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9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94화
94. 주성탁
류민이 판매 글에 올라온 아이템을 바라봤다.
[불사의 피부 조각] [분류 : 소지품] [설명 : 불사라 불리는 생명체의 피부를 도려낸 조각.] [판매자 : dontgo95] [판매가 : 1,000,000원] [에누리 : 가능] [채팅 : 가능] [거래 방식 : only 직거래] [거래 장소 : 수원]‘확실해. 레전더리 조합에 필요한 아이템이다.’
유니크 다음으로 레전더리 등급이 있다.
레전더리 역시 조합으로 만들 수 있지만 류민은 애초에 배제하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지금 시점에 레전더리 재료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구하기가 힘들 뿐.
‘지금 시점에서 불사의 피부 조각이 나올 만한 곳은 한군데다.’
바로 5라운드 보스인 하이 오크.
녀석을 잡았을 때 극히 낮은 확률로 나오는 게 저 불사의 피부 조각이었다.
알다시피 하이 오크는 잡기 쉬운 보스가 아니다.
6라운드 보스인 미노타우로스보다도 강한 녀석이니.
‘그런데 그 강한 놈을 잡은 것도 모자라 운 좋게 저 재료를 얻었다고?’
운은 물론이거니와 실력까지 뒤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운은 그렇다 치고 누구지? 하이 오크를 잡을 만한 실력자가?’
몇몇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네임드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설마, 그 녀석인가?’
오크를 잡을 만한 실력자인 데다 [드랍의 룬]을 가진 그 녀석.
혹시라도 자신이 짐작하는 그 녀석이 맞다면 이건 미끼일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꽤 위험한.
‘직거래만 가능하다는 걸 보면 맞는 거 같은데…… 한번 말이라도 걸어봐야겠어.’
구매하기 전 채팅 메시지를 보내봤다.
[구매자 : 안녕하세요. 불사의 피부 조각 파시는 분이죠?] [판매자 : 예.] [구매자 : 100만 원으로 올려놓으셨는데 에누리 된다고 쓰여 있네요?] [판매자 : 으음, 원래 안 해주는데 특별히 해드릴게요. 얼마 생각하시는데요?] [구매자 : 90만 원이요. 가능해요?] [판매자 : 으음,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요. 그 정도야 뭐…….] [구매자 : 아! 아니다. 잘못 말했어요. 10만 원만 더 깎아주세요. 80만 원.] [판매자 : ㅡㅡ 장난치세요?] [구매자 : 왜요? 어차피 시세도 안 정해져 있잖아요. 솔직히 쓰임새도 모르겠고.] [판매자 : 그럼 그쪽은 쓰임새도 모르는 걸 왜 사려고 하시는데요?] [구매자 : 이것저것 조합 좀 해보려고요. 다들 그러려고 재료 아이템 사는 거잖아요.] [구매자 : 그런데 제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그래요. 좀 깎아주시면 안 돼요?] [구매자 : 네?] [구매자 : 네?] [구매자 : 왜 대답이 없으시지?] [판매자 : 하아, 알았어요. 불쌍해서 80만 원에 팔아드릴게요. 대신 현금으로 거래합니다. 수원으로 오실 수 있죠?] [구매자 : 물론이죠.] [판매자 : 어디로 오면 되냐면요.]채팅으로 주소가 적히자 류민이 픽 웃었다.
“이 녀석, 내가 생각하는 그놈이 맞나 보네.”
20만 원이나 깎았는데도 팔려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
아이템은 그저 사람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 것이다.
‘이 사이코패스 새끼라면 그럴 만하지.’
그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외투를 챙겨입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피해자가 늘어날 테니까.
레전더리 재료도 챙겨야 하고 말이다.
‘어디 얼굴 좀 보러 가볼까?’
놈과의 만남은 조금 이르긴 하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 좀 해놔야겠어.’
마침 레인보우 이펙트 버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없었어도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류민이 유유히 집을 나섰다.
* * *
“하, 이 새끼 X나 어이없네? 하하.”
구매자와 채팅하던 주성탁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100만 원에 올린 걸 20%나 에누리하는 인성이라고?”
인성은 둘째 치고 이게 어떤 아이템인가?
5라운드 보스인 하이 오크를 잡아서 나온 아이템이다.
오크 시체 스무 마리를 이용하며 정말 힘들게 잡은 그 하이 오크 말이다.
‘그땐 진짜 뒤지는 줄 알았지. 하이 오크가 그렇게 센 놈일 줄이야.’
그렇게 힘들게 잡아서 나온 아이템을 고작 80만 원에 꿀꺽하려 한다?
‘새끼가 진짜 뒤질라고.’
언제는 안 죽일 거였나?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지만 이 새끼는 안 되겠다.
“너는 진짜 만나면 곱게 안 죽인다. X새끼야.”
빠드득 이를 갈며 핸드폰을 내려놓은 주성탁이 순간 움찔했다.
발밑에서 죽어가는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사, 살려, 줘어어어…….”
“하, 놀래라. 이 아저씨, 뭐야? 아직 안 죽었어?”
엎어져 있던 40대의 중년 사내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팔다리가 잘린 상태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제, 제발…… 살려…….”
“살려는 반말이고.”
“줘…… 이, 이렇게 부탁…….”
푹-!
주성탁의 단검이 중년인의 목을 꿰뚫었다.
“별 시답잖은 말이나 하고 있어. 쯧. 괜히 사람 놀래고 말이야.”
설마 팔다리가 잘렸는데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그 새끼는 오면 뒤졌다.”
말만이 아니라 정말로 구매자가 오면 죽일 셈이었다.
아이템은 그러기 위한 미끼였으니까.
그렇기에 20%의 에누리에도 자애롭게 넘어가 줬다.
어차피 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팔긴 왜 팔아. 이걸 어떻게 구한 건데. 진짜로 팔 거였으면 가차 없이 꺼지라고 했겠지.’
어디에 써먹는 아이템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유인하는 데는 써먹을 수 있었다.
왜? 유인하냐고?
재밌으니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루했으니까.
삶이란 게 그렇다.
어느 순간 지루함이 찾아오는 날이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만큼 지루해질 때가.
주성탁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랬다.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뭘 해도 심심하고, 뭘 해도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한창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느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사가 하나 빠진, 고장 난 부품과도 같았다.
중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에 열중하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남들이 하는 공부를 해봤다.
‘항상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좋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부모님의 가식적인 칭찬과 기대감만 늘어날 뿐.
너무 따분한 나머지 일진들이 자신을 괴롭혀 주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놈도 없었다.
‘일진 새끼들도 차마 1등은 건들지 않더라.’
그리 생각했지만 주성탁도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
일진들이 주성탁을 건들지 않은 건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광기.
녀석들은 주성탁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광기를 본 것이다.
그것이 일진들도 피하게 만든 이유였다.
뚝뚝-
피로 흥건한 단검을 시체의 옷에 문질러 닦은 주성탁이 다시 과거를 회상했다.
‘히힛,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정말 좋았지. 첫 살인을 했을 때가.’
주성탁이 처음으로 죽인 사람은 부모였다.
지루해서 공부를 내려놓으니 으레 그렇듯 성적이 떨어졌고 잔소리가 늘어났다.
부모와 갈등을 빚은 것도 그때였다.
1등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 되자 부모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그러다 홧김에 부엌칼로 부모를 죽이고 말았다.
‘고의가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홧김이었다고.’
그런데 그 순간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이야.
‘아아……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지.’
긴장감에 두근거리는 심장.
피로 물든 거실 바닥.
사람의 몸에 칼을 박아넣을 때의 느낌.
첫 살인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지루해 죽을 것 같던 그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줬다.
‘좀 더…… 좀 더 이 자극을 누리고 싶다.’
그런 마음에 경찰에 자진해서 신고했다.
CCTV로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도망쳐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잡힐 거라면 일찍이 자수하는 게 낫지.’
그게 감형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빨리 감옥을 갔다 와서 제대로 기획해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살인의 자극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우발적인 살인이었다고 둘러댔다.
다행히 주성탁은 연기에 소질이 있었다.
경찰들은 주성탁의 잘못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똥 멍청이들. 내가 죽인 게 명백한데 잘못이 없대.’
비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일단 감형을 받고 계획대로 감방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성탁도 예상치 못한 게 있었다.
‘뭐? 내가 촉법소년이라고?’
당시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고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소년원에 송치되어 봉사활동 이수 명령을 받고 감시하에 풀려났다.
부모를 죽여서 영락없이 감방에 갈 줄 알았던 주성탁으로서는 의외의 행운이었다.
‘개꿀이잖아, 이거?’
행운은 계속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만 27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주성탁은 잡히지 않았다.
한 번 살인할 때 1년 단위로 치밀하게 계획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여도 문제 될 거 없는 노숙자들만 골라 죽였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사람들을 죽이고도 운 좋게 멀쩡한 인간 행세를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렇게 죽이고 있다.
‘멍청한 경찰들. 아직 나 하나 잡지도 못하다니.’
그러나 행운은 올해 들어서 끝나는 듯했다.
20라운드까지 목숨이 저당 잡힌 생존게임에 참가해야 한다고 했을 때.
주성탁은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껏 사람들을 죽이고 감방이나 들어갈걸.’
그동안 경찰의 눈을 피해 조심조심했던 게 억울하고 분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계에서의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딴 고블린을 잡는 게 그렇게 어렵나?’
1라운드에서 무수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주성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끽해야 중학생보다 작은 고블린들을 찌르는 건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쉬웠다.
그의 취미생활에도 부합하고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단 재미없지만.’
그러다 2라운드에서 사냥하다가 운 좋게 샤먼이란 직업을 얻게 됐다.
‘처음에 받은 [드랍의 룬]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드랍의 룬은 특별한 아이템의 드랍률을 급격하게 올려주는 룬.
샤먼 전직 아이템이 나온 것도 룬의 영향일 가능성이 컸다.
‘이후로는 뭐, 어려울 것 하나 없었지.’
재능이 있는지 전 구역 2, 3위를 놓치지 않으며 3라운드도 무난히 클리어했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4라운드는 더 쉬웠다.
애당초 연쇄살인마였던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자극돼서 너무너무 좋았지. 흐흐.’
평범한 일상에 자극을 주는 게임들이 주성탁은 즐거웠다.
생존을 떠나서 가능한 한 오래도록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내가 20라운드까지 클리어한다면 라운드를 늘려달라고 소원을 빌 거야. 너무너무 재밌거든.’
이제는 일상이 지루할 정도.
플레이어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세상이 이따위로 몰락해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야. 킥킥.’
하도 사람을 죽여서인지 이제는 누구를 죽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재미있게 죽이냐가 중점이 되었다.
지금 꾸미고 있는 짓거리도 그 일환이었다.
‘방금 죽인 시체를 골목 옆 의류 수거함에 숨겨놓은 다음 구매자가 나타나면?’
[시체 폭발] 스킬로 빵 터트려 버릴 거다.그렇게 빈사 상태가 된 놈을 [공포의 저주]라는 스킬로 제압한 다음, 벌레 죽이듯 팔다리를 잘게 잘게 썰어버리는 게 주성탁의 작전이었다.
‘악감정은 없어. 그냥 재미를 위해서 죽이는 것뿐이니 이해해 주길 바래.’
시체에게서 눈을 돌린 주성탁이 핸드폰을 봤다.
구매자와 약속한 시각까지 3시간이 남았다.
‘얼른 와라, 이 개새끼야. 널 위해 선물을 준비해뒀으니까. 큭큭.’
새로운 자극을 위해 시체를 의류 수거함에 집어넣고 바닥에는 흔적 지우기를 사용했다.
널브러져 있던 팔다리와 핏기가 깔끔히 사라진다.
그렇게 놈이 함정에 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저벅저벅-
함정이 준비된 골목길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주성탁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