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66)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
엘트섬에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중심부에 이르러야 했다.
밤이 되면 마물 환상과 적 사역마에게 유리한 환경이 되는 건 물론이요, 버섯 포자에 당할 위험도 급증하게 되니까.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워져서 그렇다.
──── 「천리안 (중립 속성, ★7)」
‘잘하고 있어, 이안!’
수시로 [천리안]을 써서 이안과 카야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문제없이 엘트섬 중심부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기세야. 힘내라, 이안!
‘…힘내야 할 쪽은 난가.’
빙설룡-힐드가 송곳니 달린 하마를 발견했다고 보고한 때부턴 전투를 포기했다. 벌써 그 구간까지 왔구나.
이제부턴 내 쪽이 사냥 당할 염려가 있었다. 계획대로 동료를 포섭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학생이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덧 중심부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엘트섬 위에서 조류 마물 환상들이 틈만 나면 나를 노려대기 시작했다.
그 탓에 무인 상점에서 구매했던 위장막을 어깨에 둘렀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곧바로 들어 올려 전신을 뒤덮을 셈이었다.
위장막은 주위 환경에 맞추어 디자인이 변화하니까.
‘판초 우의 같아서 엿 같네.’
사고가 군 복무 시절로 이어지니 문득 이등병 시절 나를 괴롭혔던 상병 새끼가 떠올랐다. 그 새끼 개 때리고 싶네.
“으아아악!!! 배고파아─!!!”
“헉, 시벌 뭐여?!”
돌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가고 있는 여학생이 나타났다.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오렌지색 포니테일 머리칼. 금안. 교복은 바지 차림. 하얀 셔츠는 단추를 완전히 풀어제낀 탓에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달리면서 연갈빛 마석이 박혀 있는 방망이, 록타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바위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 마물 환상들을 가볍게 압살해 나갔다.
마법학부 1학년 A 클래스, 최상위권 학생인 리제타 라이온하트였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Lv : 98
종족 : 인간
속성 : 바위
위험도 : X
심리 : [ 배고파서 짜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
리제타는 두 번째 원소 속성을 개방하지 않았다. 바위 마법만을 특화시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기어 나온 거냐…? 나와 같은 배 타고 왔던 기억은 나는데.
“여긴 무슨 먹을 게 죄다 이상한 것들뿐이냐!!! 아악!!!! 배고파!!!!”
추측하건대, 아마도 쿨쿨 버섯 같은 걸 먹다가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리제타를 동료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세가 어마어마해서 섣불리 다가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뭐, 동료로 꼬실 필요도 없겠네.’
애당초 리제타는 중심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며.
진로를 가로막는 마물 환상들과 적 사역마들을 전부 박살 내고 있었으니.
나는 리제타 뒤꽁무니만 쫓으면 되었다. 방향이 같으니까.
‘개꿀.’
리제타 버스, 탑승합니다.
적들을 알아서 섬멸해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비켜, 떨거지들아!!!”
시원시원하니 승차감이 기가 막혔다.
……
군청색 어둠이 찾아왔다. 다행히 나는 리제타를 뒤따라 엘트섬 중심부, 화산 인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화산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높이 3m의 문짝이 붙어 있었다. 화산 동굴 입구였다.
나는 리제타와 최대한 거리를 벌린 채 [천리안]을 발동했다. 그녀가 내 마력을 감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천리안]으로 건너편을 훑어보았다. 이안과 카야는 현재 건너편 문지기와 마주친 상황. 슬슬 전투에 돌입하려는 분위기였다.이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천리안]을 풀고 리제타와 문지기의 대립을 지켜보았다.
“야, 하나 묻자.”
록타를 어깨에 걸친 채, 신장 6m에 육박하는 마수에게 거리낌 없이 질문하는 리제타.
마수는 머리가 날카로운 촉수로 이루어진 파란 피부의 거인 사역마였다. 팔꿈치에선 불꽃이 검날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뒤에, 문 열고 들어가면 먹을 거 있냐?”
[쿠오오오오오──!]“에라이! 말이 통하는 새끼가 없어!!”
「불주먹 (불 속성, ★3)」
──── 「암석 붕괴 (바위 속성, ★4)」
문지기가 화염을 휘감은 커다란 주먹을 날리자, 리제타는 허공에 구현한 마법진을 향해 록타를 횡단으로 휘두르며 바위 마법을 발동했다.
지면에서 4개의 굵직한 바위기둥이 솟구치더니, 공기를 가로질러 문지기를 짓쳐들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쿠오오오오오…!]굉음에 가까운 타격음이 이어졌다. 연이어 리제타는 바위 마법으로 노도의 연격을 가했다.
쾅! 콰앙! 콰앙! 쾅! 쾅! 콰아앙!
[암석 붕괴], [암석 붕괴], [암석 붕괴].거침없는 연타에 문지기는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재미없네.”
버스 님이 승리하셨다! 갈채하라!
리제타는 혀를 끌끌 차며 화산 동굴 입구로 향했다.
리제타는 한 손으로 문을 밀어냈다. 문은 김빠질 정도로 아주 쉽게 열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리제타.
‘리제타 버스 승차감 지리네.’
아, 이게 바로 꿀 빠는 맛 아니겠습니까.
화산 동굴 내부엔 최종 보스가 숨어 있다. 리제타가 놈을 쓰러뜨릴 때까지 기다리자.
참고로 화산 동굴은 화산을 빙 두르고 있는 구조라 그리 깊지 않았다. 리제타는 금방 최종 보스를 만날 수 있을 터였다.
다시 [천리안]으로 이안과 카야의 상황을 살폈다. 그들도 때마침 문지기를 쓰러뜨린 참이었다.
일이 잘 풀려가고 있었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는구나.
“…….”
…왜 일이 잘 풀리지?
어색했다. 왠지 이럴 때면 항상 뭔가 꼬이곤 했었던 것 같은데….
아니지. 가끔은 내 생각대로 물 흐르듯 수월하게 풀려도 이상할 게 없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늘은 뭐든지 잘 풀리는 운수 좋은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로제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면 양호하지. 참교육도 시켜줬고.
나는 애써 웃음을 흘리며 나무 뒤에 숨은 채 숨을 죽였다.
시간이 흐르고.
[천리안]으로 살펴보니 리제타는 화산 동굴 깊숙이 들어가 최종 보스, 거대 불 도마뱀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곧바로 이안과 카야 쪽도 살펴보니, 그들은 이제 막 최종 보스를 마주한 참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4막 3장, 땅속 거인」 파트에서 리제타는 조금도 출현하지 않았었다. 즉, 그녀는 불 도마뱀을 쓰러뜨린 뒤 화산 동굴을 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리제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
[천리안]으로 다시 리제타 쪽을 살피고서.나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기절해 있는 거대한 불 도마뱀. 그 위로…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는 오렌지색 포니테일 머리의 여학생.
록타로 연신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능한 한 멀리서 뒤쫓고 있었는데, 리제타는 야성적인 감각으로 내 추적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가 뒤따라오리라 짐작하고, 대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맙소사.’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운수 좋은 날이 개같이 멸망했다. 최대의 변수가 이 중요한 시점에 내 앞을 가로막아 버렸다!
학기말 평가 때는 루체와 카야, 시엘이 날 도와 줬다지만, 지금은 나 혼자잖아….
얼마 안 있으면 무상의 엘페르트가 출현한다. 제시간에 맞추려면 지금 당장 리제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안과 카야가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고 놈이 튀어나올 테니까. 길만 잘 따라가면 20분 안에 이안과 카야에게 도달할 수 있으리라.
“하아, 쓰바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리안]을 풀고 나무에 고개를 묻었다.
리제타는 호승심이 투철한 성격이다. 자신을 뒤쫓고 있던 나를 마주한다면 필시 전투에 돌입할 게 분명했다.
내가 리제타를 이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세계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우는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부딪치는 수밖에.
나는 화산 동굴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화산 동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텁텁한 공기. 황토색 벽면에 하얀 줄무늬가 조화롭게 새겨져 있는 동굴의 풍경.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발광 램프들 덕분에 내부는 한밤 중이 무색하게도 밝은 편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동굴의 면적이 넓어져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렵 평가 최종 보스가 출현하는 널찍한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왔냐.”
공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기절한 불 도마뱀 위에서.
리제타 라이온하트는 씨익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심리 : [ 당신에게 경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아아, 너. 그 엑스트라 자식이구나! 누군가 했네! 크흐흐!”
“…….”
“내가 못 알아챌 줄 알았냐?”
웃다가 돌연 표정을 굳히는 리제타.
그녀의 바위 마나가 바람처럼 흐르며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여실히 실감시켜 주는 위압감.
리제타는 불 도마뱀 위에서 뛰어내려 지면에 착지하고는, 록타를 어깨에 걸친 채 남은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풀어헤친 와이셔츠 너머, 몸에 딱 달라붙는 탱크탑 셔츠가 그녀의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강조했다.
‘버스를 잘못 탔어….’
설마 이게 낭떠러지로 향하는 버스인 줄은 몰랐지….
“왜 날 쫓아왔지?”
솔직하게 대답하든, 거짓말로 꾸며서 대답하든 결론은 같을 것 같았기에.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캬하! 무응답이냐! 그럼 너, 이름이 뭐냐?”
“…아이작.”
“난 리제타 라이온하트다! 개인적으로 네놈한테 흥미가 있었다!”
리제타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는 평소의 호승심과 맞물려 한 명의 용맹한 검투사를 연상케 했다.
“왜 수석, 차석, 삼석이 전부 너 같은 엑스트라 새끼랑 엮여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특히 수석, 그 년은 너한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더만!”
리제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뭐, 됐다. 이유야, 나도 지금 확인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리제타 주위로 전개되어 가는 바위 마법의 연갈빛 마법진.
역시 이 흐름이냐….
나를 유심히 지켜보는 리제타. 긴장감이 감돈다. 전투욕을 불태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만다.
뭐, 나도 생각 없이 온 건 아니었다.
내 작전은 간단했다. 일시적으로 마나 회로를 꼬아버리는 제롬 버섯을 일단 던지고 보는 것이었다.
다만, 리제타에게 제롬 버섯의 효과는 나처럼 극적으로 나타나진 않을 터였다. 그녀는 강하니까. 아마 마법 발동이 조금 불편해지는 정도겠지.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집중해라.
나는 숨을 죽이고 연푸른빛 마법진을 전개해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마법으로 주의를 돌리고, 틈을 봐서 제롬 버섯을 날리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묵직한 위압감이 내 전신을 짓누른다.
이윽고.
“…됐다.”
갑자기 리제타는 지루해졌다는 표정으로 마법진을 거두었다.
“그 마력량….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웬 지랄이냐…?
“딱 보니까, 그 잘난 년들이 네 하찮은 전투 능력에 관심을 가졌을 리도 없고…. 다른 이유였나. 괜히 기대했네. 다음엔 동료라도 끌고 와라. 너 하나론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리제타는 내 자존심을 박박 긁어댔다.
이마에 십자 핏줄이 돋는 듯했다. 열 뻗친다….
“아! 혹시 먹을 거 있냐? 배고파 뒤지겠는데.”
“…….”
“있냐고? 왜 대답 안 하냐?”
“…있습니다.”
…하지만 배드 엔딩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지.
리제타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니 일단 기는 수밖에.
“오, 진짜? 내놔봐라!”
듣던 중 희소식이라는 듯 활짝 웃는 리제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리제타가 “한숨 쉬었냐?”하고 정색하고 마법진을 전개하길래, 다급히 품 안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굽실굽실 리제타에게 보따리를 대령했다. 그녀는 보따리를 받고 내용물을 살폈다. 오는 길에 주웠던 ‘한설꽃’ 10송이였다.
상시 얼음 원소 마나를 방출하는 식용 꽃이며.
무인 상점에서 구매한 1성급 불 마법 주문서로 동그란 꽃술을 태워서 미리 익혀둔 채였다.
“이상한 거 아냐? 너부터 먹어봐라.”
리제타는 사탕처럼 생긴 한설꽃 꽃술을 꺼내 내 입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꽃술을 우물우물 씹었다. 마치 물렁물렁한 소금절이 무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먹을 만했다.
리제타도 그제야 안심하고 한설꽃 꽃술을 꺼내 제 입 안에 집어넣었다.
“막 맛있진 않은데, 나름 먹을 만….”
그때였다.
쿠우우우우우우우────!
“으학!!”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흘러내리고, 발광 램프가 우수수 떨어져 동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땅속 거인. 무상의 엘페르트가 출현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 현상이었다. 놈이 현현한 것이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리제타, 도망쳐!”
“어, 어?”
“빨리 도망치라고, 멍청아!”
“뭐…?”
리제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얼른 이안에게 도달해야 했다!
나는 동굴 안쪽 통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길로 쭉 가면 이안과 카야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천리안]으로 상황을 살폈다. 이안과 카야는 당황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내 근육을 십 분 발휘해 전속력으로 뛰어간다면 10분 이내로 도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전력으로 뛰어야 했다!
“야!! 뭔 일인데 그래?!!”
아니, 리제타 저년 왜 쫓아와?!
“너! 방금 지진이 뭔지 알고 그러는 거냐?!!”
“도망치라고 했잖아!”
너 있어봤자 방해만 된다고!
“하?! 약한 주제에 왜 자꾸 명령질이냐, 아앙?!! 죽고 싶냐?!”
리제타를 설득하고 돌려보낼 시간은 없었다. 이제 곧 거인의 주둥이가 카야를 집어삼킬 테고, 이안은 그 안으로 뛰어들 테니까.
나와 리제타는 이안이 있는 장소를 향해 뛰어갔다.
저년이 끝까지 따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그러지 않길 바랐다. 안 그러면 저년한테도 내가 마족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테니까.
나와 친하지도 않으면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지극히 사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저거, 자기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은 듣지 않는 애였지.
‘아으.’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