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40)
화아아악─!
“우왁!”
나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던져 시엘의 [화염구]를 피해냈다.
열기가 위협적으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무서웠다.
“지, 진정해! 너랑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화염구 (불 속성, ★3)」
이어서 또 한번 [화염구]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빙벽]으로 막기? 안 된다. 속성 우위에서 패배하는 것도 모자라, 나와 시엘의 실력차가 너무 크기까지 하다. [화염구]는 곧바로 [빙벽]을 녹이고 나를 통구이로 만들 터다.이번에도 옆으로 몸을 내던져 피했다. [화염구]는 나를 제치고 흙바닥에 부딪치고는, 주황빛 마나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운동 신경 안 길러놨으면 무조건 뒤졌다. 고마워요, 기사학부!
“넌 누구…? 누군데 내 잠을 방해해?”
아직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엘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보랏빛 눈동자만 돌려 내 쪽을 살피고 있었다. 세상만사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듯한 냉소적이고도 힘없는 표정이었다.
“이런 데 말고 그냥 기숙사에서 자는 게 어때?”
“시비일까?”
시엘 옆에 다시 짐볼 크기의 [화염구]가 생겨났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팔을 휘저었다.
“아니, 진정 좀…! 나 너랑 거래하러 왔다니까!”
“…….”
“펠 카드, 감지 잘 돼?”
“문답무용.”
시엘의 [화염구]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저건 반사신경으로 피해도 다치는 걸 염두에 둬야 할 크기였다.
이내, [화염구]가 한번 더 내 쪽을 향해 공기를 매섭게 가로질렀다.
“하, 대화 좀 하자고…!”
[빙결 폭발]을 발동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나를 응축시키는 데 준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결국, 나는 손에 익어 있는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양손으로 차가운 냉기 화염을 휘감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를 향해 방사했다.
[서리불꽃]은 [화염구]를 뒤덮었으나, 이후의 후폭풍이 나를 덮쳐들었다.화아아아아아악─!
“끄학!”
고온의 마법과 저온의 마법이 격돌해, 희뿌연 수증기 폭발이 일었다. 그 충격은 가볍게 내 몸을 날려 버렸다.
동시에 기세를 조금 잃었으나, 아직 살아 있던 [화염구]가 수증기를 뚫고 바닥에 처박혔다. 수증기 폭발이 나를 살린 것이다.
내 몸은 바닥을 수차례 뒹굴었고, 교복은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화염구]를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교복 일부가 태워졌고, 굴러가면서 뾰족한 돌멩이에 긁혀 옷 일부가 찢어지고, 생채기까지 났다.
주위에 있는 바위에 부딪치고 나서야 내 몸은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와 미친. 진짜로 뒤질 뻔했네….’
‘쿨럭’거리며 헛기침하고서 바위를 짚고 겨우 일어났다. 바위에 부딪힌 팔뚝은 피멍까지 나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던 탓에 알 수 있었다. 엿 같네.
“사라져. 다음은 4성급 마법이야. 이번처럼 운 좋게 못 피해.”
저년, 저거저거. 대화 좀 하면 어디 덧나냐!
그렇게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무서워서 관뒀다.
“하, 내가 이것만은 안 쓰려했는데….”
나는 투덜대면서 품 안에 들어 있는 마법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시엘은 경계심을 품은 건지 가볍게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 앞에 주황빛 마법진이 구현되었다.
불 마나가 그녀의 마법진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술식, 공부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화염구]가 아니었다. 그녀는 4성급 마법, [불바다]를 쓸 셈이었다.
[불바다]는 쓰나미처럼 화염을 들이붓는 마법이다. 공격 범위가 넓은 것은 당연하다. 그녀 말대로 방금 전처럼 운 좋게 피하는 건 불가능하리라.하지만 내겐 비장의 수가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셀 수 없이 플레이해 오면서 내가 네 공략법 하나 파악 못 했을 것 같나?
시엘이 [불바다]를 사용하기 전.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마법 주머니에서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
시엘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힘없이 뜬 눈이 조금 커졌다. 역시 놀랐구나.
“거래하자고, 시엘.”
내가 꺼내 든 것은 남색 ‘베개’였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편안한 숙면을 보장해주는 최고 품질의 베개. 비밀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시엘 카르네다스의 호감도를 극명하게 올려줄 수 있는 히로인 전용 아이템이었다. 상품명은 ‘누구나 기절하는 베개’였다. 이안한텐 필요 없는 것이다.
시엘은 숱한 낮잠 경험을 토대로 내 베개의 형태를 분석했다. 낮잠에 조예가 깊은 낮잠 전문가로서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베개가 수준급의 상품임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옆모습만 보이면서 눈길만 주고 있던 그녀의 고개가 완전히 내 쪽으로 돌아갔다. [불바다]를 발동하기 위해 모이고 있던 불 마나가 사그라졌다.
이 베개가 그녀의 구미를 당긴 것이다.
심지어 지금 그녀는 베개도 없이 딱딱한 나무에 기대고 자고 있던 상황. 비 오는 날 우산을 찾는 사람처럼 당장에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건… 어디서 구했어?”
“갖고 싶어?”
시엘은 침묵이라는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 고개를 끄덕이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너랑 거래하러 왔어. 내 요구를 들어 줘. 그럼 이 베개는 물론이고, 플러스 알파로 너한테 메리트가 있을 거야.”
“무슨 메리트?”
“펠 카드, 아직 제대로 감지 못하고 있었지?”
“…어떻게 알았어?”
아까 질문했던 건데. 진짜 내 얘기 하나도 안 쳐들었구나.
펠 카드는 A 클래스 학생들도 쉽사리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한 마력만 발산하는 물건이다. 시엘 카르네다스도 예외는 아니다.
어차피 낮잠 잘 생각이었던 시엘은 펠 카드가 감지가 안 되니, 곧바로 공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낮잠이나 자기로 했을 터다.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아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3장, 학기말 평가」 중후반부부터는 낮잠에서 깨어난 시엘이 참전해 난이도가 올라간다. 그녀는 펠 카드를 보유한 학생들을 습격해 약탈하는 전략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은 강하니까 그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내가 펠 카드 찾아줄게. 이 베개도 줄 거고.”
“네가 누군지 알아. 마력량 E급, D 클래스의 열등생. 그런 네가 어떻게 펠 카드를 찾을 수 있단 건데?”
“따라와 봐.”
시엘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 시엘 카르네다스 ]심리 : [ 당신이 함정을 판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
“정 의심되면 언제든 날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내가 널 속였다는 정황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땐 날 탈락시키든가.”
“…….”
시엘은 눈살을 찌푸리곤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시엘의 키는 내 목까지 닿았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경계심을 풀어 주기 위한 자본주의 미소였다.
물론 내 정신적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화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가리고 하품하면서 노곤한 표정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어서 가.”
예, 물론입죠.
이 숲속 어디에 펠 카드가 있는지 나는 파악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너구리 머리 모양의 바위가 나타났다.
여기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그 바위 옆에 놓여 있는 살짝 큰 돌멩이를 들어 올렸다.
역시, 펠 카드가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시엘은 놀란 눈치였다. 그 졸린 눈이 번뜩 뜨인 걸 보면.
나는 카드에 손대지 않았다. 카드에 신체를 접촉한 사람이 그 카드를 보유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체 접촉. 펠 카드는 마지막으로 건드린 사람이 보유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굳이 상대를 처치하지 않더라도 카드를 훔치기만 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카드를 ‘주고받으면’ 평화롭게 끝날 일이니까. 그리고 내 게임 지식은 그걸 가능케 한다.
“너, D 클래스잖아? 이건 무슨 괴물 같은 마나 감지력이야…?”
“영업 비밀이라 생각해라.”
시엘은 도끼눈을 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까 마법 부딪쳤을 때 네 마력량을 느꼈어. 너처럼 약한 게 이런 마나 감지력을 갖고 있을 리 없어. 어떻게 된 거냐? 순순히 밝히지 않는다면 유혈 사태를 면치 못할 거야.”
나는 베개를 슥 내밀었다.
“…하지만 영업 비밀이라니까 어쩔 수 없군.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기 마련이지. 그래서, 나랑 하고 싶은 거래가 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
“내가 펠 카드 가이드가 돼 줄게. 이런 시험, 빨리 끝내고 여유롭게 낮잠자는 편이 더 좋을 거 아니냐? 이 베개도 당연히 줄 거야. 대신 내가 걸 조건은 두 가지.”
나는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첫째, 날 지켜라. 둘째, 한꺼번에 펠 카드를 모은 다음 5장만 나한테 나눠줘. 나도 시험 통과할 수 있게.”
학기말 평가에서 펠 카드를 지니고 있으면 학생들의 표적이 된다. 보유 현황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보유자의 위치까지 공개된다.
심지어 모아야 할 펠 카드는 무려 5장.
즉, 나 같이 약한 놈이 빠르게 펠 카드를 모으려고만 해봤자 학생들의 표적만 될 테고, 손쉽게 탈락할 테고, 기껏 모아둔 카드를 빼앗길 테고, 팔찌도 못 풀게 될 테고, 보충 수업 대상자로서 잡혀 있게 될 테고, 뇌신조 토벌전에 대비하지도 못하게 될 터다.
“…그거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은 가녀린 오른쪽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나는 왼쪽 손바닥을 그녀의 손바닥과 짝 소리 나게 부딪쳤다.
“거래 성사. 베개.”
시엘이 담담하게 말하며 손을 내밀자, 나는 베개를 건넸다.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더니, 좋아죽으려는 듯 뺨을 붉혔다. 이내, 그녀의 표정이 한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
시엘과 동행하면서 펠 카드를 찾는 일은 일사천리였다.
시엘은 내가 펠 카드를 찾아낼 때마다 연신 감탄했다. 티는 안 냈지만 [심리 간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방해하러 온 학생이 있으면 시엘이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나는 편하게 가이드 역할만 수행해주면 되었다.
5장째 카드를 찾았을 땐 그녀의 팔찌에서 자동으로 마나 알갱이들이 튀어나와 지도를 만들어냈다. 빛나는 알갱이 하나가 특정한 장소를 표시해주었다. 제출처를 의미하는 알갱이였다.
참고로 제출처는 총 열 곳 있으며, 펠 카드 5장째를 손에 넣었을 때 랜덤으로 한 곳이 표시된다. 나는 그 점을 감안해서 너무 구석 지지 않은 곳으로 시엘을 안내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루체 왜 저렇게 날뛰고 있냐…?’
이유를 모르겠다. 시나리오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이렇든 저렇든 멈출 순 없었다. 펠 카드를 빠르게 모으고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게 내 최우선 목표니까. 루체의 기행을 신경쓰는 건 과감하게 후순위로 미뤄둬야만 했다.
“너, 진짜로 정체가 뭐야?”
어느새 펠 카드를 7장째 찾은 시점. 펠 카드가 2장이나 있는 꿀통 건물에 들어선 때였다.
넓은 중앙 홀. 한때 호화 시설을 자랑했을 법한 건물 내부는 세월의 흔적으로 녹슬고 닳아 있었다.
시엘은 내가 준 베개를 소중하게 껴안은 채 내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서리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 시엘 카르네다스 ]심리 : [ 당신이 실력을 숨기고 있는 강자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
나와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많이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 약하다고 지가 먼저 말했으면서.
“무슨 정체?”
“고작 티끌만한 마력밖에 없는 주제에 이만한 마나 감지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어. 마나 감지력은 최대 마력량의 절대적인 수치와 직결되는 능력이니까.”
말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나 레벨 57인데. 나름 C 클래스 상위권 애들과 비벼볼 만한 레벨이라고.
…뭐,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B 클래스 학생들도 어쭙잖게 볼 정도의 실력자인 시엘이 보기에, 내 마력이 티끌 수준이란 표현은 얼추 맞는 얘기라고 볼 수 있겠다.
“자기 마력량을 숨긴다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고 네 마력량으로 이 정도 수준의 마나 감지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이런 모순이 어떻게 성립되고 있는 거야?”
시엘은 나를 차갑게 쏘아 보았다.
“그게 가능하려면 자기 마력량을 숨길 수 있는 경우뿐. 고작 네 나이에 말로만 듣던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시험 출제자를 매수하는 건 약조 때문에 불가능하잖아.”
“여기엔 펠 카드가 2장 있어.”
입 좀 다물라는 의미로 정보를 흘려주었다. 역시나 시엘은 당황한 눈치였다.
“한 장… 아니었어? 나도 감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고로 나는 이 건물에 들어섰을 때 앞마당에 있던 잔디의 형태를 눈여겨본 상태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누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 즉, 이 건물엔 2장의 카드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치.”
[ 시엘 카르네다스 ]심리 : [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시엘은 자기보다 약한 녀석들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나를 향해 열등감을 품기 시작했다. 혀를 차면서까지.
…저, 쩌리인데요?
“…얼른 다 찾자.”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
“시끄러워.”
시엘은 내 말을 묵살했다. 아무리 거래 관계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힘의 논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니 나는 입 다물고 잠잠히 그녀의 의사를 따랐다.
어차피 자기 채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도 아니니까.
우리는 건물 안에 있던 펠 카드 2장을 다 찾았고.
점수판에는 [1위(자) 시엘 카르네다스 펠 카드 +9]라고 새겨졌다. 당장에 2위인 카야만 해도 2장째인데….
내 작품이라지만, 진짜 어그로 끝내주네.
“이제 다 됐어.”
9장째 펠 카드를 찾은 뒤, 시엘이 내게 말했다.
그 카드를 찾은 곳은 결혼식장을 연상케 하는 널찍한 홀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아하고 기품이 넘쳐났다.
벽면은 금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예쁜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벽을 타고 녹색 덩굴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덩굴들엔 시계초처럼 생긴 형형색색의 독특한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관리가 안 돼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오히려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단상 앞에서 나와 시엘은 마주 보고 섰다. 누가 보면 둘이서 단출하게 결혼식을 하는 줄 알겠다. 물론 지금의 난 예식 복장과는 거리가 먼, 흙먼지 뒤집어쓴 교복 차림이지만.
“1장 남았잖아? 네 거.”
“나머지 1장은 내가 알아서 찾게.”
자존심이 상한 걸까.
하긴, 자기보다 밑 수준이라고 생각한 녀석이 자기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엄청난 마나 감지력을 선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물론 그건 시엘의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나는 마나 감지력으로 펠 카드를 찾아냈다곤 조금도 언급 안 했다. 딱히 다른 이유를 들먹일 수도 없는 처지라 잠자코 부인하지 않고 있던 거지.
“일단 이거, 받아.”
시엘은 얄찍한 카드 한 뭉치를 내게 건넸다.
제출처는 무작위로 뜬다. 내 제출처가 어디로 뜰지 모르니, 여기서 펠 카드를 받고 빠르게 가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나는 카드 뭉치를 받고서 수량을 세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완벽하다.
창밖에서 마나 알갱이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 새겨진 점수판에 [1위(백) 아이작 펠 카드 +5]라고 나타났다.
내 팔찌에서도 마나 알갱이들이 우르르 흘러나와 지도를 만들고 제출처를 표시했다.
운이 좋게도, 다행히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달리면 20분 이내로 도달할 만한 거리.
“얼른 가자.”
“응.”
시엘은 내가 준 베개를 양팔로 꼭 껴안은 채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질지 그녀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