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16)
쾅!
메르헨 아카데미 최상위권 기숙사, 샤를관. 공용 부엌.
한 여학생이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조용하구만!”
연보랏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학생, 도로시 하트노바.
평소에 쓰던 마녀 모자는 방에 벗어두고 왔다. 지금부터 할 일에 걸리적거리기만 할 테니까.
그녀는 부엌에 들어와 발광 램프 빛 가리개를 열고 불을 밝힌 뒤, 겉옷을 벗고 앞치마를 둘렀다.
[하암, 뭐 만들게?]“아이작 먹일 거.”
꼬리에 리본을 단 하얀 고양이 사역마, 엘라가 하품하며 묻자 도로시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으며 대답했다.
[아아…. 근데 너 요리할 줄 알아?]“아카데미 와서 해 본 적 없는 거지, 원래 많이 했었다구? 좋아, 준비는 됐고~.”
본격적으로 요리할 준비를 마쳤다.
도로시는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별빛 마법으로 가져온 뒤.
능숙한 솜씨로 칼을 휘두르고, 간을 맞추고, 가열하며 요리를 완성시켜 나갔다.
척, 척.
겉보기에도 훌륭한 외관을 자랑하는 요리들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럴 때마다 엘라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세상에….]항상 칠칠치 못하던 제 주인이 이 정도로 요리 실력에 일가견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허.”
대뜸 냄비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스프를 국자로 휘젓던 도로시의 손이 뚝 멈추었다.
[왜 그래, 도로시?]“나, 너무 완벽한 거 아니야…? 이거, 내 자신이 무서워지는군…!”
손을 부들부들 떠는 도로시. 여느 때처럼 자기 자신의 대단함에 혼자서 심취한 모습이었다.
잦은 빈도로 자신을 추켜세우는 그녀의 모습은 엘라로선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은 한숨뿐.
그러나 동시에 미소도 흘러나왔다.
엘라는 도로시의 사역마이기에 제 주인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겉보기에 항상 활달해 보이던 도로시에게선 매번 쇠꼬챙이에 찔린 듯한 심적인 통증이 느껴졌으나, 일부러 굳이 언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통을 대부분 몰아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올가미처럼 옭아매던 그리움을, 미련을, 고통을 훌훌 털어내고 현재의 행복을 순수하게 만끽하고 있었다.
“니히히. 예쁜 데다 마법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니, 이거 완전….”
[좋은 신붓감이네.]“……!”
도로시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꾹 다문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없이 냄비 속 뜨거운 스프만 국자로 휘젓는 그녀.
[도로시?]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는데, 엘라는 자신이 말실수라도 한 것인지 노심초사했다.
이윽고, 도로시는 ‘느흐흐’하고 신음성에 가까운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진짜아…. 그런 말은 자제하라구. 좋은 신붓감이라니, 너무 간 거 아니냐구~.”
도로시는 기쁜 듯이 몸을 살랑거렸다. 수줍은 듯 즐거운 표정. 마치 그녀에게서 수많은 꽃잎이 흩날리는 듯했다.
엘라는 도끼눈을 뜨고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완전… 상상만 해도 좋아 죽으려는 표정이었다.
* * *
“회장, 맛 어때?!”
“비인간적으로 맛있습니다.”
“좋아, 훌륭한 대답이군!”
앙상했던 나뭇가지는 하얀 눈송이를 가득 피운 채였다.
어느덧 학기말 평가를 끝으로 2학기 커리큘럼을 마치고 방학식을 하루 앞둔 때.
나는 나비 정원 구석에서 오랜만에 원소 마법을 단련하고 있었다. 피로도 풀리고 마력 고갈 상태도 해소되니 의욕이 불타올랐다.
마력도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잘 흘러나왔다. 마력 회로가 좀 더 튼튼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근력 운동을 뒤지게 하면 새로운 근육 세포가 생성되듯이.
이는 불타오르는 의욕에 더 많은 장작더미를 던져 주었다. 부유섬을 해치우기 위해 무리한 보람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는, 대뜸 도로시가 찾아와 돗자리를 깔더니 별빛 마법으로 가져온 음식들을 차려 놓았다.
개같이 흡입했다. 구라 안 치고, 감칠맛이 출중하고 담백해 미친 수준으로 맛있었다.
‘내 최애캐 요리 잘하는 거 실화냐.’
부유섬이 사라진 이후의 도로시는 미지의 영역.
요리하는 도로시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본 적도 없었다.
도로시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의외였다.
“회장 마력 돌아온 기념으로 기분 좀 내 본 거야. 내 요리 먹는 거 흔한 기회 아니다?”
“진짜, 맛 미쳤다, 와….”
“…사실 조금은 흔한 기회일 수도 있어!”
자연스럽게 말 바꾸네.
이런 사소한 것이 내가 도로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방증처럼 느껴져서 기쁘기도 하다.
“잘 먹었습니다.”
도로시가 해준 요리를 남김없이 해치우고, 그녀와 나란히 느티나무에 기댔다.
소화할 겸 그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그래도 단련을 게을리할 순 없었으니, 한 손엔 [원소 효율] 단련을 위해 [서리불꽃]을 잔잔히 피워 올렸다.
“회장.”
“네.”
“방학 때 어디 갈지 계획 같은 건 세워 놨어?”
“웬만하면 아카데미에 쭉 있을 것 같아요. 딱히 갈 데도 없고.”
“고향은?”
“거긴, 가 봤자 아무도 없어서….”
아이작의 고향이 어딘지는 모른다.
누나인 이브 로펜하임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나와 거리를 두려는 듯하니 일부러 접근할 필요는 없겠고.
애당초 고향에 가 봤자 아무도 없을 터.
“흐음.”
도로시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천라만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도로시는 의외의 부분에서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더는 캐묻지 않고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도로시의 심리는 읽을 수 없고 예측조차 어려우니 생각하는 건 관두기로 했다.
“회장, 이 누나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지.”
“네.”
“만약 곤란한 일 생기면 말해줘. 회장이 나보다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만능은 아닐 거 아냐. 내게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도 좋고, 조금 무리한 부탁이라도 상관없어.”
“갑자기요?”
“‘갑자기’라고 할 것도 없다구. 덕분에 저주도 풀렸고, 살아남았고…. 오히려 말하는 게 늦어졌을 뿐이지. 일반적인 은혜 갚기야.”
도로시는 방긋 웃었다.
무리한 부탁. 생각나는 거라면 있었다.
‘그거….’
물어볼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었지.
이 타이밍이라면 물어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럼 지금 무리한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바로? 행동력 뭐야. 뭐, 좋아. 뭐든 말해 봐!”
“질문 하나만 답해주세요. 실례되는 질문이긴 한데….”
“쉽네~. 뭔데?”
“그날 선배, 저한테 키스했어요?”
“…….”
갑자기 도로시는 흠칫 고개를 떨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심하는 듯한 얼굴.
내 질문의 의중을 꿰뚫어 보려는 것인지, 무슨 대답을 할까 고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봐, 회장.”
이윽고, 도로시는 능청맞게 웃으면서 나를 향해 상체를 내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랑 키스한 거였으면 좋겠어?”
도로시 특유의 매혹적인 향기가 후각을 찔렀다.
순간,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훅 들어오네….’
당근빠따죠, 라고 대답할 뻔했다….
얼른 이성을 되찾았다.
이걸 긍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뭐라 대답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도로시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느티나무에 등을 기댔다.
“이 누나도 여자라구? 그런 질문은 부끄럽다?”
분명 방금 전에 대답 정도는 쉽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뭐…. 자제할게요.”
하지만 나는 도로시 편이기에, 그녀가 곤란해 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차근차근 알아가도 상관 없겠지.’
부끄러워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굳이 도로시가 나한테 키스했는지 안 했는지로 추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맞는 거면 좋고, 아니면 아닐 뿐인 이야기니까.
“그러고 보니 회장.”
때마침 도로시는 타이밍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날 있었던 일, 사실 말할까 말까 고민한 게 있었거든. 그래도 도리상 얘기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대화 맥락상 ‘그날’이란, 부유섬을 해치우고 나와 도로시가 아지트 외벽에 기대고 있던 때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필 도로시와 키스했는지 의문이 드는 타이밍에 기절하고 말았었지….
“새벽에 무사히 일어났던 거, 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 아무리 회장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그때 좀 많이 무리했었잖아.”
확실히, 위화감은 느껴졌지.
대충 내가 기절하고 도로시가 틈틈이 회복시켜준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됐던 것뿐.
“뭐 다른 일 있었어요?”
“카야라는 애가 찾아왔었어. 그 귀여운 애.”
…응?
“걔, 회장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 회장이랑 진작부터 비밀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고…. 꽤 서로 의지하는 사이 같더라?”
“…….”
“회장도 은근 인기 많구나?”
도로시는 평상시처럼 웃는 얼굴로 떠들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살벌하다.
일단, 앞뒤 사정은 모르겠지만.
카야가 왔었다면 내가 새벽에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납득이 간다.
이내, 도로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 * *
부유섬을 해치운 뒤.
아이작과 도로시가 판잣집 아지트 외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던 한밤중이었다.
온화한 연녹빛 마력이 반딧불이처럼 날아와 몸 안에 스며들자, 가슴속이 따뜻해지기 시작해 도로시는 아이작의 어깨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뭐하고 계십니까?”
옆에서 엄숙한 듯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로시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녹색 머리칼을 늘어뜨린 한 여학생이, 엉덩이 뒤로 양손을 모은 채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교복 차림. 영롱한 붉은 눈동자. 덤덤한 표정.
평소와는 달리 양갈래로 묶은 머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골반 옆으로는 손에 쥐어진 아르마나의 완드가 내보였다.
주위로는 굵직한 나무줄기 같은 것이 지면에서부터 솟아올라 연녹빛 마력을 흘리고 있었고.
마력이 동난 도로시가 해결하지 못했던 아이작의 상처를 단숨에 치유해주었다.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식물 속성 마법.
회복 마법으로는 그 어떤 속성도 따라잡을 수 없는 최상위 속성이었다.
도로시는 입을 하 벌리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이작 님께 앵기느라 제가 온 것도 눈치 못 채셨나 봐요, 선배.”
도로시는 그녀를 본 기억이 있었다.
뇌신조 토벌전 때 [광휘의 나무]를 시전해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교회 때 아이작을 데리고 도망쳤던 담녹색 머리 여학생.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우리 떨어지는 거 보고 쫓아온 거야?”
“네, 다행히 발견해서. 이 주변은 예전에 아이작 님과 와본 적이 있어서 길 찾기는 쉬웠습니다.”
‘아이작 님’이라는 존칭. 앞뒤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한 말투.
도로시는 [감정 간파]까지 쓰고서, 카야가 아이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와줘서 고맙네…. 아이작 얘, 상태 나아지는 데 하루는 꼬박 걸릴 것 같았거든. 덕분에 훨씬 빨리 나을 수 있겠다.”
“…….”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도로시를 향해 카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작은 도로시를 구하기 위해 이 지경이 되었다.
부유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마족이었는지는 짐작조차 안 간다. 아마도 인간으로 치자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놈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아이작은 처음으로 고전했던 모양. 그의 몸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도로시도 어쩔 수 없었겠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무슨 헛소리십니까?”
살벌한 어조.
카야는 다소곳이 다리를 모아 지면에 쪼그려 앉고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는.
한쪽 턱을 괴고 냉소적인 얼굴로 도로시를 쏘아보았다.
카야의 핏빛 눈동자가 그 아름다운 빛깔을 뽐냈다.
“아이작 님은 제 남자가 되실 분이에요. 선배가 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제 남자 몸 상태가 호전될 거라 전망하십니까? 아이작 님은, 선배 구하려고 이 지경이 된 거라고.”
“…어?”
“선배가 무사하신 건 천만다행입니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었겠죠. 그래도, 그렇게 강하시면서…. 무력하게 당하기나 하고 아이작 님을 고생시킨 선배가… 미워요, 전.”
카야는 아이작을 이성으로서 사랑한다. 그 감정을 확신하고 있다.
분명 도로시에게도, 아이작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심하게 다친 꼴로 돌아온 탓에, 카야는 도로시에게 배려심을 챙길 정신이 없었다.
가슴속이 미어져서, 미칠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가 그토록 무리했음에도 속 편한 소리나 늘어놓는 도로시가, 카야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
도로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자신은 목숨을 바쳐 부유섬을 쓰러뜨릴 작정이었고.
아이작은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이토록 무리한 것이었으니.
물론 도로시는 습관적으로 웃는 가면을 쓴 것에 불과했다. 속으론 아이작을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로시의 그런 마음이 카야에게 전해지지는 않았으리라.
“후우.”
카야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풀썩, 자리에 앉고서 아이작의 가슴팍에 껴안기 듯 기대는 그녀.
“어?”
도로시는 당황했다.
카야는 뺨에 홍조를 띤 채 한동안 피 냄새가 자욱한 아이작의 교복에 고개를 비비고는, 뾰로통한 얼굴로 도로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이 남자가 자기 남자라고 못 박듯.
“토벌대한테서 몰래 빠져나온 거라 전 바로 돌아가야 하지만…, 선배한테 아이작 님 양보할 생각 없어요.”
카야는 그리 단언하고서 미소를 머금고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연녹빛 마력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의 얼굴을 비추며, 눈이 쌓여가는 지면에 깜박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아이작 님, 이따 뵐게요. 사랑해요.”
카야는 아이작 뺨에 쪽, 키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운 소리 좀 했지만, 선배도. …살아 계셔주셔서 고맙고요.”
식물 마법으로 일으킨 나무 줄기가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연녹빛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퍼져나가는 연녹빛 마력의 잔재 속에서, 카야는 휙 등을 돌려 담녹색 머리칼을 휘날리곤 숲길을 떠나갔다.
도로시는 마냥 얼떨떨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