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02)
EP.403)앙그마르 컴퍼니 # 8
403 – 블랙 앙그마르 컴퍼니 # 8
나르나르는 나를 자신의 응접실로 초대했다.
남작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가득 있어서 화려하고 품위 넘치는 방. 그곳의 찻잔은 화려하고 그 안에 담긴 찻잎은 향긋하기 그지없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손님맞이가 영 꽝이었는데 지금 태도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하나겠지.
“남작님께 들었습니다. 태오 경, 알고 보니 굉장한 분이시라고.”
후후-하고 웃는 나르나르. 그 웃음이 제법 매혹적이었다. 과연, 이러한 웃음을 매일 같이 옆에서 보게 되었다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물론 나는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 난 아이라나 영애들을 보아왔기 때문인지 그 매혹의 효과를 조금 더디게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태오 경. 저 나르나르에게 묻고 싶은 게 뭐라고 하셨죠?”
“그게, 나르나르 양은 커다란 임프가 되셨죠. 저는 임프들을 잔뜩 보아왔던 몸입니다. 그래서 나르나르 양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잘 알죠.”
내 말에 나르나르는 자신의 찻잔을 가늘고 긴 손가락 끝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다.
“많은 임프들을 보아왔다라…. 당연하겠죠. 당신은 앙그마르의 태오 가스펠이라는 것 같으니까. 마르마르에게 들었어요. 당신은 모든 임프들의 보호자를 자처하신다고?”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내 대답에 수도원 원장 나르나르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마치 들꽃을 바람이 흔드는 것처럼 작은 웃음이었다.
“재미있네요. 그럼 저 같이 커다랗게 된 임프도 보호해 주시려는 걸까요?”
“만약에 나르나르 양, 당신에게 그럴 의사가 있다면요.”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겠네요. 저는 이제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요. 이 수도원은 제 힘으로 지켜낸 것이니까. 제 힘으로.”
나르나르는 자신이 넘쳤다. 그것은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보이는 특유의 자신감 혹은 오만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었다.
본디 임프들은 나를 잘 따른다. 하지만 임프에도 내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크게 자란 임프는 또 다른가?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커다랗게 자랄 수 있었냐고 물었죠. 하지만 저는 반대로 묻고 싶네요. 태오 경, 그리고 마르마르. 당신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작은 아이들로 남을 수 있는 건지.”
“그게 무슨…?”
“저는 당신들이 부러워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어린아이들로 남아있을 수 있는 당신들이. 만약 저를 만난 게 그들이 아닌 태오 경, 당신이었다면 나 역시 마르마르처럼….”
무어라 말하던 나르나르는 곧 입을 다물었다.
곧 그녀는 어딘가에서 두꺼운 연초를 가져와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이 수도원의 원장이라기보다는 꼭 미녀 스파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마르마르가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혹시 나르나르처럼 되었을까? 커다랗게 자란 마르마르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아서 금방 포기했다.
그때 후-하고 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나르나르가 말했다.
“볼테르 남작에 의해 수도원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건 이미 들었겠죠.”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
“갑자기 거리에 나앉게 된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떠올리기 쉽죠. 저는 그해 겨울, 제 남매들을 직접 차가운 겨울바닥에 묻어주어야만 했어요.”
“…….”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저를 믿는 아이들이 많아서, 저는 죽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죠. 그 중에서는 죽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일들도 있었고.”
“혹시, 로만의 안티에크 수도사들에게 무슨 실험이나 세뇌 같은 걸 당하셨습니까?”
내 말에 나르나르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겠지.
나를 만만히 봤나?
산전수전 다 겪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 이거야. 나는 대화의 주도권을 끌고 오기 위해 몇 마디를 덧붙였다.
“로만의 대주교를 성황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그에 훗-웃는 나르나르.
“저는 태오 경, 당신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로만의 대주교니 성황이니, 제가 알게 뭐냐고 말하고 싶지만…. 맞아요,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계실 거라 봅니다. 세상에 혼란스러워질 수 있어요. 협력해주신다면 답례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릴 겁니다.”
“흐응, 답례라….”
내 말에 나르나르는 슥, 다리를 바꿔 꼬아 앉았다. 덕분에 탄탄한 허벅지 같은 게 눈에 들어와서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옮겼다. 이 여자, 일부러 그러는 구만. 남자를 잘 알아.
그녀가 말했다.
“굳이 그런 어려운 방법을 쓰지 않아도. 억지로 말하게 해도 될 텐데요.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힘과 권력이 있을 테니까.”
“누가 말하더군요. 여성에게 억지를 부리는 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맞는 말인 것 같더군요.”
“볼테르. 그 멍청하고 바보 같은 남자.”
나르나르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화악 돋아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남작이 임프 나르나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수줍은 소년 같은 구석이 있었다.
눈이 빛나고,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하지만 나르나르가 볼테르를 말할 때는 마치 원수라도 언급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 그녀에게는 원수가 맞았겠지.
내가 물었다.
“볼테르를 이용하고 있군요. 역시 수도원에서 내쫓기게 만든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겁니까?”
“그도 알고 있을 테죠. 제가 남작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마 마르마르도 알아차렸을 거에요. 그래서 제게 화를 낸 것이겠죠. 마르마르는 그런 친구니까.”
생각보다 더 무서운 여자였구만.
* * *
나르나르와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렸던 그녀가 교단의 로만에 위치한 성황청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 또 그 안에서 보아왔던 수많은 것들. 나르나르의 키가 커진 것도 이런저런 실험 때문이라나.
“태오 가스펠, 당신은 어째서 님프와 그 아종이 되는 임프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는 건지 아나요?”
“…글쎄요.”
“신의 저주라고들 하죠. 본디 님프들은 문란하고 타락했던 종족. 그래서, 빛과 소금의 신이 벌을 내려 영원히 어린아이로 머물게 했다고. 반은 진실이에요.”
“반은 진실이다…?”
“님프가 저주를 받은 건 사실이에요. 대략 천 년. 저주로 인해 님프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현재에 이르렀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 저주는 약해지고 있어요.”
저주가 약해지고 있다니. 갑자기 들려온 신이니 저주니 하는 것에 나는 조금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다.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는 있는 지 없는지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다른 고민거리가 많았던 나는 신에 대해 사색할 시간이 적었으니까.
나르나르가 말했다.
“이제 곧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될 거에요, 태오 가스펠. 굳이 교단의 성황청이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해질 테죠. 로만은 그걸을 통제하려는 것 뿐이구요.”
“역시 아는 게 많이 있는 모양이군요.”
“다비드와 오랜 빛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규칙의 시대가 올 거에요. 제가 이렇게 순순히 모든 걸 말해주는 이유는, 어차피 하찮은 개개인으로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고.”
나르나르는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었다. 마치 친구가 열심히 만든 모래성을 발로 짓밟은 후 웃는 것 같이 가학적이고 원초적인 웃음이었다.
내가 물었다.
“이 일에, 수도원도 관련되어 있는 겁니까?”
그에 고개를 젓는 나르나르.
“이곳은 지친 제가 쉬기 위해 만든 고향. 모든 것의 마지막을 지켜볼 장소. 믿으라고는 안 하겠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관련이 없어요. 제가 아는 것도 여기까지가 끝.”
나르나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하나 꺼내어 무언가를 슥슥 적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게 내밀며 담배를 재떨이에 문질러 불씨를 꺼트렸다.
“여기 적혀 있는 자를 찾아가면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죠.”
슥.
종이를 받아들자 누군가의 주소지와 이름이 적혀 있는 게 보였다.
“…….”
이 커다란 임프는 꽤 실력자다.
마법사인 나는 그녀가 꽤 실력 좋은 마법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소 무력의 충돌이 벌어질 것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이 녀석은 내게 협조적으로 굴었다.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현명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까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내가 알아내고 대응해 봤자 결과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여유가 있는 걸까.
살짝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재떨이 위로 뭉개진 담배를 바라보며 나르나르가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결과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겠지만. 마르마르는 소중히 대해줘요.”
스륵.
밤송이모양의 꼬리가 들어 올려지더니.
“─나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하도록.”
그대로 자신의 목을 후려갈긴다.
“…지금, 무슨…!!!”
스르르-베어지는 상처로부터 핏줄기가 뿜어진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온몸의 핏기가 가셔서 머릿속이 하얗게 물 드는 것만 같았다.
* * *
“목숨은 겨우 붙여두긴 했습니다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발란 교수는 나르나르의 상태를 보며 작고 침울하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흐릿한 눈으로 창문을 바라보는 나르나르. 그 눈에는 전혀 생기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태오 님, 원장실을 뒤져본 결과…, 성황청의 심문관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었습니다. ‘L’이라고 적혀 있는 시기에 앙그마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와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는 이야기도….”
발란의 말에 따르면 수도원의 원장인 나르나르는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 반란과 반역의 죄는 언제 어느 시기고 무겁다.
이 수도원은 이제 해산되고 말겠지.
기이익.
그때 원장의 침실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쭈뼛거리는 다이아 꼬리를 보니, 녀석은 마르마르였다. 그 모습에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의 눈에 생기가 돈다.
“아앗, 마르마르…! 마르마르가 온 것이야…!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어제 했던 실뜨기? 아니면 술래잡기?”
“…나르나르.”
밝게 말하는 나르나르, 그 모습은 외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꼭 어린 소녀의 행동과 비슷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임프 마르마르의 눈은 유난히 어둡다.
“나르나르….”
발란이 말한다.
“피, 피를 너무 흘려서. 쇼크가 왔어요. 뇌의 일정부분도 손상이 되어서…, 원래의 기억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조금 시간이….”
이로서 나르나르에게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더 독하고 강한 사람이었어. 내가 한 방 크게 먹었다. 이렇게 날 당황하게 한 사람은 오랜만이네.
나는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들이나 수녀들의 모습이 내 눈에 불안하게 번진다.
━믿을 수 없어, 원장님께서 반역이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뿔뿔이 흩어지는 건가…?
━나도 몰라….
그들의 걱정이 내 예민한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이제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원래라면 수도원은 이대로 해체, 관련자들은 철저한 조사를 받겠지.
그리고 아이들은….
제 2의 마르마르와 나르나르가 될까.
“미래는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인가….”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배짱도 좋지. 예정된 미래를 나는 얼마든지 바꿔오고 있었다. 누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곳은 우리가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생기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자,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수녀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저…, 그래서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아, 이들은 아직 우리가 누군지 모르나. 나는 가볍게 답해주기로 했다.
“앙그마르 컴퍼….”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궂은일도 모진 일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름은 조금 밋밋한 것 같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말했다.
“블랙 앙그마르 컴퍼니.”
.
.
.
우리는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약간 들 떠올랐던 어제와 다르게, 해가 어둑하게 저문 지금은 다들 피곤한 것처럼 말이 없다.
특히 마르마르는 꽤 긴 시간을 침묵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채찍에 맞은 말이 어두운 가도를 달리고 나서야 겨우 입술을 뗀다.
“내가 오자고 안했으면…, 나르나르가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까…?”
자책하고 있던 걸까? 다감한 마르마르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답한다.
“네 탓이 아냐.”
“그럼…?”
“따지고 보면 내 탓이 크지. 네 친구 나르나르를 궁지로 몰아붙인 건 나니까.”
“하지만, 동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잖아. 솔직히 믿겨지지가 않아. 그 착하고 씩씩했던 나르나르가…그런….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걸까?”
마르마르의 질문에 나는 창가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바라봤다.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 나도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째서 우리는 어른이 되고 마는 걸까….”
마르마르의 질문에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
어째서 우리는 어른이 되는가. 어째서 태어나고, 어째서 죽는가.
그것에 완벽히 답할 수 있는 것은 한 명 뿐이겠지. 나는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잔뜩 껴 있는 하늘. 저곳에 답을 아는 자가 있는 걸까.
스르르.
이제 나의 시선은 손에 쥔 종이로 향했다. 어른이 된 임프의 핏자국이 묻은 종이. 거기에는 선명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테오도로스 가스펠 – 로만 시, 언약의 거리, 3번지 2층.」
테오도로스 가스펠. 내가 아는 남자의 이름이다. 잊어버릴 수 없지. 애초에 녀석은 성녀 프리가와 교단에서 길러진 사람이라고 했었어.
깨닫는 게 늦었다.
그 종이를 잘 접어 주머니에 넣은 나는 마부석을 향해 말했다.
“발란, 아무래도 바사고…, 아니, 테오도로스를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여기 적힌 주소지부터 가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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