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34
“K1 국장님께 여쭈어보니 3일 전 휴가를 냈다고 합니다. 휴대폰 위치도 집으로 되어 있고요.”
그렇게 나는 차를 한남동 쪽으로 몰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있던 강남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한남동 공관촌에 다다를 수 있었으니까.
“와…….”
국방부 장관 공관이 보이자, 박채이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공관의 크기가 웬만한 재벌 회장들의 저택보다 큰 탓이었다.
2,600평의 대지에 일곱 개의 건물.
그리고 국방부 장관의 생활을 돕기 위한 공관병들과 그를 경호하기 위한 무장 병력들.
훗날 군 장성들의 이런 호화스러운 관사 생활이 문제로 붉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도 달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은 그런 특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었다.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이 세 사람이 거주하는 공관에 연간 몇 십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고 있단 말이다.
“태어나서 이런 저택은 처음 보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택이 아니죠.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공관이니까.”
차는 김수철 장관의 공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내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군인 하나가 경광봉을 흔들며 우리들의 통행을 막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검찰청 한치우 검사입니다. 김수철 장관님을 뵈러 왔는데요.”
“약속 하셨습니까?”
“아니요. 약속은 안 했는데 제 이름 말씀하시면 알 겁니다.”
“잠시만요.”
허겁지겁 초소로 뛰어가 연락을 하는 경비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불안에 떨고 있는 박채이와 달리 나는 여유로웠으니까 말이다.
“문 열어!”
역시나.
연락을 마치고 나온 경비병이 문에 있던 군인들에게 소리치자, 거대한 공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박 검사님. 칼자루는 우리가 쥐고 있으니까.”
“저는 이해가 안 가네요… 이렇게 쉽게 만나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김수철 장관의 심정이 어떤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클럽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전쟁을 하다가 보면 여러 일들이 생기죠. 그중에서 자신의 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아십니까?”
“어떤 행동을 취하는데요?”
“자신에 편이 아닌 적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이다.
전쟁에선 아군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차라리 포로가 되어 잡히는 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사실을 김수철 장관 쪽에서는 아직 모릅니다.”
물론 우리 내부에 김수철 장관에 프락치가 있다지만, 지금 그의 전화는 실시간으로 감청되고 있었고, 그 누구와도 통화를 하지 않았다.
직접 발로 뛰어 전한다?
아니. 만약 고려전단에 있던 사람들 중 프락치가 있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먼저 나간 정대필 수사관과 지성한 수사관, 그리고 박하준 사무관은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고, 곧바로 부띠크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 중 우리를 제외한 어떤 누구도 공관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김수철 장관이 우리가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군지 확실해지니까 말이다.
국정원 내부에 두 사람.
김수철 장관의 모든 통화를 감청하고 있는 백성원 차장과 K1 국장 둘 중 한명일 테니까.
“그렇기에 김수철 장관은 자신의 불안함을 우리에게 티내려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아쉬운 놈이 불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저희가 통화 내용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요. 우선은 숨길 겁니다.”
간절함보다는 무언 갈 숨기려 연기를 하는 사람이 실수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목에 칼을 겨누고 입을 열게 하는 방법.
지금 상황에서는 좋지 않다.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자신의 죄목을 늘리려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천천히 무릎을 꿇게 할 것이다. 혹은 강제가 아닌 자신이 직접 무릎을 꿇게 할 것이다.
“왜죠?”
“처음엔 밀정으로 대해 주어야 입을 열 것이고, 입을 다 연 다음엔 포로로 잡아야 살려달라고 애원할 겁니다. 그리고 두 번의 과정을 거치면 한 번의 과정보다 얻을 게 많아지는 법이죠.”
“흠…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직접 보여드리죠.”
공관 문이 열리고 넓디넓은 들판을 지나 안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김수철 장관의 모습이 보였다.
일곱 개의 건물 중 김수철 장관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본관은 입구와 달리 또 다른 보초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병사 생활관 역시 몇 대의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평소보다 더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불안하겠지.
자신과 가족들이 위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중요한 손님과 대화해야 하니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세요.”
“네, 장관님!”
병사에게 존댓말을 하며 지시하는 김수철 장관.
그의 민낯을 알고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
외부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으니까.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일단 들어오시죠.”
“네.”
피식.
앞장서 공관으로 들어가는 김수철 장관의 뒷모습에 비웃음이 나왔다.
덤덤해 보이려는 그의 겉모습.
하나 나는 그의 속마음이 초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박채이는 비웃음을 보이는 나를 보며 갸우뚱거렸다.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제 것이 아닌데요, 뭐.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라고 빌려준 곳에서 잠시 생활하는 것뿐입니다.”
공관 내부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천장은 높았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또 바닥은 온통 대리석이었으며, 벽에는 비싸 보이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국방부 장관 공관이 제가 아는 회장님 저택보다 좋네요.”
사실이었다.
크기로 보나 내부 인테리어로 보나 성훈그룹 방영호 회장의 저택보다 좋아보였으니까 말이다.
“좋은 곳에서 사는 만큼 대가도 치루는 법이죠. 대한민국 안보와 5,000만 국민의 생명이 제 어깨에 달려 있으니까요.”
“확실해요?”
“뭐가 확실하다는 건가요?”
“장관님 어깨에는 대한민국 안보와 5,000만 국민의 생명이 아니라 다른 게 달려 있는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앞서가던 김수철 장관이 눈썹을 찡긋거리며 뒤돌아본다.
그리고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서둘러 가시죠. 국민들이 장관님에게 기대가 커서 오늘 안에 접견실에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히 하시죠. 검사님의 시덥잖은 장난 받아 줄만큼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요.”
“오케이, 비꼬는 걸 싫어하시니 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터벅.
다시 한번 김수철 장관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아까처럼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뒷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걸.
“클럽.”
“휴…….”
내 두 마디에 그의 어깨는 축 내려앉았고,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신의 어깨에 달려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또각.
멈추었던 그의 두 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빌려준 이 공관과 당신이 이 공관에 들어오기 전 머물던 합참의장 공관, 또 그 이전에 머무른 육군참모총장 공관. 하하, 생각해 보니 국방부 소관 한남동 공관촌에 모두 거주하셨군요.”
하지만 뒤따라가며 열심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비꼬는 내 행동에도 김수철 장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클럽을 거론하고 난 후부터 김수철 이름 뒤에 장관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그가 거쳐 온 공관들, 그리고 지금 거주하는 이 공관까지.
열심히 일하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진 이곳에 거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대한민국 안보와 국민의 생명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달려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곳에 거주할 수 있던 건 당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죠. 그럴 자격도 없고요.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국가와 국민이 아닌 클럽이라는 곳을 위해 50만 국군과 30조 원에 다다르는 국방 예산 지휘봉을 휘둘렀으니까요. 국방부 장관의 자존심과 사명감을 판 대가로 만족하십니까? 이곳에 거주하는 거 말입니다.”
“휴…….”
끼익―
내 말에 대답은 김수철 장관이 아닌 접견실 문이 대신해 주었다.
“그래도 손님이니 차 한잔 내드리죠.”
“물로 주시죠. 아무래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목이 탈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요. 기다리시죠. 접견실을 비워놔서 물을 가져올 공관병이 없네요.”
톡톡.
그렇게 김수철 장관이 멀어지고 접견실까지 오는 동안 나와 김수철 장관이 언제 터질까 불안해하던 박채이가 내 옆구리를 찌른다.
“왜 자꾸 약을 올리시는 거예요, 한 검사님.”
“자극을 주면 분노하며 울분을 토할 줄 알았는데…….”
작전에 실패한 병사처럼 기운 빠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
“의외로 침착하네요.”
분노하며 버림받았다 말하는 김수철 장관의 모습을 보고 싶던 것이다.
통화 내용을 알고 있다고 말해. 강제로 꿇리는 무릎보다 스스로 꿇는 무릎이 얻을 게 더 많으니까 말이다.
다만, 내 작전은 실패였다.
“하긴 그렇게 쉬운 상대였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겠지.”
“수많은 피의자들을 조사하고 대전에 난다 긴다 하는 지역 유지들과 법정 싸움을 해 봤는데… 지금 제 손 떨리는 거 보이세요?”
“특수부 검사라면 그런 싸움이야 흔하죠. 그런데 손이 왜 떨려요?”
“한 검사님과 김수철 장관의 기 싸움을 보니 제가 한 싸움은 애들 장난이었던 것 같아서요.”
“하하.”
나와 박채이의 대화가 끝나갈 때쯤.
주방으로 향한 김수철이 쟁반에 각종 음료를 들고 소파로 다가왔다.
“알아서 골라 드시고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부터 말씀해 보시죠.”
“여기로 오는 내내 말하지 않았습니까.”
“클럽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쟁반에서 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입으로 가져가며 다리를 꼬는 김수철 장관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좋아요. 이미 청진기 대보시고 온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아니요. 일단 제 말부터 들으시죠.”
* * *
“우선 제가 왜 찾아왔는지 아십니까?”
“빤하죠, 뭐. 또 쓸데없는 소리하시려고 찾아온 게 아니겠습니까.”
“근데 문은 왜 열어 주셨습니까?”
넓은 응접실.
원탁을 앞에 두고 원형 소파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김수철 장관의 싸움에 새우와도 같은 박채이는 언제 등이 터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문 안 열어준다고 포기할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랬죠.”
“혹은 예전과 상황이 달라진 걸 수도 있죠.”
덤덤한 듯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김수철과 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어 가고 있었다.
대화의 주도권과 거래의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
나와 김수철 모두 같을 것이다.
“하실 말씀만 딱 하시죠. 모처럼 맞이한 휴가를 즐기고 싶네요.”
“네, 그러죠.”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두고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찾아온 건 우리지만 아쉬운 건 김수철 장관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당신의 기소장을 작성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요?”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니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말을 조리 있게 하세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하하, 모르겠다라…….”
힐끔.
말끝을 흐리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박채이에게 눈치를 줘 본다.
하나 내 눈치를 알아채지 못한 그녀는 어영부영했고 나는 앉아 있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행동에 나섰다.
“당신이 모르겠다고 하면 오늘도 역시 제가 하는 말은 쓸데없는 소리로 들리실 테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수철 장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저…….”
역시나.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라 김수철이다.
그렇기에 우물을 파는 수고 역시 우리가 아니라 김수철 장관이 해야 할 것이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직 제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듣고 가시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제 얘기가 먼저라고.”
“그래서 저도 먼저 하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과 대화를 해서 제가 득을 볼 게 하나도 없을 것 같거든요.”
“휴…….”
그에게 있어 나는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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