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0)
EP.41)너무 많다. # 2
041 – 비밀이 너무 많다. # 2
지금 앙그마르는 중앙집권형태의 왕국이다.
그러나 그런 앙그마르도 아주 오래 전에는 자그마한 군소 국가들로 나뉘어서 전쟁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고대의 그리스처럼 각각의 도시국가의 지배자가 각자 ‘왕’을 칭하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서쪽 사막의 황금도시 보르자의 지배자이자 서쪽 사막을 비롯해 광활한 땅을 지배하고 있던 사자왕 리오네스가 바로 그 예시였다.
대륙 최고의 전사 리오네스가 한 번 팔을 휘두르면 산이 꺾이고 강이 메꿔졌다나.
그 용맹한 리오네스의 후손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흥.”
엘가는 이 드넓은 테이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툭, 툭, 툭-하고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 엘가의 푸른 눈동자가 서늘히 노려보는 것은 자신의 앞자리, 테이블에서 오른 편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왕의 자손이다.
대륙 동쪽의 수많은 절벽과 계곡 그리고 험준한 산봉우리와 성채들을 다스렸던 용왕 드레이코.
용왕 드레이코는 고대용의 사체를 부려 전장의 공포로 당당히 군림했다던가?
“가만히 좀 있으시죠, 리오네스 영애. 정신사납지 않나요?”
그 드레이코의 후예가 테이블에 앉아 앞에 놓인 밀크티를 우아하게 마시고 있다.
후르릅.
그런 그들의 사이에 위치한 것은 북쪽의 대수림을 현명하게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던 마녀왕의 일족 타란테라다.
마녀왕의 후예 아이라가 말했다.
“벨호크의 영애는 오질 않으려는 모양이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리하질 않는다니. 이건 내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야. 용납할 수 없어.”
아이라는 비어있는 테이블의 남쪽을 바라보며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드레이코의 영애 미르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 말했다.
“자유분방한 벨호크 가문을 속박하기에는 거미줄이 짧았던 모양이죠? 아무렴 거미야 날 수도 없이 줄에만 매달려 있는 짐승이니까요. 아참, 사자도 땅을 기죠?”
“…….”
아이라는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을 뿐이지만.
테이블 근처에 서서 이야기를 듣던 나는 미르나가 아이라를 무시하고 조롱했다는 걸 간파할 수 있었다.
멋대로 행동하는 벨호크 가문을 속박할 만큼 아이라의 권위가 부족한 것 아니냐-라는 비유적 조리돌림이라고 해야 할까?
덧붙여 리오네스 가문도 비난했고 말이다.
그것을 향해 아이라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쾅-.
엘가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덕분에 테이블에 그려져 있었던 앙그마르 왕국의 지도. 서쪽 도시 보르자 부분에 작은 흠집이 생겨난다.
“미르나 드레이코. 너는 오늘 아무 말 안 하는 게 좋아. 네 얼굴만 보면 이가 갈리니까!”
엘가는 숙적인 미르나를 보며 도무지 전의를 억누를 수가 없는 듯했다.
이들의 마지막 만남은 흐지부지된 결투가 끝이었으니까. 아직 그 앙금이 가시지 않은 것이리라.
지릿, 지릿.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통에 나는 피부가 따끔따끔 울리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스르르 흘러내리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앙그마르의 도시와 지도가 그려진 이 넓은 원탁이 마치 진짜 전쟁터라도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앙그마르의 역사도 이것과 같을 것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리오네스와 드레이코.
북쪽의 타란테라 가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남쪽의 대족장 벨호크는 아예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래, 이 테이블과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정말 왕국의 축소판 그 자체구나.
나는 대신전의 넓은 회의실 출입문을 바라봤다.
벨호크 가문은 아무리 기다려도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얼른 이 만찬 겸 회의를 진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저, 그럼. 저 태오 가스펠이 제 1회 그라시아 총 의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회의의 순서는-.”
“잠깐.”
내가 머릿속에 외워두었던 대사를 떠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말을 끊었다.
그녀는 미르나 드레이코였다.
미르나 드레이코가 나를 향해 가지런히 접은 부채 끝을 겨누며 서늘하게 말했다.
“태오 가스펠. 당신은 하찮은 평민주제에 감히 왕국 시초가 되는 네 가문의 회의를 진행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있는 거죠? 평민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매우 모욕적이고 굴욕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렇구만.
미르나 드레이코는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듯했다. 나를 부리는 아이라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에 지금까지의 소란들을 적당히 흘려듣고 있었던 아이라가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임명한 궁정 서기관을 모욕하지 마.”
“서기관요? 정원사가 아니라?”
미르나 드레이코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언제 서기관이 됐지.
그러자 아이라가 어딘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가슴을 당당히 폈다.
“얼마 전에 내가 승진시켜줬어.”
“애초에 궁정 서기관이라는 직책이 있던가요? 당신이 대체 무슨 권리로 오랜 앙그마르의 법도를 파괴하는 거죠?”
“나는 여왕이야. 내가 만들면 존재하는 게 되지.”
그렇다는 모양이다.
졸지에 나는 궁정 정원사에서 서기관으로 직책이 승급되었다. 하는 일이야 달라질 건 없겠지만 직책이 올라가니 기분은 좋다.
아이라가 말했다.
“태오에 대한 모욕은 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겠어, 미르나 드레이코. 여왕인 내가 그대의 부친과 조부에 대한 존중을 거두지 않게 잘 판단하는 게 좋아.”
“…….”
그 평탄한 어조의 협박에 미르나 드레이코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그저 까만 부채를 촤라락-펼치고 입을 다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라는 여왕.
왕국의 톱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여자니까 대가문의 영애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겠지.
부채에 가려진 미르나의 얼굴에서 “내가 대체 여길 왜 온 거지?”라는 느낌의 후회감이 얼핏 감도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잠깐 만들어진 이 평온이 깨지기 전에 나는 얼른 순서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럼,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오늘 만찬은 특별히 교단의 도시인 그라시아에서 취급되는 식재료들로 준비했습니다.”
짝-.
내가 박수를 치자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음식들이 은쟁반과 돔 형태의 뚜껑에 가려져 하나 둘 들려왔다.
돌돌돌돌-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들것 위에 놓여 있던 각종 음식들이 테이블 위를 전부 채우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한 숨 놓을 수 있었다.
이래보여도 다들 대귀족의 영애.
식사 중에는 품위와 고상함을 지키니까.
* * *
“반란은 시작도 전에 진압됐어. 덕분에 금융대신이 뒤로 챙기고 있었던 막대한 양의 비자금을 왕실금고로 회수할 수 있었고.”
시작이 불안했던 것과 다르게 의외로 회의는 평탄하게 진행됐다.
“십년 치 왕실 예산에 버금가는 금액이야. 그런 막대한 돈이 반란 수괴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으니 세금을 아무리 걷어도 돈이 모자라지. 이제 세율을 낮게 조정해도 돼.”
아이라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었던 엘가가 한 마디 거든다.
“미르나 드레이코, 너와 네 뼈다귀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남쪽에서 들끓는 야만인들을 조지고 왔거든. 정말 끔직한 전장이었지. 인간이,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다니까?”
회의는 앙그마르 현 왕국의 상태가 어떻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열심히 논의했다.
미르나도 관심이 없는 척, 협조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를 했던 것과 다르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 그 여명회라는 녀석들은 아주 뿌리 뽑혔다는 걸까요?”
“그래. 서기관 태오가 힘써준 덕분이지.”
“흥, 뭐, 평민이 힘쓰지 않았어도 알아서 와해될 단체였을 것 같긴 하네요. 듣자하니 여명회는 투표로서 대표를 뽑는다고 하죠?”
미르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민주적 의사결정을 모토로 한 단체니까요.”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니. 그런 고대 폴리스적 수구주의를 왜 신봉하는지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서야 능력도 뭣도 없이 인기만 좋은 광대가 군중들의 지도자로 뽑히게 되는 거잖아요?”
미르나가 민주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에 나는 가슴이 뜨끔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21세기의 자유사회를 살아오던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귀족영애 미르나가 신랄하게 비판을 더했다.
“실제로 고대 도시 아르테나도 그렇게 망했죠. 우둔한 음유시인 벌코가 인기에 힘입어 지도자가 되어 국가 자체가 모래에 묻혔으니. 민주정은 이미 실패한 정치라는 게 입증된 거죠.”
“음….”
“평민들은 대체 왜 그런 불완전한 형태의 옛 정치를 되살리려고 하는 걸까요? 왕과 귀족들의 정치야말로 가장 세련된 것인데. 태오, 당신도 평민이니 얘기해 보시죠.”
그때 엘가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런 따분한 이야기는 그만 두고. 미르나 드레이코. 너는 이 그라시아에서 꽤 오래 있었다며? 우리들이 왕국과 국민들을 위해 희생하는 동안, 너는 뭐 한 거 없냐?”
“저라고 놀고 있던 것이 아니랍니다, 리오네스 영애. 저도 이 그라시아에서 ‘앙그마르’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거든요.”
스르륵.
까만 깃털 부채에 반쯤 가려진 미르나의 눈이 반쯤 가느다랗게 뜨였다. 그런 미르나를 향해 엘가는 따분하다는 것처럼 하품을 하며 물을 뿐.
“네가 뭘 했는데? 관광? 아무것도 안 하면서, 운이 좋아 귀족으로 태어난 주제에 평민들에게 뻗대고 으스대기? 귀족이면 귀족답게 행동해야 귀족인거지.”
엘가의 태도는 제법 날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평민이라고 욕먹고 무시당한 나를 위해 대신 미르나를 꾸짖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그렇구만.
엘가에게 약간 감동받을 것 같잖아.
다만 미르나의 태도는 여유가 있었다.
“노블레스오블리주라니.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말하니 우습군요? 저는 이 그라시아에 그게 있다는 걸 알아냈거든요.”
“그거? 그게 뭔데?”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보네요, 리오네스 영애. 속 편해서 좋겠어요.”
“뭐 인마?”
엘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자 이를 중지하기 위한 것인지 아이라가 손바닥을 위로 슥 들어올렸다.
“계속 얘기해 봐, 미르나 영애.”
아이라의 허가에 미르나는 부채를 탁-접었다. 덕분에 드러난 표정은 지금껏 상대를 조롱하고 깔봤던 때와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저 미르나 드레이코는 저번 주에 마침내 알아내고 말았답니다. 이 그라시아에 바로 그게 있다는 걸 알아낸 거죠.”
“그러니까 그게 뭔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금기유산.”
금기유산(禁忌遺産).
그것이 미르나의 입술을 타고 나온 순간 일순 회의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미르나를 향해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엘가조차 자리에 슬며시 앉을 정도.
아이라가 말했다.
“이제부터 사용인들은 다 물러나. 태오, 너도. 이곳에는 오직 대가문의 영애들만 남도록 해.”
“저도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태오. 나가 있어.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라가 나를 내보낸다니.
어지간해서는 이런 일이 없다.
하지만 금기유산에 대한 정보는 그럴만한 것이었다.
그게 이 도시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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