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48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타깝긴 하겠지만, 검사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법은 감정이 아닌 오로지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되어야 하니까.
지금 나타난 증거로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조차 없었다.
‘쉽지는 않겠네. 그래도 뭐······.’
모든 사건에는 반드시 증거가 남는다.
그리고 증거를 찾는 것은 검사만이 아니었다.
검사에게 대적할 증거를 찾는 것도 변호사의 일이니까.
물론 능력에 따라 찾는 양이 조금 다르겠지만.
능력이 안 되면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고.
“일단 만나 보면 알겠지.”
어찌 됐건 지금의 나는 국선변호인이고 피고의 변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실무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니까.
물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김미애의 말을 입증하고, 또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를 변호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었다.
법이··· 아니, 내가 허용하는 관용 안에서는 말이다.
끼익―
“도착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서울 남부 구치소]구치소.
법적으로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나 구속 재판 중인 피고인들을 구금하는 곳.
다만, 조폭 한치우가 경험해 본 구치소는 조금 달랐다.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도 있었고, 벌금을 못 내 노역형을 사는 사람들과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은 기결수들까지.
사실 교도소와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미결수이지만 무죄를 받고 사회로 돌아가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그럼 김미애는 어떻게 될까?
“변호인 접견 왔습니다.”
“접견 신청서 작성하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
“한치우 국선변호인님!”
“네.”
어쩌면 또 하나의 업적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시보 검사가 대법관 출신 변호사와 싸웠고, 지금은 시보 신분으로 국선변호인을 하고 있는 내가 노련한 검사를 상대로 싸우려 한다.
“변호인 접견실로 오세요.”
“가 볼까.”
드르륵.
접견실 문이 열리는 지금 이 순간, 그 싸움은 시작된 것과 같았다.
슬픈 눈을 가지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앉아 있는 김미애.
“포기하지 마세요, 김미애 씨. 당신의 국선변호인 한치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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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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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문]“형사소송법 제33조 1항에 의거,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했습니다. 담당 판사님은 지용수 판사님이며 선임된 국선변호인은 한치우입니다. 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형식적인 말이기에 관심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 김미애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았으니까.
“이제 의뢰인과 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접견실로 나를 안내하던 전경들이 떠났다.
삼엄한 구치소 경비와 그리 가볍지 않은 분위기.
수도 없이 찾아오는 재소자의 가족들.
좋은 곳이 아니니 좋지 못한 마음으로 찾아왔을 것이고, 그런 가족들의 마음을 받아내야 하니 들어오면서 본 구치소 직원들의 표정은 모두 굳어 있었다.
다만, 연수생 신분증을 내밀던 나에게 만큼은 조금 다른 표정을 보였다.
재소자 가족을 대할 때보다는 조금 더 깍듯했고,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심지어 몇몇 재소자 가족들은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병들고 나이든 자신을 위해 돈을 훔친 젋은 손녀딸을 변호해 달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간절함에 마음이 쓰였지만, 지금 내 의뢰인은 눈앞에 보이는 김미애였기에 정중히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지잉―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진동이었지만 너무도 고요한 접견실인 탓에 문자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진영순 씨? 알았어요. 판사님한테 여쭈어봐서 제가 맡을 수 있으면 맡아볼게요, 치우 씨]끈기와 노력으로 따지면 서윤호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손녀딸의 재판 결과가 어떻든 서윤호는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럼 할머니에게 든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지겠지.
[고마워요. 그때 간 고깃집에서 거하게 쏠게요.] [콜!]시보들에게는 비교적 가볍고 자백이 끝난 사건의 국선변호인을 맡긴다.
많은 공판절차가 필요한 사건을 맡기에는 시보 생활이 짧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법원이 서윤호에게 할머니 사건을 맡기는 건 그리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오히려 맡기기에 가장 좋은 케이스일지도.
‘윤호 씨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니까.’
탁.
“실례했습니다. 우선 변호인 접견이 처음이시니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상 밑 폴더 폰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접견이 시작되었다.
“일단 변호사법 제26조에 의해 저는 김미애 씨와 나눈 모든 대화 내용을 비밀로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또 변호사 접견은 횟수와 시간제한이 없으며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겠습니다.”
스윽.
비타민 음료 하나를 꺼내 김미애 앞쪽으로 밀어냈다.
“또.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제가 전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반입 금지 물품에 해당되지 않다면요. 사실 이것도 올바른 건 아니지만… 대신 소송에 필요한 서류는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은 변호인의 역할이 아니라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저… 김미애 씨. 저는 연수생 국선변호인입니다. 구치소 안에서 들으셨죠?”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들은 연수생 신분의 국선변호인을 간절히 원한다.
왜?
경험은 없지만 열정이 있고 시간과 발품을 팔아 어떻게 해서든 피고인의 무죄를 받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국선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변호사에게만 해당된다.
자신의 주머니가 두둑하다면 수임료만 몇천만 원이 넘는 유명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더 좋으니까.
능력, 열정, 전관예우.
이 세 가지는 수임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피고인이 아닌 국가에서 보수를 받는 국선변호인.
만족의 기준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피땀 흘려 얻은 변호사 자격증에 비한다면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네, 들었어요. 더 좋다고…….”
다만 연수생은 좀 다르다.
돈이 아닌 피고인의 결과를 보고 달려가니까 말이다.
결과와 과정에 자신의 점수가 걸려 있고 그러니 자신이 쏟아야 하는 열정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이다.
“최선을 다할 테니 닫혀 있는 마음을 조금만 열어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모든 국선변호인이 그런 것은 아니고 변호사를 비하하는 것 또한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네…….”
쉽게 열릴 리가 없지.
구치소에 들어오기까지 자신의 말을 믿어 주고 또 들어 주던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일단 프로필부터 보자.’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조금은 나이가 많은 부모님과 두 명의 동생들.
대학교 중퇴.
사실 스물다섯 그녀에게 자세한 프로필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일지도 모른다.
100칸의 프로필 칸이 있다면 이제 겨우 25칸을 채운 것이니까.
‘열쇠를 찾을 수가 없네.’
닫혀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그런 열쇠가 필요했지만, 프로필 속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조금 직설적으로 가 보자.’
스윽.
놓여 있던 복잡한 서류들을 밀어냈고 그 위로 양팔을 올렸다.
“흠… 김미애 씨.”
“네?”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와 나눈 대화는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행동이 그녀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지긋지긋한 절차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국선변호인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원하시는 게 뭡니까? 구속적부심사? 아니면 집행유예?”
씨익.
법이 정한 피의자의 권리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채워 줄 것 같은 그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김미애 씨의 재판이 제 점수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조폭 일을 하며 검찰과 경찰 앞에서 내보이려 수도 없이 연습한 표정이었다.
혹시 모르지.
그런 미소가 지금 김미애 마음을 열지도.
“아! 그리고 저 그렇게 착하기만 한 놈은 아닙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역주행도 할 거고 신호도 무시할 겁니다. 들키지 않는다면 불법이 아니니까요.”
김미애는 고개를 숙였지만,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물론 역주행도 신호를 무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원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일 뿐.
“하하… 변호사가 그러셔도 돼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공간은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되며 원하는 욕망을 드러내도 문제가 없다는 걸요. 자! 제 속마음을 말씀드렸으니 김미애 씨도 속 시원히 말하는 걸 듣고 싶네요.”
“제가 원하는 건…….”
그녀의 입이 열리는 걸 확인한 나는 밀어 두었던 서류들을 앞으로 가져와 볼펜을 손에 들었다.
흠칫.
“아, 죄송합니다. 귀로만 듣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다시 치워 두자.
개인사가 타인의 메모지에 기록되는 걸 반기는 사람은 없겠지.
나 또한 구치소에 있을 때 국선변호인에게 온갖 하소연을 다 하고는 했다.
진심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피고인의 말을 들어 주고 믿어 주는 것은 오로지 변호사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또 메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중요한 워딩만을 골라 머릿속에 담으면 되니까.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고, 방황을 조금 많이 했어요. 대학도 가지 않았고, 남들이 대학에 다닐 때 사치와 허영심에 빠져 큰 빚을 지게 되었죠.”
“네.”
“은행 빚이 꽉 차고 집에 압류 통보 서류가 날아와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저를 잘나가는 집안의 남자와 연인 사이로 알고 있는 시골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제 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한심하다고 생각한 속마음을 결코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변호사의 의무이니까.
“결국… 사채를 썼습니다. 은행에서 까다로운 조건과 달리 사채에서는 꽤 큰돈을 빌릴 수 있더라고요… 물론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지만…….”
죄수복을 입고 있음에도 고운 피부와 화장을 안 하고도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녀의 값어치를 올려 줬을 것이다.
“그마저도 다 써 버리고 남은 건 명품들과 불어난 빚뿐이었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너무 늦었죠. 명품을 다시 팔고, 이리저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남은 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서라도 다 갚으려고 했는데… 이자가 원금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더라고요.”
“그래서 그자가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된 건가요?”
“네…….”
“성폭행과 폭행당한 사실은 맞습니까?”
“협박이었어요. 이자를 못 갚으면 때렸고, 김충기의 이상 성욕을 채워 주는 대가로 갚아야 했으니까요.”
“정당방위 주장이 더 힘들어지겠군요. 오고 간 금전 기록을 본 담당 검사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고.”
그녀가 말을 이어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짜로 역주행을 하거나 신호 위반을 하지 않는다면 목적지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아니요! 저는 무죄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말하던 김미애가 주먹을 꽉 쥐며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 것 같은 그녀의 표정과 함께 말이다.
“벌 받아야죠. 폭행에 못 이겨 한 행동이지만… 아니, 사실 그날도 참을 수 있었어요. 눈물 한 번 쏟고, 치마 한 번 걷어 올리면 끝나니까요. 제가 못 참았던 것은 지옥 같은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말씀은 법정에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이성을 잃은 채 김충기에게 달려들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피 묻은 옷이 아닌 죄수복을 입고 있었죠.”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끝까지 들어봐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는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당방위도 집행유예도 아니에요… 이런 인생을 만든 것은 저이고 그런 상황이 생길 줄 빤히 알면서도 따라갔으니까요.”
“그럼 뭡니까? 원하는 게.”
“저만 벌을 받는 게 싫습니다.”
“하하하.”
길고 긴 얘기 끝에 들은 마지막 그녀의 한마디는 웃음을 짓게 하였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웃어 주시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네요.”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고 비어 버린 공간에 채워 넣을 게 보이는 듯했다.
“김미애 씨가 원하는 걸 이제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불법 사채와 협박에 의한 성관계, 그리고 폭행과 불법 유흥업소 운영. 이런 죄들이 김미애 씨의 충동적인 범죄 때문에 묻히는 게 싫다는 말씀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