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6)
먼치킨 길들이기 66화
* * *
연금술사들은 멍하니 에이얀을 바라보았다.
리카샤가 혜민원을 구했다. 부상자는 있었으나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시체들은 모두 신의 늑대들이었다.
신의 늑대들은 자신들이 혜민원의 연금술사들을 학살하리라 생각했을 테지만, 실상은 리카샤의 일방적인 늑대 학살이었다.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쉔 티엔이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하는 연금술사들 앞에서 짝짝 손뼉을 쳤다.
“다들 왜 멍하니들 있나. 다친 사람들은 날 따라와서 치료받고, 멀쩡한 사람들은 싸게싸게 치우시게. 아기 선녀한테 보이지 않게.”
“예, 예!”
연금술사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얀은 질린 듯한 그들의 표정을 응시하며 픽 웃음을 흘렸다.
마탑에서도 즐겨 받던 시선들이다.
연금술사들도 마력을 다루니, 제 앞에 서 있는 이가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 느끼고 있겠지.
평생 받아 온 시선을 퍽 즐겁게 받아들이며, 대수롭지 않게 몸을 돌린 에이얀이 피를 닦아 낸 순간이었다.
“에이얀?”
키네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기 선녀님! 여기로는 오시면 안 됩니다!”
“아이고, 이런 걸 보시면 어째요.”
“이 피는 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질겁을 한 목소리였다.
지금껏 누구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았던 에이얀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왜 하필 이때에…… 소리 없이 혀를 찬 에이얀이 슬쩍 손을 팔로 가져갔다. 마력을 끌어 올려 작게 피워 낸 바람의 칼날이 팔을 스쳤다. 곧 팔에 깊지 않은 상처가 생겨났다.
제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죽은 자들의 피와 섞이자 그제야 에이얀이 몸을 돌렸다.
“혜민원에 습격이 있었어.”
키네미아는 보지 말라 만류하는 연금술사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되물었다.
“습격?”
“응.”
에이얀은 슬쩍 제 상처를 드러냈다.
“설마 팔 다친 거야?”
“조금.”
그는 마치 ‘나는 괜찮지만 네가 걱정할 정도는 된다.’는 듯이 아련한 미소를 보였다.
“……?!”
미친. 그런 에이얀을 지켜보던 연금술사들이 모두 욕설을 짓씹었다.
아까 그 광란의 살육을 펼치던 악독한 마법사는 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
몇몇은 에이얀이 스스로 상처를 내는 모습까지 발견했으므로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줄은 까맣게 모르고 키네미아가 품으로 달려오자 에이얀은 느릿하게 연금술사들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자그맣게 웃어 보였다.
모두가 그 미소의 뜻을 알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겠지.
다들 에이얀의 살육을 본 뒤라 협박은 아주 자연스럽게 먹혀들었다.
15장 번뇌하는 18세
에이얀이 피를 씻어 내는 동안, 키네미아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머리를 벽에 기댔다.
포션을 가져온 연금술사가 얀비어천가를 읊으면서 상황을 설명해 주고 나간 참이었다.
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에이얀 님께서 얼마나 활약해 주셨는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왜 저렇게까지…… 혹시 에이얀한테 협박이라도 받았나……?’
잠깐 들었던 생각은 연금술사가 좋은 시간 보내라며 방을 떠나자 훅 날아갔다.
대신 새로이 키네미아의 머릿속을 메운 것은 분노였다.
‘습격.’
흑야가 혜민원을 비운 사이에 습격을 할 줄이야.
키네미아가 숨을 깊게 내뱉으며 두 볼을 쓸었다. 에이얀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연금술사들은 꼼짝없이 당했으리라.
‘그렇다면 혜민원은…….’
회랑을 가득 메웠던 피를 떠올리니 손끝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 도륙 난 시체들. 하마터면 그 죽은 이들이 모두 연금술사일 수도 있었다.
혜민원을 습격한 건 10명의 소드 마스터들이었다. 아무리 혜민원의 연금술사들에게 제 몸을 지킬 힘이 있다고는 해도, 소드 마스터들을 이겨 낼 수는 없었으리라. 그들도 그걸 알고 일방적인 학살을 기대했겠지.
열이 차오른 키네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사제, 그간 멍청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도가 지나칠 정도로 머리가 나쁜 걸 잘도 숨기고 있었네.’
굳은 낯의 키네미아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제 사람들을 건드린 이상, 그 값은 혹독하게 치러야 하리라.
마음 같아서는 지금 전 병력을 이끌고 교단의 본산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진정하자. 어차피 칼자루는 이쪽이 쥐고 있어.’
뒤처리 생각도 없이 일을 벌일 수는 없지. 더 큰 피해만 생길 뿐이다.
분을 삭인 키네미아는 대사제를 처리할 몇 가지 방안을 떠올리며 침대에 스르르 몸을 누였다.
포근한 침구가 닿자 긴장이 풀어졌다.
“후-”
숨을 뱉은 후에 다시 깊게 들이마시니 베개에서 익숙한 향이 풍겼다.
‘뭐지, 이거.’
눈을 질끈 감고 고민하던 키네미아가 눈을 반짝 뜨며 목을 울렸다.
“아.”
에이얀의 냄새다.
가을 하늘같이 청량한 향이 났다. 잘 어울려.
무슨 향수라도 쓰는 걸까. 키네미아가 킁킁거리는 사이에 에이얀이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팔짱을 끼고 문설주에 기댄 채 키네미아가 하는 양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키네미아는 제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귀엽긴 한데, 내 침대라는 걸 알긴 아는 건지. 달가우면서도 전혀 달갑지 않은데.
“뭐 해. 베개에 코 박고.”
더 이상 놔두면 안 되겠다 싶었던 에이얀이 입을 열자 키네미아가 고개를 들었다.
“네 냄새 나서-”
“응?”
“-좋아.”
“…….”
에이얀이 입매를 굳혔다.
킁킁대던 키네미아가 눈을 빼꼼 들어 올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에이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향 좋다는 거였는데. 미안, 기분 나빠?”
“……아니. 전혀.”
그럴 리가. 하지만 평소처럼 태연스러운 웃음을 보일 수가 없었다. 제 얼굴을 가린 에이얀의 손 너머로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키네미아는 베개를 옆으로 쓱 밀어 놓았다.
팔짱을 낀 에이얀이 아쉬운 눈길로 이를 응시하다가 키네미아에게로 다가갔다.
찰나에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 놓고서는,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이었다.
‘……작정한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나쁘네.’
손짓 한 번,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복잡해지는 건 늘 나뿐이지.
에이얀이 바짝 다가가 키네미아를 내려다보았다. 자그마한 얼굴에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 서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지 않게 조급증이 인다.
같은 감정까지 바라진 않지만, 출발선에도 세우지 않을 셈인가.
그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쓸었다.
이렇게 답이 없는 문제에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지 떠올리다 이내 멈추었다.
곤란해하는 널 붙들고 어딘가에서 주워섬긴 책의 구절처럼, 5년간 줄곧 떠나지 않는 열병처럼 너를 앓았다 말할까.
아니면 지금은 밤이고, 방 안에는 우리 둘뿐이며, 나는 너한테 미친 남자란 걸 인지하게끔 굴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