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15)
EP.316)숙명의 라이벌 # 2
316 – 쌍둥이는 숙명의 라이벌 # 2
미르나가 내게 부탁을 했다.
자신 대신에 동생인 나르미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달라고. 말하자면 내게 위임했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아무래도, 제 입으로 이야기하는 건 좀….
잘은 모르겠지만 미르나는 나르미에게 사실과 진실을 전하는 게 쉽지 않은 듯이 보였다.
하긴 지금까지 숨겨왔던 비밀과 거짓말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어지간한 용기로는 소용도 없는 법이지.
미르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또 자매들의 갈등은 애초부터 내가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르미와 함께 둘이서 모험을 할 걸 계획하고 있었다. 모험과 던전. 그 사이에서 서로 얼마나 돈독해질 수 있는지 나는 스텔라의 경험을 통해 잘 느꼈으니까.
다만 임프들과 스텔라가 함께 오다보니 좀처럼 시간과 기회가 보이질 않아서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터.
그런 와중에 던전의 함정에 빠져서 길까지 잃어버리니 조금 더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쪽도 두 개로 나눠져 있어! 어쩌지? 이제 지도 자체가 소용이 없는 것 같아!”
그때 나르미가 우리의 앞에 나타난 두 갈래의 길을 보며 바르르 떨었다. 그래도 다행히 의기소침해지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두근두근하다!”
그렇구나.
자칫 위기의 순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지금 상황이 나르미에게는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와서 흥분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들 긴장감 없네.
그때 스텔라가 말했다.
“그럼, 두 팀으로 나눠서 길을 찾아볼까? 일단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태오 군과 마르마르 양에게 있으니까. 둘이 나눠지는 게 맞는 것 같고.”
나눠져서 길을 찾아보자는 것.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던전 탐사의 경험이 가장 많은 스텔라가 함부로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마르마르와 내가 나뉘어지고. 또 그 마르마르를 따라 임프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임프들만 있으면 좀 불안한데. 내가 같이 가주지 뭐.”
그 임프들을 인솔하기 위해 우리 중에서 가장 경험 많고 든든한 스텔라가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다. 아니,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한가. 스텔라는 원래 교수니까.
그리하여 조를 이룬 것은 나와 나르미 둘 뿐.
━규이잉.
그래, 잉잉이까지 한 마리 더.
“태오 군, 실력 있으니까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스텔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르미와 둘이 있을 기회가 생겨난다니. 세상일이라는 것이 꼭 내게만 불운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럼 우리는 이쪽 길로 가볼 테니까. 태오 군이랑 나르미 양은 저쪽 길로 가 봐.”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곧바로 연락해주셔야 합니다.”
그런 느낌으로 우리들은 두 갈래 길에서 서로 나뉘어 진행하기로 했다. 임프들과 스텔라 교수의 모습이 멀어졌을 때 나도 나르미도 어두운 동굴 안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비좁은 길.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통로. 하지만 앞서서 나아가는 나르미는 제법 씩씩하다.
“히히, 탐험가가 된 기분이야.”
밝아서 좋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앗, 태오야. 여기 침수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조금 깊숙이 잠수해야 할 것 같은데 지나갈 수 있겠어? 언니가 말하기로, 태오 너는 수영 못한다던데.”
침수된 부분이라니?
나르미의 말처럼 우리들이 지나가는 통로의 앞은 밝게 빛나는 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이 물에 잠긴 부분을 잠수해서 조금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장벽 너머의 계곡에서 스텔라에게 수영을 배웠긴 했는데. 실제로 그걸 써먹을 때가 오니 조금 긴장 된다.
“그럼 내가 먼저 가볼게!”
풍덩-!
나르미는 물에 몸을 담구고 모습을 감췄다.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렸을 때. 마침내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나르미 드레이코.
“반대쪽에 길이 있긴 있어!”
“그럼 저도 물에 잠수를 좀 해야겠네요.”
“내가 뒤에서 무슨 일 생기지 않게 따라가 줄 테니까, 걱정 마!”
나르미의 든든한 이야기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에 입수했다. 물에서 힘겹게 눈을 뜨자 내 발밑 아래 제법 깊숙한 곳에서 밝게 빛나는 발광 수정들이 보인다.
물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저것 때문인가.
다만 감상에 잠길 시간 없이 열심히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쳐본다.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에 나름의 성취감과 기묘함을 느끼고 있을 즈음.
보글보글.
슬슬 숨을 참고 있는 것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폐활량이 적은 건 아니지만, 물 속에서 헤엄치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익사체가 되기 전에 얼른 공기를 찾아 얼굴을 내밀었다.
“푸하!”
고작해야 십 수 미터를 헤엄친 것밖에 되지 않지만. 난생 처음 잠수를 해서 헤엄을 쳐본 경험이었기 때문에 제법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덕, 처덕.
마침내 물가에 젖은 몸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와 숨을 골랐다.
“드디어, 내 약점인 물을 정복했구만.”
내 스스로의 가능성에 감격했던 것도 잠시. 이제 나르미가 무사히 물을 빠져나오기를 기대한다. 내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겠지?
그때였다.
파아아-.
물보라와 함께 나르미가 젖은 모습으로 물 밖에 튀어나왔다. 활동하게 좋은 모험가 옷이 잔뜩 젖고, 머리칼도 이마에 달라붙었지만 예쁜 모습은 어딜 가지 않는다.
“봐, 길이 있었지!”
“그렇네요.”
“내 생각이지만, 이쪽 길이 맞는 길 같아. 나는 그런 쪽에서 은근히 감이 좋거든.”
* * *
나르미와의 동굴 탐사는 계속 진행 됐다.
비좁고 어두운 길을 몇 번 거치고, 또 침수된 동굴을 몇 번 잠수해서 지나가야했긴 했지만. 그리 힘들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기묘한 통로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크리스탈이 석류 알갱이처럼 가득 들어서 있는 통로. 무척 기이하고 수상한 곳이었지만 우리들의 앞에 보이는 길은 그곳 밖에 없다.
“그럼, 내가 먼저 가볼게!”
나르미는 이번에도 솔선수범하는 느낌으로 위험을 즐겼다. 슥슥, 몸을 벽에 밀착시킨 후 통로 안으로 잘 들어간 나르미. 곧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으로 들어와도 될 것 같아!”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나 역시 목소리를 쫓아 통로 안으로 모습을 들이밀었다. 비좁은 통로를 겨우 빠져나왔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에 반짝이고 있는 크리스탈.
그리고 그 각진 면에 기묘한 느낌으로 비춰지고 있는 내 얼굴들이다.
어쩐지 으스스하네.
“이쪽이야!”
그때 저 앞쪽에서 나르미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런 나르미의 뒤를 쫓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가-.
쾅-.
“윽!”
무언가 내 코에 부딪혀서 짧게 멈춰서고 말았다. 내 앞에 보이는 길이 알고 보니 크리스탈에 반사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태오야, 이쪽이야!”
“아니, 이쪽이야! 여기로 와!”
“쟤네들 말 믿지 마! 이쪽이야!”
“너희들 뭔데 내 말을 따라하는 거야? 내가 진짜야!”
이게 뭐야.
사방에서 비춰지는 나르미가 각기 다른 말을 해오고 있다.
퍽 당황하게 된 나는 뒤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사방이 투명한 수정으로 가득해서, 돌아가는 길도 당최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기묘한 크리스탈 동굴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큰 문제는 없다.
“나르미 아가씨, 파편이 쏟아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간단한 마법 하나면 수정들을 깨부수는 데에 문제가 없으니까.
3위계.
─파열.
나는 크리스탈에 진동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쨍그랑 깨져나가는 수정들. 곧 여러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던 나르미들이 파편과 함께 사라진다.
그런 느낌으로 상황이 모두 정리되었을 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르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파편에 휩쓸린 건가? 머리칼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으로 나르미에게 다가가 그 뺨을 찰싹찰싹 때려본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으으, 이게 대체….”
“으으, 이게 대체….”
그때였다.
저기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구석에서 누군가 또 몸을 일으킨다.
그것을 본 나는 그만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존재하고 있다니!
그녀들은 마침내 서로 얼굴을 마주치고는 새하얗게 얼굴을 물들이며 경악했다.
“너, 너는-!”
“너, 너는-!”
이게 뭔 일이야. 나는 이 기묘한 현상에 그만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만 상황을 먼저 파악한 것은 그녀들 쪽이었다.
“너, 설마 나르미!?”
“…혹시, 언니야!?”
* * *
“이상하네요.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미르나.
그녀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나르미의 얼굴을 텁텁 만졌다. 나르미 역시 미르나의 얼굴이나 머리칼을 매만져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라고 바르르 떨 뿐.
나르미가 말했다.
“진짜 똑같이 생겼어. 마치, 마치 우리 둘이 두 사람으로 나뉜 것처럼…! 혹시 점이나 흉터 위치도 똑같을까? 가슴 밑에 점 있는 거 봐봐.”
“나, 나르미! 태오 경이 있잖아!”
“뭐 어때, 둘만 보는 건데.”
나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었다.
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무언가 스륵스륵 풀어헤쳐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 똑같이 있어!”라고 명랑하게 외치는 나르미의 외침이 들렸다.
“발바닥에 있는 점도 똑같이 있네!”
“그러게.”
그녀들이 자신의 몸을 서로 확인하고 있을 때.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냉정하게 파악해봤다.
그러니까, 크리스탈 동굴을 파괴하니까. 어째선지 나르미와 미르나가 각각의 몸을 가진 채 내 앞에 나타났다-라고 정리하면 되겠지.
둘은 본디 쌍둥이. 서로 똑같이 생긴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하지만 하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던 그녀들이 두 개의 몸을 갖게 되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미르나 아가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음….”
내 물음에 고개를 젓는 미르나.
“저도 몰라요. 갑자기 정신을 차렸더니, 이곳에 누워 있어서 당황스러울 정도네요. 저야말로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설명을 듣고 싶답니다.”
그렇군.
미르나도 모르는건가.
나는 미르나를 위해 우리가 방금까지 겪어왔던 일들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전부 들은 미르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마디 한다.
“빌포스 산의 만신전은, 태고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성역 중 하나. 어쩌면 이곳이 담고 있는 신묘한 기운이 이런 식으로 발현할 걸지도 모르겠네요.”
설명은 어려웠지만.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쌍둥이가 둘로 분리해버린 심각한 상황.
둘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이….
그러다가 문득 나는 생각을 멈췄다.
굳이 둘을 하나로 돌릴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나르미와 미르나, 미르나와 나르미는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통에 온갖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두 사람으로 나뉘었으니.
둘 사이의 문제가 대부분 해결 되는 것이 아닐까.
“엄청 신기하다! 세상에! 언니랑 나랑 떨어졌어!”
나르미가 방방 뛰기 시작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던 미르나는 그 산만한 모습에 정신을 차린 건지 제법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나르미, 품위 있게 행동해야지.”
“흥, 이건 내 몸이야. 내가 내 몸으로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데, 언니가 대체 무슨 상관이야? 이제 우리 둘은 완전히 떨어진 거 몰라?”
나르미는 무척 홀가분해 보였다.
하지만 미르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할 뿐.
“나르미, 이런 이상한 일, 분명 무언가 대가나 응보가 따르게 될 거야. 분명 이 동굴 어딘가에 원인이 있을 테니까. 잘 알아내서 원래대로 돌아가야 해.”
“겨우 둘이 되었는데, 다시 돌아가자고? 싫어. 너나 해!”
“…어, 언니한테 지금 너라고 한 거야?”
아무래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긴 모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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