 식사를, 그것도 서른 번이나 해야 했다. 무려 300번이나 비류연과 그의 일행들과 같이 밥을 먹어야 했다. 언제나 혼자 먹는 습관이 들어있던 내게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그럭저럭 한달치가 끝나고, 비류연에게 약속한 학식을 다 사줬을 때였다. 비류연이 호쾌하게 말했다.
” 이젠 최고급 요리! 으음, 뭘로 할까.”
” ……”
먹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진이 빠졌다. 요즘엔 왠지 수련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 사주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효룡, 장홍, 윤준호 등과 친해지면서 재밌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금 한 냥이나 쏟아부어서 최고급 요리를 쏘면서 생각했다.
‘ 그러고보니 고향 음식을 먹은지도 오래됐군.’
약간 서글펐지만 이런 거에 일일이 동요해 버린다면 앞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혼자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나갔다. 나는 약 2년 반 가량을 수련하면서 내공의 성취가 약간 더 높아진 것을 느꼈다. 게다가 낙하구구검의 묘리가 점점 몸에 붙는 것이 기분좋았다. 수련 자체가 내 삶이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큰 일이 일어났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성무조가 호들갑을 떨었다.
” 검마 초월이 찾아왔대.”
” 그래?”
난 그저 심드렁하게 맞받았다. 앞으로도 아홉 번이나 이 호들갑을 더 봐야된다.
나는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피의 대리자로 내세운 철각비마대가 패퇴했음에도 흑천맹에서는 무당산 참변 진상조사위원이란 걸 보낸다고 했다. 사건의 진실을 자신들이 확실히 알아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나는 수련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별 시덥잖은 일이 다 생긴다고 생각했다.
‘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아직까지도 검의 극한은 보이지 않는다. 유운검법의 극의를 깨달았지만 아직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얻는 게 많다. 한계란 건 보이지 않고 끝없이 노력할 뿐이다. 이 재미에서 나를 빼버리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진상조사위원, 사중화 은설란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였다. 호위로는 모용휘가 임명되었다.
나는 그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모용휘와 마주치게 되었다. 모용휘 옆에는 은설란과 비류연이 있었다. 은설란을 호위하니까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비류연은 여기에 또 왜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용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힘을 탐색하려는 듯이 차가운 시선이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서 모용휘의 목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과거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패배를 갚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힘이 있다.
공기가 냉각되었을 때 분위기를 깨버린 것은 비류연의 발랄한 한 마디였다.
” 화강암 둘이 모였으니 아무 일도 일어날 리가 없죠!”
” 어머, 그런가요?”
” 저 둘은 천무학관 내에서 말없고, 삭막하고, 재미없기로는 수위를 다투는 녀석들이니까요!”
” 어머나…”
은설란은 우리 둘을 놀랍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모용휘는 은설란의 시선에 당황한 듯 했다. 평소에 진짜로 아무런 감정도 없던 녀석 치고는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 우연일 뿐이야.”
이걸로 6일째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그냥 가는 길을 바꾸기만 하면 이들과 마주칠 일이 없다. 내가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 잠깐만요!”
” ……?”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제지한 것은 은설란이었다. 그녀는 왠지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 천무학관에서도 최고 어린 나이로 선룡마검이라고 불리면서 강호의 관심사로 떠오른 유천영 소협인가요?”
” … 내가 왜 관심사요?”
나는 왠지 불쾌해져서 되물었다. 강호의 명성은 쓰잘데기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기분을 아는건지 모르는지 은설란이 재잘거렸다.
” 당가의 차기 암왕을 쓰러뜨린 일은 이쪽에서도 유명하니까요~”
” 우연이었소.”
그건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지금조차도 다시 당산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는 당산이 당황한 덕분에 호신강기에 약점이 생겨서 겨우 이길 수 있었을 뿐이다. 다시 싸운다면 파천벽강을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은설란 일행은 약간 얘기를 나누다가 가 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나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남은 건 화산규약지회인가…”
화산규약지회까지는 대충 1년 반 정도가 남았다. 내게는 15년 정도가 남아있는 셈이다. 나는 그 시간동안 두 가지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첫째. 육합귀진신공 중에서 최소한 두 가지를 수련해서 극성에 이르도록 한다. 지금까지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든다고 해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시간과 노력이 모두 있었다. 내공이 좀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높은 경지에 오르기가 쉬워질 것이다.
둘째, 최근에 발견해 낸 유운검법의 묘리를 좀 더 깊게 연구해서, 검정중원 이상의 경지로 향한다. 이건 15년이 아니라 15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긴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이루어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