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27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27화
127. 배우들
사람은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아닌데?
뭔가 이상한 곳에 와버린 것 같은데?
지금의 서아린이 딱 그런 심정이었다.
둠칫둠칫-
졸지에 동료 배우의 손길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대낮과 다르게 어두컴컴한 클럽.
둠둠거리는 비트음이 건물을 울리고 있었지만 춤추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클럽은 왜 왔어?”
“잔말 말고 따라와. 좋은 사람 소개해줄 테니까.”
느낌이 싸했지만 서아린은 홍선아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느낌뿐일 수도 있고, 만일의 경우 빠져나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에.
‘나한테 그만한 힘은 있으니까.’
37레벨의 소환술사라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여기야.”
홍선아가 이끈 곳은 VVIP 전용 프라이빗 룸.
문을 열자 자욱한 연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얘들아, 데려왔어.”
“응? 이게 누구야? 그 유명한 서아린 아니야?”
“오오, 정말 데려왔네?”
“와, 화면보다 실물이 더 이쁘네!”
널브러진 술병, 지저분한 테이블.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취객처럼 바닥에서 자는 사람 등.
사람이 당황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금의 서아린이 그랬다.
‘얼떨결에 선아가 이끄는 대로 오긴 했지만…….’
이런 난장판이 펼쳐져 있을 줄은 그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황스러운 것은.
‘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잖아?’
자리에 있는 여섯 명 전부가 나름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점이었다.
쏴아아-
“누가 왔다고?”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자 배우와 서아린의 눈이 마주쳤다.
“구, 구연승 선배님?”
이걸로 일곱 명.
한 명 추가됐다.
“아린이잖아? 온다고는 들었는데 정말로 왔네?”
“제가 데려온다고 했잖아요. 구 선배.”
뒤에서 홍선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이거 복출이가 오면 좋아하겠어?”
“복출인 어디 있는데요?”
“똥 마렵다고 화장실 가더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서아린은 지금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앉아. 왔으니까 술이라도 해야지.”
“아니요, 전 됐어요.”
장소가 어둡긴 해도 밖은 엄연히 대낮인데 술이라니.
무엇보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기에 서아린이 선을 그었다.
“선아야. 재밌게 놀아. 미안하지만 먼저 갈게.”
“야, 가긴 어딜 가?”
“그래요, 아린 씨. 여기까지 왔는데 술이라도 한잔해요. 아니면 대마초 한 대 피울래요?”
“예?”
황당해진 서아린이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아니요, 저 담배 못해요.”
“이건 담배 아니야. 아니면 술이라도…….”
“술도 못해요.”
“X랄하네, 미친년이. 구 선배가 이렇게 권유하면 마시는 척이라도 해라, 쫌.”
순간 서아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슨 년?’
홍선아의 입이 거칠긴 했지만, 욕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지금의 홍선아는 달랐다.
그동안의 얼굴은 거짓이었다는 듯 자신을 보며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아니, 미소라는 아름다운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저건 명백한 비웃음이다.
“X발 년이 내가 웃으면서 좀 어울려 주니까 아주 X으로 보였지?”
서아린은 대답 대신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플레이어들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출구를 막고 서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보면 몰라? 너 못 나가게 막고 있잖아.”
“왜 이러는 건데?”
“왜 이러냐고? 하하, 여기 오는 애들은 다 똑같은 말뿐이네? 자기가 왜 함정에 빠졌는지 몰라요. 아, 그만큼 내 연기가 죽여줘서 그런가?”
조금 전까진 긴가민가했지만 홍선아의 태도로 확실해졌다.
자신은 함정에 빠졌다는걸.
서아린이 힐끔 주변 배우들을 살폈다.
표정과 눈빛에서 음흉함이 느껴진다.
‘전부 한통속이야.’
서아린의 시선이 자연스레 구연승에게로 옮겨갔다.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이자 선배였으니 함정이라면 그의 주도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후후, 아린 씨.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요. 눈치챘겠지만 전부 한통속이거든요.”
자신의 눈빛을 구호 신호로 오인했는지 자진해서 말한다.
순간 서아린의 머릿속에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아, 어쩌면…….’
통할지 모르지만 써먹어 봐야 한다.
서아린의 표정이 금세 겁먹은 강아지처럼 변했다.
“저,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구연승이 웃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그저 살기 위해서 자연스레 터득한 생존 전략이라고 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플레이어들은 매 라운드 절반씩 죽어 나가죠?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그런데 이런 생각 안 해봤어요?”
구연승이 씨익 미소 지었다.
“소멸한 플레이어들의 아이템이 아깝다는 생각.”
“…….”
“안 그래요? 저는 생각하면 너무 아깝던데. 그동안 얻은 골드와 아이템들, 그게 전부 소멸하여 사라지는 거잖아요. 똥도 거름으로 쓰이는 마당에 녀석들이 가진 아이템은 어떤 거름도 되지 못하고 그냥 증발해버리고 말아요. 그럴 바엔 거름처럼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해 쓰이면 좋지 않겠어요?”
서아린은 뒤늦게 이들의 목적을 눈치챘다.
“그러니까…… 어차피 소멸할 플레이어라면 아이템을 갈취하자? 이런 건가요?”
“오우, 지능 스탯 좀 찍으셨나? 벌써 다 이해하셨네. 다른 배우들은 이렇게 말해도 모르던데.”
“다른 배우들? 이 짓을 저 말고 다른 배우에게도 했단 말이에요?”
“그럼요. 아쉽지만 서아린 씨는 33번째 희생양일 뿐입니다. 이미 앞서 32명의 선후배나 동료 연예인들이 저희에게 아이템을 주고 가셨죠.”
몰랐다.
서아린은 털썩 소파에 주저앉으며 뒤통수 맞은 표정을 연기했다.
“그, 그 말은 동료 연예인들을 죽였다는……?”
“맞아요. 모두 죽였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서아린 씨도 곧 뒤따라갈 테니까.”
“아아…….”
충격받은 표정으로 서아린이 얼굴을 감싸며 몸을 수그렸다.
그러면서 테이블 밑으로 몰래 페어리 두 마리를 소환했다.
전혀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듯 자리에 있던 배우들이 킬킬 웃었다.
“가진 아이템만 순순히 내놓으시면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비협조적으로 굴면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왜 동료 배우들을 죽이면서까지…….”
“이러는 이유요? 이유야 많죠. 첫째,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연예인이 뒤통수치기 좋다. 둘째, 좋은 아이템이 있어야 다음 라운드에서도 생존할 확률이 올라간다. 셋째, 아까도 말했듯이 소멸할 아이템들이 아깝다. 넷째,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려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섯째, 의외로 재미있다.”
“…….”
“우리가 언제 사람을 겁박해보고 죽여보겠어요? 항상 팬들의 시선이나 의식하면서 살았지, 이런 자극적인 행위를 할 수나 있었겠어요?”
“동료들이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이 연기를 하는 동기이자 선후배들인데…….”
“아아, 서아린 씨는 처음부터 떠가지고 모르겠구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어떤 건지.”
구연승의 얼굴에서 어느새 미소가 사라졌다.
“무일푼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연극배우의 삶이 어떤지 모르죠? 언젠가 뜰 거라는 불확실한 미래만 바라보며 시궁창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배우 지망생의 삶이 어떤지 모르죠? 저는 알아요. 전부 경험해 봤고 노력해서 힘들게 뜬 케이스니까.”
“…….”
“그런데 그렇게 겨우 이룬 꿈이 한순간에 박살 났다면 어떠시겠어요? 세상이 망조를 보이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장기적인 작업은 꿈도 못 꾸고 광대처럼 예능을 찍거나 광고로 먹고살아야 하는 배우의 삶이란? 당장 다음 라운드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나 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고 한다면? 정말 절망스럽고 허망하겠죠?”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 사람들이에요. 겨우 이룬 일자리를 잃어버릴 처지에 처한 사람들. 연기에 진심이었지만 노력에 배신당한 사람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생존을 위한 몸부림뿐이죠. 남을 짓밟아서라도 생존하는 게 남아 있는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죠.”
“…….”
“그런데 마침 남을 짓밟기 좋은 무대가 마련되었네요? 흔적 지우기라는 사기 스킬도 배울 수 있고 말이에요. 이러니 죽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동료 배우를 줄이면 연예인의 희소성이 올라가고 자연히 우리 몸값도 치솟게 되죠. 현실의 몸값도 오르고 이계에서 쓸 아이템도 마련하고, 이만한 일석이조가 어디 있겠어요? 큭큭.”
“…….”
반박할 말은 많았지만 서아린은 말없이 연기에 집중했다.
두렵고 무섭다는 듯 몸을 움찔움찔 떨어댔다.
그동안 배웠던 연기를 이 순간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듯, 혼신의 연기를 다 했다.
“그래서…… 저한테서 아이템을 빼앗고 죽이겠다고요?”
“물론입니다.”
서아린이 이제는 해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 이거 몰카죠?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인가요? 아니면 너튜브? 누가 농담이라고 말 좀 해주세요.”
“킥킥,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홍선아가 빈정거리며 서아린에게 다가갔다.
짜악-
곧장 이어진 싸대기에 피가 튀며 고개가 돌아간다.
손바닥에 실린 힘을 보니 결코 장난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야 이, X발 년아. 우리가 장난치는 거 같아? 손가락이라도 잘라놔야 상황 파악을 하려나?”
“에이, 무슨 손가락이야.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주변 남자들이 음흉한 미소를 짓자 홍선아가 질색했다.
“하여간 남자들은 얼굴 좀 반반하다 싶으면 다 그 생각뿐이지? 이거 다 성형빨인데.”
“성형은 아무나 하나? 본판이 이뻐야 하는 거지.”
“그리고 성형빨이면 어때? 큭큭,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낄낄거리는 조롱 속에서도 서아린은 웅크리고 참았다.
수치스럽고 분하면서 동시에 두려움이 깃든 표정을 연기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구연승이 쓰읍-하며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너희들. 왜 벌써 겁을 주고 그래? 아린 씨? 걱정하지 마요. 아이템만 전부 내놓으면 곱게 죽여드릴게요. 저놈들이 건들지 못하게 제가 책임지고 막을게요.”
“…….”
“왜요? 표정을 보니 싫은 모양이네? 걸레처럼 험한 꼴 당하고 죽는 것보단 아이템 내놓고 곱게 죽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저, 정말 아이템을 주면 곱게 보내준다고요?”
“예. 아 참, 그런데 제가 말 안 한 게 있어요.”
“어떤…….”
“장복출 알죠? 얘가 아린 씨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언론에도 이상형이라고 얘기해놨고. 그래서인지 서아린 씨가 온다고 했을 때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
“그러니까 얘가 하자는 대로 한 번만 해줘요. 그 정도는 죽기 전에 해줄 수 있죠?”
“그게 무슨…….”
“불쌍하잖아. 무명 배우였다가 연기가 아닌 플레이어로서 살아남아서 떴다는 게. 그런 애가 서아린 씨를 이상형이라고 지목했는데 그 정도도 못 해줘요? 어차피 죽을 건데 가기 전에 한 사람 소원 들어주고 가면 서로서로 좋잖아. 안 그래요?”
“…….”
“대답 안 하면 하겠다는 걸로 알게요. 어차피 그쪽한테 선택지는 없지만.”
“…….”
“그렇다고 저항할 생각은 말아요. 저희가 몇 명인지 보이죠? 복출이까지 오면 아홉 명이에요. 레벨은 전부 35 이상이고. 선아한테 듣기로 서아린 씨는 37이라던데, 우리한테는 안 되지 않겠어요?”
“사, 살려주세요. 제, 제가 잘못했어요.”
서아린이 눈물을 보이며 두 손을 비볐다.
뒤늦게 현실을 직시한 모습.
배우들의 입에서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엔 다 이렇다니까?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아니, 목숨을 구걸하려거든 아이템부터 내놓는 게 순서 아닌가?”
“드릴게요. 드릴게요.”
서아린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는 척을 하다가 슬쩍 눈치를 봤다.
때가 됐다.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착용!’
시동어와 함께 서아린의 몸이 장비들로 감싸졌다.
츠으으읏-
갑작스러운 무장에 사람들이 놀라기도 전에, 대기 중이던 페어리들이 테이블 밑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그 귀여운 것들이 구연승을 향해 곧장 빛의 광선을 날렸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으윽!”
살갗이 타는 소리와 함께 구연승이 비명을 질렀다.
팔을 들어서 막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눈알이 타버렸을 거다.
“이 개 X발 년이! 잡아!”
구연승이 소리치기도 전에 이미 배우들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아린이 내심 놀랐다.
‘대처가 빨라.’
아무래도 자신이 저항할 걸 염두에 두고 있던 모양.
급히 골렘을 소환한 서아린은 문 앞에 있던 남자 배우부터 밀어버렸다.
쿵-!
“억!”
난데없이 나타난 1.5m의 골렘이 온몸으로 박치기를 하자 남자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지체없이 문고리를 잡은 서아린이 문을 열어젖혔다.
애당초 이들과 정면 대결할 마음은 없었다.
기회를 봐서 빠져나갈 생각뿐이었지.
‘됐어, 이제 빨리 나가면……!’
그러나 문턱을 밟기도 전에.
촤라라락-
서아린의 몸에 검은 사슬이 휘감겼다.
“X발 년이, 어딜 도망가려고.”
사슬의 주인은 구연승이었다.
여태껏 흑마법사인 그의 손길을 벗어난 연예인은 아무도 없었다.
“X발, 내가 너 같은 년들 한두 번 상대해 본 줄 알아? 꼴에 플레이어라고 다들 저항할 궁리나 하더라고. 너는 좀 다른 줄 알았는데 X발, 여자의 눈물에 깜빡 속아버렸네?”
“이익!”
서아린이 페어리들을 부리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고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미 구연승의 검은 화살에 소멸되어버렸음을.
와르르르-
골렘도 어느새 플레이어들에게 부서져 돌무더기로 돌아갔다.
‘아아, 어쩌지? 소환수가 전부 죽어버렸어.’
소환수를 다시 소환하려면 10분의 쿨타임을 기다려야 한다.
일분일초가 위급한 상황에 그만한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왜? 다시 소환해 보지, 그래? 아아, 쿨타임 때문에 못하나 봐?”
“…….”
“그러면 이제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되겠네?”
“형님, 복출이한테 양보하기로 했잖아요.”
“마음이 바뀌었어. 언제 또 소환할지 모르는데 복출이가 오기까지 기다릴 순 없지.”
구연승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동료들에게 명령했다.
“남자들은 준비해. 이 X발 년한테 치욕이 뭔지 보여주자고.”
“흐흐, 좋죠.”
“기다리던 바입니다.”
남자 배우들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나섰고 홍선아는 히죽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팔다리를 붙잡는 남자들을 보며 서아린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아, 이렇게…….’
허망하게도 탈출 계획은 실패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열려 있던 문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배우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익히 아는 얼굴, 장복출이었다.
“어? 복출아! 여기 네가 좋아하는 서아린…….”
배우들이 반색하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의 뒤로 흰색의 가면을 쓴 괴한이 서 있었으니까.
“누구…….”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장복출의 고개가 지탱하지 못하고 폭 꺾였다.
시체였다.
가면을 쓴 괴한은 다름 아닌 장복출의 시체를 들고서 나타난 것이었다.
“장복출이라는 새끼, 너희들 친구 맞지?”
철퍼덕-
손을 놓자 장복출이 힘없이 널브러졌다.
“너, 너 누구야?!”
“맞나 보네.”
가면을 쓴 괴한이 손을 휘적이자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흔적 지우기였다.
“어디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더니. 여기에 모여 있었군.”
“누구냐고 묻잖……!”
순간 구연승이 말을 삼켰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 침묵이 흘렀다.
누구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가면을 쓴 괴한의 손에는 어느새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