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65)
* * *
오늘 일이 기억속에 또렷이 새겨진 것 같았다.
긴장감을 느끼면서 앨리스 캐럴의 의중을 꿰뚫으려 그리도 애를 써댔으니. 피로감이 물씬 든다.
앨리스와는 별 탈 없이 헤어졌다. 내게 딱히 별다른 수작을 부리려는 기색도 없었고, 은근슬쩍 추궁해오지도 않았지.
‘빌드 업인가.’
나를 몰아세우기 위한 토대를 쌓는 과정일까.
일단… 나는 앨리스를 너무 모른다.
플레이어와 싸우게 될 적이라 그런지, 게임 속에서 묘사가 자제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9성급 마법 [초신성 폭발]을 쓰면서 자신을 희생했던 도로시는.
적어도 초반부부터 ‘얘 죽는다’라는 암시를 주면서 마음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었던 도로시의 방처럼, 간접적인 형태로 그녀가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플레이어가 알 수 있게 해주었지.
반면.
‘앨리스는 자살할 거란 암시도 없었어.’
앨리스는 도로시와는 달리 아예 마음이 드러나지 않았던 캐릭터지.
그 탓에 그녀를 어떻게 떠봐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앨리스의 진심인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으니까.
그 애도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싶을까.
사랑이 하고 싶을까.
꿈이 있을까.
“…….”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생각은 사치였다.
이러나저러나, 앨리스는 악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인 이안 페어리테일의 죽음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녀가 어떤 사정을 품었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로선 3학년 때 악신을 이기기 위해 그녀에게서 이득이 될 점만 쏙쏙 빼먹으면 된다.
그런 맥락에서, 앨리스의 속사정도 내게 이득이 될 수도 있으니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순수하게 궁금하기도 하지만.
하늘에 노을빛이 만연했다. 저녁이었다.
수국 정원 구석.
그루터기에 앉은 채 고민하던 중, 황녀 스노우화이트와 호위 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이 도착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안녕, 화이….”
“아이작 선배!!”
“응?”
갑자기 뭐야? 왜 소리쳐?
놀란 얼굴로 부리나케 뛰어오는 화이트.
“푸헉!”
그러다 화이트는 내 앞에서 힘차게 고꾸라져 바닥에 자빠졌다.
아프겠다.
“화이트 황녀님!”
“끄응….”
메를린이 달려오고, 화이트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킬 때.
나는 상체를 굽혀 화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안 다쳤어?”
“괜찮아요오…. 흑.”
화이트를 일으켜주고 순백의 머리칼과 교복에 묻은 흙먼지를 대강 털어 주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화이트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메를린은 “주의해주십시오! 옥체가 다칩니다!”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화이트는 “제성합니다….”하고 사과할 뿐이었다. 울먹임 탓에 목소리가 어눌했다.
“그보다여, 아이작 선배! 하, 학생회가 되신다면서요?!”
1학년에까지 소문이 났구나.
‘그러겠지.’
선도부장 에린이 오르핀관 복도 한복판에서 너무 눈에 띄게 나를 불렀고.
나와 앨리스 캐럴이 함께 교정을 거닐기도 했으니 뭐…. 소문이 안 나는 쪽이 말이 안 되지.
하물며 학생들 입을 타고, 내가 학생회장에게 불려갔다는 소식이 ‘아이작이 학생회가 되었다’라는 거짓 정보로 변질된 모양이었다.
“게다가 흑호의 정예 멤버? 그런 강한 분이 아이작 선배를 찾았다고도 들었는데…!”
흑호 정예 멤버?
나와 엮였던 사람은 베르가 레이펠트뿐이다. 걔가 날 찾았단 건가?
“그분이 오르핀관에서 아이작 선배 불러오라고, 대련하자고 막 소리쳤다면서요…! 그러다 2학년 선배한테 당했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게임에선 이런 적 없는데.’
…신기하게 여길 것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게임 속 내용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나’라는 변수가 개입한 이상, 어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일이 어떻게 틀어지든 이상할 게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베르가가 당했다니?
“처음 듣는데. 자세히 설명해 봐.”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얼핏 듣기만 한 거라서. 아이작 선배도 모르고 계실 줄은….”
“…됐다. 나중에 아는 애한테 물어볼게.”
사정을 잘 모른다는 애한테 꼬치꼬치 캐물어 봤자 시간 낭비다.
나중에 친한 애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사태는 내가 모르는 새에 해결된 모양이니까, 굳이 깊게 고민할 필요 없겠지.
“그리고 학생회가 된 건 아니야. 학생회장님께 불려간 것뿐이지.”
“아. 그럼 왜 불려가셨는데요?”
‘명예 학생회’가 될 것을 제안 받았다고 화이트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명예 학생회…. 그런 게 있었구나. 아이작 선배라면, 충분히 그런 제안을 받을 만하네요. 실력자니까!”
화이트는 내 얘기를 듣고 안도한 듯 보였다.
“전 또…. 아이작 선배 학생회 된다고 들어서 이제 어쩌지, 싶었거든요.”
“왜?”
“선배 바빠지면 지금처럼 많이 못 볼 테니까요….”
나는 화이트의 이상적인 선생. 얘라면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을 만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이해타산적인 얘기는 아니다. 화이트는 내게 애착을 갖고 있으니까. 아카데미 학생들 중 가장 믿을 만한 사람으로 단연 나를 꼽는 애다.
뭐,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은 좋았다.
“그러냐.”
내가 배시시 웃자 화이트도 싱긋 웃었다.
자, 여기까지.
나는 동그란 안경을 들치면서 표정을 단숨에 갈무리했다. 내 연기력을 근간에 둔 극적인 표정 전환이었다.
“그보다, 전에 내준 과제는? [풍검] 법진 유형 5가지 전부 외워오라 한 거.”
“에… 헤… 헤….”
어색한 웃음소리.
자신 없는지 화이트는 내 눈을 슬그머니 피하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해 봐.”
화이트는 주춤하더니 허공에 연녹빛 마법진을 하나씩 전개해 갔다.
…세 개는 썩 괜찮은 수준이었으나, 나머지 2개는 구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데다 획이 엉망이기까지 했다.
“하아.”
한숨이 튀어나왔다.
화이트는 마법진을 거두고서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다 안 외웠구나. 시간은 충분히 줬을 텐데.”
나는 눈살을 좁히고 화이트를 노려보았다.
“화이트.”
“네, 네에, 아이작 선배…!”
“기본적인 마법진에 획을 어떻게 덧대느냐,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술의 폭을 넓혀주는 중요한 문제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어. 그중 [풍검]은 가장 활용도가 높은 데다 나중에 5성급 마법, [질풍엄니]와도 연관성이 짙다고. 애초에 마법진의 형태를 외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응용은 나중 단계고. 그래서 가장 유용한 주요 형태 5가지를 먼저 외워오라고 시킨 거…….”
“죄, 죄송합니다아!”
내가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자 화이트는 상체를 휙 숙여 다급히 사과했다.
“설명해. 왜 다 못 외웠는지.”
“어제 너무 졸렸습니다! 저녁이랑 후식을… 조금 많이 먹은 것 같아서….”
솔직하네.
현명하다. 내 앞에서 거짓말하면 바로 들통나니까. 화이트는 그간의 경험으로 학습한 모양이었다.
“그래. 됐고, 과제 제대로 못 했으니까 약속대로 채무 만기일 앞당긴다.”
“네에? 그럼…?”
“1달 남았어.”
“……!”
고개를 확 치켜들고 나를 쳐다보는 화이트.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다시 말하는데, 만기까지 빚 다 못 갚으면 네가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거랑 상관없이 지도 끝낼 거야. 네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 겔을 많이 벌 수 있을 거고, 만기까지 빚을 완제할 수준은 될 텐데. 그것도 못 해낸다면 네가 태만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돼. 내가 더 널 가르칠 이유가 없어.”
“…….”
거짓말이었다.
화이트가 빚을 갚든 말든 멘토링은 어떻게든 지속해 나갈 생각이었다. 단지 그녀가 조금이라도 게을러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싶을 뿐.
“그러니까, 계속 나랑 함께 가겠다면 더 열심히….”
어…? 얘 울려고 하는데?
“아이작 선배애애….”
울먹이는 목소리.
당황스러웠다.
“잠깐만, 화이트?”
“빚 다 갚을 테니까 가지 마요오…! 전 아이작 선배가 좋단 말이에요오…! 으아앙….”
“아, 아니…. 내가 너무 말을 막 했다. 미안해…!”
…나도 배려심을 기를 필요가 있겠다.
* * *
[왜 아이작이랑 그런 내기를 한 거니, 앨리스?]창밖 노을빛이 학생회실을 파고들었다.
앨리스 캐럴은 학생회장 의자에 앉은 채 멀리까지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았다. 양손에는 홍차가 든 찻잔이 쥐여진 채였다.
머리에 작은 중절모를 쓴 뚱보 고양이 마수, 괴묘-체셔는 소파 위에 앉은 채 앨리스를 웃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연애하고 싶어진 건 아닐 테고. 무슨 생각인지 알려주면 안 되겠니?]기괴한 목소리로 묻는 괴묘-체셔.
“그러게. 맞춰 볼래?”
앨리스는 능청맞게 대답하곤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괴묘는 ‘응?’하고 정지하더니 이내 으흐흐, 하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수수께끼라! 그것도 재밌겠네!]난데없는 수수께끼에 괴묘는 활짝 웃으며 고민에 잠겼다. 답을 맞춰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앨리스는 바보 같은 고양이 사역마를 무시하고 다시 홍차를 들이켰다.
[아!]이윽고, 괴묘는 깨달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아이작을 더 눈여겨볼 수 있게 되니까?]“비슷하네.”
[나는 천재!]괴묘는 튀어나온 배를 꿀렁거리며 기쁨의 춤을 췄다.
[근데 앨리스. 그러다 만약 아이작에게 애정을 갖게 되면 어쩔 거니?]“쓸데없는 질문이구나.”
[재밌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네가 진짜로 아이작에게 마음을 품게 되고, 녀석이 검은 괴물이라고 밝혀지고, 녀석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어쩔 거니? 어떻게 죽일 거니?]“…….”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목에 끼워진 검은 초커를 살살 매만졌다.
수도 없이 긁어댔던 탓에 부드러운 초커에선 조금씩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글쎄.”
앨리스는 숨소리가 뒤섞인 그 한 마디를 내뱉고서, 조용히 초커에서 손을 뗐다.
* * *
친한 사이였던 마테오 부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베르가 레이펠트가 오르핀관에 나타나 나를 찾았으나, 트리스탄 험프레이에게 호되게 당했다고 한다. 자기 부하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트리스탄이 시비를 걸면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했지.
예상외로 트리스탄은 베르가에게서 압승을 거뒀다고 한다.
‘걔가 그 급이었나?’
트리스탄이 노력가인 데다 실력도 출중하긴 한데, 그렇다고 벌써 베르가를 압도할 수준이라고 하니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대련장 이외의 장소에서 싸우는 건 엄연한 교칙 위반이었으나, 트리스탄과 베르가는 수위 높은 징계를 받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학생들이 트리스탄을 옹호하며 탄원서를 제출한 데다.
트리스탄과 베르가가 화해하면서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 지었기에 적은 양의 벌점으로 그쳤다는 것이다.
물론 그 화해도 서로 진심으로 한 건 아니었겠지.
베르가가 어떤 이유에선지 의기소침해져서 원활한 결과로 이어진 것뿐이라고 하니까.
적은 양의 벌점 탓에 트리스탄은 온종일 표정이 썩어 있었다. 불만과 후회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어떻게든 벌점을 만회해 보려고, 교수가 일할 사람을 모집하면 솔선수범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녀석의 목표는 나니까. 내게 뒤처지고 싶지 않은 거겠지.
“후우.”
뭐, 그 얘기는 제쳐두자.
나비 정원 구석.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하늘을 향해 쏘아낸 연푸른빛 냉기가 화려하게 피어 올랐다.
빙결 해제로 내 얼음 마법은 가루가 되어 눈송이처럼 쏟아졌고.
차가운 얼음 마력 탓에 흐르게 된 한풍 속, 내 한숨은 새하얀 입김이 되어 입가로부터 흘러나왔다.
“오오…!”
느티나무 앞.
마녀 모자를 쓴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학생, 도로시가 환호했다.
성취감이 솟구치고 기분이 들떴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다. 때마침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도로시를 향해 검지와 중지만을 치켜세워 V 표시를 했다. 해냈다는 사인이었다.
“확실히 보셨죠? 이제 6성급도 거뜬합니다.”
“니히히. 응, 확실히 봤어! 잘했어, 회장!”
도로시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호해주었다.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서리혁작].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엄동의 파란].
그 마법들을 드디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무녀 미야와의 대련까지, 앞으로 이틀 남은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