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37)
EP.138)교수 # 1
138 – 요정 교수 # 1
왕국에서 살던 시절 나는 종종 암살의 위기를 겪었다.
그래서 밤중에 누군가 창문을 열려고 하거나. 문 앞에 서성이는 기척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곤 했다.
내 집에 누군가 침입한 것 같은 기척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왕국을 벗어난 내가 마음의 여유를 찾아 긴장을 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바스락바스락.
“…….”
누군가 내 개인실에 침입해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감이 죽진 않았다.
스르르륵.
나는 팔에 감아두었던 임프 꼬리 완드를 손에 쥐었다.
왕국에서 암살과 온갖 위협에 시달렸던 나와 지금의 내가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나 혼자서 어지간한 침입자들을 격퇴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점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4.5 위계에 달하는 마법 맛 좀 봐라.
“후-.”
그런 느낌으로 작게 숨을 고른 뒤에 문을 벌컥 열었다.
기이익-.
“꼼짝 마-!”
커다랗게 소리치며 완드를 겨누자 곧 내 방 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고 있던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키듯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꺄아아악-!”
그것은 여성 특유의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고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그 비명소리보다 내 방에 침입한 사람의 정체였다.
“아니, 당신은-.”
“꺄아아악-!”
여성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모자라서 책상 위에 올려있던 물건들을 나에게로 던지기 시작했다. 티슈 곽, 두꺼운 책, 촛불, 물컵 등등 온갖 것들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슉, 슉슉.
빡.
그것은 상당히 예리한 투척 솜씨라서 나의 작은 머리나 얼굴을 그대로 후려 갈겼고, 나는 결국 “히에엑…!”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
순간 눈앞이 번쩍거리며 화가 났는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한 여성을 진정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꺄아아아악-!!!”
“잠깐, 잠깐 멈춰 보세요! 물건 고장 납니다! 거기, 거기 책장에 중요한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거니까 빼면 안 돼요!”
“저리 가-!!!”
“뭘 가요, 그리고 물건 던지지 말라니까-!”
하지만 내 기숙사를 몰래 침입 했던 여성은 내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패닉을 일으킨 게 아닐까?
슉슉.
이대로 있다간 종잡을 수 없이 난장판이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향해 꼬리 완드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가미긴-!
파지직.
마왕 솔로몬조차 다루기 버거워 했던 고위 강령주술이 분홍빛 번개처럼 날아간다. 그것은 그대로 침입자의 몸에 적중했다.
“엑-!”
여자는 기묘한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는 바들바들 몸을 떨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꼭 연못에 있다 번개 맞은 개구리 같았다. 꼴좋구나.
“후-.”
이제 좀 조용해 졌구만.
그렇게 생각했다.
벌컥.
━뭐야, 무슨 일이야?
━이 늦은 밤 시간에 예의도 없게. 누가 이렇게 비명을 질러?
━비명 소리가 무슨 사람 죽은 소리 같던데?
4층의 문이 여기저기서 열리더니 반쯤 졸음에 잠긴 사람들이 내 방을 향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 검이나 단창 같은 무기가 들려 있는 걸 보면 여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 게 아닌가 싶어서 나와 본 모양이다.
마침내 내 개인실의 입구에 선 분홍머리칼의 여성이 손에 곤봉을 쥔 채 내게 물었다.
“거기 지금 뭐하는 거에요? 거기 쓰러져 있는 여자는 누구고?”
여차하면 나를 때릴 기세다.
“아, 이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이 상황만 보면 내가 가해자 같을 텐데.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말했다.
━저거 스텔라 교수 아냐?
━진짜네. 스텔라 교수잖아. 스텔라 교수가 왜 쓰러져 있지…?
무언가 오해가 생기기 딱 좋은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생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얼른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냥 개인 문제입니다. 별 일 아니니까 모두들 신경 쓰지 마세요.”
* * *
몰려들었던 구경꾼들은 별 일 아니라는 나의 계속된 해명에 이내 흥미를 잃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진땀을 꽤 뺐지만 내가 가진 직업 ‘조교사’와 ‘연기자’가 효과를 봤던 모양인지 경험치도 올랐다.
━뭐야, 별 일 아니었잖아.
━잠이나 자러 가자.
현재 시각이 새벽 2시라서 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한 몫 했겠지. 지금으로서는 더 귀찮은 일로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교수 님. 제게 큰 빚 하나 진 겁니다.”
“…….”
내 개인실에서 유일한 의자에 앉은 스텔라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변명이나 해명 같은 건 이미 머릿속에 없는 듯하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입을 열더니 하는 말이 “차 한 잔 내줘.”였다. 내 방을 침입한 도둑 주제에 차를 요구한다니.
아주 괘씸한 여자로구만.
마음 같아서는 도둑 혹은 불법 침입자로 신고해서 아주 혼쭐을 내주고 싶었는데.
일단 그러지 않은 까닭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스텔라에게 개인적인 빚을 지워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째선지 나보다 더 당당해 보이는 스텔라 교수를 진정시킬 겸 뜨거운 차를 팔팔 끓여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우유랑 설탕 좀 탔어요.”
그것을 받아 든 스텔라는 “향기가 좋네.”라고 여유를 부렸다.
내 방을 털다가 들킨 주제에 차까지 요구해서 음미를 한다니.
이게 132살이나 먹은 엘프의 능청스러움일까?
132살이라니.
생각해보니 엄청 신기했다.
마법과 주문이 실존하고 요정이나 임프를 비롯한 이종족이 실존하는 세상이라지만, 수명이 긴 장수종의 존재는 실감이 나지 않는 점이 많다.
겉모습만 보면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데. 진짜 백 년을 넘게 살아온 건가?
스르륵.
나는 내친 김에 스텔라 벨호크의 외향을 천천히 관찰해봤다.
보랏빛으로 짧게 자른 단발 머리칼은 무척 세련되었고, 그 사이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긴 귀는 잘 만들어진 분장 같아서 신기하다.
복장은 하얀 블라우스에 쫙 달라붙는 원통형의 푸른색 짧은 치마를 걸치고 있었는데 사람의 방을 몰래 털러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평범한 복식이었다.
“차를 잘 타네.”
호박색 눈동자가 초승달 모양으로 가느다랗게 떨렸다. 덕분에 오른쪽 눈 밑에 찍혀 있는 눈물점이 내 눈에 새삼스럽게 비춰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여선생, 여교수라는 말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고 어딘가 내 또래의 소녀 같은 느낌이 있긴 했다만….
동시에 내 기숙사를 몰래 뒤적이는 도둑이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겁니까?”
“내가 뭘?”
“…….”
아예 모르는 척 잡아 때기로 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람들 몰려왔을 때 도둑으로 신고해서 징계를 받게 하는 거였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스텔라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멋대로 남의 주거에 침입한 건 잘못이지만. 저는 교수님께서 일부러 계획하고 그런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
스텔라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겠지. 슬금슬금 눈을 피하며 이 자리를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하려는 것 같기에 나는 몇 마디 덧붙였다.
“일단 남의 물건을 훔치러 온 사람치고는 가방도 없고 복장도 불편한 복장이죠.”
지금 스텔라 벨호크는 커리어 우먼의 오피스 룩 같은 스타일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다. 도둑의 복장이라면 조금 더 간편하고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고의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내 방을 털러온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사실대로 말씀해주시는 게 서로에게도 좋을 겁니다.”
“표본 채집.”
“네?”
“표본 채집을 하려고 했던 거야.”
“뭔 표본 채집이요?”
“네가 잘못한 거야. 학생 주제에,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기숙사를 비워놓고. 외박을 하고 말이야. 사람을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하는 건데?”
“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던 스텔라 교수가 내게 따박따박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당당하고 고고한 태도에 나는 마치 이 자리가 나에 대한 청문회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들어보니 태오 가스펠 군. 외박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많이 하고 있다며?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니?”
내 약점을 잡고 흔들려고 한다니.
나는 이게 논쟁의 화법 중 하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불리한 토론에서 이야기의 논점을 흐리고,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는 언제 어디서나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용되어 왔으니까.
이런 때에 대응할 방법은 주제의 고삐를 넘기지 않는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저는 어째서 교수님이 제 기숙사를 침입해서 물건들을 뒤지고 계셨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
호박색 눈동자가 미간과 함께 찡그려진다. 흡사 “이 녀석 좀 봐라.”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듯했다.
내가 폼으로 앙그마르에서 혓바닥만으로 살아남아왔던 게 아니란 말이지.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만만하게 보이면 기어오르려고 한다는 점이다.
“협조적으로 굴지 않거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이사회에 보고할 겁니다.”
“…그으….”
내 협박에 스텔라 교수는 아주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나의 요정귀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내 협박에 동요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당연한 것이 아크 내에서 스텔라 교수의 입지가 바람 앞의 등불 같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강의도 대충대충. 논문을 작성하거나 연구를 하는 것도 딱히 없고. 자신의 밑에 일하고 있는 조교들을 혹사하거나 학대하는 등의 악인 교수. 그게 스텔라 벨호크였으니까.
이번 일이 이사회에 직접적으로 보고되어 알려지면 아마 벨호크 가문의 스텔라라고 해도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할 터.
스텔라 벨호크는 마침내 후후후-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강의를 듣는 학생답네. 내게서 배워서 그런지 말하는 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야. 훌륭해.”
자기위안의 회로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 거냐?
아무래도 좋다.
“사실대로 말할 각오가 되셨습니까?”
“사실대로 말할 게 뭐가 있니? 아까 말했잖아. 표본 채집 좀 하고 있었다고. 하루 종일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네가 오지 않아서 잠깐 실례했던 거뿐이야.”
“…….”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잠깐 실례했다는 것 치고 내 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난장판이었다. 이거 다 정리하려면 적어도 한나절은 걸리지 않을까.
내 표정이 굳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스텔라 벨호크가 말했다.
“네가, 갑자기 날 도둑 취급하면서 몰아붙이니까. 당황해서 집어 던진 거야. 자기 방호라고 해야 하나? 엘프들의 습성이야. 어쩔 수 없어.”
스텔라는 그 뒤로 엘프 감수성에 대해 설명해줬다. 엘프들은 누군가 깜짝 놀라게 만들면 쉽게 패닉을 일으킨다나 어쩐다나.
“그렇군요. 그래서 표본은 대체 뭘 채집하고 있었던 거죠?”
“그냥 뭐, 머리카락 같은 거?”
“제 머리칼은 왜 필요 한데요?”
“그야 내가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연구 때문이지. 한 번 봐볼래?”
스륵.
스텔라 벨호크가 무언가를 내게 내밀어왔다. 그것은 작은 두루마리 같은 것이었는데. 그걸 펼쳐보니 무어라 글자들이 적혀 있다.
「님프와 엘프의 생태차이 : 요정의 개체수를 늘리는 방법.」
몹시도 생산적인 논문이네.
“제목이랑 내용은 일단 가제로 대충 붙여 놓은 거야.”
좀 읽어보려고 하니 내 손에서 두루마리를 휙 빼앗아 간다. 별로 읽지도 못했지만 대충 스텔라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한다~라는 뉘앙스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님프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녀석들은 엘프에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서 협조를 안 해줘. 몇 명 납치를 해 봤는데 울고불고 난리 나서-.”
“세상에, 님프를 납치했다는 말입니까?”
나는 마르마르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 봤다.
임프와 님프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다고 그랬나. 그것 때문에 나도 돌아오는 길이 무서웠는데. 이제 보니 범인이 스텔라 교수였다.
스텔라 벨호크가 변명하듯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깐 빌린 거야. 쓰고 나서 돌려주려고 했어. 실제로 잘 돌려줬고!”
저게 사람을 납치해놓고 할 수 있는 말인가? 돌려준다니 사람을 무슨 물건 대하듯 한다.
“그거 범죄잖아요. 대체 어쩌려고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까?”
내 입으로 말해놓고도 등으로 서늘한 감각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텔라 벨호크가 원래 ‘헤드 헌터’라는 별명을 지닌 악당 캐릭터였다는 게 떠올랐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원작의 그녀는 원래 교수가 아니고 숲을 누비는 인간 사냥꾼이었다. 엄청 위험한 인간이 될 확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다.
혹시 내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나 싶어서 나는 언행을 조심하게 됐다.
내 말에 화난 스텔라가 헤드 헌터로 각성해서 날 사냥하고 박제시켜버리면 어떻게 해. 그런 죽음은 싫다.
스르륵.
그때 스텔라 벨호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을 와락 붙잡았다.
“지금 이것저것 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곧 주주총회가 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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