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21)
EP.122)사냥 # 2
122 – 마물 사냥 # 2
“그러니까 칼리라 아가씨께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 길잡이라는 남자가 파티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거죠?”
“맞아요. 마물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동굴이나, 보물이 있는 던전의 위치를 신기하게도 전부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흠. 그거 참 신기하네요.”
종합해보자면 그 길잡이라는 녀석은 주인공 파티를 이리저리 이끌고 있었다.
마치 관광객들을 이끄는 안내인처럼 던전과 마물들을 사냥시켜서 그 힘을 키우게 만들고 있었던 것.
길잡이가 이끄는 곳에는 정말 답파되지 않은 미궁과 던전이 잔뜩 있었고 덕분에 파티는 전력을 커다랗게 증강시킬 수 있다고 그랬다.
“이 아크에 온 것도 이 아크 주변에 답파되지 않은 옛 왕의 미궁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또 이 아크에 도사리고 있는 무슨 거대한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라고도 하던데….”
“거대한 괴물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게 뭔지는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제 관심을 끌기 위해 헛소리를 지껄인 걸 수도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진 마세요.”
“흠.”
나는 아크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에 대해 생각해봤다.
물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아크는 뭇 용사들의 쉼터이자 요람 같은 곳이니까.
만약 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가 있다면 절망하여 ‘달의 딸’이 된 성녀 정도뿐일 텐데.
나의 노력으로 앙그마르의 여왕 아이라가 아직 죽지 않았고, 덕분에 북쪽의 어둠을 막아내고 있는 장벽은 멀쩡하다.
그 결과 아크는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되지 않았고, 성녀 역시 절망에 물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성녀가 괴물이 될 확률이 상당히 적다는 것.
다만 내 머릿속에는 일찍이 성녀와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남자가 절 죽일 거에요.
성녀는 어떠한 남성-테오도로스에게 자신이 살해당할 것이라고 우리를 향해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모종의 이유로 아이라를 노릴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접근해왔을 수도 있다고 했지.
여기서 그 테오도로스라는 남자에 부합할 의심이 되는 것은 둘이다.
나랑 길잡이.
내가 이 몸에 빙의하기 전에 이 몸의 주인이 무엇을 했는지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기에 일단 나도 용의선상에 있고.
느닷없이 빌런 사냥꾼 파티에 합류해 있는 길잡이 녀석은 당연히 내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제로 길잡이는 아이라에게 접근도 했었다.
아이라의 가족들이 어째서 죽은 것인지, 녀석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했지.
“자, 머리에 염료가 다 칠해졌네요. 한 두 시간은 이대로 있어야 해요. 그리고 머리를 깨끗이 감아야 하니까 여기 침대나 의자에 앉아서 쉬셔도 돼요.”
칼리라 영애의 이야기에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으며 몇 마디 더 물어본다.
“그 외에 더 정보는 없습니까?”
“딱히 없네요. 어쩌면 오늘 더 물어볼 수도 있겠죠. 보통 이 시간이면 항상 찾아오던-.”
똑똑똑.
━의사 선생님, 오늘도 다친 곳이 잔뜩 있어요. 치료해주세요-.
“역시 이럴 줄 알았네요. 미리암이 찾아온 것 같은데, 문을 열어줘도 될까요? 아니면 돌려 보낼까요?”
미리암이라는 이름에 내 머릿속으로 둔중한 갑옷을 입은 여사제의 모습이 그려졌다.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악마와 마물의 골통을 깨부수는 이야기의 조연 여사제. 그녀의 이름이 아마 미리암이었던가.
그 말은 저기 문 너머에 여사제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여차하면 제가 직접 이야기를 나눠도 되니까요.”
그에 칼리라는 “불쾌한 이야기들이 오갈지도 모르니 주의하셔야 해요.”라고 작게 경고한 뒤에 문을 열었다.
그러자 푸른 캡 모자에 뒤로 묶은 금발머리가 가장 먼저 보였다.
“선생님~.”
남색의 가디건과 하얀 탱크탑, 그 아래로 짧고 푸른 핫팬츠에 붕대를 잔뜩 두른 여성이 마치 밀려오는 쓰나미처럼 파바밧-하고 이 보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칼리라 영애를 향해 포옹하듯 두 팔을 벌렸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다만 칼리라 영애는 몹시도 귀찮은 상대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쯧-혀를 차더니 그녀의 얼굴을 밀어 떨어트릴 뿐.
“미리암, 사제답지 못하게 경건치 않은 것은 여전하네요.”
“선생님도 참, 새침하시다니까. 같은 여성끼리 좀 껴안으면 어때서 그렇죠? 자매끼리 포옹은 할 수 있잖아요.”
여사제, 미리암은 자신의 몸을 탁탁 털었다. 나는 그런 여사제의 사복차림을 빠르게 슥슥 훑어서 전력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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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미리암 프리스티스 lv. 39
직업 : 인퀴지터 lv. 10
고행사제 lv. 9
파괴자 lv. 9
박멸자 lv. 9
치료사 lv. 2
재능 : 《불굴》 《전투속행》
성향 : 질서-중립.
오스트로 마녀 사냥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불과 같은 마음을 가진 신벌의 대행자입니다.
[잠금]
[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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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 《십리안》을 발동하자 여사제 미리암의 레벨과 직업의 목록이 떠올랐다.
여사제의 레벨은 39.
얼마 전에 호색한의 레벨을 상승시킨 내 레벨도 39라는 것을 고려 해봤을 때 그녀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단심문관 인퀴지터 10레벨에, 고행사제, 파괴자, 박멸자 등등 ‘물리적’으로 강력해 보이는 전투계열 직업이 다수 포진되어 있고 그 레벨도 무척이나 높았다.
이 말은 나처럼 다채로운 능력은 없어도 무언가를 박살내고 부수는 데에 있어서 이 여성, 미리암이 상당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소리기도 했다.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니, 5위계의 대마법사도 아닌 지금의 나로서 정면승부는 어림도 없을 거다.
“음? 어째선지 불쾌한 시선이 느껴지는군요?”
그때 미리암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서 나는 황급히 십리안의 발동을 꺼트렸다. 주인공 파티의 여사제 쯤 되면 역시 감각이 남다른 모양이다.
“당신은…?”
마침내 고양이처럼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파란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엘가의 푸른 눈이 고드름처럼 서늘하고 맹수의 안광처럼 날카로운 면이 있다면, 이 여사제의 푸른 눈은 바다와 같이 끝 모를 깊어서 무척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그 눈이 의아함으로 살짝 가느다랗게 뜨이는 것 같기에 나는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또 만나 뵙네요. 저는 아크의 생도 태오 가스펠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만난 적이 있었죠? 버려진 폐건물 근처에서, 당신의 일행들과 함께.”
“태오 가스펠-?”
움찔거리는 여사제의 눈동자.
“태오 가스펠이라면 그 앙그마르의 요승?”
“맞습니다. 제 소개를 하는 건 처음이었습니까?”
“여왕의 비첩?”
여왕의 비첩(婢妾)이라니. 무척 무례한 질문이었다.
앙그마르 국내에 있었을 때는 하도 많이들은 이야기라서 덤덤했지만 오랜만에 이런 취급을 받으니 새삼스럽게 나 태오가 악당이었다는 게 떠오르는 기분이다.
그렇다.
나는 악당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여자는 나와 같은 악당의 머리통을 망치로 내려찍는 정의의 사도고. 본디 서로가 이렇게 마주했을 때는 서로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최후의 결전이어야만 했겠지.
나는 속마음을 감추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기로 했다.
“저에 대해들은 이야기가 많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죠. 하지만 소문과는 다르네요. 듣기로, 키가 팔 척이 되는 남자에 긴 수염이 자라있고, 팔은 거미처럼 여덟 개가 자라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들 말하죠.”
대체 누가 저런 소문을 내는 거지.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경험치도 되지 않을 조무래기 같네요. 진짜로 본인 맞나요?”
조무래기라니.
이건 명백히 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원래 여사제 미리암은 소설에서도 무심하고 직설적인 독설이 인상적인 여성이었으니까 이해는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조무래기 판정을 받은 것은 내게 있어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반대로 그녀에게 악당으로서 ‘거물’이라는 판결을 받았다면 지금 내 머리위로 망치가 날아들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다만 나보다 칼리라가 더욱 기분이 나쁜 것처럼 여사제 미리암을 향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미리암, 잡담 하러 온 거면 나가세요. 전 바쁘니까요.”
“아, 자매님. 너무 쌀쌀맞게 구시지 마세요. 여기, 제 팔이 어제 마물을 상대하다 다쳤는데….”
“이 정도로 자잘한 상처는 당신의 치유술로도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이, 참, 그러지 마시고….”
칼리라와 미리암이 옥신각신한다. 그러고 보면 원작의 칼리라는 본디 요승 태오 가스펠의 심복으로, 주인공 파티를 와해시키기 위해 고용된 암살자였다.
그녀는 여색을 밝히는 미리암을 유혹해서 죽음의 위기까지 몰아넣는 악당이었지. 실제로 이렇게 보니 미리암은 칼리라가 무척 마음에든 것처럼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칼리라 선생님, 실력도 뛰어나 보이시는데. 저희 파티랑 함께하실 생각 없어요?”
“없어요.”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 던전을 또 하나 공략하려고 하는데. 같이 좀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던전에 포자형 생물이 가득해서, 치료제가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던전?
던전이라는 말에 나는 흥미가 생겼다.
“던전에 가실 생각입니까?”
그러자 미리암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들었다는 것처럼 내 쪽을 바라봤다.
“네, 뭐, 던전 만큼 수양을 쌓기 좋은 곳도 없으니까요. 이 아크의 주변에는 예나 지금이나 미발견 된 던전들이 잔뜩 있고.”
* * *
“이제 머리 감아도 되겠어요. 여기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칼리라의 안내에 나는 세면대 앞에 앉았다. 그러자 칼리라는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로 내 머리를 감겨주기 시작했다.
“물 온도는 어떠세요?”
“좋네요.”
사브작, 사브작.
누군가 머리를 감겨준 건 얼마만이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머리를 박박 문질러주는 데 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 목덜미에 닿고 있는 커다란 가슴의 기분도 꽤 멋진 것이었고.
“시끄러운 사람이었죠?”
“미리암 사제 말입니까?”
“네. 자꾸 저에게 추파를 걸어서 말이에요. 덕분에 이런저런 정보를 빼내고 이용하는 데에는 꽤 편리하지만….”
“일단 계속 친하게 지내두세요. 그 파티는 적으로 두면 성가신 자들이 꽤 있거든요.”
내 스스로 말했지만 문득 새삼스럽게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원작의 태오였다면 칼리라에게 여사제를 암살하도록 지시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녀 둘을 친하게 지내도록 만들고 있다니.
물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명령하는 것이라는 건 원작의 태오나 지금의 나나 다를 바 없이 똑같았다. 방향만 다를 뿐, 행동의 목적과 동기는 같다고 해야 할까.
“이제 머리 말려드릴게요.”
칼리라가 내 머리를 슥슥 수건으로 말려주었다. 남들을 씻겨주는 게 익숙한 듯한 솜씨였다. 곧 그녀에게 거동이 불편한 여동생 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여동생 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덕분에 아주 좋아요. 이번에 실버즈에 가입했다고 하던데요.”
“실버즈라면. 저와 같은 은색 브로치겠네요.”
언젠가 만나볼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머리를 수건으로 열심히 닦아주고 있는 칼리라 영애를 향해 말했다.
“기왕이면, 아직 답파되지 않은 던전들의 위치도 좀 알아주실 수 있습니까? 미리암에게 좀 물어봐주세요.”
“혹시 던전에 가시려구요?”
감이 좋구만.
칼리라의 말대로 나는 던전을 답파할 생각이었다.
길잡이라는 놈이 주변의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곳을 들어가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고 해야 할까.
감히 내가 공들여 관리해놓은 아이라에게 접근해서 흙탕물을 뿌리려고 하다니.
놈의 의도(意圖)에서 교묘한 악의 같은 게 느껴진다는 걸 어렴풋이 예감은 하고 있었다.
아직 단순히 심증적 단계에 불과하지만 녀석이 사냥꾼 파티를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해 무언가 꾸미려 한다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가벼운 방해공작 정도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뒷 공작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흥분이 된다.
엿이나 먹어라, 이레귤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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