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8
제27화
미행인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강설을 찾은 걸까.
강설은 어째선지 절박해 보이는 상대방의 음성에서 뭔가를 캐치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가만히 상대의 얘기를 들었다.
마침 으슥한 골목이었기에 둘의 대화는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도움이… 필요해서요.”
“역시.”
잠도 자지 않고 하염없이 랭킹에 속한 이를 기다릴 만한 사람은 절박한 사람 정도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절박한 이라면 분명 도움을 원할 것이고.
“굳이, 내게?”
“제 얘기를 잠시만 들어주세요.”
“이름이 뭡니까?”
“한여명이요. 말 놓으셔도 됩니다.”
“아직 그 정도 사이는 아니니까요. 얘기는 이곳 말고 적당한 곳에서 듣죠.”
강설은 한여명을 이끌고 한적한 술집 겸 여관에 들어섰다.
숙소를 잡은 후, 1층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물론, 한여명을 앞에 앉히고.
한여명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손이….’
오른손이 마치 썩은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스슥.
그도 강설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른손의 소매를 내렸다.
“신기하죠?”
“손은 왜 그렇게 된 겁니까?”
“귀신이 들려서요. 저주를 받아서.”
“저주?”
영원의 세계엔 종종 그런 경우가 있기는 했다.
흉물이나 저주받은 물건을 만진 경우나 원한이 서린 악귀에게 당한 경우 등.
한데, 한여명의 손은 저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썩은 손이라 오해했었지만 잘 보니 오히려 단단하고 매끈하게 느껴졌다.
‘저주는 아닌 것 같은데….’
강설은 점점 한여명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한여명은 검은 손에 대한 사연을 풀어놓았다.
“저한테는 남매가 있어요.”
“여동생?”
“네, 여동생이랑 또… 누나요. 아니, 있었다고 해야 하나?”
“무슨?”
“누나는 죽었어요. 두 번째 모험에서.”
한여명의 사연은 이러했다.
신기하게도 형제는 모두 우애 좋은 5형제 모험에서 마주쳤고 다 함께 살아 돌아가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우애 좋은 5형제 모험은 그렇게 만만한 모험이 아니었고 그의 누나는 트롤과 싸우다 절벽 밑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였다.
텁-!
하지만 간신히, 한여명이 누나인 한새벽의 한쪽 손을 붙잡았다.
그 모습을 여동생인 한노을도 보고 있었고.
– 오빠! 놓지 마, 절대! 언니! 조금만 참아!
– 안 돼…. 이러다 너까지 떨어져 여명아.
“트롤의 수가 너무 많았어요. 누나가 노력했지만….”
손에는 땀이 한가득.
한여명은 한 손만으로 누나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스슥…
스스슥…
한여명의 몸이 점차 절벽 가까이 끌어당겨졌다.
– 크으윽….
– 안 돼! 오빠!
다른 인원은 전부 트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여명은 그때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누나의 목소리, 누나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누나의 마지막 말… 전부 기억이 나요.”
– …여명아. 손 놔.
– 닥쳐! 한새벽!
– 한여명, 누나가 많이 사랑해. …노을이 부탁해.
– 이런 씨발! 제발, 놓지 마!
– …놓을게.
슥…
손에서 손이 빠져나가는 소름 끼치는 감각.
허탈감과 공허함.
그리고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를 염려하는 한새벽의 눈동자.
“매일 밤, 꿈에 나와서 미칠 것 같아요…. 누나가 매일 찾아와요.”
“와서 무슨 말을 합니까?”
“구해달라고… 제발 구해달라고요.”
“손은 그럼 그때부터?”
“네, 이상한 메시지가 떴었어요.”
“불의의 사고… 그랬군.”
“네?”
“아닙니다.”
불의의 사고.
영원의 세계에는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중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시스템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모험을 하다 너무 끔찍한 광경을 본 모험가의 정신이 붕괴하거나, 다쳐서 후유증을 앓게 되는 경우가 주로 이 상황에 속한다.
‘귀신 들린 손이라… 얻기 힘든 체질을 얻었군.’
귀신의 원념을 풀어주거나 고위 사제의 정화 의식이 아니면 안타깝게도 방법이 없다.
저 손은 귀신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는 법.
귀신에게서 저 손을 되찾아온다면 귀신의 손은 한여명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강설이 알고 있는 귀신의 손은 그러했다.
“손이 안 움직이는 겁니까?”
“예. 오른손잡이인데 밥도 왼손으로 먹고 있어요.”
“불편하겠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무엇입니까? 설마 그 손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원하는 거라면….”
“아, 아뇨. 이건 제 죄책감이랑 후회니까 방법이 없잖아요. 제가 부탁드리려는 건 동생이에요.”
“동생? 그러고 보니 여동생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여동생은 길드에 들어갔어요. 그 일이 일어난 후 저랑 사이가 멀어졌거든요.”
대충 짐작이 갔다.
여동생은 언니를 떠나보낸 오빠에게 미움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버티는 것이고.
“제가 일부러 손을 놓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젠 잘 모르겠어요. 제가 놓으려 했을 수도….”
“동생이 길드에 들어갔다고 위험한 겁니까?”
“그게… 혹시 정의 길드 아시나요?”
“모릅니다. 관심이 없어서.”
“초창기에 결성된 길드인데, 그곳에 모험가 점수 1위가 있다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길드예요.”
“…….”
강설도 얼핏 도시에서 마주쳤던 것 같았다. 당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못했지만.
“사실과 다른 거죠. 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그것뿐입니까?”
“아뇨! 그게 끝이 아니에요. 길드의 파티 인원 구성을 간부들 멋대로 하는 바람에 내부에서 간부들을 적대하는 사람을 칼받이로 쓴다고 해요.”
“그리고?”
“함부로 탈퇴했다가 마을에서 참변을 당한 사람도 있다고…. 또! 최근에는 소문이 좋지 않은 길드와 연합한다는 말이….”
“전부 소문이군요.”
“그, 그건 아니에요!”
“그럼?”
“동생이… 동생이 연락을 해왔어요.”
“…….”
“동생이 저에게 구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사실 동생이 직접 확인한 내부 정보예요. 노을이가, 자기가 위험하다고… 구해달라고 했어요!”
강설이 이마를 짚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도, 제가 한여명 씨를 도울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 왜요? 어째서….”
“저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니까요.”
“…….”
“각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한여명 씨. 나는 내가 목표로 한 것 외에는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승천으로 가는 과정은 고난의 길.
불가능에 가까운 모험을 돌파하며 강해지고, 또 강해져야 한다.
육체와 정신 모두.
그가 이렇게 불합리와 싸워가며 얻어낸 힘은 승천을 위한 힘이지 영웅 행세를 하기 위한 힘이 아니었다.
그가 한 번 정의의 편인 양 행동하면,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어린 양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 양들이 무조건 선하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렇게 되면, 승천은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다만, 이런 구체적인 얘기를 꺼낼 수 없기에 강설은 결론만 얘기했다. 이에 한여명이 반발했다.
“왜! 왜! 그렇게 강하면서… 모험가 점수는 힘의 격차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면서요! 2위랑 점수가 2배는 차이 나면서… 그러면 10배… 아니 수십 배는 넘게 강한 건데….”
“내가 강해진 건 강자의 뒤에 숨어서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구하십시오, 한여명 씨. 동생을 구하는 길은 내가 아닌 당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나는 내 모든 주변인을 구할 수 없습니다.”
“무슨….”
“아, 그리고 그 손.”
“손?”
“그 검은 손은 저주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동생의 일을 해결하려면 죄책감부터 벗어버리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강설이 자리를 벗어났다.
한여명은 자리에 멍하니 앉아 괴로워했다.
강설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냉혈한’님이 광기를 2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스노우맨은 냉혈한이야! 아, 눈사람은 원래 차가웠던가요?]
– 저걸 왜 도와 ㅅㅂ 지 알아서 할 일이지.
– 너는 형제도 남매도 없냐?
– 있으니까 더 공감이 안 돼서 그래! 지금도 자기 바나나우유 먹었다고 개때리고 갔는데 ㅡㅡ
– 네가 잘못했네 ㅋㅋ 바나나우유는 중대사안이다.
– 솔직히 나였으면 도왔다.
* * *
강설은 어젯밤의 일이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어제 한여명에게 한 말은 강설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모든 일에 전부 개입할 수는 없어.’
그리고, 판데아에서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되는 게 자연스럽다.
‘내가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이 세계에선 언제고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마다 강설이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 강설의 길은 정해져 있으며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또한 한정적이었다.
‘한여명은 귀신의 손을 가졌다. 손에 담긴 비밀을 풀면 동생을 되찾아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귀신의 손에 담긴 비밀을 풀면, 한여명은 남들과는 다른 무기를 손에 넣는다.
귀신의 손은 입수하기 매우 어려운 능력인 만큼, 그 능력만큼은 초반부터 특출났다.
‘그리고 귀신의 손은 나중엔 내게도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인데….’
모험 중에는 특수한 체질을 요구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 모험은 보통 보상이 다른 평범한 모험보다 훨씬 뛰어났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한여명을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그가 스스로 해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고 만약 힘에 부친다면, 거드는 것 정도는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 거드는 것 정도는. 무력감에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변한다면 말이지.’
그래서 강설은 그를 섣불리 돕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었다.
강설이 콩고리에 숨겨져 있는 정보 길드를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마도 전이자들은 정보 길드가 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었다. 꽤 오래된 주점의 비밀 공간에 마련된 장소이니까.
“정의 길드에 대한 정보는 양이 제법 많습니다. 원하시는 정보가 있으시면….”
“부정적인 정보만.”
“금화 150닢은 주셔야 합니다.”
“여기.”
사삭.
넘겨받은 정보는 한여명이 말한 그대로였다.
오히려 축소, 생략된 내용까지 있었던 듯 정의 길드의 추악한 면면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보를 읽어내려가던 중, 강설은 제법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포식자 길드?”
– 또! 최근에는 소문이 좋지 않은 길드와 연합한다는 말이….
한여명이 말했던 소문이 좋지 않은 길드가 포식자 길드였을 줄이야.
강설은 입술을 두드리며 정보를 다 새겨두었다.
“포식자 길드의 정보도 가능합니까?”
“부정적인 정보만입니까?”
“예.”
“금화 100닢입니다.”
강설에게 포식자 길드에 대한 정보가 쥐어졌다.
“음… 심한데.”
포식자 길드의 악행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가득 담겨있는 종이.
화르륵…
강설은 그 종이를 촛불에 태워버리고 물었다.
“왜 이 지경인데 손을 놓고 있는 겁니까?”
“10닢입니다.”
짤랑.
“알 수 없습니다. 여태, 전이자들과 관련하여 벌어진 사건에 개입한 것은 전이자에게 시민이 살해당했을 때뿐입니다.”
“알고는 있는데 묵인한다는 거군요.”
“그들에겐 그들만의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 대답은 제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정보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그들만의 규칙이라… 알겠습니다.”
강설은 돌아 나서려다가 정보원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일주일 정도 미행을 하나 붙였으면 합니다.”
“대상이 한 명입니까?”
“예.”
“당신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입니까?”
“훨씬 약합니다.”
강설은 한여명의 정보를 전달했다.
“그럼 금화로 20닢입니다. 지금부터 잠을 자는 순간마저도 미행은 계속될 겁니다.”
촤라락.
강설은 금화 20닢을 추가로 지불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어둠의 선견자들’이었다. 새로 얻은 능력 점수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또 오셨군요.”
강설을 알아본 관리인이 말을 걸어왔다.
[이곳은 흑마법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자가 당신에게 용건을 묻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필요 : 능력 점수] 새로운 능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2. [필요 : 능력 점수] 기존의 능력을 강화하고 싶습니다.
3.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4. 무언가 맡기실 일이 없습니까?
5. [필요 : 그림자 소환사, 깨달음의 벽] 이곳에 그림자 소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강설은 전과 똑같이 능력 강화를 위해 찾아왔다고 얘기하려 했으나, 선택지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어서 멈칫했다.
‘5번 선택지에 불이 들어왔어?’
지난번에는 선택 불가능하게 회색빛이었던 선택지가 이번엔 다른 선택지와 똑같이 진한 색으로 쓰여 있었다.
‘혹시… 정보가 풀린 게 있는 건가?’
강설은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이곳에 그림자 소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런… 소식이 늦었군요. 아마도 차오 소환사님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말이죠.”
“차오? 예. 아마도 맞습니다.”
“그분께서는 노비라에 가신 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노비라가 워낙 흉흉한 자들이 있는 곳이기에 걱정이 되는군요. 벌써 한 달째입니다. 차오 님 정도면 그곳의 왈패들이야 크게 걱정 안 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절대적인 건 없으니까요.”
강설이 턱을 괴고 고민했다.
이 질문은 사실 앞으로 모험을 6개는 더 거쳐야 등장하는 깨달음 에피소드와 연결된 부분이었다.
당장에 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루어 두면 깨달음 에피소드를 제때 클리어하지 못할 수 있었다.
선택지가 떠올랐다.
[당신에게 가르침을 내려줄 수도 있는 그림자 소환사 차오가 노비라에 간 이후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에 이곳의 관리인이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1. 저런 안됐군요.
2.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럼, 이만.
3. 다른 그림자 소환사는 없는 겁니까?
4. [필요 : 특정 분야의 깨달음] 제가 차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5. 차오의 소식을 대신 알아봐 드릴까요?
“차오의 소식을 대신 알아봐 드릴까요?”
“정말입니까?”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숨겨진 모험 ‘사라진 소환사’가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