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36
“검사님들은 언론 브리핑 준비하시고, 나머지 수사관님들은 부띠크 호텔과 백숙집 추가 조사를 위해 나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방으로 가시죠.”
“네.”
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내 방으로 앞장섰다.
“편히 걷게 해 주시죠.”
“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김수철의 양팔을 끼고 있던 수사관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입니다. 잠시라도 편하게 해 주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김수철은 곧 기소되어 수의를 입고 구치소로 향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아량을 베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검찰로 자진 출두한 사실에 대한 보상이었다.
“고맙네요.”
마치 연행되듯 끌려오던 김수철 장관의 양팔이 자유를 찾았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에 도착했다.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나는 자연스레 커피 머신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사이 김수철은 연구관실 중앙 테이블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사실에 계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정 수사관님, 김수철 씨 조사실로 안내해 주세요.”
“여기서 마시겠습니다.”
“아니요. 거기는 제 손님들이 앉는 자리입니다. 김수철 씨는 제 손님이 아니잖아요?”
“…….”
조금이지만 가벼워진 분위기는 내 말로 인하여 다시 무거워졌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수철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대접해 줄 마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쪽으로.”
“네…….”
내 말에 정대필 수사관이 조심스레 김수철의 의자를 빼며 조사실로 안내했다.
그는 파렴치한 범죄자다.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협조를 하든 자진출두를 하든 말이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방부 장관.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범죄는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이미 마음 굳힌 것 같은데.”
“검찰에 협조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김수철이라서요?”
“그렇지.”
“아니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혼자 깨달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어렵던 가정환경과 자신을 뒷바라지 하던 부모를 위한 보상은 오직 공부라 생각한 김수철.
그가 대학생이 되던 시절 육군사관학교는 출세의 보증수표와도 같았고, 그 역시 육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군인이 되고 싶던 것은 아니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육사에 들어간 게 잘못된 선택이란 소리가 아니다.
화가 났겠지.
죽기 살기로 노력해 결국 이루어 냈지만, 자신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부모님이 쓰러진 게.
또한 억울했을 테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갓 임관한 소대장 월급으로는 감당조차 되지 않는 병원비가 말이다.
결국 그는 악마에게 자신에 영혼을 팔았고, 그 대가로 부와 권력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을 떠나 이해하지도, 이해할 마음도 없다.
그런 상황을 겪은 사람은 김수철 장관 혼자만은 아니었고, 비슷한 상황의 모두가 김수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심판해 달라는 선택을 했다.
그런 선택이 과연 옳다고 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
이미 그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다. 당연히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내가 없었다면 그는 멈추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지금 김수철의 선택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내가 한 조사와 들이민 증거, 그리고 돌아선 여론이 없었다면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걸 확신한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김수철을 안내한 정대필이 조사관실 문을 열며 말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짧은 대답과 함께 김수철이 조사실 안으로 향했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일현 부장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밀어붙일 거야, 아니면 타이를 거야?”
두 팔을 테이블에 기댄 채 묻는 정일현 부장.
“그건 김수철의 선택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면 진심으로 대할 것이고, 머리를 굴리면 저 역시 머리를 굴러야겠죠.”
“하하, 내가 쥐 잡으러 가는 호랑이 걱정을 했네.”
내가 커피를 휘저으며 대답하자, 헛웃음을 보이는 정일현 부장이었다.
“2차 공판은 나랑 들어갈 거지?”
“네.”
“그럼 한 검사가 조사할 동안 나는 보자기나 쌓아야겠네.”
어떻게 보면 검사들의 가방과도 같은 보자기.
수백 수천 장의 사건 서류들은 모양이 제각기이고, 두께 또한 두껍기 때문에 검사들은 보자기를 애용했다.
“그럼 보자기에 채워 넣을 서류들은 제가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래.”
정일현이 연구관실로 나가고, 나는 조사실로 향했다.
길고 긴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인 김수철을 조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조사와도 같지만, 공관에서 한 우리에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
하지만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사건의 끝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긴 한숨과 함께 잡은 이 조사실 문고리를 여는 순간, 그 끝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이다.
“자! 커피는 여기 있고. 이제 조사 시작할까요?”
두 손을 조사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김수철.
그의 손 앞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올려놓았다.
“저, 검사님…….”
“네.”
“조사 시작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공관에서 한 약속 끝까지 지켜 주실 겁니까?”
“제가 약속이라 했나요? 기회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
모든 걸 털어놓는다면 클럽에게서 김수철 장관의 가족을 지켜 준다는 기회.
“그리고 당신은 파렴치한 범죄자입니다.”
“뭐요?!”
그 기회가 무너지려하자 선해진 김수철 눈빛에 다시 악마가 깃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의 가족은 죄가 없죠.”
“아…….”
혹시 몰라 김수철 장관의 가족을 조사했다.
계좌 기록과 통화 기록, 그리고 출입국 기록까지.
김수철을 도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숨겨 주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알아보았다.
그리고 샅샅이 알아본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죄가 없다’였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고, 50만 국군의 사기를 저하시켰으며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한 김수철.
악마 같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가족 앞에서 만큼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이고 싶은 것이다.
어이없게도 말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저는 당신처럼 파렴치하지 않거든요.”
“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이제 국방부 장관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공관에 당신의 가족을 지켜줄 경호 인력도 없죠.”
한 명의 형사부 검사, 그리고 김수철의 대검 출두 길을 에스코트한 모든 인원은 차를 돌려 김수철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는 다르죠. 저는 대한민국 검사이며 당신 가족들 몇 명쯤은 지켜줄 능력이 된다는 말이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만, 당신 집에 상주해 있는 경찰들과 한 명의 검사, 그리고 몇 명의 수사관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입니다. 즉, 저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쓰고 있으며 그 만한 대가가 없다면 더 이상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말이죠.”
김수철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내 마음에 들까, 하는 불안감이 말이다.
내 손에 누구보다 지키고 싶은 가족들의 안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협박처럼 들리네요…….”
“그렇게 들리셨나요?”
물론 김수철 입에서 나온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경호 인력을 철수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남편과 아버지에 대해 무관심했을 뿐.
하지만 김수철이 철저하게 숨겼을 확률이 높다. 그럴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기도 하고.
“5,000만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방산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자기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하게 생각하셔야죠.”
김수철은 내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말은 정답이었으니까.
“그럼 조사 시작할까요?”
* * *
“중령 진급을 앞둔 어느 날 조 선배님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총기 오발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예편한 조정식.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군복을 벗을 만큼 큰 사건도 아니었는데 예편한 이유가 클럽 때문인 것 같다.
아마 명예롭게, 아니, 명예로운 척하며 옷을 벗고 싶었겠지.
이미 그의 목표는 군인이 아니라 돈과 명예로 바뀐 후였으니까.
그렇게 군복을 벗은 조정식은 주한호 대통령에게 천거당해 국정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즉, 주한호 대통령의 천거 자체가 클럽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잠깐만요.”
“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게 있었다.
“주한호 대통령…….”
“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VIP께서 클럽과 연관이 있냐고 여쭈어보시려 한 거 아닙니까?”
“네, 뭐…….”
그렇단 말이지…….
만약 주한호가 클럽 소속이 아니라면 클럽은 어떤 식으로든 조정식을 주한호 눈에 띄게 했을 것이다.
그럼 주한호가 그저 평범한 국회의원 시절에 아무도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시절에 클럽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한호가 장차 청와대에 입성할 거란 걸.
도대체 어떤 조직이길래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있는 걸까.
“대통령 하나 만드는 것쯤은 클럽에게 있어서 일도 아닙니다.”
“뭐라고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김수철이 입을 열었다.
“지금 하시는 고민을 반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대로요?”
“조정식 선배를 국정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주한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겁니다.”
“네?!”
김수철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범주 안에는 없던 답이니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클럽이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VIP께서는 클럽에 가입하지 않은 거죠?”
“국정원 직원은 영원하지만, 대통령은 5년짜리 계약직이죠.”
“국정원장도 정권이 바뀌면 바뀌는 자리인데요?”
“그건 국정원장일 때죠. 조정식 선배는 국정원에 들어가 요직을 두루두루 차지하다가 국정원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즉, 외부에 공개된 국정원장보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단 뜻입니다.”
“그럼 굳이 왜 국정원장으로 올린 거죠?”
“그건 클럽의 뜻이 아니었죠. 주한호 대통령이 임명한 거지.”
“계획에 없었단 소리입니까?”
“하하.”
옅은 웃음을 보이는 김수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는듯한 눈빛이었다.
“정치는 계획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검사님. 클럽이 아무리 대단한 곳이라지만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너트릴 수는 없죠. 하지만…….”
“하지만?”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하죠. 조정식 선배가 국정원장이 된 후 클럽은 미뤄왔던 모든 계획을 실행시키려 했을 겁니다. 마일즈 장비 사업뿐만 아니라 국정원장이 도울 수 있는 모든 계획을요.”
“하…….”
분노와 답답함이 섞인 한숨이 나왔다.
김수철의 말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주 꼴 보기 싫은 답이 말이다.
클럽의 초대를 받은 조정식은 총기 오발 사건이라는 꼬투리를 잡아 군복을 벗은 것이고, 클럽은 실직자가 된 그를 국정원에 집어넣은 것이다.
현역 중령이든 예비역 중령이든 자신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조정식의 욕망은 꽤 마음에 들었고, 키울 가치는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눈여겨본 또 한사람.
바로 주한호 대통령이었다.
강직하고 젊은 나이에 정치계에 입문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입지가 탄탄해질 사람.
하지만 클럽은 그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대통령이라면 클럽이 더욱 원할 만한 사람 아닌가요?”
“선택당하지 않았으니까요.”
“왜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저희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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