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31)
EP.432)하는 자 # 7
432 – 멈추게 하는 자 # 7
날개를 격추당한 비룡은 도시의 먼 구석에 쳐 박혔다. 쿵, 거대한 땅울림이 일고 그 뒤로는 귀를 틀어막아야 할 만큼 큰 비명이 터졌다.
━Gyraaaaa…!!!
커다란 포효가 고장 난 도시를 절절하게 울렸다. 그것은 마치 단말마처럼 들리기도 하고 혹은 분노한 노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내게 달려오며 묻는 엘가.
“야,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냐? 무슨 브레스 같은 걸 뿜어내던데? 그런 마법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어.”
엘가는 내가 입에서 뿜어낸 님프 파괴광선이 꽤 마음에 들은 듯한 모양이었다.
님프 파괴광선은 입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기술이다.
그 위력은 7위계의 대마법 중에서도 최상.
내 머릿속 피셜에 불과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 고대의 님프들은 이렇게 입에서 파괴광선을 뿜어내 적들을 물리쳤던 게 분명하다.
내가 말했다.
“일단 이번 일이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이라, 조준이 빗나가서 온전히 쓰러트리진 못했어요!”
상처 입고 분노한 야수는 위험한 존재다. 특히 근처에 어린 새끼들이 있는 모체라면 더더욱 흉폭하고 위험해진다.
와이번-악몽의 시스는 그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녀석의 분노가 얼마나 강력하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지.
후끈.
그때 내 얼굴에 닿고 있던 서늘한 공기가 삽시간에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곧 용이 추락한 낡은 건물들 틈으로 뜨거운 불길이 방사된다.
콰아아아아아-!
놈은 자신의 분노만큼이나 뜨거운 불길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쿵쿵 걸어 나왔다. 내게 관통당한 날개 한쪽에서 피가 철철 넘치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악귀 같아 무섭다.
미르나가 말했다.
“날개를 당했으니 당분간 하늘로 날아오르진 못할 거에요! 쓰러트리려면 지금 이상으로 적기가 없어요!”
스릉.
검을 뽑아드는 미르나의 이야기에 모두 바짝 긴장했다.
우리들은 이제 와이번을 사냥해야 한다. 비록 고대의 용들에 비해 영락해버린 아종이라고는 하지만 비룡도 용이다.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덩치.
한 번 불이 붙으면 네이팜처럼 꺼지지 않는 불길에 그 어떠한 창칼도 뚫을 수 없는 비늘. 갈고리 같은 발톱.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건물이 박살나는 꼬리까지.
━히오옹….
알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야.
“엘가 님, 일단 뒤로 물러나 계세요.”
─요정 거품.
나는 엘가를 우리 뒤쪽으로 보내며 7위계의 방호마도를 걸어주었다.
요정 거품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미세한 거품들을 몸 주변에 코팅하듯 바르는 마법으로, 어지간한 날붙이나 마법 등으로는 상처조차 입힐 수 없는 방어용 마법이다.
보글보글.
거품에 둘러싸인 엘가는 무지개빛으로 빛났다. 그 모습이 무척 신기해서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야, 야 저놈 온다!”
엘가가 다급히 외쳤다. 엘가의 말처럼 와이번은 분노로 그 눈동자를 붉게 물들인 채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굶주린 거대 악어 같아서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Gayaaaaaaaaa!!!
아가리를 쩍 벌린 채 포효하는 놈이 노리는 건 아마도 나였다. 내가 강한 마법을 사용해 놈을 추락시켰으니 나를 노리는 것도 당연한 일.
“일단 제가 시선을 끌게요!”
─요정의 발!
나는 준족의 마법을 내게 건 뒤 영애들로부터 떨어졌다.
지금의 나는 어그로 포인트를 획득한 탱커. 우리들에게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머리 부분이나 앞발을 영애들로부터 떨어트리는 게 우선이다.
그럼 자연적으로 영애들은 용의 빈틈 많은 등이나 꼬리를 바라볼 수 있겠지.
이런 걸 보고 ‘머리 돌리기’라고 했던가. 오래 전에 했던 게임 속 지식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아마 극한의 상황에서 내 머리가 생존을 위해 핑핑 돌아가기 때문이겠지.
━후으으읍-.
용이 거대한 들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놈의 비늘 덮인 가슴팍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게 보인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은 하나.
━히오옹-!
“마나 쉴드!”
마음 속 바엘과 내가 동시에 외치자 나의 앞으로 겹겹의 마나 쉴드가 생성됐다. 열 장에 열 장이 더해진 스무 장의 마나 방벽.
━콰아아아아-!
그것을 향해 브레스가 뿜어진다.
쨍그랑, 쨍그랑.
유리그릇이 뜨거운 불길에 닿으면 금이 가 깨지는 것처럼 나의 마나 쉴드는 용이 뿜어낸 불길에 하나 둘 깨져갔다.
하지만 7위계의 마나 쉴드를 스무 장이나 연달아 깨부수는 것은 녀석으로서도 불가능했던 건지 불길이 멈춘다.
━구아아악-!
그때 녀석은 주둥이를 크게 벌린 뒤에 비명을 내질렀다. 이유인 즉슨 놈의 등 쪽을 향해 미르나가 부적을 던져 데미지를 가했기 때문이리라.
“연쇄 폭발부!”
미르나의 헐렁한 소매에서 많은 부적들이 날아가 용의 등에 닿아 폭발한다. 파파팡-그 커다란 충격 때문인지 비룡은 크게 아파하며 몸부림쳤다.
* * *
비룡을 가운데에 두고 우리는 열심히 공방전을 계속했다. 가끔 날아오는 놈의 꼬리나 발톱 이빨질, 불꽃 등을 아슬아슬 피하고 있을 때.
미르나가 다시금 소매에서 부적들을 날렸다.
“멸살부!”
팔락-.
부적들이 용의 몸에 비늘처럼 다닥다닥 달라붙는다. 곧 그것은 용의 뜨겁게 달궈진 비늘에 하나 둘 불이 붙더니 연쇄적인 폭발을 만들었다.
콰가가가강!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의 울림. 저 멀리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엘가가 말했다.
“야, 비늘 쪽은 너무 단단해서 크게 상처입지 않는 것 같아! 저기 가슴팍 흉터를 노려! 아니면 구멍 뚫린 날개 쪽이나!”
엘가의 말대로.
비룡의 비늘은 단단하기에 어지간한 공격이야 튕겨 내버리거나 반감시켜버리고 만다. 당장은 미르나의 공격이 제법 효과 좋게 먹혀 들어간 것 같이 보이지만.
스스스스-.
폭발의 연기가 가시고 난 뒤 드러나는 녀석의 등은 아직 매끈했다.
“칫.”
혀를 차는 미르나.
“흐응, 귀찮은 일 할 필요 없이 눌러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에 옆에서 손을 펼친 아이라가 허공에 영창을 했다.
─루의 광창, 최강화, 세례.
곧 허공에 빛의 무리가 일렁이며 수많은 창들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비처럼 용의 몸을 향해 치달아 내린다.
촤자자자작-.
비늘을 꿰뚫으며 와이번의 몸통에 꽂히는 창 덕분에 비룡-악몽의 시스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창을 몸에 단 채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Grrrrrrrrr!!!
하지만 그 어떤 광창도 와이번의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다. 그저 비늘을 깨트리거나 두꺼운 근육에 박혔을 뿐.
“위력이 조금 모자랐나.”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는 아이라. 그 어깨너머 보이는 엘가는 제법 조급해 보였다.
“야, 괜히 와이번이 더 빡치기만 한 것 같잖아! 아, 씨, 내가 보고만 있으려니까 엄청 답답하네!”
그때였다.
팽, 피슝-.
어딘가에서 강렬한 것이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근처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던 스텔라의 활시위가 화살을 발사하는 소리로─.
쇄애애액-. 팍!
그녀의 손아귀에서 떠난 화살은 이윽고 와이번의 왼쪽 눈에 박혔다.
촤아악-!
피가 뿜어지고 용이 한 바탕 더 크게 뒹군다. 그것은 누가 봐도 치명타였다. 목숨의 위험까진 되지 않더라도 한쪽 시야를 빼앗은 건 굉장한 일이다.
이 난전 속에서 용의 눈을 맞춘다니 역시 스텔라는 솜씨가 좋구나.
문제는 그 공격이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는지 비룡이 고개를 돌려 스텔라가 올라서고 있는 건물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우, 이런.”
스텔라는 그대로 뒷걸음질 쳐 도주하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의 옥상 사이를 뛰어넘어 달아나는 그녀를 향해 비룡은 브레이크 고장 난 트럭처럼 몸으로 건물을 부수며 광포함을 뽐낸다.
건물 사이를 도망치는 스텔라.
건물 따위를 박살내며 쫓는 비룡.
스텔라가 제 아무리 요정 특유의 날렵함으로 잘 도망치고 있다고는 해도 언젠가 비룡에게 잡히게 되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
실제로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엘가가 말했다.
“야, 이러다간 모두 붙잡히겠어! 나르미, 지금까지 네가 가장 힘 아끼고 있었으니까. 지금 뭐라도 좀 해야겠어!”
엘가의 상황 판단에 나르미가 “좋아.”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휙 달려가 건물 파편을 손에 쥐고 그것을 힘껏 내리쳤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
기애액-!
연달아 들려오는 커다란 비명. 그에 폭주하던 와이번이 멈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와이번의 눈동자에는 돌을 쥔 채 자신의 알을 마구 깨부수고 있는 나르미가 보였겠지. 그렇다. 나르미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전부 깨트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엘가가 “야, 그건 너무 심하지 않냐…?”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만. 나르미의 태도는 확고했다.
“죽고 죽이냐의 싸움. 잡아먹고 잡아 먹히냐의 싸움이야. 심한 게 어디 있어?”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명랑하고 활달한 나르미는 전투에 있어서 가장 자비 없고 가차가 없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죽음의 마력이 가득하네.”
마침내 알들이 전부 박살났을 때 나르미는 흐흐-웃더니 자신의 엄지를 깨물고 그 피 묻은 손바닥을 바닥에 내리쳤다.
“일어나라.”
후두두둑.
주변에 널린 파편들과 깨진 껍질들이 뭉쳐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족히 4m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에 굵은 몸체를 지니고 있어서, 일찍이 내가 만났던 오거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외형이었다. 그러나 오거는 아니다.
나는 저게 뭔지 안다.
골렘이구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위 생명체.
뛰어난 강령술사들 중에서는 골렘을 부리는 자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나르미가 그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크게 만들어본 건 나도 처음인데!”
그 커다란 크기에 나르미가 부르르 떨었다. 곧 거대한 골렘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크기의 와이번이 격돌하며 커다란 충격을 만들어낸다.
“가라, 나르미의 거신병! 갓 핸드 크러시야!”
후웅, 콰아앙-!
거대한 두 괴수가 서로 주먹과 꼬리를 맞부딪히며 충격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나는 잠깐 시선을 빼앗겼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서 현실감이 날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따끔.
“앗.”
그때 내 마음이 거미에게 물린 것처럼 따끔해졌다.
━히오옹…!
네 말이 맞아. 여유 부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거. 나르미의 골렘이 용의 분노를 잘 받아주고 있으니까 지금 상황에 어떻게든 결정타를 먹이는 게 좋겠지.
하지만.
저 튼튼한 용을 죽일만한 결정타의 마법을 사용하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수명을 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놈의 비늘과 심장을 꿰뚫기 어렵겠지.
━히오옹….
알아, 바엘. 이 이상 수명을 깎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하지만 아까 나르미가 말했던 것처럼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이야.
이것저것 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구아아악-!
그때 비명을 지르는 와이번의 모습이 보였다.
“좋아, 거신병! 그렇게 허리를 분쇄시키는 거야!”
나르미의 골렘이 와이번을 힘껏 끌어안은 채 놈의 허리를 으스러트리고 있던 것. 저걸 보고 베어허그라고 하던가?
결정타를 먹이려면 지금이었다. 덕분에 망설임을 무르고 서서히 내면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엇-!?”
나르미가 짧게 당황한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나의 눈에는 발톱으로 골렘의 몸을 망가뜨린 채 몸부림치며 그 속박에서 빠져나와 사방으로 요동치는 와이번이 보였다. 놈의 하나 뿐인 외눈이 날 바라봤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곧 녀석은 나를 향해 입을 벌리며 그 목구멍에 불길을 일렁이더니.
휙.
내게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향해 불길을 방사했다. 그 불덩이가 날아가는 곳에 위치한 것은 엘가였다.
알을 빼앗긴 와이번은 아이를 가진 엘가를 내게서 빼앗으려는 게 분명했다. 엘가에게는 7위계의 방호마도 요정 거품이 코팅되어 있는 상태.
어지간한 불길이나 공격이야 무효화될 터.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어떻게 하지?
다시 한 번 방호 마도를?
아냐, 시간이 부족해.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여러 고심 끝에 나는 엘가를 향해 팔을 뻗었다. 부디 놈의 브레스보다 나의 마법이 빨리 닿기를. 그런 마음으로 주문을 왼다.
하지만 나의 마법이 닿기 전에 엘가를 향해 불덩이가 작렬하는 것이 더 빨랐다.
“엘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