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57)
EP.458)언제나 벌꿀 빛깔 # 7
외전 – 일상은 언제나 벌꿀 빛깔 # 7
진화(進化).
21세기의 미디어 매체를 접한 남자라면 누구나 그 이름에 설렘을 느낀다.
마치 첫 사랑의 기억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삶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남자에게 진화라는 것은 언제나 기대를 갖게 만들도록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다만 나는 내가 그 진화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만약 내가 진화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내 안의 종이거미 바엘이나, 개다람쥐 컹컹이가 진화하는 것 정도나 예상했었지.
바엘이 슈퍼 종이거미가 되고.
개다람쥐 컹컹이는 늑대다람쥐가 되는 느낌.
파아아아아앗-!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몸에서 뿜어지는 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주변에서 우왕좌왕하는 임프들의 목소리가 마치 나팔과 북소리처럼 번진다.
둥둥, 두둥, 둥.
이제 내 몸은 내 스스로도 내려다보거나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 무리에 휩싸였다.
나 자신이 형광등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지금 내 밝기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지난 날 문의 너머에서 만났던 광염의 신 정도다.
“그아아앗…!”
내가 끌어 오르기 시작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명과도 같은 포효를 내질렀을 때였다. 주변에서 펀치노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저 펀치노이…. 여러 님프들의 진화를 목도했지만 이 정도로 굉장한 빛을 뿜어내는 진화는 처음 보는 것입니닷…! 분명 어마어마한 것으로 진화하는 게 분명한 것입니닷…!”
“모두 이 몸 타르타르와 함께 태오노이의 진화를 응원해주는 것이다…!”
“동지 힘내!”
모두가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굉장히 힘이 나면서 동시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진화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줄이야!
아무쪼록 기왕 진화하게 될 것이라면 강력하고 멋진 녀석으로 진화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메가 태오나 궁극의 푸른 눈의 태오 같은 거.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하던 것도 머지않아 끝난다.
“그아아앗-!!!”
나는 내 안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감각을 느끼며 사방을 향해 포효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거대하게 팽창하며 더욱 강력한 나로 변모하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 몸을 감싼 빛은 나를 크고 빛나는 알처럼 동그랗게 둘러쌌다. 나와 바깥세상을 완전히 격리시키는 껍질이 되었다고 표현해도 좋다.
그렇게 세상과 내가 온전히 단절되었을 때.
방금까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던 내 상태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앞으로 디링-하는 기계적 효과음과 함께 글자들이 떠오른다.
「진화의 요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직업 ‘반요정’의 레벨 MAX 달성!
‘특정 물건 섭취 및 습득’ 조건 달성!」
마치 게임 시스템 같은 글자였다. 약간의 기시감 혹은 그리움을 느끼고 있으려니 그 밑으로 여러 글자들이 더 떠오른다.
「진화 요건을 달성한 항목을 나열합니다.」
「1. 개울물의 님프 : 도랑물의 님프가 올바른 방법으로 성장하였을 때 해금되는 진화. 차분하고 선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물과의 친밀도가 더욱 상승한다.
희귀도 : 보통」
「해금조건 ‘일정한 나이 먹기’ 달성.」
개울물의 님프.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진화체계였다. 어린 도랑물의 님프가 진화하면 보통 개울물의 님프가 된다지. 아이에서 어른이 된 것처럼 성격도 차분해지고 겸손한 미덕을 갖추게 된다 들었다.
“흐응.”
하지만 요란한 준비과정과 다르게 생각보다 평범한 진화 루트였다. 썩 마음에 드는 진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눈은 그 옆의 글자들로 향한다.
「2. 조물조물의 님프 : 도랑물의 님프가 창의적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해금되는 진화. 이런저런 물건이나 의견을 만드는 활기를 품게 된다.
희귀도 : 희귀함」
「해금조건 ‘고급 주문 작성’ 달성.」
조물조물의 님프는 처음 들어보네.
해금 조건이 고급 주문 작성인 것을 보면, 일정한 마법을 스스로 만들어낸 님프들에게 해금되는 항목인 모양이다.
능력도 꽤 마음에 든다.
희귀도도 희귀함이고 말이야. 히든 진화 같은 걸까? 조금 끌린다.
하지만 결정은 남은 두 항목을 보고 나서 끝마쳐도 늦지 않을 터.
슥.
나의 눈이 밑으로 향한다.
「3. 대물의 님프 : 도랑물의 님프가 태고의 신비로운 양기에 노출되었을 때 해금되는 진화. 태고의 기운을 듬뿍 품은 요정들은 여러모로 거대한 대물의 님프가 된다.
희귀도 : 전설급」
「해금조건 ‘태고의 양기 습득’ 달성.」
태고의 양기라. 그런 걸 습득한 적이 있나?
당장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거대한 버섯 황제 머시칸을 잡아먹은 것 정도. 거대한 버섯을 먹고 난 이후 대물의 님프로 진화하게 되는 모양이다.
혹시 이게 키 크는 버섯의 정체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대물의 님프라니.
어딘가 팍 이끌리는 부분이 없는 명칭이었다. 키가 커지는 것은 좋겠지만 다양한 곳이 함께 커진다면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생길 것이 분명할 터.
그래도 전설급이면 굉장한 것 같은데.
고민되네.
그럼 이제 마지막 항목을 보도록 할까.
「4. 축적하기 : 진화 포인트와 업적들을 축적해 진화를 늦춥니다. 업적과 진화 포인트가 축적될수록 더욱 희귀하고 강력한 능력을 지닌 상위개체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이건 진화를 미루는 항목인 모양이다. 그렇게 저장한 경험치로 더욱 쓸모 있는 진화를 노리는 것이겠지.
다만 이미 전설급 진화의 기회를 목도하고 있는 나로서는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화를 미루고 경험치를 축적 한다고 해봤자 지금 나온 희귀도 이상의 진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스르륵.
그런 내 궁금함을 설명해주려는 것처럼 추가적으로 글자들이 떠오른다.
「희귀도 항목 : 1.보통 2.희귀함 3.진귀함 4.전설 5.신화」
와.
전설 다음에는 신화 등급까지 있구나. 막상 이렇게 보이니 축적을 누른 뒤 다음에 더 큰 진화를 노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전설 진화를 포기한 점수는 꽤 클 테니까 많은 점수를 축적시킬 수 있을 거고.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분명 신화 등급의 진화 항목도 나타나겠지.
기왕 진화를 한다면 최고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하나의 버튼을 선택했다. 삑-하는 기계음과 함께 내 몸을 알처럼 감싸고 있던 빛의 껍질이 내 몸으로 스며들 듯 흡수되었다.
파아아아앗-!
* * *
빛이 전부 사그라졌을 때 나는 임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마르마르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붕붕 흔들며 말한다.
“동지가 진화에 성공했나 봐!”
“아니, 나는….”
“무슨 님프로 진화한 것입니까? 저 펀치노이에게 얼른 설명해주는 것입니닷…! 저 펀치노이는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닷…!”
다들 내가 무엇으로 진화했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 진화 시스템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잠깐 고민해본다.
“저 펀치노이가 보기에, 딱히 외관은 변한 것 같지 않은 것입니닷…! 하지만, 그 기운은 한층 더 강대하고 튼튼해진 것이 느껴지는 바….”
눈을 번뜩이는 펀치노이.
“태오노이는 분명 몹시도 희소하다고 전해지는 도랑도랑물의 님프로 진화한 것이 분명한 것입니닷…!”
도랑도랑물의 님프?
내가 의문을 느끼려니 마르마르가 나대신 물어봤다.
“도랑도랑물의 님프는 뭔데? 이름만 들어보면 방금 막 대충 생각해서 아무렇게나 지어낸 이름 같네!”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펀치노이. 녀석이 쯧쯧 혀를 차며 검지를 좌우로 흔든다.
“도랑도랑물의 님프는, 도랑물의 님프가 모종의 이유로 진화를 거부하고 한층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때 진화할 수 있는 님프…! 매우 큰 가능성을 지닌 초 희소종인 것입니닷…! 슈퍼 도랑물, 혹은 빛나는 도랑물의 님프라고도 불리는 것입니닷…!!!”
“오.”
펀치노이의 설명이 맞았다. 나는 진화를 보류하고 더 큰 가능성을 위해 경험치를 축적했다. 그걸 보고 도랑도랑물의 님프라고 하는 것이구나. 색깔 다르고 희귀한 이로치 몬스터 같은 건가.
“뭔 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건가보다! 모두 도랑도랑물로 진화한 동지를 높이 들어올려주는 거야!”
마르마르와 임프들이 나를 둘러싼다. 그들이 능숙한 솜씨로 내 팔 다리를 잡고 공중으로 던졌다 받는다.
요즘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임프들은 나를 응원해주기 위해 헹가래를 한다기보다 그냥 사람을 위로 던졌다 받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느낌으로 한참 공중을 향해 던졌다 내려졌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의 얼굴을 가린다. 구름? 아니, 강렬한 강풍과 함께 거대한 것이 우리를 향해 급습해오는 게 분명했다.
━크르릉-!
내 안의 종이거미 바엘이 급격히 경계를 끌어올리는 게 느껴졌다. 혹시 버섯 황제 머시칸이 온전히 쓰러졌던 게 아닌 걸까?
재빠르게 땅에서 내려와 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우리 머리 위를 가득 뒤덮을 만큼 커다란 날개를 볼 수 있었다. 까맣고 하얀 날개.
“새!?”
누가 말한 것일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올바른 말이었다. 그것은 새였다. 엄청나게 커다란 새.
비록 아까 전에 만났던 버섯 황제 머시칸보다는 작지만 각 날개품에 코끼리를 한 마리 안아서 숨길 수 있을 만큼 큰 새였다.
다리는 몹시 길고 부리도 길다.
“학?”
그것은 거대한 학이었다. 거대한 학이 강에 다리를 우아하게 뻗으며 우리 앞에 날아든다. 혹시 공격이 날아올까 싶어서 마나 실드를 영창하고 있을 즈음-.
『시프노이. 멋대로 일을 크게 벌이다니!』
학이 부리를 열고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해오는 게 아닌가? 그에 까만 머리의 님프 시프노이가 “━━─.” 무어라 이야기하며 나와 강을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그 머시칸을? 쓰러트렸다…? 말도 안 돼. 머시칸은 그 진시노이의 군대조차 쓰러트리지 못했던 포악한 괴물.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
시프노이와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부리를 다무는 학.
곧 날개를 한 번 커다랗게 펄럭이더니 그 모습을 기이한 느낌으로 작게 변신시킨다. 그때서야 나는 그 거대한 학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루미 여사님이셨군요.”
“맞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일 때 마르마르가 내게 작게 말한다.
“정체가 커다란 두루미라서 이름이 루미였나 봐. 두루미 루미.”
그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르타르가 깜짝 놀란다.
“이 몸 타르타르는, 학이랑 두루미가 같은 새인지 처음 알은 것이다…!”
나도 뒤 늦게 서야 두루미와 학이 같은 말이라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아이라가 잠결에 아이를 물어다준다는 학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혹시 루미 여사가 그 학이었던 건 아닐까? 나의 뛰어난 추리적 두뇌로 내린 답은 그게 최선이었다. 내가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루미 여사가 말했다.
“귀인들이여, 그대들이 오랫동안 이 강을 점령해 횡포를 부리던 머시칸을 쓰러트릴 줄은 몰랐네요. 머시럽 마을의 촌장으로서 어떤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거대 버섯 머시칸은 이 근방을 점령해 사람들을 아주 못살게 굴었다고 했다. 그 강대함은 영물 두루미인 루미 여사조차 상대할 수가 없어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확실히 강한 버섯이긴 했지.
그 뒤 우리는 머시럽 마을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환대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혹시 왜 멋대로 일을 벌였냐고 타박을 듣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프노이야, 결국 네가 옳았구나. 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언제고 머시칸에게 고통 받았겠지.”
루미 여사는 시프노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곧 마을의 님프들이 시프노이에게 우르르 몰려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조잘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언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충 나의 머릿속 번역기를 돌려보면 “시프노이, 너는 우리 마을의 영웅이야…!”같은 말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동지! 이거 봐! 마을 사람들이 물엿을 가득 줬어! 병이 부족할 지경이야!”
“이 정도의 물엿이면 앙그마르 컴퍼니 임프 자매들이 몇 년은 충분히 사탕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기뻐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르고, 우리에게 루미 여사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큼직한 참외만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는데. 몸체는 하얗고 갓은 붉고 하얀 점이 알록달록한 것이 꽤 두툼해 보이는 버섯이었다.
“그것이 혹시….”
“고대의 맥스 버섯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버섯 머시칸이 뿌린 포자가 자라난 것이죠. 이 안에는 무엇이든 크게 만드는 태고의 양기가 있거든요.”
슥.
루미 여사가 내게로 버섯을 내밀어왔다.
“먹어보세요. 원래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당신들이라면 그 자격이 충분하죠.”
다만, 아까 전 황제 버섯을 먹었던 나는 배가 너무 불러서 도무지 이 버섯을 먹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마음만 받자고 생각할 때였다.
“동지, 혹시 그거, 먹을 생각 없으면 내가 먹어봐도 될까?”
옆에서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르마르가 오랜만에 자신의 의견을 내온다. 마르마르도 키가 커지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 마르마르가 파르르 떤다.
“동지한테 준 건데, 내가 먹기는 좀 그런가?”
“아니아니.”
마르마르 정도면 이 버섯을 먹을 자격이 충분히 되지.
“좋아. 그럼 마르마르, 이건 너 줄게.”
척.
나는 마르마르에게 고대의 맥스버섯을 내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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