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12)
대마법사란 마법사로서 인지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자.
상식이란 그들 앞에서 무의미하며, 인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예와 기적을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행한다.
그중, 각 원소 속성의 최고 경지에 이른 자를 원왕이라고 부르며.
현재 공식적으로 원왕의 자리에 오른 자는 단 4명뿐이었다.
화염의 원왕, 염제.
물의 원왕, 도제.
바람의 원왕, 풍제.
그리고 번개의 원왕, 뇌제.
자색 우레의 보호를 받고 있는 번개의 나라, 자브로크. 왕실.
왕의 의자에서 앞머리가 반올림된 보라색 머리칼의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보랏빛과 금빛이 어우러진 검은 로브 차림. 매처럼 예리하게 생긴 젊은 청년의 외형.
자색 번개 마력이 파지직, 거리며 감돌고 있는 눈동자는 한밤중에도 유독 빛나고 있었다.
뇌제, 자울 드래고니악. 그는 방금 전 본능적으로 위협적인 마력을 느꼈다.
몹시 차가운, 짙은 냉기로 이루어진 마력이었다.
“‘요르문간드’.”
자울의 부름.
그의 어깨에 자색 번개 마력이 응집되더니 전류를 휘감은 작은 흑사의 형체가 되었다.
두 쌍의 눈을 가진 번개 뱀 마수, 요르문간드. 실제 크기는 몹시 비대하나, 자울은 그 크기를 평범한 뱀 수준으로 줄여 소환했다.
한때 자울과 자웅을 겨루고서 끝내 패배하여 그의 사역마가 된 마수였다.
[나도 느꼈다. 이 초월적인 마력…. 빙결의 원옥마수다.]요르문간드는 자울의 의도를 알아채고 먼저 대답했다. 사역마로서 주인인 뇌제와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요르문간드의 대답에 확신을 얻은 자울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빙결의 원옥마수.
놈의 마력은 번개의 원왕인 자울조차도 넘볼 수 없는 수준. 설령 이 세계의 반대편에서 놈이 튀어나왔더라도 자울은 피부를 짓누르는 마력량을 느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계도 그 마수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고작 놈이 나타나는 것만으로 절대영도의 냉기가 그 주위를 빙하기의 한때로 물들일 테니.
방금 전 그 마수의 마력은 피부에 미약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수준이었으나.
이는 다른 세계의 공간마저도 뛰어넘어 풍화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통제되고 있다. 이미 섬기고 있는 주인이 있는 듯하구나.]빙결의 원옥마수가 주인을 섬긴다. 그 명제 자체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애당초 통제할 수 있는 존재였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으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그 주인은 태초의 빙제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하나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될 터.
원옥마수가 흘려 낸 마력은 필시 천변이나 지변의 경지에 이른 얼음 마수들도 느꼈으리라.
태동악-투가로스.
상귀-메르뷸.
빙퇴웅-바르바토마.
빙결의 원옥마수가 주인으로 섬길 만한 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들 또한 동일한 자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려고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길 자가 누구인지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작….”
아이작. 메르헨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청은발 소년.
유력한 차기 빙제 후보. 아니, 빙제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자. 그밖에 없었다.
혹한이 몰아치고 있는 얼음 왕국은 새로운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빙설룡-힐드마저도 고개를 조아리는 존재다. 그는 필시 얼음 왕국의 새로운 왕으로서 군림하게 될 테고.
원옥마수마저도 주인으로서 섬기고 있는 그 사내가, 얼마나 강력한 군주가 될지는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문득 아이작의 본질 속에 숨어 있던 미지의 존재가 떠올랐다.
온몸에 수많은 눈알이 달린 그 괴물은 이 세계를 집어삼킬 수 있을 법한 웅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원옥마수는 아이작이 가지고 있는 빙결 제왕의 기운과, 그 정체불명의 괴물을 알아챘을 테지. 그리고 아이작이 제 주인으로 섬기기에 합당한 자임을 느꼈으리라.
“그가 부유섬을 해치운 모양이군. 그 과정에서 원옥마수를 소환했단 건가.”
부유섬이 아킨스 해에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은 이미 접했던 상태다.
제르베르 황국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라 생각했건만.
결국, 부유섬은 차기 빙제가 해치워 버린 모양이었다.
[다른 원왕들도 그 마력을 느꼈을 거다. 어쩔 셈이냐, 자울? 곧 있으면 긴급회의가 소집될 듯하다만.]다른 원왕들. 각 원소 속성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자울에겐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만, 원옥마수의 마력은 공간을 초월하여 퍼졌던 것.
다른 원왕들은 차기 빙제가 나타났음을 알아챘어도, 그가 아이작이라는 사실까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원왕이라고 해도 전지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차기 빙제가 싫지 않네.”
번개 나라의 왕으로서 아이작에게 경계심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보았던 아이작은, 그만한 강함을 지녔으면서도 올곧은 성품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자울에게 썩 괜찮은 인상을 안겨 주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은 자울의 눈을 피해 갈 수 없다. 이는 종족을 막론한다.
그렇기에, 그는 차기 빙제인 아이작에게 호의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정체를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 그 뜻을 방해할 생각은 없네만.”
[얼버무릴 생각인가.]“지금은 말일세. 애당초, 그 힘을 끝까지 숨긴다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나 다름없네.”
아이작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아카데미에 잠입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이미 ‘검은 괴물’이라는 이명으로, 정체불명의 마족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자신의 최대 마력량을 숨기고 지낸다고 해도, 아카데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 무시무시한 힘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을 것이었다.
즉, 그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가 온다면.
자울은 아이작이 빙제라는 사실을 다른 원왕들에게 밝히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차기 빙제의 뜻을 존중하고 지켜 주는 방법일 테니까.
“아마도 조만간, 우리는 새로운 원왕을 맞이해야 할걸세.”
원왕 회의에, 아이작이 빙제로서 참석하게 될 미래는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한편.
메르헨 아카데미에 있던 교수진과 학생들, 황실 기사단은 모두 경악했다.
부유섬이 사라진 뒤, 아카데미를 공격하던 부유섬의 하수인들은 모두 녹아내리다 잿빛 가루가 되어 소멸했고.
별안간 별빛 마력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구름 아래로 튀어나와 바다에 내리꽂혔으니.
연이어 형형색색의 별빛 마력이 이류 안개를 몰아내고, 하늘에서 펑펑 터지며 수많은 별 무리를 일으켰다. 마치 축제의 한때, 불꽃놀이의 한 장면 같았다.
감탄이 터져 나올 만큼 아름다운 광경. 그것은 분명 도로시 하트노바의 마력이었다.
사람들은 앞뒤 사정을 분간하기 어려워했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부유섬이…?”
“이,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고!!”
누군가가 부유섬을 쓰러뜨렸다.
저 별빛 퍼레이드는 인간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황국 곳곳에 퍼뜨리기 위해서 도로시가 펼치고 있는 것이리라.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아킨스 해에 걸쳐 있는 제르베르 황국의 국민들도, 부유섬이 처치되었다는 사실에 울먹이며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
아킨스 해 방면, 절벽.
바다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별빛 축제를 루체 엘타니아는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부유섬은 제 형태를 변화시켜, 루체조차도 살이 떨리게 만드는 마력을 뿜어대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이라고 불리는 도로시조차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따라서 부유섬을 쓰러뜨린 자는 단 한 명으로 좁혀진다.
검은 괴물. 그가 저기에 있으리라.
도로시가 별빛 마력을 쏟아부어 빛나는 기둥을 만들어 낸 건, 승리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아마 눈가림이라는 목적 때문이겠지.
그것이 검은 괴물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라면 앞뒤가 척척 들어맞는다.
“…어?”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광경에 루체는 당황했다.
별빛 퍼레이드가 끝나자,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으니.
분명 별빛 기둥 안에 검은 괴물과 도로시가 있으리라 짐작했건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별 무리가 잦아들고 밤바다가 어둡게 물들어간다. 이래서는 아무리 루체라고 해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루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로시는 저 정신 사나운 별빛 축제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서, 검은 괴물과 함께 구름 위로 몰래 이동한 것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확신할 순 없겠지.”
루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당초 도로시가 검은 괴물을 숨기기 위해 별빛 기둥을 만들었다는 추측부터 근거가 빈약하니까.
“아이작….”
이제 부유섬의 공격을 막을 필요도 없게 됐으니, 수 시간 동안 찾아 헤맸던 아이작을 다시 찾으러 가야 했다.
그가 다친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마니까.
루체는 아이작이 무사하길 바라며,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깊은 밤.
메르헨 아카데미 정문 인근에 있는 조세나 숲 어딘가에 왔음을 나는 풀숲 냄새로 알아챘다.
도로시는 예전에 나와 함께 놀았던 아지트에 도착해 있었다. 외벽의 감촉을 느끼고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지트 외벽에 나란히 등을 기대 앉은 채, 풀벌레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로시가 남은 마력으로 내게 회복 마법을 걸어 주긴 했으나, 응급처치 수준에 불과했다. 도저히 몸이 안 움직여….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리고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
“…….”
…도로시가 있는데도 이렇게 불편한 침묵이 오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분명 죽을 줄 알았는데 막상 구해지니까 얼떨떨한 건가.
아니면, 평소에 약해빠진 모습이나 보여 왔던 내가 부유섬을 박살 내 버리니까 평소의 모습이랑 매치가 안 돼서 저러는 건가.
‘어느 쪽이든 이해된다.’
아이작 같이 약한 놈이, 뒤져가는 자신을 구해 내고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거대한 땅덩어리 마족을 박살 냈다고?
내가 도로시였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꽤 필요했을 법했다.
“회장.”
이윽고, 도로시가 침묵을 깨뜨렸다.
“내가 죽을 거란 건 어떻게 알았어?”
그건….
확실히,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네.
어차피 나는 도로시에게 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드러냈다. ‘제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나리오를 알아서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강 얼버무리기로 했다.
“선배한테 걸려 있는 저주도 제가 눈치 못 챘겠어요?”
“…역시 그랬구나. 넌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당연한 얘기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도로시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회장.”
한번 말문이 열리니 도로시는 연이어 질문을 던져댔다.
“왜 나를 걱정해줬어?”
“네?”
“나, 사실 감정 같은 거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회장은 평소에 날 걱정해줬잖아. 그거, 왜였어?”
“그거야, 뭐…. 저 선배 팬이잖아요. 저주가 있는 걸 아는데 어떻게 걱정 안 해요?”
“그럼, 왜 그렇게 날 아껴줬어? 그것도 내 팬이라서야?”
“당연하죠.”
나는 미소를 흘렸다. 일부러, 최대한 환히 웃어 보였다.
한계를 넘어서까지 [빙제]를 사용한 부작용과, 마력을 싹싹 긁어내 완전한 마력 고갈 상태가 돼버린 반작용.
아까부터 전신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은 지독한 통증과 함께 머리가 깨질 듯한 현기증이 일고 있었다. 그 몸 상태를 티 내지 않기 위한 미소였다.
뭐, 통증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신체 감각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명계에서 돌아온 이후로 앞은 쭉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등에 맞닿고 있는 딱딱한 외벽의 감촉마저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밤바다 속에 침잠해 가는 기분이었으나.
지금 도로시가 살아남아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성취감이 물씬 차올라서,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선 도저히 배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나치게 무리해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차차 나아지겠지.
“…회장은 왜 내 팬이 된 거야?”
“선배가 멋있어서요. 저한테 선배는 정말, 빛나는 사람이었거든요.”
나는 도로시가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되는 걸 좋아했다.
하얀 이 드러내면서 웃는 것도 좋아했고.
귀걸이 찰랑이면서 고개를 돌릴 때나, 시시한 일로 아양 떨 때.
본인을 직접 칭찬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굴 때.
능청맞게 웃으면서 장난칠 때.
심지어는 머리 조금만 써도 뇌 정지 오는 모습도 좋아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내게는 무척 빛나 보였다.
“…그렇구나.”
이윽고, 무언가가 내 머리에 씌워졌다. 희미한 청각으로 천이 스치는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모자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머리의 감각은 온통 사라졌으나, 그 모자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명 도로시의 모자겠지.
왜 그녀가 자기 모자를 내 머리에 씌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작.”
그리고 코앞에서 도로시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치고는 묘하게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듯한.
소리를 듣건대, 도로시는 내 머리에 씌운 모자의 챙 양옆을 붙잡고 아래쪽으로 끌어당긴 듯했다.
“눈 감아.”
이내, 무언가가 내 입술을 밀어내었고.
내 머리는 슬쩍 뒤로 밀려났다.
한동안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잔잔히 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