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173)
새근새근.
울다 지쳤는지, 아니면 안심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연이는 어미품의 아기 새처럼 그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덜덜덜!
‘내,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인류의 역사에 흉명을 남긴 괴수들이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전멸했다.
그것도 성한 모습의 시체를 남긴 괴수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마치 벌레를 때려잡듯 압도적인 학살.
괴수들의 핏물 속에 주저앉은 봉식이가 방금 전의 전투를 떠올렸다.
-스킬 공유 성미나 ‘언령’
-‘서로 죽여라.’
유일신의 입술이 열리면 그를 덮치려던 괴수들이 갑자기 목표를 바꿔 동료를 물어뜯었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단죄하는 신의 중지.
콰직! 콰아아!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면 괴수들의 육신이 짓뭉개지며, 시커먼 화염에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천마군림!
그가 수도를 내리치자 SSS급 이상의 괴물이라 여겼던 사자괴인의 머리가 몸에서 두부처럼 잘렸다.
‘대, 대체 정체가 뭐야?’
봉식이가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유일신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중급 악신 ‘라이오노스와 강식과 기만의 야수 휘하 백사도(百使徒)’ 군단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상급 악신 퀘스트]-초월의 가능성이 있는 S급 이상의 지적 생명체 제물 : 2,644/10,000
(신살 포식한 신 : ‘가장 높은 창공에서 빛나는 불’ S급 2천 명분의 제물, ‘강식과 기만의 야수의 아들 라이오노스’ S급 200명 분의 제물)
파스스스!
슈우욱!
사방에서 널려 있던 괴수들의 시체가 잿더미로 변하더니, 유일신의 품에 있던 갓메이커에게 빨려 들어갔다.
“조금 피곤하군. 제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나.”
유일신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제법 강한 기운을 뿜는 존재들이 자신이 있는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제압해서 신도로 삼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증식하는 신의 엄지’ 권능의 효력도 곧 끝날 테니까.
“봉식아, 뒷정리는 알아서 해라.”
“네, 네?”
“스킬 공유 최봉식 ‘공간의 지배자’”
번쩍!
성연이를 품에 안은 유일신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휘이잉!
끔찍한 괴수들의 시체도, 그것을 만든 유일신도 모두 사라진 디즈니랜드는 마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났냐는 듯 평화를 되찾았다.
“······.”
봉식이는 이 모든 게 그저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슈슈슉!
악신 유일신이 한국의 병원에 다시 귀환했다.
“크.”
잠시 비틀거리던 그가 근처의 벤치에 품에 안고 있는 성연이를 내려놓았다.
‘좀 무리했군.’
단기 결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력을 무리하게 사용했다.
유일신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귀여운 여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악신에게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은 신, 세상의 주인.
이 아이뿐 아니라 이 별 전부가, 심지어 발치에 구르고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 다 위대한 신인 자신의 것.
“크크, 감히 내 것을 건드리는 놈들은 다 죽인다.”
감히 내 것을 뺏으려는 놈은 벌레처럼 짓뭉개 죽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파괴신 놈을 포함해서!
띠링!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이 멍든 얼굴을 아브라삭스의 알로 문지르며, 당신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유일신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넌 최고위 악신 주제에 어디서 쳐 맞고 다니는 거냐?”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이 맞고 다닌다니 자신을 어떻게 보냐고 빽 소리칩니다.
-위대한 대악신인 자신이 이 정도면 그 가슴만 큰 년은 어떻게 됐겠냐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밉니다.
“대악신은 개뿔. 귀찮게 하지 말고 심심하면 머저리 놈한테나 놀아 달라고 해라.”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이 나쁜 남자 너무 좋다면서 거친 숨을 하악하악 내쉽니다.
유일신이 얼굴을 찌푸리며 악몽을 무시했다.
그가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했다.
‘슬슬 권능이 풀리겠군. 이번에야말로 신살의 검을 손에 넣겠다.’
성연이를 본체 놈에게 데려다주고 다시 심상 세계에서 수행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콰콰쾅!
근처에 있던 하수도의 뚜껑이 갑자기 폭발하듯 치솟더니.
휘릭! 휘리릭!
무서운 기세로 튀어나온 검은 촉수들이 유일신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으며 그를 지하로 끌어당겼다.
“큭!”
자신답지 않게 방심했다.
본체 놈이 있는 이곳에도 악신 놈들이 보낸 하수인이 왔을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제 신력은 얼마 남지 않았고, 증식하는 신의 엄지 권능도 곧 사라진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몇 분뿐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으득, 으드득!
“나는 악신 유일신이다!”
유일신의 몸을 휘감으며 무서운 기세로 그를 지하로 끌어당기던 촉수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
“흥. 공간 왜곡이라도 걸어 뒀나?”
유일신이 있는 공간은 하수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었고,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음산한 어둠마저 서려 있었다.
쩌억! 쩍!
유일신이 몸에 들러붙어 있는 촉수 조각을 뜯어냈다. 흡착력이 얼마나 좋은지 입고 있던 옷이 넝마처럼 찢겨 나가며 근육질의 맨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이 입가에서 주륵 꿀을 흘리며 당신의 몸을 시간(視姦) 합니다.
유일신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저 스토커 미친년. 언젠간 반드시 패버릴 테다.
유일신이 솟구치는 짜증을 참으며 어둠을 노려보았다.
“덤벼라, 벌레야. 너도 다른 놈들처럼 죽여 주지.”
스윽, 스으윽.
그러자 꿈틀거리는 어둠을 헤치며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즈니랜드에서 그를 습격했던 ‘강식과 기만의 야수’가 보낸 괴수들.
유일신의 앞에 나타난 놈들은 비록 그 숫자는 적었지만, 그들과 같은 기운을 풍겼다.
“······?”
꿈틀, 꿈틀!
아니 그것은 과거형으로 표현해야 정확할 것 같았다.
10마리 남짓한 괴수들이 촉수에 휘감긴 채, 쥐포처럼 말라비틀어져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촉수의 주인이 음산하게 몸을 꿈틀거리며 유일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또······ 뭐냐?”
그것은 온몸에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거대하고 끔찍하게 생긴 문어(?)였다.
문어가 유일신을 향해 울부짖었다.
-구아아악! 신! 계약에 따라 나를 먹어라!
문어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계약이라니.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자신이 내면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본체 놈이 뭔가 사건을 벌인 모양이다.
-나를 먹어라! 빨리!
문어가 다가오자 유일신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것처럼 역겹게 생긴 데다, 분변 섞인 악취마저 풍기는 저 괴 생물을 먹으라니!
유일신이 코를 틀어막으며 외쳤다.
“지, 진정해라. 괴물! 너와 계약한 건 내가 아니다! 다른 놈이야!”
스륵, 스르륵.
그러자 문어의 머리통에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드러나더니 꿰뚫을 듯 유일신을 응시했다.
-거짓말 마라! 신! 네가 틀림없다!
고오오오!
문어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졌다.
-그렇게 나를 먹지 않겠다면, 대신 내가 너를 먹겠다!
슈우우우욱!
수백 개의 촉수들이 유일신을 향해 뻗어 왔다.
무시무시한 촉수의 기세보다는 거기서 풍겨 오는 지독한 악취에 유일신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시바!”
-구아아악!
콰르르 콰콰쾅!
* * *
“응? 지진인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바닥의 진동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거참, 요즘에는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으갸아아악! 휴우, 오늘도 어떻게 무사히 넘기긴 했구나.”
좀 아슬아슬했지만 무사히 시간 안에 마감을 끝냈다.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내가 겪은 대우주에서 펼쳐지는 문어 공주 에스메랄다와 일호의 스페이스오페라 러브 스토리를 썼다.
내 원고를 실시간으로 교정하던 담당 놈은 대우주에서 쏟아지는 소행성과 그곳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비트 부분에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자까님. 약빠셨습니까? 오늘은 급해서 그냥 넘기지만 앞으로 이런 전개는 좀 하지 마세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극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자까니까 말이다.
불만이 있으면 일호한테 말해라!
아, 그러고 보니까 일호가 다음 층으로 이동한 거 같던데 분신 놈이 갓메이커를 가져가는 바람에 확인을 못 했네.
부디 이번 층은 좀 노멀한 시련이면 좋겠다.
아무튼 마감도 하고, 담당도 보내고 비로소 내게 진정한 자유가 찾아왔다.
아울러 그토록 고대하던 저녁밥도.
“꿀꺽, 맛있겠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저녁밥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육지와 바다의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매콤한 불낙볶음. 나는 숟가락을 들어 그것을 크게 한 숟갈 푼 다음, 고슬고슬한 윤기를 자랑하는 흰쌀밥에 슥슥 비볐다.
“보람찬 마감을~ 끝내 놓고서~ 흥흥~. 마감을 하고 먹는 밥은 꿀맛~. 불낙볶음은 꿀꿀맛~.”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잘 비빈 밥을 한입 크게 먹으려 할 때.
드르륵! 쾅!
문이 부서질 기세로 열리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손에 든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헉! 문 좀 살살 열어! 인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누군가 했더니 내 분신 유이신 놈이었다. 내가 일신이니까 분신은 이신이지, 뭐.
“너, 성연이랑 잘 놀아 주고 왔······. 우엑! 이게 무슨 냄새야?”
나도 모르게 기겁하며 코를 틀어막았다.
대체 뭘 하고 왔는지 반 벌거벗은 놈의 몸은 오물 범벅인 데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 왔던 것이다.
이신 놈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와 내 앞에 놓인 불낙볶음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난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네놈은 편하게 밥이나 처먹고 있다니······.”
나도 발끈했다.
“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마감을 했는데! 그리고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지! 나는 이게 첫 끼라고! 얼마나 배고팠는 줄 알아?”
“그래?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군. 그거 아주 큰일이겠어.”
뭔가 나를 걱정하는 듯한 녀석의 말투가 이상하게 불안했다.
“으, 응? 그, 그렇지. 근데 이신아. 그만 다가오고 좀 씻고 오면 안 될까?”
“그러고 보니 네놈이 우리는 서로 같은 존재니까 고통 분담을 해야 된다는 말을 했었지? 크크, 그래. 아주 좋은 말이야. 고.통.분.담.”
서슬 퍼런 기세로 다가오는 이신 놈을 보니 악취는 둘째 치고 무섭다.
“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마, 말로 하자. 응?”
“닥치고 입 벌려.”
“어? 입은 왜?”
나는 이신 놈의 손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며 기겁했다.
“헉! 그, 그건!”
이신 놈이 악신답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움켜잡았다.
“그럼 넣을게.”
“기, 기다려! 시, 싫······ 으아아악!”
병실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유일신의 누나이자 성연이의 엄마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미술 심리 치료 교수 유신자.
바쁜 세미나 일정을 끝내고 병원에 맡겨 두었던 딸을 데리러 갔다.
오늘 퇴원한다던 동생 놈은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배탈이 크게 나서 퇴원이 며칠 미뤄졌다고 한다.
기절하듯 잠들어 있는 유일신과 옆에서 그런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딸을 보며 신자가 물었다.
“성연아, 오늘 삼촌이랑 재밌게 놀았니?”
“응! 완전 재밌어써! 이렇게 재밌는 거 처음이야!”
대체 병원에서 재밌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튼 잘 놀았다니 다행이다.
한편, 집에 오자마자 성연이는 사과처럼 상기된 얼굴로 색연필을 꺼내더니 자신의 방으로 조르르 달려갔다.
“엄마! 나 일기 쓸 거야! 방해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