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6)
슬슬 다채로운 색감의 나뭇잎들은 청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온기를 머금은 그 계절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은근히 후덥지근한 기후 탓에 학생들은 저마다 교복 재킷을 벗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원소 꽃 공예 수행평가 날이었다. 완벽한 수준까진 아니어도 나름 준수한 결과물이 나왔다. 연습할 때마다 루체가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녀하고는 어떻게 지낼지 잘 협의했다. 만나더라도 단둘이 몰래 만나는 쪽으로. 명분으로는 ‘루체랑 같이 있으면 너무 눈에 띈다’라는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녀는 친구로서 지내 본 나날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모양인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타인의 시선 상관없이 매일 같이 등하교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노는 일상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어쩌겠나. 내가 그러기 어려운 처지인 걸.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나와 루체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는 입소문이 퍼져 있었다.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뭘 어떻게 수습할 수도 없고.
조만간 누가 날 감시하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최대한 보잘것없는 척해서 ‘아! 아이작 얘는 답이 없는 놈이구나! 수석이 맛탱이가 간 거였구나!’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
설령 앨리스 캐럴이 내 소문을 듣게 되더라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주길 바라는 수밖에.
“나! 이번 1학년 학기말 평가에서 시험 감독관 맡기로 했어!”
하늘이 밝은 햇볕을 내리쬐고 있는 정오, 나비 정원 구석.
주말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2배 이상 마법 단련에 치중할 계획이었다. 마도공예 연습하느라 시간을 꽤 잡아먹었으니까.
오늘도 도로시 하트노바는 주변 느티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입담으로 내 단련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그녀의 수다는 들을 만했다. 시나리오와 크게 연관돼 있는 이야기였으니.
“선배가요? 원래 그런 귀찮은 거 싫어하지 않았어요?”
“냐하하, 물론! 그치만~ 이 누나는 우리 회장이 시험 잘 치르고 있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내 팬으로서 정말 영광스럽지 않니?!”
“아, 네. 영광입니다.”
“반응 시시해….”
도로시는 입술을 쭈뼛 내밀며 투덜댔다.
원래 시험 감독관은 학생에게 맡겨지는 직책이 아니다.
하지만 학사 측은 마족 출현 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상황.
결국 아카데미 내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학생들을 시험 감독관으로 선정하기로 결정지었고.
그 후보로 거론된 사람 중 한 명이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본래의 시나리오와도 동일했다.
도로시가 없으면 뇌신조 토벌전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학사 쪽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무려 학생회장까지 제치고 된 건데 말이야….”
내 고개가 움찔 떨렸다.
앨리스 캐럴이 시험 감독관에 자처했다고?
“학생회장이요?”
“응, 걔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내기 하나 해서 내가 이기게 된 거거든.”
내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하고 달랐다. 필시 마족을 처리하고 다니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서 직접 나선 게 분명했다.
나는 도로시에게 무슨 내기를 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폭력적인 걸 했다고 대답했다.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결과적으로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 시험 감독관이 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안도감을 담아 혼잣말을 했건만, 도로시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몸에 별빛 마나를 휘감고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내가 돼서 좋아?”
아,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여느 때처럼 내게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생기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 도로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오해를 산 것 같지만, 굳이 그녀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진 않았다.
“네. 전 선배 팬이니까, 아무래도.”
네가 돼서 정말 다행이야. 그 생각은 일말의 흐트러짐 없는 진심이었다. 덕분에 시나리오가 꼬이지 않았으니까.
도로시는 특유의 ‘니히히’ 웃음소리를 내면서 햇볕처럼 밝은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3장, 학기말 평가」는 곧바로 「3막 4장, 뇌신조 토벌전」으로 이어진다.
그때 루체의 8성급 사역마, ‘뇌신조-갈리아’는 마족이 되고.
시험 감독관 역할이었던 도로시는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과 함께 뇌신조-갈리아와 싸우게 되는 핵심 전력이 될 것이다.
원래 1대 1 싸움이라면 도로시는 뇌신조를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다만, 주변 토지가 통째로 날아갈 만큼의 격전을 펼쳐야 한다.
도로시는 사람들을 지켜내면서 싸워야 하는 처지라, 섣부르게 뇌신조와 전력으로 맞붙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전부 다 죽으니까.
결국 마족의 약점이자 뇌신조에게 유효타를 먹여줄 수 있는 빛 속성 보유자, 주인공 이안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흐응, 회장은 내가 좋구나?”
대뜸 도로시는 도끼눈을 뜨고는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째 표현이 좀 중의적인데…?
“어머. 우리 귀여운 후배님께도 들렸으려나, 이런 부끄러운 얘기가?”
도로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리면서 나와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여학생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즈골드색 머리카락이 곱게 내려오고, 머리 양옆엔 몰포나비 색감의 머리 끈을 장식한 단아한 미모의 여학생. 내 동기이자 공식 히로인 중 한 명, 루체 엘타니아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무감정한 얼굴로 도로시와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
루체는 말 걸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시꺼먼 아우라처럼 뿜어대고 있었다. 그 압박감은 되려 엉뚱한 상대인 내 전신을 휘감고 공포심을 자극했다.
‘어우, 오한….’
도로시처럼 밝은 사람도 루체의 대인기피증 예외가 아닌 것이다.
“딱히 부끄러운 얘기도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도로시 이 녀석, 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오늘따라 은근히 끼 부리듯 중의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물론 싫진 않았다.
내 최애캐 도로시는 뭐랄까, 사랑스러운 딸내미 같은 느낌이니까. 물론 딸을 가져 보기는커녕 결혼도 못 해봤지만, 대충 느낌이 그랬다.
도로시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곤 능청맞은 미소를 흘렸다.
“회장이 나 좋다고 한 얘긴데? 와안전 부끄러운 얘긴데?”
“선배 시험 감독관 된 게 좋다고 한 얘긴데요…? 아무리 봐도 그런 맥락이었는데요?”
“짜식, 진짜로 부끄러워하긴. 귀여워~. 니히히!”
도로시는 나보다 키가 작으면서, 오른팔을 쭉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팬 서비스 감사하고요.
이후, 도로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느티나무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다시 나무에 기대고 앉은 뒤, 머리에 쓴 마녀 모자에서 정체 모를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는 도로시가 쓰다듬었던 머리칼을 가다듬었다. 오늘따라 신체 접촉도 많이 하네….
도로시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공식 히로인이 아닌 데다가, [심리 간파]로 심리를 읽을 수도 없는 상대다.
그래서 비록 내 최애캐라고 해도, 그녀의 행동 패턴 변화가 무슨 사고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판단 근거인 정보량이 부족한 것이다.
“아이작, 시작하자.”
루체의 잔잔한 음성에 나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시와 마주 보고 있을 땐 서리처럼 차가웠던 표정이 나를 보자마자 온화한 미소로 뒤바뀌었다. 참으로 극적인 표정 변화였다.
“어, 잘 부탁한다.”
[덤벼라, 돌댕이! 이 벨로 님이 널 상대해주겠다!] [꾸웅?]루체 옆에선 작은 범고래 마수, 벨로가 몸에 물 마나를 휘감은 채 허공을 분주히 헤엄치고 있었고.
내 옆에선 작은 골렘 마수, 이든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여운 척을 하고 있었다.
루체는 주말을 맞이해 내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이곳에 와 있었다. 어차피 여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이고, 도로시는 위험 요소가 아니어서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때 루체는 내 쪽이 민망해질 정도로 뺨을 붉히며 들뜬 기색을 보였다. 기뻐해야 할 쪽은 내 쪽인데.
물론 그녀는 도로시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경계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쌀쌀맞게 구는 루체에게 도로시는 잠깐 감정이 퍽 상한 느낌이었으나, 선배로서의 이해심을 발휘해 한 발짝 물러서 준 듯했다.
“이든, 전투 준비.”
[꾸웅!]루체는 마법학부 1학년 수석. 1학년 중에서 그녀보다 강한 자는 없다. 지금의 그녀는 뇌신조를 억제하느라 본래의 힘을 절반도 채 쓸 수 없는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내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손 앞에 푸른빛 마법진이 생겨나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전신이 오싹거릴 만큼의 무거운 마력이 느껴졌다. 의욕이 들끓는다.
나는 양손에 차가운 냉기 화염, [서리불꽃]을 일으키고 루체를 직시했다.
나는 지금부터 그녀와 대련을 펼칠 것이다. 그녀에게 마법을 퍼붓고, 그녀의 마법을 막거나 피하는 식으로.
그녀와의 대련은 마법전 실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곧, 나와 루체는 서로의 마법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으헉!”
…어째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운 승부였다.
* * *
‘역시 제 예상이 맞았네요.’
나비 정원 인근. 어느 언덕길.
안경잡이 여학생, ‘에바 하일로브’가 나무 뒤에 숨어서 아이작 일행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법학부 D 클래스 하위권 학생이나, 다른 마법학부 학생들에게는 없는 재주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은신] 마법이었다. 반투명한 그녀의 몸체는 남들이 보기에 주위 풍경과 분간되지 않는 상태였다.
‘아이작, 당신한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보네요?’
청은발의 남학생. 그가 누군지는 같은 D 클래스 소속이라 알고 있었다.
이름은 아이작. 학기 초 마력량 측정 때 가장 낮은 E급으로 책정됐으면서, 이번 대련 평가 때는 5성급 마법을 사용해 학생들을 놀라게 한 장본인이었다.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그 일은 금세 묻혀 버렸다.
마력량 E급이 부단히 실력을 갈고닦아,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해 미숙한 수준의 5성급 마법을 성공했다 한들.
이미 진작 5성급 마법을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었던 실력자들 앞에선 같잖아 보일 뿐이었으니까.
심지어 희귀성으론 두말할 것 없는 빛 속성까지 출현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작이 5성급 마법 한번 쓴 정도론 눈에 띄기 힘들었던 것이다.
‘4성좌(星座)’. 메르헨 아카데미 행정에 관여할 수 있는 학생 세력.
에바 하일로브는 그 중 붉은 코끼리 자리, ‘적상’이 고른 정보 수집꾼이었다.
4성좌는 2학기 때부터 각각 1학년 학생들 10명씩 멤버로 모집할 수 있으므로, 1학기 때부터 암암리에 인재 포섭 및 정보 수집을 위한 경쟁을 펼친다.
그래서 4성좌는 정보 수집에 유용할 것 같은 능력을 지녔으면서, 성좌에 들어오는 걸 상상도 못 할 중위권 이하의 학생 한 명을 골라 몰래 접근하고.
‘유용한 정보를 긁어모아 와라. 활약에 따라 우리 성좌에 들여주겠다’라는 달콤한 제안을 속삭인다.
4성좌에 소속됐었다는 사실만으로 아카데미 밖에선 매력적인 스펙이 되니, 아카데미 안의 권력에 관심이 있든 없든 대부분 수락하게 된다.
에바 하일로브가 바로 그 제안을 받은 자였다.
‘누구한테나 쌀쌀맞게 굴던 얼음공주 수석이 유일하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남자라…. 이건 귀하거든요.’
며칠 전, 에바는 1순위 포섭 대상자인 루체 엘타니아가 아이작에게만 유독 밝은 모습을 보인다는 소문을 엿듣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작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했고, 수확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리하지 마. 우리 회장 아픈 모습 볼 때마다 이 누나는 가슴이 아프다?”
“아, 빈말 고마워요.”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 주신 만할라의 축복을 몰아받은 듯한 천재. 2학년 수석. 별의 마녀.
그 모든 수식어를 달고 있는 2학년 여학생, 도로시 하트노바가 자기 손수건으로 아이작의 얼굴을 손수 닦아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유명한 도로시 선배까지 엮여 있다니….’
도로시는 어느 성좌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몸이었다. 당연히 4성좌는 그녀를 포섭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도로시가 관심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던 탓이다. 오로지 자기 독단, 자기 위주로만 행동하며,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였다.
그런 괴물도 아이작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루체와 도로시가 아이작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명백했다. 그게 이성 간의 호감인지 친구 간의 우정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법학부의 괴물 두 사람이 아이작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정보였다.
“대체 아이작의 어디가 특별해서 저 두 사람이 저러는 거죠…?”
에바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독백했다.
아이작에게는 저 수석 두 사람을 끌어들일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대체 뭘까….
“일단 적상에 보고부터 해서 선배들이랑 얘기를 나눠봐야….”
그때였다.
아이작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던 도로시가, 에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자신은 [은신] 상태. 이 마법은 마나를 극히 조금밖에 흘리지 않는다. 심지어 에바의 마력량 자체도 D+급이라 매우 적은 편. 즉, 이 거리에선 절대로 들킬 리 없었다!
…아니다, 간과했다. 도로시는 괴물 중의 괴물. 마나 감지력이 상식을 초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에바는 얼른 나무 뒤에 숨어서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무서웠다.
자신은 [은신] 말고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D 클래스 열등생, 심지어 성씨도 고향 이름인 평민이다. 아이작을 훔쳐보고 있었단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대항할 자신이 없었다. 특히 저 괴물들을 상대로는 더더욱.
“하아, 하아, 후우….”
이윽고, 에바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슬쩍 나무 옆으로 고개를 빼고 아이작 쪽을 다시 살펴보았다. 아이작과 루체는 다시 마법을 부딪치고 있었고, 도로시는 느티나무에 기대앉은 채 두 사람의 결투(일방적인 폭행)를 구경하고 있었다.
‘기분 탓이었나요….’
그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때.
꼬리에 분홍색 리본을 단 하얀색 고양이 한 마리가 에바에게 다가왔다. 허리에 새겨진 주종 각인. 사역마였다.
성숙한 아가씨 같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하얀 고양이.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걸어와서, 순간 에바는 자신이 [은신] 상태라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왜 우리 도로시를 훔쳐보고 있었을까?]에바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하얀색 고양이, ‘엘라’가 도로시의 사역마란 걸 알아챘기 때문에.
[아니지, 아이작 쪽인가….]에바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엘라의 앙칼진 눈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어디서 왔니? 흑호? 청랑? 금취? 적상?]“아, 아, 그게….”
[4성좌, 요새 참 거슬린단 말이지. 어쩜 그렇게 하는 짓이 똑같을까?]“네…?”
에바는 당황해서 되물었으나, 엘라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소문을 듣고 아이작을 미행했던 학생들이 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와 같은 처지였을 게 뻔했다.
[그럼, 도로시의 전언.]차라라라랑──.
돌연 허공에 형형색색의 별 무리가 새겨졌다. 도로시가 엘라에게 심어둔 별빛 마법이 발동된 것이었다.
[너희들 목적은 알고 있어. 거슬리니까 알짱거리지 말아줄래?]사면초가. 별빛 마법이 도망칠 곳 없도록 사방을 에워싼 채 에바를 표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히이익…!”
공포심이 밀물처럼 밀려와 에바를 뒤덮었다. 온몸이 격하게 떨려왔다. 도로시의 마력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기에.
이윽고, 엘라는 피식 웃으면서 도로시의 별빛 마법을 거두었다.
[웬만하면 네가 알게 된 건 비밀로 하렴. 안 그러면 도로시가 어떻게 해코지할지 모르니까. 걔라면 자기 기분에 따라 성좌 따위는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걸? ‘너 때문에’ 말이야.]애초에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도로시 하트노바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녀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모습은, 하나의 대규모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가 그저 학생 놀이나 하고 있는 꼴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에바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은신]을 풀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에바는 엘라에게 상체를 깍듯이 숙여 인사하고는, 잰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무, 무서워…!’
에바는 코를 훌쩍이면서 엘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엘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로시의 명령을 받고 스토커들을 몰아내는 건 이번만 벌써 4번째였다.
[드디어 우리 도로시가 남자애한테 관심 좀 갖기 시작했는데, 왜 이리들 못 내버려 둬서 안달인지….]우리 도로시의 순정을 방해하지 마.
참고로 도로시가 아이작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한 적은 없었다. 정확하게는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었지.
뭐, 호기심도 사랑이 싹트기엔 아주 좋은 감정이지.
엘라는 도로시가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한 연애 생활을 영위하길, 엄마가 된 듯한 심정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애초에 사랑 구경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도로시는 오늘 아이작을 짝사랑하는 친구가 왔다면서,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을 골려줄 생각에 신이 난 눈치였다.
도로시의 정확한 속마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아이작에게 일말의 호감이라도 있다면.
엘라는 제 주인이 선수를 빼앗겨 후회하지 않길 바랬다.
[근데 저 애한테 뭐 볼 게 있다고…. 귀엽게 생긴 거 말고는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나 폭죽이나 먹이게 하고 말이야.]푸아아아아─!
“으학!”
[꾸우우웅!]아이작과 골렘 사역마 이든이 루체의 물 마법에 휩쓸리는 광경이 엘라의 눈에 비쳤다.
엘라는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우, 아프겠다….]그러나 다시 벌떡 일어나 루체에게 대항하는 아이작.
“이든, 일어나! 가자!”
[꾸우…, 웅!]“으악!”
[꾸우웅!]엘라는 그 자리에 앉아 아이작과 루체의 결투(일방적인 폭행)를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의지력은 봐줄 만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