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17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17화
217. 13라운드 시작
2023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구는 금연, 공부, 운동을 목표로 세우겠지만 플레이어에게 그딴 건 사치에 불과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어디까지나 생존이었으니까.
‘새해에도 어김없이 13라운드가 시작됐군.’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무채색의 공간을 바라보며, 류민은 한숨을 쉬었다.
‘고작 저 앞에 보이는 인원이 전부라니.’
드넓은 공간에는 아직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적었다.
‘12라운드에서 너무 많이 죽었어.’
파티에 소환사가 없으면 통과하지 못하는 시련의 동굴 때문에 4분의 3이 소멸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
수많은 사람 앞에서 일일이 공략법을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었는가?
‘인원이 줄었으니 슬슬 다른 플레이어들도 챙겨야지. 주변 사람만 챙길 게 아니라.’
적어도 사신교의 신도들은 확실하게 챙겨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오픈한 13라운드 공략법이었고.
‘이번 라운드에서 절반, 다음 라운드도 절반이 살아남으면 2,500명 가까이 남겠군.’
하지만 문제는 15라운드다.
마의 15라운드에서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4분의 1.
대략 600명 정도가 되겠지만 미친 난이도 때문에 50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기에 총 스무 개의 라운드 중 마지막 라운드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라운드라고 볼 수 있었다.
‘15라운드에서 최대한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12라운드처럼 미달이 나게 해선 안 돼.’
되도록 600명을 꽉꽉 채워서 살려낼 작정이었다.
그래야 최종 라운드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보스전을 치를 수 있을 테니.
‘보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만큼 생존자가 많아서 나쁠 건 없겠지. 그래서 사신교를 챙기겠다고 하는 거고. 16라운드도 대비할 겸.’
한국 플레이어가 많이 살아남아야 16라운드를 피해 없이 깰 수 있다.
그렇기에 13라운드 공략법을 풀었고, 시킨 대로만 하면 수월하게 깰 수 있으리라.
‘잘하면 한국 플레이어 전원이 살아남을지도.’
물론 한국인만 챙긴 건 아니다.
크리스틴과 제프리, 러셀, 빅터, 존 델가도 등.
타국 플레이어에게도 쉽게 깨는 공략법을 알려줬다.
“검은 낫 님.”
방금 찾아온 민주리 역시도.
“왔나? 사신교 신도.”
“하하…… 신도라고 하니 어색하네요. 그냥 평소대로 민주주의라고 불러주세요. 아니면 편하게 이름을 부르셔도…….”
사신교에 가입할 때 신상을 모두 적었다.
이름을 모를 리가 없지만 류민은 고개를 저었다.
“나한텐 이름보다 민주주의가 더 편하다.”
“그런가요?”
싱긋 웃은 민주리는 류민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을 바라봤다.
경쟁자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12라운드까지 헤쳐온, 어떻게 보면 전우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모처럼 새해인데 이 많은 사람이 해돋이는커녕 생존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니…… 좀 서글프네요.”
“꽤 감상적이군.”
일침으로 들렸는지 민주리가 볼을 부풀렸다.
“보기와 달리 감상적이다…… 뭐, 그런 뜻인가요?”
“그런 말은 안 했다.”
민주리와 말싸움할 자신이 없었던 류민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저쪽에서 서아린과 허태석이 오고 있었다.
“검은 낫 님!”
“너희도 해돋이를 못 봐서 서글픈가?”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한 시간 때문에 어차피 해돋이는 못 보잖아요.”
류민 덕분에 다들 이번 라운드의 제한 시간이 10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면 이미 오전 10시인 것이다.
“아하, 민주주의 님이 해돋이 보고 싶다고 했구나?”
“그, 그런 말 안 했어요. 그냥…….”
“누구랑 보고 싶은데요? 혹시 남자친구?”
“나, 남자친구 없어요!”
“예? 민주주의 님처럼 아름다우신 분이 왜?”
“농담하지 마세요, 교주님.”
“농담 아닌데…….”
갑자기 사람 둘이 더 모였다고 왁자지껄해졌다.
정작 해돋이로 불씨를 키운 류민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사령술사는 잘하고 있겠지?’
류민은 노예가 된 존 델가도에게 한가지 명령을 내렸다.
이계에선 다른 사도를 만나지 말라는 간단한 명령이었다.
‘메시아 녀석들이 제프리를 노리게 둘 순 없지.’
놈들이 제프리를 노린다는 건 존에게 들어서 알았다.
혹시 몰라 꾸미는 일이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명령했던 게 주요했다.
‘이번 라운드에서 제프리를 붙잡아 심문할 속셈이었겠지만 안됐군. 나한테 이미 들통나버려서.’
제프리를 위치 추적할 수 있는 건 같이 파티했던 존 델가도뿐이다.
그런 존에게 사도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라고 일러두면?
작전을 쉽게 파투낼 수 있다.
대신 존이 미움을 받겠지만 말이다.
“검은 낫 님!”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엄준석과 주성탁, 얌띠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어서 크리스틴, 제프리, 조용호 일행까지 검은 낫을 찾아오자 사람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조용호가 붙으니 사람이 많아지네.’
누가 용병왕 아니랄까 봐 서른이 넘는 용병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물론 전원이 한국인이자 사신교 신도들이었다.
‘조용호만 내 편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휘하의 용병들까지 딸려오다니. 나쁘지 않군.’
안면을 튼 일행들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 천사가 나타났다.
[반가워요, 인간 여러분.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주셨네요!]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천사는 인간들을 놀려댔다.
[이런! 전 구역 통틀어 남은 생존자가 1만 명도 채 안 되다니! 저번 라운드가 좀 어려웠죠? 걱정 말아요. 몇 라운드만 지나면 금방 두 자리로 줄어들 테니까. 쿠후후훗.]“두, 두 자리?”
“미, 미친.”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한 천사가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듯 키득거렸다.
[쿠흐흐, 그럼 퀘스트부터 오픈해 볼까요?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니까 마음 놓으세요. 정말이에요.]믿으라는 듯 말한 천사가 날개를 펄럭였다.
◀ ROUND 13 ▶
└10시간 이내에 한 종족의 평판을 ‘매우 우호’까지 올리기
└???? 다수
└참가자 : 9,994
└달성자 : 0/4,997
간단한 퀘스트였다.
특히나 류민에게는 전 라운드를 통틀어 이보다 쉬운 퀘스트가 없었다.
‘이미 완료한 상태니까.’
[이번 라운드는 종족의 평판을 매우 우호까지 올리면 생존하는 퀘스트입니다. 다른 라운드에 비하면 참 쉽죠?]“매우 우호?”
“평판을 올릴 수도 있는 거였어?”
보통은 평판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평판이 오른 적이 없다면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류민은 8라운드 때 이미 엘프족과의 평판을 매우 우호까지 올렸었다.
엘프를 빼면 매우 우호를 달성한 것도 세 개나 되고.
‘특히 엘프족은 매우 우호를 넘어 영원한 동맹까지 올라갔지.’
모든 평판을 한 단계 올려주는 평판의 룬의 역할이 컸다.
그렇기에 이번 라운드에서 류민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퀘스트를 통과한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종족 평판은 중립이 기본이에요. 여기에 해당 종족에게 호감을 사는 행동을 하면 우호적이 되고, 그다음 단계가 매우 우호적이 되는 거죠.]중립에서 매우 우호까지는 두 단계.
‘두 단계나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말처럼 쉬운 라운드는 아니었다.
그래서 10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진 거고.
하지만 류민에게 공략법을 들은 사신교의 입장은 조금 다를 거다.
‘평판을 빠르게 올리는 퀘스트들을 알려줬으니까.’
마침 천사가 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판타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서브 퀘스트를 하는 미션은 전에도 해봤죠? 그런 식으로 특정 종족이 좋아할 만한 서브 퀘를 하다 보면 평판이 쌓일 거예요. 덤으로 퀘스트 보상으로 경험치와 골드, 아이템도 얻을 수 있고요.]“평판을 올리려면 퀘스트를 해야 한다?”
“그냥 한 종족만 골라서 미친 듯이 서브 퀘스트를 깨는 수밖에 없잖아?”
[물론 퀘스트의 난이도에 따라서 올라가는 평판과 보상은 상이하니 알아서 잘해보시고요. 결론은 10시간 이내로 한 종족의 평판을 매우 우호까지 올려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길.]“10시간이나 주어진 건 그만큼 올리기 어렵다는 거겠지?”
“끄응…… 이거 쉽지 않겠는데?”
대부분이 불빛도 없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이겠지만 공략을 들은 170명의 사신교 신도들은 아니었다.
최소한 어떤 퀘스트를 해야 빠르게 달성하는지 길은 알고 있었으니까.
[노닥거릴 시간은 없을 거예요. 평판을 최대한 빨리 달성하는 순서대로 생존자 명단에 올라갈 테니까. 뭐, 이미 달성한 인간이 있다면 10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겠지만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어?]말하던 천사가 달성자 명단을 봤는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하, 한 명 있네요? 이미 매우 우호 이상 달성한 인간이…….]닉네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 명이라면 볼 것도 없었다.
‘내 얘기군.’
피식 웃은 류민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시작과 동시에 통과했으니 천사의 말마따나 10시간 동안 자유롭게 서브 퀘스트를 하면 된다.
[그, 그럼 시작 장소를 골라볼까요?]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다음 중 시작할 지역을 터치해 주세요.]└ 1. 알비츠 왕국
└ 2. 브라함 왕국
└ 3. 신성 제국
└ 4. 엘소리움
[제한 시간 동안 선택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선택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00:59]떠오른 선택지에 사람들이 고민에 빠진 반면, 사신교 신도들은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다.
“먼저 가겠습니다, 검은 낫 님.”
“저도요.”
허태석과 서아린이 이동하려 하자, 민주리가 급하게 외쳤다.
“아, 잠시만요! 버프부터 받고 가세요!”
일행들에게 빠르게 버프를 돌리니 감사 인사가 돌아왔다.
“고마워요, 민주주의 님.”
“복 받으실 거예요!”
“이번 라운드도 다들 화이팅하세요!”
서로 격려의 말을 나눈 뒤 선택지를 누르자 어김없이 사라졌다.
“검은 낫 님도 버프 받으세요.”
“고맙군.”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류민도 버프를 받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딱히 버프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지 않는가?
‘대천사가 또 복수하겠다고 나타날지도.’
사리엘이 등장했었으니 이번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조용호 용병단과 민주리까지 사라지고 나자 류민만 남았다.
힐끗- 선택지를 본 류민은 이미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부터 갈 곳을 정한 상태였다.
‘4번. 엘소리움을 선택한다.’
손가락으로 터치하자 류민이 서 있던 자리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 * *
짹짹-
울창한 숲속에 떨어진 류민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맞군.’
그가 엘소리움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엘프들의 보물 창고에 있는 룬조각들을 얻어야 하니까.’
단순히 우호적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영원한 동맹 평판이라면 기꺼이 보물 창고를 내어줄 거다.
심지어 공주 유피넬시아까지도.
평의회 장로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엘소리움에서 공주의 위치는 그만큼 약했으니까.
사악- 사악-
수풀을 헤치며 나아간 류민이 전방을 바라봤다.
‘저쪽이군.’
빼곡한 나무들만 보이지만 왠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조금 더 걸어서 경계선을 밟은 순간.
화아악-
조금 전까지 보이던 수풀과 나무들은 사라지고 말끔하면서 웅장한 높이의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법의 장막에 가려진 엘프들의 도시, 엘소리움이었다.
‘건물 한번 웅장하군.’
엘프가 만든 왕국 규모의 건물들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무지갯빛이 흐르는 강물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입구를 지키던 엘프 경비병들이 창대를 교차하며 막는다.
“인간이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썩 돌아가거라!”
냉담한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류민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라운드 특성 ‘통역’이 발동 중입니다.] [이계의 종족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언어 장벽 없이 모든 플레이어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다행히 NPC들과의 대화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인간! 말귀가 어두운 것이냐!”
“돌아가라고 하였…… 어?”
인간이라는 이유로 문전 박대하려던 경비병들은 류민의 얼굴을 확인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누군지 알고 있기라도 하듯.
“헉, 호, 혹시 이계의 전사, 검은 낫 님이십니까?”
“보면 모르나?”
쌀쌀맞게 대꾸하자 정신을 차린 경비병들이 고개를 90도로 꺾었다.
“귀, 귀인을 못 알아봬서 죄송합니다!”
“조, 조금 전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경비병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영원한 동맹’은 개인을 뛰어넘어 종족을 구원했을 때나 받을 수 있는 위대한 평판이다.
황족 이상의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됐고, 평의회 장로들이나 불러오거라. 만나야겠다.”
“자, 장로님을요?”
“내 직접 요구할 게 있으니.”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서둘러 떠나는 경비병을 바라보며 류민이 여유롭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