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22)
EP.123)사냥 # 3
123 – 마물 사냥 # 3
던전(Dungeon).
21세기에 태어나 무수한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에게 이 던전이란 설명이 필요 없는 개성적 공간이었다.
음침한 석벽과 함정, 보물, 괴물, 모험과 가슴 떨리는 이야기 등등 던전이라는 이름을 듣고 머릿속에 무언가가 팍-하고 그려지는 게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의 던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놓은 지하 던전들이 잔뜩 있었고, 그 던전을 오가며 전리품을 챙기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용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 태오 가스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요승 태오 가스펠은 협상의 테이블이 어울리는 녀석이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험의 야영지와 거리가 먼 녀석이었으니까.
지하괴물이 득시글거리는 미궁이야 더욱 먼 놈이었고.
“하지만 이제는 던전에 가야만 해. 좀 위험하긴 한데 그것만큼 효과 좋은 게 또 없어. 리스크가 있는 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으니까.”
미르나의 저택 지하에 있었던 던전, 마굴에서 나는 여러 마물과 보스-주시자를 상대하고 4위계까지 마법의 실력을 높인 적이 있었다.
던전 답파야 말로 뛰어난 실력 상승의 왕도이자 지름길.
머리가 점점 붉어지기 시작하여, 시간과 여유가 줄어든 내게 있어서 던전 답파만큼 훌륭한 발전 방법도 없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봐.
“그래서, 마르마르, 나랑 같이 던전에 가지 않을래?”
나는 마르마르를 향해 나와 함께 던전의 답사를 하지 않겠냐 제안했다.
그러나 마르마르는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처럼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라고 되물어온다. 그런 마르마르의 머리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있고 손에는 빗자루가 쥐어져 있다.
“마르마르, 지금 많이 바빠?”
“곧 임프들이 입주할 거라서! 안 쓰던 방 치우고, 가구 놓고 하느라 정신이 없어!”
마르마르는 인수하게 된 건물인 「요정의 낙원」을 이리저리 단장하느라 바빠 보였다.
낡은 방 안에는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곰 인형 벽지와 프릴 달린 커튼들이 장식되어 있고, 모든 방에는 창문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볕이 잔뜩 들어와 눈부시게 빛났다.
“이 정도면 임프 자매들도 좋아하겠지? 벽지 색이 너무 밝은가?”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분명 좋아하겠지.”
“그런가?”
마르마르 외의 임프들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임프들의 성정이 다 비슷하다면 아마 마르마르가 열심히 준비한 방을 좋아할 게 확실했다.
마르마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작게 한숨을 돌리듯 내게 말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어딜 갈 거라고?”
“음, 아냐.”
마르마르를 던전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마르마르가 할 일이 많다면 굳이 억지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르마르는 사실 전투에 그리 재능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럼 나중에 바쁘지 않을 때 또 올게. 다음에 봐.”
나는 마르마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연립주택 요정의 낙원에서 거리를 벌렸다. 그런 나의 뒤로 마르마르가 붕붕 손을 흔든다.
“그래! 곧 요정들의 밤이 시작된다는 것 같으니까, 또 나중에 같이 가자! 그리고 임프들이 잔뜩 들어오면 집들이도 할 거니까 그때 꼭 와!”
“그래, 그러지 뭐.”
마르마르를 닮은 임프들이 잔뜩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네. 그런 잡담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근처 공원에 앉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공원에는 생도들이 잔뜩 있었다.
━야,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냐?
━아니, 전혀 아무것도 못했는데. 나 근처에서 마물들 사냥하느라 바빴잖아. 이번에 폴라 베어 토벌한 걸로 점수 제출해보려고.
━나도 강의 몇 번 빠져서 실적으로 채워야하는데. 큰일이네. 근처에 던전 같은 거 발견되는 거 없나.
귀를 기울여보니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시즌에 다들 걱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야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열심히 강의를 듣는 생도들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시험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네. 이래서야 모처럼 아카데미 기관에 온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냐.
━이번에 남쪽에서 발견된 던전에 들어갈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갈래? 보니까 난이도는 실버티어 등급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진짜 그래야겠다. 기여도라도 올려서 조금이라도 점수를 대체 해놔야, 나중에 교단에서 지원이라도 더 받지.
들어보면 던전을 소탕하거나 마물을 잡는 것의 기여도로 시험 점수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 같아 보인다. 내게 있어서는 나름의 호재다.
문제는 나 혼자 던전에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한 게 많다는 점이었다. 저번처럼 갇혀버리면 어떻게 해.
적당히 1인분 이상 하는 파티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누구랑 가지?
엘가와 미르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의 그녀들이라면 내가 던전에 가자 부탁했을 때 어지간해서 거절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다만 그녀들과 함께 던전에 입장하게 되면 나는 마법실력을 늘리기는커녕 업혀갈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랑 비슷한 수준의 동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구만.
* * *
“던전?”
나르미의 붉은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마시고 있었던 차를 달칵 내려놓고, 나를 향해 다시 말해보라는 것처럼 물었다.
“던전에 갈 생각이라고?”
“네. 조만간 갈 생각입니다. 빠르면 내일이라도요.”
“얼마 전에 그렇게 호되게 당했다더니 또 던전으로 들어갈 생각이라니. 태오야, 너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담이 크구나…!”
나르미는 자신의 넓은 기숙사 방을 살펴봤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기 때문에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뒤흔드는 게 조금 정신없었다.
“우리 언니는 당분간 창문도 못 닫게 하는데 말이야. 방충망 틈으로 벌레들 들어와서 곤란한데도.”
“그렇군요.”
미르나는 아직 밀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낫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저렇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것이겠지.
“그럼 미르나 님이나 나르미 님이 저랑 같이 던전에 가는 건 힘드실까요?”
“음-.”
한동안 침음하던 나르미는 후루룩-하고 뜨거운 차를 마신 뒤에 답을 내렸다.
“당분간은 힘들 것 같아. 나랑 미르나 언니는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곧 시험기간이니, 싱글 넘버즈는 처리해야 할 일들로 바쁘거든.”
“흠. 그렇군요. 아쉽네요.”
미르나와 나르미는 안 되는 건가.
내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 나르나가 읏-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아프신가요?”
“응? 아니, 별 건 아닌데. 요새 이상하게 아랫배가 좀 싸르르 하게 아파서.”
“몸이 아파요?”
나르미가 아프다는 말에 나는 잠깐 걱정이 됐다. 내 표정을 읽은 건지 곧 나르미는 명랑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은 괜찮아…! 그래도 며칠 전은 큰일이었어. 막 엄청 아프고, 찌르르 떨리고 그래서. 혹시 던전에서 언니한테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라면….”
떠오르는 게 많다.
혹시 나르미는 미르나의 첫 관계의 통증을 공유했던 건가? 같은 몸을 나눠 사용하고 있으니 그래도 이상할 건 없었다.
미르나가 나르미에게도 나와의 관계를 비밀로 했었구나.
그때 나르미가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들이민다.
“요새 언니가 이상해. 나한테 비밀로 하려고 하는 것도 많고. 평소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태오, 혹시 너는 알고 있는 거 있어?”
“언니가 이상하다니요…?”
“얼마 전에, 언니가 나 몰래 이상한 편지를 읽고 있더라니까. 뭔가 들여다보니까, 그건 분명 연애편지였어. 언니가 못 보게 숨겨버리는 바람에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내가 톡톡히 봤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나르미였다.
“연애편지요? 미르나 님이 연애편지를 받았다는 말입니까?”
“그건 모르겠어. 받은 건지 쓰는 건지. 그렇지만 언니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확실해. 독실한 광염교도로서 연애편지 같은 걸 신경 쓴다니….”
당연히 예전 같지 않겠지.
다만 나는 미르나의 명예를 지켜줄 겸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번 이야기도 못 들었던걸로 할게요.”
“태오야, 언니가 너 말고 다른 구혼자에게 편지를 받거나 쓰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너는 걱정도 안 되는 거야? 물론, 우리 언니에게 구혼한 건 오해 같은 거라고 듣긴 했지만….”
나르미는 내가 엘가와 사귀고 있는 걸 목격한 목격자였다. 그래서 나르미는 나와 나름대로 비밀친구 관계 같은 게 형성되어 있는 상황.
나르미는 나르미대로.
미르나는 미르나대로.
자매가 서로 나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으니 뇌가 꼬일 것만 같다. 나중에 헷갈려서 말이라도 잘못하면 큰일 나겠어.
그때 나르미가 양갈래로 땋은 자신의 머리칼을 슥슥 매만지며 내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오야, 우리 언니에게는 정말 마음이 없어…? 물론, 너는 리오네스 영애와 나름 잘 만나고 있긴 한 것 같지만….”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나는 혹시 미르나와의 관계가 들켜서 자매 사이가 틀어질까 봐 나름 진지하게 모르는 척 연기하기로 했다.
“제가 미르나 영애님을 감히 좋아하는 게 가능 하겠나요. 저는 뒷배도 뭣도 없는 놈인데요.”
“그렇긴 해도, 흐으응….”
나르미는 그것을 끝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나르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꼭 저희만의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라고 다짐을 받을 뿐.
슥-.
그에 나르미가 내게 손을 내밀어왔다.
“그래, 약속해줄게.”
나도 그 손을 꼭 맞잡아서 도장까지 찍었다. 나르미의 손은 미르나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흐, 이상하네. 갑자기 몸이 왜 이렇게 부들부들 떨리지…? 몸에 열도 나고. 정말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닌가 모르겠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나르미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깃털 부채를 펄럭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모습도 언니인 미르나와 비슷하게 보였다.
“아무튼, 던전은 같이 못갈 것 같아. 미안, 태오야. 후으으-.”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 * *
“던전? 네가 던전을 가겠다고?”
자신의 방에서 푸쉬업을 하던 엘가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비아냥거렸다.
“너 존나 약하잖아. 새벽마다 아크 부지 도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무슨 던전을 간다고 그래?”
그녀의 말랑한 가슴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걸 구경하고 있던 나는 엘가의 공격적인 말에 나름대로 현명한 대꾸를 해야만 했다.
“약하니까, 강해지기 위해서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
나의 현란한 말솜씨에 엘가는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이내 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못가.”
“저보고 가지 말란 소리입니까?”
“아니, 내가 못 간다고.”
세상에.
최후의 보루이자 믿었던 엘가마저 나를 배신한다니. 싸우기 좋아하는 호전적인 엘가라면 “던전? 당장 가자!”라고 말할 줄로만 알았던 내 믿음이 와장창 깨진다.
“정말 안 됩니까? 엘가님이라면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엘가님마저 절 외면하신다니…!”
“엘가님마저…?”
푸쉬업을 멈추고 상체를 일으키는 엘가.
“너,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먼저 물어보고 왔었냐?”
“그게 무슨 소리죠?”
“설마 미르나, 걔한테 먼저 물어보고 온 거 아니지? 엉? 솔직하게 대답해라 너.”
꽈아악, 하고 주먹을 쥐는 엘가. 만약 미르나에게 먼저 다녀왔다고 말하면 저 짱돌같은 주먹이 내 머리통을 후려갈길 게 분명했다.
“아뇨, 미르나 님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엘가 님께 먼저 온 겁니다.”
나는 내 스킬 《도랑눈》을 사용해서 엘가를 똑바로 바라봤다. 실제로 나는 나르미에게 물어봤지, 미르나에게는 물어본 적 없었다.
즉 내 말은 거짓하나 없는 것이다.
내 진심을 느꼈는지 화를 푸는 것처럼 주먹을 스르르 풀었다.
“흐응,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도 무조건 나한테 먼저 말해. 알았어?”
“그럼, 엘가 님 저와 함께 던전에 가주시는 겁니까?”
“아니. 안 된다니까.”
“…….”
“물론, 내가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고. 얼마 전에 본가에 보냈던 전서구에 답장이 왔어. 그래서 나도 할 일이 많아.”
답장이라면 라인하르트 공으로부터 소식이 왔다는 것이겠지.
“내가 아크에서 생활 잘 하고 있는지, 본가에서 감찰관이 온다더라. 당분간 귀찮아질지도 모르겠어.”
“그렇군요.”
결국 나는 엘가에게마저도 던전의 공략을 거절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보루 하나 뿐.
로마 숫자 ‘II’가 적혀 있는 방문 앞에서 나는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아이라에게 내가 뭘 부탁하는 날이 올 줄이야.
요승, 간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서 종종 오해를 받지만 나는 아이라를 향해 내 사심을 담은 부탁같은 걸 해본적이 없었다.
“후-.”
내가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고 있자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내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크흠, 흠.”
나는 목을 가다듬은 후에 아이라의 방으로 들어섰다.
겁먹거나 긴장할 거 없다.
폭군을 설득하여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
그게 원래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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