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카르페가 KD 길드와 만나기 바로 직전쯤.
해변 도시 루아나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흉흉한 기세를 뿌리고 있었다.
“KD 새끼들 도를 넘었어.”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를.”
KD라는 강력한 길드가 바람 동굴을 통제하는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
손가락만 빨면서 분을 삭이기에는 바람 동굴이라는 꿀단지가 너무 먹음직스러웠으니까.
저런 달콤한 꿀을 누군가가 독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파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혁명을 꿈꿨다. 저 간악한 놈들의 손으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 말리라!
‘반드시 성공시킨다!’
채널 라세에 존재하는 무수한 하꼬 스트리머 중 하나인 질리언은 직감했다.
지금 자신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거라고.
“후우.”
질리언은 루아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각양각색의 클래스를 가진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는 건 고딩 시절 회장 선거에 나갔던 이후 처음이었다.
‘된다! 이건 된다!’
계기는 사소했다.
평소처럼 라세 생방을 하다가 KD 길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10명도 되지 않는 생방 시청자들과 KD를 욕하는 와중에 ‘KD 놈들 죄다 거품이야! 붙으면 내가 이길걸?’이라고 그냥 해 본 말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됐다.
-진짜 농담하는 게 아니고, 지금 방송 보는 사람들 뭉쳐서 덤비면 그냥 밀어낼걸?
-ㄹㅇ 해 볼까? 친구 중에 43렙 있는데 히든 클래스임. PvP 특화 직업이라서 몹은 잘못 잡아도 사람은 잘 잡음. 할 거면 친구한테도 말함.
-나도 히어로 무기 있음 ㅋㅋ 솔직히 동렙에선 딜 안 밀릴 자신 있지.
-진짜? 진짜로 하는 거야?
장난삼아 던진 한마디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누군가 그랬던가.
인간관계는 여섯 계단만 거치면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시청자가 고작 10명도 되지 않는 방이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소식이 타고 흐르면서, 이렇게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다!
‘올해 관운(官運)이 터진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얼마 전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어간 사주 카페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지금 우주의 기운이 몰리고 있다고.
조만간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것인데 잘 잡으면 평생을 높은 지위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기회가 정말 찾아오고야 말았다.
‘절대 놓칠 수 없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
질리언은 이 우주의 기운을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고, 곧바로 길드를 창설했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KD 길드와 관련된 영상을 전부 연구했고, 관련 찌라시와 정보를 취합했다.
덕분에 놈들의 현재 인원과 장비 상태, 주의해야 할 인물 등 중요한 정보는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전쟁…… 우리의 승리다! 남은 것은 오로지 진격뿐이다!
질리언은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바람 동굴의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비가 좋지 않아도, 직업이 좋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압박감을 느낄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질리언은 좌중을 한번 둘러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에서 강렬한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전쟁은 루아나뿐만 아니라 라세의 전 유저가 주목할 것입니다! 통제라는 행위는 여기 바람 동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라세에는 무수한 던전이 있고 무수한 통제가 있으며 또한 우리 같은 선량한 피해자도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던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따라 혓바닥은 또 왜 이렇게 부드럽게 돌아간단 말인가.
과거, 통제 길드와 맞서 싸웠던 다른 게임의 연설문을 참조해 달달 외운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아이템도 평범하고, 배후령과 직업 역시 평범합니다. 하지만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이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그리고 장렬하게 전사하겠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거대한 혁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이 자리에 있었노라고!”
질리언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후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와아아아-!”
지렸다. 그야말로 완벽한 연출이었다.
누군가 클립으로 따서 두고두고 회자될 명연설이었다.
시야 구석을 흘긋 쳐다보자, 실시간 스트리밍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나는 죽겠지.’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영상은 남을 것이고, 사람들은 자신을 혁명의 선두주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 중소기업이야!’
아니, 정말 천운이 따라준다면 단번에 대기업이라 불리는 천외천 스트리머가 될지도 몰랐다.
지긋지긋한 밑바닥 하꼬 스트리머에서도 드디어 탈출인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KD 길드를 밀어내고 난 후에 들어올 보상도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통제해야겠지?’
연설할 때는 독재로부터 해방이니 뭐니 했지만, 실제로도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또 통제를 시작할 테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자기가 직접 나서서 ‘공명정대’하게 관리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질리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오늘 참여한 사람들 먼저 충분히 먹은 다음에.’
KD가 이렇게 적이 많은 것은 손에 넣은 과실을 조금도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놈들이지.’
원래 다 삼키려고 하면 탈이 나는 법. 자신은 그런 멍청한 무뢰배들과 달리 일반 유저들에게도 던전은 공유할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입장료를 한 50골드쯤 받으면 되려나? 100골드는 너무 많은 거 같고.’
사람들은 이만큼 자애 넘치는 길드가 없다고 자신을 칭송할 것이다.
질리언은 행복 넘치는 청사진을 그리며 이 순간을 즐겼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천마 TV만 아니었어도.’
하필이면 어제 엘프 영상이 터지고 만 것이다.
원래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예정이었지만 죽어도 엘프를 보러 가야겠다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인원이 조금 줄고 말았다.
‘우매한 인간들 같으니.’
대의를 위한 싸움을 눈앞에 두고 그깟 NPC에 홀려서 불참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원인을 제공한 천마 TV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드가 커지고 나면 적당히 트집을 잡아서 척살령이나 한번 때려 봐?’
음. 아니지. 영상 하나 올린 거 가지고 너무 과한 처사였다. 그냥 사과받는 정도로 끝내는 게 맞겠다.
질리언은 스스로의 자비심에 흡족해하며 군중들을 바람 동굴로 이끌기 시작했다.
* * *
“거의 다 왔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바람 동굴까지는 약 5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지금 바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혹시라도 저쪽이 미리 대처하고 있으면…….”
“그럴 줄 알고 제가 30분 전쯤에 정찰을 보내 놨습니다. 입구에 약 10명 정도 있다는 모양입니다. 다들 한껏 방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는군요.”
“오오! 과연 질리언 님!”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물론, 그 정찰병이 던전 입구를 지키던 대검 남자에게 30초도 못 버티고 로그아웃 당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질리언은 정찰병이자 자신의 현실 친구인 수현에게서 온 메신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야, 창식아. 이거 진짜 가능성 있는 거 맞아? 이놈들 진짜 센데?
-이 새끼. 또 오바질 하네. 그놈들 센 거야 원래부터 유명했잖아.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라니까? 우리가 아무리 100명이 넘어도, 이런 놈들 40명만 있어도 처발릴 것 같은데…….
-쯔쯔. 그 비관적인 사고 습관은 언제쯤 고칠래? 아무튼 고생했고, 내 방송이나 보고 있어라. 전략이란 게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아닌데…… 진짜 아닌데…….
질리언은 거기까지 대화한 후 메신저를 꺼 버렸다.
그야 당연히 세겠지. 히어로 템에 컨트롤도 제법 받쳐 주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전쟁이란 건 개인의 무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 봤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전쟁이란 건 결국엔 쪽수!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 전술로 승부를 봐야 하는 법이었다.
‘10명쯤이라고 했지?’
그 정도 숫자면 아무리 강해도 물량으로 조질 수 있었다.
그 후는 쉽다. 바람의 동굴은 입구가 단 하나밖에 없고, 그 입구는 아주 좁았다.
입구를 지키는 인원을 정리한 다음에 우리 쪽에서 입구를 틀어막으면 그걸로 끝.
안쪽에 있는 놈들은 제대로 된 보급도 받지 못하면서 몬스터와 무한히 싸우다 자멸하게 되리라!
질리언은 자신이 세운 훌륭한 전략에 흡족해하며 외쳤다.
“정의 구현이 코앞입니다! 전군 돌격!”
“와아아아-!”
하지만 질리언의 원대한 계획은 초장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장한 각오와 함께 달려온 동굴의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동굴의 입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려 있었다.
“엥?”
“질리언 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어, 어?”
모두들 당황했지만 당황하기로는 질리언이 가장 당황했다.
여기서 기념비적인 첫 전투가 벌어져야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동굴 입구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와 갈라진 땅은 전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꿀꺽.”
선두에 선 무리 중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바닥에는 사망한 플레이어가 떨군 아이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히어로 등급으로 보이는 물건도 몇 개 있었다.
“과, 과연! 질리언 님. 정찰 임무를 맡은 분들이 정찰로 끝내지 않고 문지기들을 죄다 정리한 것이로군요!”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자 군중들은 그게 맞다는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과연!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된다!”
“얼마나 강한 분들을 섭외하셨길래…… 질리언 님의 인맥에 감탄했습니다!”
“격렬한 전투 와중에 아이템 줍기가 힘들긴 하지.”
선발대들은 격렬한 전투 후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이기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더 많은 KD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그렇다면 후발대 된 도리로서 전장을 정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 그래. 일단 아이템 챙겨 놨다가 그분들께 돌려 드리자고.”
몇몇 유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이템 쪽으로 걸어갔다.
하는 말과 달리 그들의 눈빛에는 욕심이 그득했다. 아이템을 줍는 그 순간 로그아웃할 게 틀림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휙-!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색이 지나간 자리에 엤던 아이템이 싹 사라졌다.
“이게 무슨?!”
“저건 뭐야!”
히어로 등급 장비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검은 무언가를 아이템을 죄다 싹 쓸어 먹었다.
그리고.
“뀨?”
검은 무언가, 묵향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그대로 동굴 속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
“…….”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반응이 늦고 말았다.
“자, 잡아야지!”
그리고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곧바로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가려고 했으나.
“역시, 일행이 있었구나! 저런 괴물 같은 놈이 갑자기 튀어 나왔을 리가 없지!”
그보다 한발 먼저, 동굴 속에서 KD 길드원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그들의 기세는 무척이나 흉포했다.
“랭커 출신의 2회차 캐릭으로 어그로를 끈 다음,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면 후발대로 입구를 틀어막는다는 작전. 적이지만 대단한 전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쪽 브레인이 먼저 간파했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이곳으로 끌고 왔으니 각오해라!”
“감히…… KD에게 거스르다니. 게임 접을 각오는 하고 온 거겠지? 얼굴 딱 기억했다. 눈에 띌 때마다 죽여 주마.”
생각보다 훨씬 험악한 기세에 선두에 있던 질리언이 횡설수설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지금 막 왔다고! 일행 같은 거 없어!”
“어이가 없군. 지금 와서 그런 거짓말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나?”
“문답무용! 전부 죽여라!”
“그러니까 아니라고! 젠장! 우리도 돌격!”
질리언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저쪽이 달려드는 이상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상한 전투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질리언의 억울한 목소리가 동굴 입구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시각.
“크아악!”
“미친. 뭐, 이딴 괴물이…… 컥.”
바람 동굴 내부에서 카르페는 덤벼드는 KD 길드원을 때려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바람의 정령들이 선공 몬스터였던 탓에 KD에게 이끌린 몬스터들이 자동으로 카르페에게 배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캬. KD 다시 봤다. 이 집 던전 잘하네. 손님 대접이 일품이네요.”
길드원이 덤벼들어서 아이템을 떨궈 주고, 혹시 경험치도 섭섭할까 봐 몬스터도 배달해 준다.
“이게, 이게 게임이지!”
어쩐지 입구 쪽이 조금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카르페는 오늘도 평화롭게 행복 라세를 구가하고 있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