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23)
EP.124)사냥 # 4
124 – 마물 사냥 # 4
아이라의 방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의 푹신한 이불 사이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라의 모습이 보였다.
아침이라기엔 슬슬 늦어지는 시간인데 아직 자고 있다니.
깨웠다간 예민해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근처에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서 아이라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겨울잠 자는 동물 같네.
하는 수 없이 주변으로 관심을 돌려본다. 이참에 아이라의 방을 주의 깊게 둘러보는 것도 나쁠 것 없었으니까.
그렇게 이것저것 살펴본 바 아이라의 방은 상당히 소녀감성이 충분한 것 같았다.
푹신한 인형들이 도처에 널브러져 있고 반짝이는 포장지에 감싸여 있는 사탕 같은 게 맑고 투명한 유리병에 가득 담겨있다.
아름다운 찻잔과 찻주전자를 바라봤을 때 나는 차나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해 찻잎과 마정석 버너로 찻물을 우려냈다.
보글보글.
향기로운 백차가 딱 알맞게 우려질 때 쯔음-.
“향기가 좋구나.”
스르륵. 이불을 걷어내며 아이라가 양 옆으로 늘어지게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나는 막 끓여진 차를 예쁜 찻잔에 따라서 컵받침과 함께 아이라에게 내밀었다.
“뜨겁습니다.”
그것을 받아 든 아이라는 후-하고 입김을 불은 후에 뜨거운 찻잔을 꿀떡꿀떡 전부 마셔버리는 게 아닌가?
“좋아. 잘 우려냈구나. 잘 마셨어.”
아마 입김을 불은 것에서 모종의 마법적인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온도를 조절하는 마법 같은 것이겠지.
“그래서 태오야, 내 방엔 어쩐 일이니?”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주는 아이라.
나는 그녀의 손에서 빈 잔을 받아 구석에 치워두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아이라 여왕님께 부탁을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아이라는 마치 믿지 못할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까맣고 단정한 눈썹을 치켜 올렸다.
“태오, 네가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네. 태오 네 힘만으로는 부족한 일이라도 겪고 있는 것이니?”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이것저것 젤 필요 없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저, 이번에 던전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혹시 아이라 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던전…?”
“네, 던전입니다.”
“던전에는 왜 가려고 하는 거니?”
열심히 레벨업을 해서 언젠가 너를 굴복시키기 위해.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나는 아이라가 잠자는 동안에 열심히 생각한 변명거리를 둘러댔다.
“앙그마르 마왕의 유적지에, 아마 마왕의 금기유산에 대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이사야 앙그마르가 모험동아리로 활동하며 여러 유적들을 탐사했다고 하니. 그에 대한 발자취도 따라갈 수 있을 것이구요.”
조잘조잘.
이야기를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듣던 아이라는 침대에서 다리를 뻗어 바닥에 발을 디뎠다.
스륵. 나는 그런 아이라의 맨발에 푹신한 분홍색 토끼털 슬리퍼를 신겨주었다.
“…….”
다만 아이라는 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딱히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을 걷고 새어 들어오기 시작하는 정오의 햇볕을 받을 뿐.
새삼스럽지만, 햇볕을 받는 아이라의 피부는 첫눈처럼 희고 그 입술과 볼에 감도는 생기는 마치 피처럼 붉었으며 머리칼은 흑단 같았다.
백설 공주를 처음 본 난쟁이들의 기분이 딱 지금 나와 같았겠지. 사실 아이라는 백설 공주보다는 왕비 쪽에 가깝지만….
슥-.
포르릉-.
아이라가 손을 내밀자 어딘가에서 날아온 파랑새들이 가느다란 손가락에 앉아 짹짹거렸다. 그런 새들을 다시 하늘로 날려 보낸 어린 여왕이 말한다.
“날씨가 좋구나.”
“그렇지만 바람이 불고 구름이 껴 있는 것이 늦은 오후에는 비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네 요정으로서의 감이니?”
“요정으로서의 감요?”
“님프나 엘프들은 날씨에 민감하다고 하니까. 특히 님프들은 그렇다고 하던데. 요새 책에서 읽어봤거든.”
책이라.
그러고 보면 아이라의 책상에는 두꺼워 보이는 여러 권의 책이 있었다. 아이라는 기숙사에서 남는 시간에 꽤 여러 책들을 독파한 모양이다.
문득 아이라를 너무 혼자 내버려두었던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입학을 한 이후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데, 아이라는 혼자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
“그럼 우선 좀 바깥을 걷자꾸나. 나와 동행하렴, 태오야.”
“알겠습니다.”
* * *
아이라의 말대로 날씨가 무척 좋았다.
하늘은 높고 파란 와중에 하얀 구름들이 나른하게 흘러가고. 아름다운 화단에는 햇볕 아래로 꽃들이 산들산들 흔들리고.
이런 날씨에는 맛있는 치킨과 돗자리를 챙겨서 강변 같은 곳의 그늘 가에 쉬면 체력도 정신도 왕왕 회복될 게 분명했다.
하루 정도는 쉬고 싶긴 하구만.
마음 같아서는 나도 저기에 나른하게 하품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휴일은 꽤 거리가 멀다.
━저거 봐. 아이라 여왕이다.
━산책이라도 나온 건가? 오늘은 운이 좋네.
그때 내 요정 귀에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이라가 바깥을 거닐고 있으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고 관심이 몰린 탓이다.
아이라는 시선을 끌어 모으는 타입이니까.
━석차 2등은 처음 봤어. 얼마나 강할까?
━덤벼보든가.
━다가가기도 겁나. 괜히 말 걸었다 거절당하면 마음 아플 것 같아.
그들은 각기 아이라의 강함과 미모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여왕 아이라가 어떤 식으로 비춰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태오야.”
아이라가 말을 걸어와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휘우우우-흩날리는 앞 머리칼을 손으로 슥 붙잡아 누르며 아이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던전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이니?”
“던전에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니. 오늘 저녁 정도 전에는 돌아올 수 있겠지. 태오, 네가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보고 싶기도 하니까.”
오.
가장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라가 나와 함께 던전에 가줄 줄이야. 그래서 나는 얼마 전 보건교사 칼리라 영애로부터 습득한 두루마리를 몇 개 펼쳤다.
“그게 뭐니?”
“이 근처에 있다는 던전의 지도입니다. 지금 이곳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 여기겠네요. 여기는, 동굴 같아요.”
나는 변덕스러운 아이라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얼른 아이라와 함께 던전을 입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아이라를 데리고 아크를 벗어나서 부지를 감싸고 있었던 남쪽 인근의 숲으로 진입했다.
“평화로운 숲이구나.”
자박, 자박하고 나뭇가지와 풀 따위를 밟는 아이라가 나른하게 평가했다.
내가 알기로 이 숲의 이름은 토끼 숲인가 그랬을 거다.
토끼 숲이라니.
척 봐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름이지 않은가. 토끼와 사슴, 그리고 님프 같은 요정들이 잔뜩 살고 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그런 숲에 있는 동굴의 던전이라고 해 봐야 난이도 또한 고만고만할 게 분명했다.
설령 내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라 해도 내게는 아이라가 함께하고 있으니 두려울 게 전혀 없다.
다만 그런 생각은 동굴의 입구를 발견했을 때 잠깐의 멈칫거림과 함께 얼룩지고 말았다.
“여기로 들어가는 게 맞니?”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지도와 동굴 입구를 번갈아 쳐다보며 정말 여기가 맞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동굴의 입구는 매우 커다랗게 생긴 나무의 뿌리 아래에 뻥 뚫려 있는 짐승굴 같았다. 토끼 숲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보면 토끼굴이라는 표현도 어울릴 것 같다.
근데 제법 깊어 보인다.
━지즈즈즈즈-.
귀를 기울여보면 무슨 짐승인지 벌레인지 모를 것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고.
“일단 지도에 따르면 이곳이 맞네요.”
어쩌면 거대한 곤충들이 바글바글한 던전 일지도 모르겠다. 벌레는 싫지만, 모처럼 아이라 찬스를 사용하게 된 이상 물러서는 것도 아까운 일.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임프 꼬리 완드를 손에 쥔 뒤에 몸을 숙여서 토끼굴 안을 천천히 비집고 들어갔다.
사브작, 사브작.
“먼지 많네.”
다른 누군가가 들어선 흔적은 없는 것 같지만, 그 때문에 내 머리 앞으로 기어 다니고 있는 지네 따위가 무척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저리 가.”
나는 마르마르 꼬리 완드로 벌레들을 이리저리 밀어서 겨우 발을 디딜만한 장소에 도착했다.
제법 넓은 토굴이라서 내가 허리를 쭉 폈음에도 머리 위로 일 미터쯤은 넉넉히 공간이 남았다.
“아이라 여왕 님, 안으로 들어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흐응.
곧 무언가 콰가가각-하고 갈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아이라가 비좁은 동굴의 입구를 매우 커다랗게 넓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돌과 흙들이 밀쳐지며 트럭 한 대가 들어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확 넓어진 것이다. 아이라가 염동력으로 좁은 토굴을 찢은 것이겠지.
그렇게 넓어진 입구를 아이라는 우아한 걸음으로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아이라는 지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방금까지 지네들과 사투를 벌였던 것이 우습게 느껴지잖아.
이게 대륙에 단 한 명 존재한다는 7위계의 마법사인가.
나의 옆에 선 아이라가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말했다.
“많이 어둡구나.”
자신의 까맣고 긴 머리칼을 하나 뽑아서 후-하고 바람을 불자.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리다 작은 실 거미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가라.”
아이라의 명령과 함께 손바닥의 거미가 공중으로 풀쩍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것은 마치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밝게 빛을 뿜어 사방을 밝혔다.
━즈즈즈지즈즈-.
━즈즈….
동시에 주변에서 우글거리고 있던 벌레들이 그 빛을 견디지 못한 느낌처럼 사방으로 숨어버렸다.
평소라면 그냥 ‘아이라의 마법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여 그냥 넘겼을 텐데. 요즘 마법에 대해 나름 발전을 가속하여 4위계에 달했기 때문인지 궁금한 점이 생겨났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어쩌면 아이라의 강함을 이 기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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