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66)
* * *
“셰라, 쓰레기는 제대로 쓰레기통에 버려라.”
“히잉.”
“당장.”
“으, 고지식해….”
낮, 메르헨 아카데미 교정을 거닐던 스페이드 팔라딘은 옆에 있던 하트 팔라딘, 셰라 헥토리카를 다그쳤다.
규칙을 준수하는 그에게,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셰라의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여기도 사라져 버릴 텐데, 쓰레기 한두 개 정도 길에 버리든 말든 뭔 상관이야.”
“셰라. 우린 학생 신분….”
“알았어, 알았어~. 진짜, 대장은 평생 여자 못 만나겠다.”
“너, 방금 그 말 무슨 의미냐?”
셰라는 질색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곤 버렸던 종이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마력푸딩바를 꺼내 포장지를 뜯고는 한입 베어먹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모범시민 대장. 대련 평가 때 ‘그 녀석’이 튀어나올 거라 생각해? 여왕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림자 마족’ 말이지?”
“그래, 그거.”
그림자 마족.
앨리스가 공유한 정보에 따르면, 그 마족은 숨을 죽이고 나타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동 전술 평가 이후로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었으니, 셰라는 어서 그림자 마족이 튀어나와 자극을 선사해주길 원했다.
그러나 스페이드 팔라딘의 대답은 단숨에 셰라를 힘 빠지게 만들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검은 장갑 낀 손으로 안경을 들쳤다. 제 딴에는 지성이 묻어나오는 움직임이었다.
“무녀가 벌써 폭주할 것 같진 않으니까.”
“재미없어어….”
셰라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댔다.
……
─ ‘내 목표는 루체거든.’
아이작의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1학년 D 클래스 강의실엔 저녁 하늘의 어스름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텅 빈 강의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던 순백의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아까부터 대련 신청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스노우화이트는 아이작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1학년 수석, 무녀 미야에게서 대련 신청을 받았음에도 조금도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야보다 강한 루체 엘타니아가 목표라며, 각오를 보여줬을 뿐.
‘아이작 선배는 멋있네.’
자신은 무녀 미야와 대련을 해야 한다면, 필시 강한 두려움부터 느낄 것이었다.
‘나도 아이작 선배처럼 될 수 있을까….’
무녀 미야,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 되고, 그녀들과 친해지고, 결과적으로 제르베르 황국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
그것이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이루려는 화이트의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련 평가에서, 이 남은 신청권 한 장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
이제는 고민을 끝마칠 때였다.
화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후우, 후우….”
“화이트 황녀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이미 각오는 충분히 다졌어요…!”
이튿날. 대련 평가 전날.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는 스노우화이트.
보는 이마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긴장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수업동 건물 앞. 화이트와 메를린 아스트레앙은 가로수 뒤에 숨어 있었다.
흑진주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마법학부 1학년 수석, 무녀 미야가 걸어오는 중이었다. 화이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심호흡한 뒤, 메를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굳힌 얼굴.
화이트는 비장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길을 걷고 있던 무녀 미야 앞에 멈춰 섰다.
“……?”
미야는 별안간 화이트가 등장하자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어여쁜 두 여학생을 비추었다.
긴장감으로 만연한 화이트의 얼굴, 의문이 번진 미야의 얼굴. 두 여학생은 마치 흑과 백처럼 나뉘어 있었다.
고백을 앞둔 사춘기 학생처럼 화이트는 몸을 덜덜 떨었다. 미야는 그녀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그, 그그그그…, 저기…!”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으나, 고장 난 듯 목소리를 떠는 화이트.
나무 뒤에 숨은 메를린이 속으로 ‘할 수 있습니다!’하고 응원하고 있을 때.
화이트는 겨우 용기를 내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미야에게 보여 주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떠는 손.
화이트의 진중한 얼굴과 식은땀, 손에 들린 대련 신청권이 미야의 시야에 들어오고.
미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야 씨. 당신에게, 대련을 신청합니다…!”
때마침 길을 지나던 학생들은 무녀를 향해 대련 신청권을 꺼내 든 황녀를 보고 경악했다.
황녀 대 무녀라는 사실을 뒤로 미루더라도, 학년 꼴찌가 학년 수석에게 대련을 건 상황이었으니까.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풋.”
미야는 조소를 내뱉었다.
“무슨 꿍꿍이야?”
“꾸, 꿍꿍이라니,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화이트는 미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당신은 제 목표니까요…!”
대련 평가가 하루 남았다.
아이작은 어제 6성급 마법을 온전히 익히며 또 한 발짝 극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가며 끝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낸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격인 자신이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더 이상 겁쟁이 행보를 보여선 그 선배처럼 될 수 없을 터였다.
스노우화이트의 목표는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무녀 미야와 친해지는 것. 그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
그렇기에 1학년 중 가장 강한 학생이자 자신의 목표인 미야와 대련함으로써, 자신을 내몰아 보기로 했다.
더욱 강해지려면…! 아이작처럼 강적과 싸우는 데 망설임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운이 좋다면 미야와 친해질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테니. 화이트는 그리 용기를 다졌다.
화이트와 미야는 말없이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고.
미야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피식 미소를 흘렸다.
“좋아, 받아들일게.”
“……!”
화이트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학년 꼴등이 학년 수석에게 대련을 건 상황임에도, 미야가 도전을 받아들여줬다는 사실에 화이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미야는 화이트에게 다가가고는 “잘 부탁해, 스노우화이트.”하고 귓속말로 속삭이고서 그 자리를 떠나갔고.
화이트는 얼굴을 붉힌 채 환한 미소를 머금고서, 주먹을 불끈 쥐고 조용히 환호했다.
미야가 대련 신청을 받아줬다는 사실만으로 화이트는 무척이나 기뻤다.
* * *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서브 이벤트, 「타오르는 꽃잎」.
이안 페어리테일은 반드시 무녀 미야의 대련 신청을 받았기에, 플레이어는 그 서브 이벤트를 피할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나리오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
당연한 얘기로, 우리의 주인공 이안은 미야를 이길 수 없다. 실력 차이, 사역마의 무력 차이가 몹시 심하기 때문.
그러나 서브 이벤트에서 이안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야가 방심했으니까.’
미야가 이안의 실력을 가늠하려고 적당히 봐주다 한순간에 당하고 말았던 것.
이안의 엄청난 신체 능력과, 폭발적인 일격에 당해 끝내 기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강적이 자만하다 주인공에게 당해 버림, 이라는 흔한 클리셰였지.
그 대가는 엄청난 화상과 이틀간의 병원 신세였지만, 이긴 게 어디겠냐. 대련이 끝나자마자 치유 마법으로 수월하게 회복됐으니 문제없었다.
게다가 이안은 빛 속성인지라 괴물 같은 회복력을 지니기도 했어.
물론 나는 이안이 아니다.
즉, 미야가 서브 이벤트 「타오르는 꽃잎」에서 자만했던 것처럼 나를 무시하고 봐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봐주겠지.’
입학시험 날, 나를 무시했던 미야의 언행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그리 내일 있을 미야와의 대련을 생각하던 중,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대련을 받아줬다고?”
“네에.”
저녁, 수국 정원 구석.
바람 원소 마법을 반복해서 연습하던 화이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련 평가 전날이었기에 일부러 힘든 건 시키지 않았다. 이제까지 가르쳐준 걸 가볍게 복습하고 있었을 뿐.
그 와중, 화이트의 이야기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오늘 낮, 미야에게 대련을 걸었더니 그녀가 받아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원래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미야와 화이트가 대련을 했던가…?
‘아니.’
절대 아니다. 두 사람이 대련할 일은 없었다.
애당초 서로 실력 차가 너무 나잖아. 1학년 1학기 초반의 내가, 뇌신조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루체 엘타니아를 상대하는 격이었다.
“왜 걔한테 대련 걸었어?”
“그냥, 별 얘긴 아닌데요….”
화이트는 마법을 사용하길 멈추고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자기 생각을 꺼내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
이윽고 화이트는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이작 선배는 루체 선배를 이기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아이작 선배처럼, 무녀에게 부딪쳐 보고 싶어졌거든요.”
“…….”
“그래서 오늘까지 고민했었어요. 저 같은 게 그래도 되나, 하고.”
어색하게 웃는 화이트.
“아이작 선배는 제… 스승님 같은 느낌이잖아요. 같이 있다 보면 닮고 싶어지거든요. 이게, 불가항력이라고 해야 하나? 멋진 걸 보면 따라 하고 싶어지고, 동경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무모하다,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화이트도 나름의 각오를 품고 미야에게 도전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애의 결단을 두고 내가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러냐.”
“에헤헤.”
왠지 화이트의 말이 쑥스럽기도 해서, 안경을 들치면서 슬쩍 눈을 피해 버렸다. 화이트는 내 반응에 장난기가 깃든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여느 황족과는 다르게 권위주의적 성향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황녀.
순수하고, 선하고, 허당이지. 그래서 더욱 같이 있기 편하고,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후배.
그녀의 말이 모두 진심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어서 결국엔 기분이 좋아지고 만다.
단지 신경 쓰이는 건.
‘무녀가 문젠데.’
표정을 갈무리하고 생각했다.
지금의 무녀는 소시오패스다.
나만 바라보고 남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루체와는 결이 다른, 질 나쁜 소시오패스.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으며.
사람을 버러지 취급하고, 짓밟고, 계급과 태생적 마력량 등 별별 요소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과 자기 나라인 화봉국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둔, 단연코 인성 쓰레기다.
그 애는 수석이니, 꼴찌인 화이트와 대련해 봤자 득이 될 게 없었다.
즉, 화이트의 대련 신청을 받아들인 데에는 대련 평가의 순수한 목적과는 다른 까닭이 존재할지도 몰랐다.
‘‘그 애’가 당했던 것처럼….’
께름칙한 감각이 든다.
“화이….”
“아이작 선배.”
화이트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내일 잘해 봐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화이트는 마음을 굳힌 채였다. 그 흔들림 없는 순수한 미소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따지고 들 문제는 아니겠지.’
미야와 대련하겠다는 건 온전히 화이트의 선택.
화이트가 가꾸어 나가고 있는 그녀만의 이야기였다.
그런 건 그저, 나로선 관망하면 될 문제였다.
“배운 거 제대로 써먹어라.”
“물론이죠!”
나는 싱긋 웃으면서 화이트와 손뼉을 마주쳤다.
짝,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
이튿날.
대련 평가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