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65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65화
65. 오크 워리어
오크 부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미친 짓이다.
특히 초소가 있는, 규모가 큰 부락이면 더욱 그렇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즉시, 오크 경비병이 뿔피리를 불어 동료들을 끌어모으니까.
그렇게 50마리가 넘게 오크들이 모이면?
플레이어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저승길을 걸을 수밖에 없으리라.
‘어디까지나 일반 플레이어에 한해서지만.’
류민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오히려 뿔피리를 부는 게 도움이 된다.
귀찮게 집마다 오크들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경비병을 마지막까지 살려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부 시체가 돼버렸지만.’
대략 200구의 시체가 바닥을 수놓았다.
오크들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30레벨의 벽을 뚫을 순 없었다.
‘오크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건 20레벨부터야. 30레벨이 넘는 나한텐 이놈들이나 고블린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달리 말하면 10레벨 초반인 현재 플레이어들의 수준으론 힘들다는 뜻.
‘그래서 5라운드가 어려운 거야. 몬스터의 수준도 높은데 물량으로도 밀리니.’
수백의 플레이어들이 담합해서 다 함께 움직인다면야 오크 공략이 뭐가 어렵겠냐마는…….
‘그게 안 돼서 문제인 거지.’
지난 라운드에 서로 칼을 겨눈 플레이어들이 이제 와서 힘을 합칠 리가 없다.
애당초 그러지 못할 걸 알고서 짜여진 퀘스트이기도 하다.
‘누가 설계했는지 몰라도 교묘해. 인간의 특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류민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이미 공략 중이던 사람인가?’
가까이 가본 류민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호?’
눈에 익은 닉네임이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그 용병왕 조용호라고?’
직업 중에 용병이라고 있다.
전사처럼 다양한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이 특징으로 흔한 근접 클래스에 속했다.
‘스킬 구성도 전사와 비슷한 부분이 많지.’
딱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용병은 타인과 계약을 맺어야 강해지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용병 클래스들은 혼자 다니지 않고 지인과 파티하려고 들지. 아니면 용병왕과 계약을 맺거나.’
용병왕.
계약을 통해 용병들을 통솔할 수 있는 유일 클래스.
용병들은 용병왕과 계약하면 추가 효과를 부여받는다.
용병들로선 당연히 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눈앞의 조용호라는 남자가 바로 유일 클래스인 용병왕이지.’
용병왕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류민이 놀란 기색을 숨긴 채 조용호를 쳐다봤다.
“하하…… 아, 안녕하세요? 검은 낫님.”
류민을 보며 조용호가 꾸벅 머리를 숙인다.
“나를 알고 있나?”
“알다마다요. 랭킹 1위 검은 낫님을 모르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웃으며 말한 조용호가 슬쩍 류민의 눈치를 봤다.
-와…… 전 구역 랭킹 1위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가, 갑자기 악수하자고 손 내밀면 싫어하겠지?
생각을 읽어보니 강자에 대한 동경심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자신에게 웃어 보이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의 뒤통수를 칠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군. 하긴 그러니까 용병왕이라는 클래스를 얻을 수 있던 거겠지만.’
용병왕이 되기 위한 자격에는 지도자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선한 마음으로 동료를 이끌 줄 알아야 한다.
‘처음 보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이름만 알고 있었지 용병왕을 마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솔플을 중시했기에 마주칠 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듣기론 10라운드 이상 생존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죽었겠지. 20라운드까지 살아남은 건 나 혼자니까.’
죽은 건 확실하지만 어느 라운드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어, 여기 있는 오크들. 전부 검은 낫님이 죽이신 겁니까……?”
조용호의 물음에 류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다만.”
“허……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랭킹 1위 클래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예? 아아, 그게…….”
우물쭈물하던 조용호가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오크들의 시선을 끌어주신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난 네가 여기 있는지도 몰랐는데?”
“압니다. 의도하신 게 아니라는 거. 그래도 도움을 받은 건 받은 거잖습니까?”
생각을 읽으니 조용호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알았다. 볼일 끝났으면 동료들 데리고 빨리 벗어나라. 부락 내의 오크라면 전부 죽였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게 동료가 있는 건 어떻게…….”
류민이 눈짓으로 조용호의 뒤를 가리켰다.
조용호가 뒤돌아보더니 이내 놀란 표정이 됐다.
다름 아니라 초가집에 숨어 있던 동생들이 멀뚱거리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들! 왜 나왔어? 기다리고 있으라 했잖아!”
“형님이 저희만 두고 갈까 봐 불안해서 말이죠. 헤헤.”
“농담도 참! 내가 너흴 두고 어딜 간다고.”
류민이 조용호와 동료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보아하니 계약 관계군.’
속마음을 읽고서 알 수 있었다.
네 명의 동생들은 모두 용병이고 용병왕인 조용호와 계약 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여태껏 같이 파티하다가 더 많은 오크를 잡으러 부락 안까지 들어온 거였군.’
부락에 들어온 이유까지 알아낸 류민이 좀 더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이제 보니 용병들이 조용호를 따라온 것도 걱정돼서 따라온 거였다.
‘녀석들은 진심으로 조용호를 형님으로 따르고 있어.’
벌써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두다니.
과연 용병왕이란 명성답다.
그때 용병들이 다가오면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헐……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오크들이 이렇게 많이 죽어 있대요?”
“설마 형님께서 여태 힘을 숨기신 건……?”
“힘숨찐이었어요, 형님?”
“너희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조용호가 버럭 소릴 지르며 슬쩍 류민을 바라봤다.
그제야 류민의 존재를 확인한 용병들이 휘둥그레 놀랐다.
“헉! 검은 낫?”
“검은 낫님이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가볍게 사냥하러 왔지.”
퉁명스러운 류민의 대답에 용병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 그렇군요.”
“가, 가볍게 200마리를 처치하셨군요.”
용병들도 딱히 검은 낫에게 나쁜 감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강자 중의 강자를 앞에 둬서 긴장하는 것일 뿐.
“그나저나 번외게임은 잘 봤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끝내시던데요? 하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볼일 다 봤으면 그만 가라.”
류민은 일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오크를 다 잡았으니 조금 있으면 중간 보스가 나타날 거야.’
괜히 휘말리면 위험할 수 있기에 배려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검은 낫님.”
“만나 봬서 영광이었습니다.”
조용호 일행이 꾸벅 인사를 한 뒤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위협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로 대화하며 느긋하게 걸어간다.
류민이 빨리 꺼지라고 말하려던 그때, 용병 한 명이 조용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님.”
“왜?”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무슨 소리?”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동생의 말에 조용호가 가만히 청각을 집중했다.
쿵- 쿵- 쿵- 쿵-
약하게나마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대답은 류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중간 보스다. 피해라.”
“네? 중간 보스라니요?”
의문이 들었지만, 조용호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저 멀리 6m 크기의 거인이 쿵쿵거리며 뛰어오고 있었으니까.
“저, 저건!?”
“오크?”
그것은 분명 오크의 생김새였다.
다른 점이라면 신장이 몇 배는 크고 근육의 펌핑도 엄청나다는 점.
그리고.
“허어…….”
“무슨 놈의 무기가…….”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3m 크기의 대도를 양손에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위용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류민은 녀석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제야 나타났군, 오크 워리어.’
오히려 놈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서브 퀘스트 아이템인 균형의 돌을 얻으려면 놈을 죽여야 했으니까.
‘이 녀석뿐만이 아니지. 각 부락의 보스들을 처치하면 나머지 돌도 구할 수 있다.’
즉, 네 마리의 보스를 처치해야 서브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다시피 보스들은 평범한 오크와는 궤를 달리하니까.
‘내가 다소 여유 부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야. 아무리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도 보스를 잡기엔 역부족일 테니까.’
류민이 5라운드에서 네 번이나 죽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균형의 룬을 얻겠다고 보스에게 쏟은 시간이 죽음으로 치환된 것이다.
‘물론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어. 균형의 룬을 얻지 못했다면 그 정도로 강해지지 못했을 테니까.’
균형의 룬은 그만큼 강력한 룬이었기에 반드시 서브 퀘스트를 완료해야 했다.
‘오크 워리어 정도는 민주리의 버프가 없어도 쉽게 이길 수 있지.’
류민이 먹잇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안.
“취이이잇! 취이이익!”
오크 워리어는 바닥에 밟히는 동족의 시체들을 보며 분노하고 있었다.
“혀, 형님, 저 녀석 화난 거 맞죠?”
“그, 그런 거 같은데?”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무식하게 큰 칼을 위협하듯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그것도 한 손에 하나씩 양손으로.
“취이익! 취이익!”
오크 워리어가 번뜩이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동족들을 학살한 먹잇감을 찾는 모양.
잠시 후 놈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취익! 췩!”
오크 워리어의 첫 번째 타깃은 조용호였다.
쿵쿵쿵-
오크 워리어가 뛰었다.
보폭이 크다 보니 몇 걸음 뛰지 않아 금세 조용호의 앞에 당도했다.
“헉!”
깜짝 놀란 조용호가 대처하기도 전에.
부우우웅-!
대도가 공기를 가르며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흙먼지가 일 정도의 충격이 지면으로 느껴졌다.
“형니이이임!”
동생들이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도가 부딪치려는 찰나의 순간, 류민이 조용호를 장대 끝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멍하니 뭐 하고 있냐?”
“헉, 가, 감사합니다. 검은 낫님.”
조용호가 한숨을 돌렸다.
검은 낫이 밀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피떡이 됐으리라.
“뒤로 물러나 있어. 뒤지기 싫으면.”
류민의 말에 조용호가 후다닥 물러났다.
서로 교대하는 인간을 보며 오크 워리어가 입꼬리를 올렸다.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콱-!
발등을 낫으로 찍어버리자 오크 워리어의 얼굴이 흉신처럼 일그러졌다.
“취이이이이익! 취이이잇!”
고통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 녀석이 류민을 향해 칼을 내리찍었다.
부우우웅! 콰아아아앙!
부우웅! 콰아아아앙!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충격음이 엄청났지만 그것뿐.
결과는 죄다 헛방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전부 피해낸 것이다.
그 증거로 류민의 몸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빠르긴 하지만 못 피할 만한 속도는 아니었다.
“대미지가 세면 뭐해. 피하면 그만인걸.”
“취이이이익!”
“그만 좀 꿀꿀거려라.”
타악- 점프한 류민이 초승달처럼 낫을 휘둘렀다.
스걱-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젖에서 초록색의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베기 좋게 머리를 숙인 오크 워리어를 보며 류민이 낫을 들었다.
팍-! 팍-!
목덜미를 찍을 때마다 오크 워리어가 괴성을 질렀다.
목이 두꺼워 한 번으로는 안 죽자 여러 번 내려쳤다.
“취이이이이!”
부웅- 부웅-!
녀석이 마지막 발악처럼 대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사각지대에 들어가 있던 류민이 마무리를 위해 낫에 좀 더 힘을 가했다.
스거억-! 쿵!
기어코 잘린 오크 워리어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양팔을 휘두르던 몸뚱이가 건전지를 뺀 장난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자, 잡았어?”
“저 엄청난 놈을……?”
조용호와 일행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류민을 쳐다봤지만 정작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보상에 관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