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103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103화
Homies In Paris (3)
(케이틀린 왓슨) – BBC 아나운서
“충격적인 뉴스입니다. 조금 전, King of Clay. 라파엘 나달이 롤랑가로스 3라운드 경기 전 기자회견을 열어 기권을 선언했습니다. 손목 부상이 이유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팬들은 지금 커다란 슬픔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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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캠벨) – 호주 9News 리포터
“라파엘 나달의 기권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생겼습니다. 2005년 이후 무려 9번의 롤랑가로스 타이틀을 획득했던 선수의 부재에, 나머지 선수들의 우승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큰 변수가 남은 대회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 *
#. 2016년 5월 29일
#-1. 프랑스, 메종-라피트
#-2. PWTA
라파엘 나달 선수가 기권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분의 손목은 테니스를 칠 상태가 아니었다.
놀랍고 또 슬펐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파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러 온 사람이 나였다는 게 말이다.
이곳을 떠나면서, 그분은 날 꼭 안아줬다.
그러면서 한 가지 요령을 알려줬다.
롤랑가로스의 요령을.
탁탁. 탁. 탁.
“더 빨리!”
탁탁탁. 탁탁. 탁탁.
“좋아!”
“후우-! 후우-!”
라파엘 나달 선수의 기권을 빼면, 3라운드까지 진행된 남자 단식 부분의 이변은 랭킹 55위로 일반 출전한 안토니오 라모스 비뇰라스란 선수의 16강행이다.
32강전까지 시드 선수를 피한 대진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클레이코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보여줬다.
모든 샷에 끝까지 반응하는 것.
내가 받은 조언과 비슷했다.
외에는 올라올 사람이 올라왔다.
우선 No. 01 시드를 받은 노박 조코비치 선수는 단 하나의 세트 실점도 허락하지 않으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각각 2번과 3번 시드의 앤디 머레이와 스탠 바브린카 선수도 16강에 무난히 안착했다. 같은 동양 선수인 니시코리 케이 선수도 16강에 올랐고, 정현 선수는 1회전에서 탈락했다.
경기를 봤는데, 아직 몸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았다.
탁탁.
“거기까지! 집중력이 아주 좋은데?”
“후우- 노력하고 있어요.”
“바로 그거야. 물 마시고. 조금 쉬자.”
“네.”
여기저기에서 롤랑가로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지만, 훈련하고 있는 이곳에선 그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옆 마을은 전쟁통인데, 이곳은 매우 평온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후아-!”
땀 흘린 뒤에 마시는 물은 언제나 꿀맛이다.
수건을 집어 들어 얼굴을 닦았다.
그러곤 다시 선크림을 발랐다.
“꼼꼼하게 발라.”
“?”
“타기 쉬운 시즌이라고. 알지?”
“또 수영하고 온 거예요?”
“달리 할 게 없으니까.”
에이스 코치님은 요즘 수영장에서 살고 있다.
벗은 몸을 더 자주 보는 느낌이다.
“첫 상대는 홈그라운드 보이야. 알고 있지?”
“네.”
모레 나와 상대하게 될 선수는 프랑스 출신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들었는데, 어려워서 까먹었다.
“듣기론 네가 DTN에 미움을 샀다던데.”
“그렇다던데, 전 잊었어요.”
“멋진 태도야. 그래서 네가 좋다니까.”
마른 수건으로 몸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닦은 에이스 코치님이 손에든 것을 어깨에 걸치며 곁에 앉았다.
“…나달의 기권은 충격이야.”
“몸이 안 좋았으니까요.”
“기분이 어때?”
“뭐가요? 나달 선수의 기권요?”
“응.”
“그냥,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투어가 끝난 다음에 집에서 쉬면서 병원에 부지런히 잘 다녀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아프게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게 다예요.”
“뽕@알아~ 제발 그대로 쭉 가줘.”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모든 테니스 선수는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그래야 버틸 수 있다고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사정을 신경 쓰기엔, 테니스 코트는 여유가 없다고 했다.
“저는 그냥, 즐기고 있어요.”
“그렇게 보여.”
“네. 그나저나, 그 다리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돼요? 흉측한 게 보이거든요?”
“응? 오우!”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아, 내 눈.
하지만 에이스 코치님은 낄낄거리면서, 또 특유의 허풍 섞인 말을 시작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아~ 제발요.”
“내 걸로 테니스 라켓 손잡이를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단 생각을 했었어. 길이가 좀 길긴 하지만 굵기니 그런 것들은 아주 딱 그냥… 응? 뽕@알아! 어디 가는데?!”
“당신한테서 도망가요!”
“헤이! 그러기야?”
이러기다.
에이스 코치님은 참 좋은 분인데, 가끔 이상한 말을 한다.
한국에 같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기도 하고.
부모님 앞에서도 저랬다면.
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이건 거대한 그것을 가진 사람의 전형적인 고민이라고!! 내겐 아주 진지한 고민이라니까!! 헤이! 뽕@알아!! 듣고 있어?!”
부리나케 도망쳐 필리프 코치님의 앞으로 갔다.
그러곤 어서 훈련하자고 졸랐다.
“하하. 또 에이스가 이상한 소릴 했어?”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큭큭. 그래. 시작하자.”
오늘은 점심 전에 훈련 일정이 끝난다.
오후엔 경기장을 찾아야 한다.
주최 측이 어제 나를 초대했다.
무얼 하는지는 모른다.
깔끔하게 하고만 오랬다.
“그런데, 안드레이 코치님은요?”
“안드레이? 하하. 그게 있지….”
“?”
“뭐,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
필리프 코치님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딱히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어서 다시 훈련에 집중했다.
“볼 세 개로 가자.”
“네.”
동체시력과 반응 속도를 키우는 훈련.
마주 본 필리프 코치님의 손에서 테니스공이 두둥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 *
#. 오후 3시 46분
#-1. 프랑스, 파리
#-2. 스타드 롤랑가로스
프랑스 테니스의 본거지.
스타드 롤랑가로스는 아주 거대한 곳이다.
우린 안내받은 대로 H 게이트 앞에 섰다.
곧, 사람이 데리러 올 거랬다.
“뭐?! 데이트?!”
“왜 놀라는데?”
“그거야…. 대체 누군데?”
“끌레오.”
“끌레오가 누군데? 응? 잠깐, 잠깐. 뭔가 떠올랐어. 설마, 그 이탈리아의 여자? 우주를 인터뷰했었던?”
“응, 맞아.”
놀랍게도, 안드레이 코치님은 데이트를 하고 오셨다.
간단히 커피만 마신 거랬는데, 그게 데이트지 뭐.
상대는 이탈리아에서 날 인터뷰했던 분이다.
“아직은 아무 사이도 아니래도.”
“Come on, 선수끼리 왜 그러셔.”
“난 선수 아니거든.”
몹시 억울해하는 에이스 코치님이 안드레이 코치님을 괴롭히고 있을 무렵, 저 멀리에서 이쪽으로 오는 어떤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를 여기로 부른 사람들인 것 같다.
“늦어서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멋지네요. 그럼 바로 가실까요?”
“그런데.”
“?”
“오늘 대체 뭘 하는 거죠?”
“아, 가면서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
고갯짓을 한 안드레이 코치님을 따라 걷는다.
목적지는 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곁에 있던 바스코 코치님이 지도를 폈다.
“존 텔레비전.”
“방송이요?”
“그래. 그런 것 같아.”
마중 왔던 여자분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존 텔레비전’이라는 구역의 한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
한국에 있었을 때 방문했었던 곳과 비슷한 장소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 생각이 옳다면 여긴 스튜디오였다.
그때 다른 여성분이 가까이 다가왔다.
“무슈 신?”
“에?”
아, 무슈(Monsieur).
다행히 바로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스.”
“반가워요, 전 세실이에요.”
“봉쥬흐.”
“오-! 프랑스어로 인사해 주시는 거 좋은걸요? 하지만 편하게 영어로 해주셔도 돼요. 우선 저를 따라오시면, 오늘 뭘 하는지를 설명해 드리죠. 다른 분들은 여기에 잠시 계시겠어요?”
손목을 살짝 붙잡는 바람에, 난 저항하지 못하고 이끌리고 말았다.
내가 향하는 곳은 메이크업을 하는 곳이었다.
스튜디오 한쪽에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앉으면 되나요?”
“응? 익숙해 보이는데요?”
“처음은 아니긴 해요.”
“오, 저런.”
“?”
“사실, 이건 일종의 전통이거든요. 당신과 같은 주니어 선수들을 무작정 이곳으로 부른 다음에, 실은 촬영이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럼 다들 당황하거든요. 지금 저기 사람 보이죠?”
“….”
고개를 빼꼼 내어보니, 손을 흔드는 분이 보였다.
카메라가 목에 걸려 있었다.
“당황한 주니어 선수들의 사진은 테니스 팬들에겐 인기가 높거든요. 이미 열두 명의 선수가 그런 사진이 찍혔고요.”
그런 사진이 인기가 높다고?
도대체 뭔 취미람.
롤랑가로스가 괴팍한 변덕쟁이란 말을 어제 나달 선수한테 들었는데, 결국 그런 코트는 이런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했다.
“뭐, 조금 아쉽지만 괜찮아요.”
“모르는 척할 걸 그랬나요?”
“하하. 정말 괜찮아요. 그게 아니어도 근사한 사진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지, 아르망?”
“완-벽해!”
카메라를 든 남성분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했다.
뭐, 괜찮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그럼 바로 메이크업을 시작할게요.”
딱.
딱.
세실이라는 분이 손가락을 튕기자, 손에 화장도구를 든 사람들이 내 곁으로 왔다.
자세를 바로 고치며, 정면을 바라봤다.
화장 받는 동안 설명이 이어진다.
“아시다시피, 오늘부터 주니어가 시작됐죠.”
“그렇죠.”
“이곳 스타드 롤랑가로스와 파리 시내에 홍보물이나 영상을 본 적 있나요?”
“아뇨.”
“응? 아니라고요?”
“네. 조용한 곳에 있었거든요.”
“아….”
이 세실이란 분을 벌써 두 번이나 당황하게 만든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건 못 봤다.
TV로만 롤랑가로스를 봤으니까.
“크흠. 아무튼, 그런 홍보물을 만드는 일을 할 거예요. 당신의 것은 내일부터 TV와 거리에 걸릴 거고, 호주 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제법 비중 있게도 다뤄질 거랍니다.”
어떠한 것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메이크업도 곧 마무리됐다.
“그럼, 저를 다시 따라오실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있었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때요? 죽이지 않아요?”
“하하. 그, 그러네요.”
“아예 상의를 벗고 찍어보는 건 어때요? 제가 또 몸이 끝내주거든요. 특히 이 옆구리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촬영을 하는 건 난데, 어째서인지 에이스 코치님이 모델처럼 잔뜩 포즈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안드레이 코치님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황한 세실이 어떻게 된 사정인지를 묻기 위해 떠났고, 아주 약간의 소란이 있고 난 뒤에야 에이스 코치님은 불퉁거리며 카메라의 앞에서 물러났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즐겁게 지켜봤다.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결국 사과는 안드레이 코치님의 몫이 됐다.
“죄송합니다. 저희 팀이 조금….”
“깔@쌈하지.”
“멋지지.”
“환상적이야.”
“최고거든?”
안드레이 코치님의 말을 막아내며 저마다 한 마디씩 붙이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우리 팀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골치가 아파졌는지, 세실 씨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러곤 나를 보며 물었다.
“당신도 참 힘들겠네요.”
“네?”
“….”
하지만 이분이 곧 입을 다물게 된 이유는 일련의 일들을 모두 내가 즐겁게 녹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끼리끼리 논다고 했다.
“재미있잖아요. 안 그래요?”
“하. 하하. 하하하.”
세실 씨가 내게 보여주는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늘 우리답게.
난 그럴 수 있어, 매일이 행복하다.
“좋… 아요? 그럼, 시작할까요?”
“네!”
촬영을 총괄하는 걸로 보이는 분의 말에, 나는 곧장 카메라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롤랑가로스 현장 취재 일기 : ⑥ 파리 한복판에 신우주의 영상과 사진이 있다! – RAVEN/이형택의 현장 속으로]* * *
#. 2016년 5월 30일
#-1. 프랑스, 파리
#-2. 마르스 광장
오전 마지막 훈련을 끝낸 TNU는 메종-라피트를 떠나 미리 잡아둔 파리의 숙소로 왔다.
짐을 푼 이후엔 곧장 점심을 먹기 위해 움직였고, 그러곤 신우주의 의견에 따라 마르스 광장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이들은 영락없는 관광객이다.
찰칵.
“응?”
그리고 마찬가지의 일을 하던 도중, 긴 금발 머리를 한 소녀가 몹시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헙!”
우연히 짝사랑을 앓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흘렀다.
몇십 번이나 DM을 보내는 걸 고민했다.
아니, 족히 수백 번은 된다.
이번 ‘2016 프렌치 오픈’ 주니어 소녀 단식에서 5번 시드를 받은 다야나 야스트렘스카는 얼른 투어가 시작되길 한 달여 동안 손꼽아 기다려 왔다.
“다야나? 왜 그래?”
“저기… 저기요.”
“?”
다야나 야스트렘스카는 두 명의 코치,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투어에 나선 상태다.
배구선수로 활동했던 알렉산더 야스트렘스카(Alexander Yastremska)는 딸에게,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기본을 알려주고 있다.
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알렉산더는 어렵지 않게 시끄러운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곤 한 동양인 소년을 보았다.
멀리서 봐도 눈에 딱 띄었다.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렴.”
“싫어요!”
“왜 보고 싶어 했잖니.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보게 된다는 걸 알게 된 뒤에는 잠도 설쳐….”
“아빠!”
딸이 정말로 남자 친구를 자신의 앞에 데려온다면 이러지 않았겠지만, 알렉산더는 사랑에 빠져 소녀가 된 다야나의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딸이 여자가 아닌 테니스 선수로서만 살아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네가 자주 보던 영상에 나오는 사람 같구나.”
“아이돌이요.”
“그래. 아무튼, 그거.”
“….”
신우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다야나는 지금 홍조마저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신 말을 걸고 올까?”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왜?”
“다 제가 생각한 게 있단 말이에요. 내일 경기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거예요.”
롤랑가로스와 같은 큰 대회를 개최하는 경기장에는, 따로 선수들이 모여 몸을 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친분을 쌓아 나간다.
다야나 야스트렘스카 역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우연인 척 신우주와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본인의 방이나 객실에서 홀로 계속 연습했다.
본인은 가족이 그걸 모르는 줄 알고 있지만, 어머니인 마리나가 말해줘서 알렉산더 역시 알고 있었다.
“아무튼, 가요.”
“응? 벌써? 사진은?”
“이러다 마주친다고요!”
“허-! 그것참.”
팔목을 붙잡고 이끄는 다야나에 못 이겨, 알렉산더는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조용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자리를 잡았고, 빙과(氷菓)가 담긴 컵을 각자의 앞에다 놓았다.
컵은 알렉산더가 가지고 왔다.
왜냐하면.
‘완전히 넋이 나갔네.’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다야나 야스트렘스카는 아이스크림이 녹기 시작한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은근슬쩍 컵을 자신의 앞으로 빼 온 알렉산더가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몽땅 비웠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딸이 주문한 것과 같은 것을 앞에 다시 놓아두었다.
그러곤.
“다야나. 안 먹니?”
“응? 아, 먹을게요.”
뒤늦게 숟가락을 가져가는 다야나.
그 모습이 알렉산더는 무척 낯설다.
늘 또래 남자아이와 경쟁을 하려고만 했다.
사소한 것도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냈고, 처음엔 다야나에 이끌려 온 소년들도 그 모습 때문에 더 다가서지 못했다.
그랬던 딸 아이가.
‘지 애미를 닮은 거겠지.’
스스로 왕년에 잘나갔다고 믿는 알렉산더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인이 자신을 낚아채 간 거라면서 남자 보는 눈이 높다고 허풍을 떨곤 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엄마를 쏙 빼닮은 다야나였기에, 알렉산더는 딸도 남자를 보는 눈이 높다고 믿었다.
마이클 창의 기록을 깼다.
게다가 아직 매치 무패.
주요 미디어가 이례적으로 이번 롤랑가로스 주니어 오픈을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전부 신우주 때문이다.
“어?!”
“응?”
“아빠! 숙여요!”
“!!”
깜짝 놀란 다야나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몸을 창문 아래로 감추는 알렉산더.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린 딸이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우주가 있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제야, 알렉산더는 자신은 몸을 감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저 소년은 자신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일어섰다.
“아빠!”
“진정하렴, 다야나. 쟤는 나를 모르잖나.”
“아… 그럼, 아빠.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지금?”
아이스크림 가게 창밖으로 보이는 신우주는 물병을 하나 손에 쥐고 주변 사람들과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시로 웃음이 터졌고, 한두 명이 부리나케 도망가면 한 사람이 뒤쫓다가 허공에 발길질하며 포기하는 장면도 이어졌다.
분명한 건, 저들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그것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응?’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 신우주와 눈이 마주쳤다.
알렉산더는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래에서 다야나가 연신 물었다.
“아빠! 뭐 하냐니까요?”
“…웃고 있구나.”
“네?”
“웃고 있어. 허허.”
신우주의 미소를 본 순간, 알렉산더도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더욱 환하게 웃은 신우주가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 모습에 잠시 움찔했던 알렉산더는 비어 있는 아이스크림 컵 두 개를 들어 올리며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얼마 뒤.
“다야나, 잘 들으렴.”
“?”
“네가 쟤를 잡으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네??”
알렉산더는 아주 조금, 딸의 연애가 진전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까 내가 한 말은 취소다.”
“어째서요!”
“아무튼, 그래. 내가 미쳤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말이다.
현재 TNU는 의도치 않게 파리에서,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