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489)
489화
시간을 조금 거슬러 묵향과 미라쥬가 봉인에 대한 단서를 얻은 그날 밤.
달조차 구름에 삼켜진 어두운 밤하늘 아래, 암복(暗服)을 입은 흑익의 무리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 무리의 선두에 있던 흑익의 부익주가 주변을 둘러본 후,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봉인지에 들어가기 전, 모두 사기(死氣)에 견딜 수 있도록 약을 복용해라.”
“네. 알겠습니다.”
“물건은 제대로 준비했겠지?”
“전부 확인 마쳤습니다. 다만,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아시다시피 점점 더 주기가 짧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전에 방도를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말의 내용과 달리, 부익주의 말에는 그리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시험장에서 깃털들을 상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이번 신입들은 어떻지?”
“전체적으로 아주 우수합니다. 순수한 역량으로만 보자면 역대 최고의 기수입니다.”
수하의 입에서 극찬이 나왔지만, 정작 부익주의 태도는 퉁명스러웠다.
“그런 당연한 걸 묻는 게 아니다. 그놈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부익주는 그렇게 말하며 깃털들에게 제공되는 숙소 방향을 바라봤다.
“아, 그것이라면…… 예상대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19호의 보고에 따르면 깃털 중 일부가 중앙 전각으로의 침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잡지는 않았겠지?”
“네. 지시해 주신대로 방관만 하는 중입니다.”
“흥.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군. 쥐새끼 같은 놈들 같으니.”
중얼거리는 부익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이번 신입들 중 일부가 이런 식으로 나오리란 건, 흑익의 수뇌부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의 분류는 이루어졌나?”
“넷. 지금까지 파악한 것으로는 길리안트 제국에서 4명. 루인데리아 연방국에서 8명. 제노니아에서 3명. 성신국에서 2명. 그 외 다른 중소국가 소속이 8명입니다. 전원 왕실과 관련된 자들입니다.”
“호. 제법 많이 몰렸군.”
“네. 미끼가 미끼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권력자와 암살자는 참으로 묘한 관계다.
흑익의 주 고객은 각국의 고위 권력자들이었고, 그들은 돈 혹은 다른 무언가로 흑익을 부렸다.
정적(政敵)의 중요한 치부를 구입해서 실각시키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는 암살까지도 의뢰한다.
대가를 지불한다는 전제하에 다루기 좋고 성능도 좋은 무기인 셈이다.
하지만 아주 크나큰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바로 그 검이 언제 자신을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
나의 정적이 거액을 투자해서 혹시 나의 암살을 의뢰하진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 암살을 막을 수 있을까?
제아무리 높은 권력과 부를 가진 이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었다.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암살자였고, 그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 흑익은 좋은 도구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저런 위험한 것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흑익의 정보를 알아내야 해. 이용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모조리 없애 버려야…….’
각국의 권력자들은 어떻게든 흑익의 정보를 손에 넣으려고 애썼으나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흑익은 그 강함만큼이나 은밀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권력자들이 흑익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돌연 흑익에서 새로운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각국의 권력자들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르고 고른 엘리트를 선발해서 가짜 신분을 만든 후, 이곳에 참가시킨 것이다.
때문에, 현재 교육을 받는 신입 깃털 중 약 절반이 각국 고위 권력자들의 끄나풀이었다.
“추한 늙은이들의 욕심에 젊은 피들이 사라지게 되겠군. 안타까운 이야기야.”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모든 것이 흑익의 계획이었다.
흑익이 오랜 세월 대륙 최강의 암살집단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강함보다는 조직의 은밀성에 있었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된 탓에 극소수의 수뇌부만이 모든 기밀을 알 수 있는 구조다. 때문에, 흑익의 정보는 같은 흑익대원이라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은밀한 조직의 신입 모집 소식이 세간에 퍼진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흑익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작해서 뒷세계에 뿌렸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험과 교육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 것이었고.
이것이 이번 시험의 전말이었다.
새로운 신입 같은 건, 생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의 별거 아닌 목적이었고, 이런 일을 벌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각국에서 심은 놈들은 다음 시험에서 일망타진하겠다. 모조리 고문해서 정보를 빼 오도록.”
“알겠습니다.”
“‘제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놈들은 절대로 죽이지 마라. 귀한 자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 밖에 보고할 것은……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낚여 든 것들 중에 이방인이 둘 있다고 했나?”
“네. 4번 깃털과 38번 깃털입니다.”
“재밌군. 이방인이 이곳까지 도달할 수준이 되었다니. 그놈들은 어떻지?”
“두 놈이 극과 극입니다. 4번 깃털의 경우,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좁은 소견으로는…… 정말로 다음 대의 암왕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하의 말에 부익주가 처음으로 놀랐다.
“호. 그 정도라고?”
“예. 개인적으로는 제물로 버리기에 너무 아까웠습니다. 제대로 다듬어 날개로 쓰는 것이…….”
“그만. 판단은 내가 한다.”
“명(命).”
“아무튼 재밌는 놈이 나타났군. 그럼 나머지 한 놈은?”
“38번은 평범합니다. 재능은 있으나…… 그 정도의 재능은 그리 귀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평범한 것이 최고의 재능이 될 수도 있는 곳이지. 좋아. 그 두 놈은 현재 숙소에 머물고 있나?”
“네. 보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이 외에 더 이상 따로 보고드릴 만한 사안은 없습니다.”
“좋다. 휴식은 여기까지. 모두 약을 복용했다면 봉인지로 이동…… 음?! 누구냐!”
그 순간이었다.
슉!
부익주가 왼쪽 수풀을 향해 빠르게 비수를 던졌다.
파바바박!
“……다람쥐였나.”
비수를 던진 수풀에서 검은색 다람쥐가 튀어나와 멀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과민했다는 것을 확인한 부익주는 비수를 회수해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자, 다시 봉인지로 출발한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듯 이어지는 행렬.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익주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말았다.
평범한 다람쥐는 부익주 수준의 강자가 던진 비수를 피하는 게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뀨웃…… 뀨!”
“휴. 위험했어. 향. 조심히…… 조금 멀리서 따라가자.”
“뀻!”
그렇게 각자의 의도를 품은 채로 시험의 날이 다가왔던 것이다.
* * *
“미안한 이야기다만, 이번에는 따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시험이 시작되기 바로 전, 지크아이젤은 카르페에게 다가와 그렇게 말했다.
첫 시험에서 임시 동맹이 결성된 이후.
그동안의 수업에선 조를 짜야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카르페와 지크아이젤은 그때마다 페어를 이뤘었다.
이번 시험 역시 합동으로 산을 돌파하는 게 유리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크아이젤이 단독 플레이를 요구한 것이다.
“어째서?”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가 있다. 미안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말해 줄 수 없군.”
“흐음.”
카르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내심은 완전히 반대였다.
‘캬. 타이밍 좋네요. 안 그래도 혼자 다녀야 했는데.’
-흠. 쟤는 뭔 퀘스트를 받았길래 저러는 거지?
‘쟤도 뭘 찾아야 하나?’
‘설마 지크아이젤도 마도왕의 유물을 노리고 온 것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뇌리에서 지워 버렸다.
지금까지의 대화와 관찰로 판단하건대, 지크아이젤은 드렛슈와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퀘스트 잘해.”
“고맙군. 너도 꼭 정상에 도착해라.”
그렇게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난 직후,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정상을 향해 달려라!”
슈욱!
이번 시험은 빠르게 도착한 순서대로 높은 점수를 얻는 방식이었다.
시작 호령이 나옴과 동시에 모두가 빠르게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슬슬 됐나?”
정상을 향해 달린 지, 약 30분. 처음에는 사람들이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이제 카르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러했다.
“후. 그럼 진짜 본 게임을 시작해야지.”
다른 참가자들이 열심히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카르페는 열심히 유물을 회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와.”
카르페가 정확하게 말했으나 사방은 그저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카르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안 나와? 설마 안 들켰을 거라 생각했어?”
“……의외로군. 38번.”
탁.
카르페의 말에, 누군가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이번 시험에 참가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처음부터. 그렇게 노골적으로 따라오는데 눈치를 못 챌 리가 있나?”
“흐. 그걸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왔단 말이지? 이거 나도 꽤 얕보였군.”
카르페를 미행한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였더라. 7번이었나? 아냐, 11번? 쓰읍. 진짜 치매인가.
‘저도 기억 안 나네요. 솔직히 몇 번이든 알 게 뭐야.’
-그건 그렇지.
예비 흑익 대원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는데, 상위의 번호일수록 최초 시험에 고평가를 받았다는 뜻이었다.
즉, 이 남자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래서 목적은……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나?”
“흐흐. 그래. 38번. 날 너무 원망하지 마라. 이 시험은 애초에 그런 시험이니까.”
스르릉.
7번인지 11번인지 모를 암살자는 자신의 무기를 품에서 빼 들었다.
“순순히 네놈이 가진 증표를 내놓아라. 그렇다면 최소한 고통 없이…… 컥!”
“거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네. 암살자란 놈이 입으로 싸우나?”
퍼억!
창룡보를 밟아 순식간에 품을 파고든 카르페의 주먹이 암살자의 복부에 작렬했다. 암살자는 배를 관통하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까스로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내가 반응조차 못 할 속도라고?’
솔직히 조금 느슨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38번은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느슨한 마음을 고려해 봐도 이건 말이 안 됐다.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보인단 말인가?
‘뭔가 잘못됐다!’
습격자는 단 한 수에 그것을 깨닫고 말았다.
“어, 어떻게…….”
“넌 암살자 못 해 먹겠다.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누굴 암살해?”
“설마……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어째서 그런 짓을?”
“이쪽 세계에선 그게 좀 유행이거든.”
힘숨찐이라는 현대 문화를 설파한 카르페가 자비 없이 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미리 사과할게. 난 너처럼 고통 없이 보내 주는 재주가 없거든.”
“끄아아악-!”
이름 모를 암살자의 목소리가 숲속에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