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08)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이 세계가 내 현실이 된 이상, 이안의 수준급 기절 행보를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고 만다.
‘이해는 되는데….’
그래, 이해는 돼. 기절할 수 있어.
부유섬은 1학년 2학기 수렵평가 때처럼, 중심부로 접어들 수록 적들의 난이도가 악랄해지니까.
애초에 이곳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의 세계.
나도 막상 게임할 땐 리트라이를 셀 수 없이 해왔기에 뭐라 할 처지는 아니기도 해.
그래도 말이야….
‘그래도, 잘 좀 피해 줘라….’
기습 공격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잖아….
이안은 땅 속성 마법 공격을 뒤통수에 그대로 얻어맞아, 그 충격으로 기절한 것이었다.
기습 공격을 강행한 마족은 우리가 처치했고.
이안의 사역마 렉스는 카야에게서 우리의 계획을 전해들은 후, 안심하고 스스로를 역소환했다.
그녀는 수렵 평가에서 이안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었기에 렉스는 신뢰하는 눈치였다.
사역마는 소환돼 있는 동안 주인의 마력을 갉아먹는다. 소환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인 셈. 그러니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렉스는 역소환시키는 편이 나았다.
이안은 부유섬의 핵인 오즈를 향해 전력으로 [빛의 사도]를 날려야 하므로, 만일을 대비해 쓸데없는 마력 소모는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좋게 생각하자.’
‘이안이 또 기절해 버렸구나’보다는 ‘이안이 다행히 뒤지지 않고 기절만 했구나’하고 안도하는 편이 정신 건강 측면에서 훨씬 합리적일 거야.
이안이 기절하지 않으리란 기대는 이미 내려놓고 있었던 까닭인지, 감정이 빠르게 추슬러졌다.
“너희들이 왜 여기에…?”
아, 마테오 있었지.
나와 카야는 후드 모자를 벗어둔 채라 복장의 인식 저해 기능이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마테오는 우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테오 녀석이야 이안이 해쳐 온 길을 따라와서 안전했겠지만, 이 주변은 적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마테오 수준으론 무척 위험한 곳이다.
어차피 이안이랑 합류해서 주인공스러운 영웅 마인드에 감격하고 중심부로 향했겠지. 그냥 날 따라오게 하는 편이 안전하고 좋겠다.
‘이동 셔틀도 되겠고.’
마테오가 여기까지 날아온 건 옆에 있는 매 형태의 사역마 덕분. 날개에 연갈빛 바람이 휘감겨 있는 모습이 상당한 간지를 자랑했다.
카야의 바람 마법에 계속 신세질 수는 없는 노릇. 마테오한테도 도움 좀 구하자.
“이안 씨를 쫓아온 겁니까?”
“그래. 너희들도?”
“네, 저희 계획에 이 분은 꼭 필요하니까요.”
“계획…?”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마테오.
“됐고, 여긴 위험하니까 따라와.”
나는 카야와 마테오의 대화를 강제로 끝맺었다. 별 거 아닌 이야기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이작 님, 이안 씨는 어떡할까요?”
“상태 파악해서 치료해두고, 푹 쉬게 뒀다가 이따가 중심부에 도착하면 깨워줘.”
“알겠습니다!”
이제 이안과 마테오도 만났으니, 에메랄드 궁전까지 쭉 질주하면 된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 1장, 부유섬」 파트의 보스는 독식의 하인켈이었다.
컷씬에서 이안이 위기에 처했을 때, 놈은 갑자기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는 결투를 신청한다. 거기서 하인켈을 처치하면 [천리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6막 2장, 오즈」 파트로 넘어갔었지.
6막 2장의 보스라고 할 만한 녀석은 서쪽의 마녀 엘파바와 날개 달린 황금 원숭이뿐. 사실상 보스도 아니다. 그냥 다른 애들보다 조금 더 강한 잡몹일 뿐이었지.
‘[빙결 폭발] 한 방에 나가떨어질 놈들.’
[멸악자]가 발동된 나한테는 프리 패스나 다름없었다.그리고 우리의 목적, 부유섬의 핵인 오즈는 그냥 성량만 크고 무력한 머리 덩어리였다.
단지 ‘나는 위대하고 무서운 마법사 오즈다’라고 허세를 부리며 플레이어를 위협하기만 했었어.
즉, 에메랄드 궁전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는 얘기. 그때 이안을 깨워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자, 속전속결로 끝내자.
“카야, 마테오. 가자.”
“넷, 아이작 님!”
전속전진이다.
……
[ 서쪽의 마녀 엘파바 ]Lv : 13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땅
위험도 : 상
심리 : [ 당신을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 [니히히히! 얘들아, 저들을 갈기갈기 찢어 버…!]
콰아아아아────!!
마테오의 매 사역마를 타고, 카야의 바람 부스터에 힘입어 에메랄드 궁전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던 중.
고깔모자를 쓴 녹색 피부의 마녀 ‘엘파바’와 날개 달린 황금색 원숭이 마족이 튀어나왔다.
전부 부유섬의 땅 속성 마력으로 탄생한 하수인들이었다.
서쪽의 마녀 엘파바는 ‘니히히’ 따위의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도로시가 독특하게 웃는 습관을 갖게 된 건 바로 저런 마족들 때문.
정신적인 충격 탓에 그리 된 거지만….
‘별 상관없지.’
도로시가 저리 웃으면 귀엽고, 마족들이 저리 웃으면 엿 같을 뿐인 이야기일 뿐.
엘파바는 늑대 무리와 까마귀 무리, 벌떼 마족을 다스렸으나.
나는 [빙결 폭발]을 시전해 폭발의 충격으로 그들의 육체를 박살내고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빙괴 속에 그들을 꼼짝없이 가둬버렸다.
쩌적──, 콰아앙──.
빙결 해제로 빙괴를 마나 형태로 풀어 버리자, 서쪽의 마녀 엘파바와 그녀의 수족들은 잿빛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새삼스럽지만, [빙결 폭발]로 마력이 소모되는 것도 이제는 무척 미미한 수준이 됐구나.
[Level Up!! Lv이 87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2를 획득합니다!]‘나이스.’
레벨 업!
새로 얻은 스탯 2는 잠재력 [학습 효율]에 곧바로 투자했다.
여담이지만, [신체 단련 효율]과 [마법 단련 효율]을 같이 최대치로 찍으면 얻을 수 있는 고유 특성을 한 시라도 빨리 얻고 싶었다.
‘그게 있으면 전력이 크게 보강되니까.’
하지만 그 고유 특성은 2학년 때부터 습득할 수 있다는 제한 조건이 있어서, 지금으로썬 아쉬울 따름이었다.
“…….”
마테오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내 모습만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 1학기 대련 평가 때 내 실력을 따라잡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
현재 [멸악자] 상태의 나는 메르헨 아카데미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침잠의 오르페를 상대했을 때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를 느끼고서 현자 타임에 빠져 버린 모양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에메랄드 궁전에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아────!!
문지기가 말을 걸려 하자, [빙결 폭발]부터 날려 곧바로 처치했다. 말 섞을 시간 따윈 없으니까.
곧바로 아치형 문을 열고 궁전에 들어섰다.
넓고 칙칙한 공간. 안쪽에는 공간을 반으로 나누듯 거대한 커튼이 쳐져 있었다.
커튼 뒤에 있는 것은 타원형의 거대한 그림자 형상. 그 주위로는 화염 줄기가 드세게 일고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저쪽에 가까이 다가가면 컷씬이 재생됐었지. 커튼이 걷히면서 중년 남성의 큼지막한 머리가 드러났던 기억이 난다.
바로 부유섬의 핵, 오즈였다.
‘저건 얘네들한테 맡기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지하 방향 계단으로 향했다.
이 아래쪽에 도로시가 있으니까.
“아이작 님?”
“저기 있는 건 이안한테 맡겨. [빛의 사도] 한 번 날려주면 된다고 전해주고.”
마테오의 사역마 등 위에 누워 있는 이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여전히 녀석은 곤히 기절해 있었다.
오즈를 향해 [빛의 사도]를 날려주면 부유섬을 채우고 있던 보호 마법이 풀린다.
그러면 이 땅덩어리 마족은 폭주하겠지만, 메르헨 아카데미엔 놈의 공격을 막아줄 인재들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쳐. 안 그러면 무조건 죽으니까.”
카야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얘기를 끝마쳤기에 그녀는 내 말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력 가스 폭발 때문인데, 이 밑에 그런 게 있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이번엔 마테오가 말을 걸어왔다.
“설명 못 들었다. 어쩔 셈이냐, 아이작?”
마테오에게 우리 계획을 설명해주는 걸 깜박했다.
여기까지 와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딱히 숨길 것도 없었기에, 그냥 아래쪽을 가리키며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섬을 통째로 부술 거야.”
부유섬을 조진다.
도로시를 살린다.
내 목적은 처음부터 그것뿐이었다.
마테오는 말없이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부터 내가 그런 대답을 할 거라 예상했었나 보네.
어쨌든.
그들을 무시하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은은한 꽃향기.
어둑한 계단을 쭉 내려가니, 짙은 어둠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낭떠러지가 내 시야에 가득 담겼다.
그 한가운데, 자그마한 빛줄기가 자비롭게 어둠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심연에서부터 길쭉한 무언가가 쭉 솟아올라 있었다.
인간의 신체 부위를 마구 덧붙여 만들어진, 혐오스러운 기둥이었다.
“…….”
기둥을 이루고 있는 신체 부위의 주인들은, 전부 ‘모험가’였다.
부유섬의 환상에 빠져들어, 뭉크킨의 나라에서 시작해 노란 벽돌 길을 따라가며, 모험하며, 끝내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준다는 대마법사 오즈에게 도달한 인간들.
열기구를 타고 무지개 너머 집으로 돌아가는 환상 속에서, 즐거운 모험을 했노라며 아련한 감상에 젖어들면서.
현실에선 죽음을 맞이해 버린, 불쌍한 피해자들.
그리고 부유섬의 하수인들이 그 피해자들의 몸을 조각내 이곳에 장식해 놓은 것이었다.
기둥 위에는 커다란 검은 구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유섬의 어둠 속성과 땅 속성 마력을 몇 겹이고 덧대어 만들어 낸 결계.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여정을 마친 이들이다. 그들이 저 안에서 부유섬에게 생명력과 마력을 빨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분명 저 안에 도로시가 있으리라.
그렇다고 다짜고짜 저 결계를 부술 수는 없었다.
‘화생방 되니까.’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저 결계를 치면 맹독으로 이루어진 마력 가스가 터져 나와 플레이어를 죽음으로 몰고 갔었다.
에메랄드 궁전까지 부수고 굉장히 멀리 퍼져나가는 강력한 가스 폭발이었지.
엑스트라 배드 엔딩 N.17 「건드릴 수 없는 것」.
참, 배드 엔딩 제목부터 문제야.
반드시 도로시는 희생해야 하니까 구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잖아.
‘내가 도로시를 포기하겠냐.’
절대 안 하지.
도로시를 구하러 가는 길에 배드 엔딩이 수도 없이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반드시 그녀는 구해져야만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해타산적인 사고 방식도 뒷전이었다.
그저 단순히, 나는 도로시를 살리고 싶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검은 후드 로브를 벗어 던졌다.
어차피 이건 부유섬까지 가는 도중, 학사에게 들킨다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입고 있던 것에 불과했으니.
이어, 교복 안에 있는 마법 주머니에서 군청색 로브와 검은색 이빨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마법 위장 복식-버서커’였다.
‘오랜만에 입어본다.’
이미 메르헨 아카데미와 헤겔 마탑은 부유섬에 검은 괴물이 출현했다고 판단했을 터.
만일 내가 토벌대의 눈에 띄거나 부유섬을 관측하고 있는 마탑의 눈에 띄더라도 ‘검은 괴물이구나’하고 넘어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뇌신조-갈리아와 싸우고 개판이 났던 위장복이지만, 수선해 놓은 덕분에 기능에 문제는 없었지.
주위가 무척 고요한 탓에 천과 천이 스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군청색 로브를 입고서, 커다란 송곳니와 어금니가 새겨져 있는 검은 마스크를 손에 쥐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 시선은 여전히 검은 구체형 결계에 고정된 채였다.
‘오늘, 도로시한테 들키는 건가….’
도로시는 [천라만상]의 힘으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설령 버서커 복식으로 변장한다고 해도 도로시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
따라서 오늘은 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이 도로시에게 까발려지겠지.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겠네.
채애앵───!!
화르르르르륵───!!
[끄아아아악!!]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장이 울리고, 성스러운 화염이 타오르는 소리와 중년 남성의 비명 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이안이 오즈를 향해 [빛의 사도]를 제대로 갈겨 준 모양이었다.
치지직──.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드넓은 낭떠러지를 메우고 있던 칙칙한 벽면이 굳은 페인트가 뜯겨나가듯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종잇장이 불에 타며 허공에 떠오르듯.
부유섬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내피가 찢어져 나가며 연갈빛으로 밝게 타올랐다.
부유섬의 보호 마법이 풀리고 있는 광경.
주위가 환해져서 좋구만. 사람의 신체 부위로 이루어진 기둥이 더욱 선명히 보여서 좀 께름칙하긴 한데….
그래도,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벌써 신나네.”
슬쩍 미소가 지어지는 입가로 덤덤하게 독백했다.
얼른 도로시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