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5)
나의 악당들 175화
42. 굴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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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 石”, 石一 후 石”, 石”, 石’- 후 북소리에 발을 맞추는 수많은 병사 들 사이, 비죽 솟은 깃발들이 펄럭 거렸다.
대여섯 장의 깃발은 저마다 다른 그림을 새기고 있었다.
고리 십자가, 교차한 두 자루의 창 과 방패, 말 탄 기사, 원을 그리는 일곱 마리의 붉고 푸른 새들, 흑백 의 격자무늬…….
개중 한 깃발이 유난히 높이 솟아 있었다. 하얀 새가 그려진 깃발이었 다.
북소리가 멎으며 군대의 행진도 멈 출 무렵, 하얀 새가 그려진 깃발 아 래로 기사와 장교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 있던 젊은 청년은 고삐를 당기며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창을 움켜쥔 하얀 새. 그가 속한 가문의 문장이었다…….
퉁퉁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청년은 가만히 생 각에 잠겼다.
‘역시 망토보다는 월계관이 좋겠 어. 황금은 탐욕스러워 보일 테니, 강철로 만든 월계관으로 할까.’
장차 자신을 시조로 삼을 가문의 문장을 상상하던 청년에게 한 중년 인이 다가왔다.
얼굴 가득 흉터와 풍상을 새긴 중 년의 군인, 앵거스였다. 그는 트리스 탄 백작의 선임 지휘관으로, 이번 출정의 실질적인 책임자이기도 했 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기사들의 장 막을 지나친 앵거스는 젊은 청년에 게 예를 표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공자님, 공격 명령을 내리셨습니 까?”
“그렇다.”
“……행군을 마치자마자 공성을 시 작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병사들에게는 휴식이, 파괴술사들에 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따위 조그만 영지 하나를 점령 하는데 왜 시간을 낭비해야 한단 말 이냐?”
트리스탄 백작의 차남, 도일 뮬린 은 빠진 치아들 탓에 뭉개진 발음으 로 말을 이어갔다.
“관문과 목책만 좀 무너뜨리면 놈 들은 금세 항복할 거다. 잔말 말고 당장 공격해.”
“이 거리에선 파괴술사들의 주문이 목책에 닿지 않습니다. 마법진을 그 릴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법진, 그중에서도 주문의 사거리 를 증폭시키는 마법진 위에 서면 파 괴술사는 공성 병기가 된다.
‘힘의 창’이나 ‘파괴의 구’ 같은 강 력한 주문들을 장궁으로 쏘아낸 화 살보다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 릴 수 있게 되니까.
도일도 그 사실을 잘 알지만, 중년 의 지휘관을 내려다보며 단호히 고 개를 내저었다.
“아니, 시간 낭비할 것 없다. 해가 지기 전에 롱빌을 떨어뜨릴 것이 다.”
“공자님.”
“고대의 명장이었던 ‘탈로칸’이 말 하길, 칼이 짧으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했지. 사거리가 부 족하면 주문이 닿는 곳까지 나아가 면 그만이다.” 도일의 말에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 사이에서 ‘옳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군요!’ 따위의 목소리 가 터져 나왔다.
도일이 뽐내듯이 손을 들어 보이 자, 기사들이 웃으며 환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앵거스는 속으로 한숨 을 삼켰다.
‘……이 멍청한 새끼들.’
그는 치미는 부아를 애써 누르며 도일을 설득했다.
“마법진이 없으면 파괴술사들은 코 앞의 적밖에 공격하지 못합니다.”
“코앞이라니, 과장이 심하군.”
“파괴술사는 마법사지 병졸이 아닙 니다. 그들을 목책 앞까지 진군시켰 다는 사실을 알면 백작님께서 진노 하실 겁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잔말 말고 군대 를 지휘해라, 선임 지휘관 앵거스.”
앵거스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도일은 기사들을 돌아보며 목청을 돋웠다.
“경들도 준비하시오. 영광의 전투 가 우리를 기다리니!”
또다시 환호.
이 순간, 앵거스는 한 사람이 사무 치게 그리워졌다.
‘젊은 새끼들이 대가리에 공명심만 찼구나. 에셀다 경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에셀다는 실력과 명성을 갖춘 기사 이자 풍부한 경험의 숙장(宿將)이 다. 그녀가 있었다면 젊은 기사들은 찍소리도 못 내었을 테고, 도일 역 시 저리 독단적으로 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앵거스는 장교들 을 이끌고 지휘에 나섰다. 아니, 나 서려고 했다.
“어, 저기-”
누군가의 새된 소리를 내며 롱빌 쪽을 가리켰다. 앵거스와 장교들은 물론이고 도일과 기사들 역시 그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린 롱빌의 관문에서, 필마 단기가 뛰쳐나왔다.
마침 석양이 질 무렵이라 롱빌과 군대 사이의 초지는 붉게 물들어있 었다. 덕분에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수의 푸른 망토 역시 자홍색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땅을 접듯 달리는 전투마와 장대한 체구, 번쩍이는 판금갑옷…….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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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망토의 기사는 군대의 쉰 걸 음쯤 앞까지 달려오더니 고삐를 잡 아당겼다. 전투마가 앞발을 들며 거 칠게 투레질함과 동시에, 기사가 고 함을 질렀다.
“거기-!”
투구를 벗어두고 왔는지, 기사는 사내다운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 었다.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막힘없 이 우렁차게 울렸다.
“트리스탄 백작의 차남, 도일 공자 가 있다면 나오시오!”
기사는 당당했다.
일천 군세 앞에 홀로 선 채 가슴 을 펴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젊은 기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 분했다.
도일이 그 기사를 유심히 살피는 사이,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마 주 고함을 질렀다.
“무례하군! 감히 공자를 청하는 당 신은 누구요!”
슬쩍 웃음을 흘린 푸른 망토의 기 사는,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을 매 만지며 자신을 소개했다.
“왕국의 수호자이자 모든 약자들의 대전사이신 울카르 라이오넬슨 오브 제오레 왕자 전하, 그분의 기사인 랭볼트 얼쇼어요!”
“……랭볼트, 얼쇼어? 랭볼트라 고?”
젊은 기사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 이, 군중에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울카르, 은왕자, 푸른 망토, 랭볼 트, 고함치는 파도, 참철의 기사, 동 부 제일의 검사 등, 여러 낱말이 입 과 입을 타고 흘러갔다.
천 명의 병사들 중 랭볼트라는 이 름 혹은 그의 별명을 처음 듣는 이 는 거의 없었다. 점차 커지던 웅성 거림은 장교와 하사관들이 고함을 질러댈 즈음에야 잦아들었다.
앞으로 나섰던 기사는 당황한 것도 잠시, 얼른 신색을 회복하며 랭볼트 에게 물었다.
“그래, 랭볼트 경! 도일 공자를 찾 는 이유가 뭐요!”
“도일 공자에게 제안할 바가 있 소!”
“제안? 그게 뭐요!”
“친애하는 전우인 포이닉스 경에게 듣기로, 공자가 내 주군을 모욕했다 던데!”
군중의 시선이 도일에게로 모여들 었다.
«……으 ”
……”5三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에 셀다와 포이닉스의 결투는 이미 군 중은 물론 뮬팅엄까지 퍼진 터였다. 그 결투의 시작이 도일이 포이닉스 에게 한 모욕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었다.
도일이 가만히 침묵하자, 그를 곁 눈질한 젊은 기사가 대신 입을 열었 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요? 공자님 과 결투라도 하겠다는 건가!”
“모욕한 바를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소. 포이닉스 경에게 얼마쯤 대가 를 치렀다고 들었거든.” 그리 말하며 빙글거리는 랭볼트를 보니 울화가 치밀었지만, 도일은 잠 자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주군을 모욕한 자를 따귀 몇 대로 용서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포 이닉스 경이 워낙 자비로운 탓이니 이해를 해야겠지!”
그 따귀 몇 대에 빈사에 이르렀던 도일은 고삐를 쥔 손을 부르르, 떨 다가 벌컥 고함을 질렀다.
“혓바닥이 길군. 그 명성에 어울리 지 않게도 말이오!”
“그대가 도일 공자요?”
“그렇소! 화살 밥이 되고 싶지 않 다면 어서 용건이나 말하시오!”
랭볼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내 제안은 간단하오! 포이닉스 경 에게 양해를 구한 바, 공자가 치르 지 않은 따귀 한 대를 감해줄 것이 니 지금 당장 군대를 데리고 물러나 시오!”
“하, 개소리!”
헛웃음을 터뜨린 도일은 얼굴을 시 뻘겋게 물들이며 악을 써댔다.
“그따위 유치한 제안으로 아버지 각하의 군대를 물릴 수 있으리라고 여겼나! 개소리 말고 꺼져라!”
“허- 언사가 불손하군, 공자! 미뤄 둔 대가를 치르라는 말을 어찌 개소 리로 치부할 수 있소!”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랭볼트가 호통을 쳤다.
“군대를 물릴 수 없거든, 이 앞으 로 나와 얼굴을 내미시오! 포이닉스 경을 대신하여 공자가 미처 치르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
“저, 저 미친놈이!”
일천 군세와 롱빌 사이 앞에서 따 귀를 맞으라는 말에, 도일은 물론이 고 그 주변의 기사들 역시 분노를 토해냈다. 귀족으로서 감히 받아들 일 수 없는 수치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빠드득, 이를 갈고 있는 도일 앞에 건장한 체구의 기사가 나섰다.
“공자님! 제가 저 무도한 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모나드 경.”
앞에 선 기사는 뮬팅엄의 젊은 기 사들 중 수위를 다투는 자였다. 도 일은 모나드를 바라보다가 끙, 소리 와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럴 것 없소. 미친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니.”
“하오나 공자님! 저기 있는 랭볼트 의 주군은 백작 각하의 원수인 은왕 자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엔 에셀다 경이 피투성이 검사에게 패하며 치 욕을 겪었지요!”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도일은 가 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기사 모나드 는 채근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저자는 은왕자의 막하에서도 첫째 가는 기사이니, 지금이야말로 백작 각하의 오욕을 씻을 기회입니다!”
속에서 천불이 난 도일은 ‘그러다 네 놈도 지면 어쩔래?’ 하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때, 지휘관 앵거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모나드 경의 말이 맞습니다.”
“……뭐라고?”
“저는 기사가 아니지만, 명예가 무 엇인지는 압니다. 도발을 받지 않았 으면 모르되, 저 무도한 자가 감히 허튼소리로 공자를 모욕하려 했으니 이는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기사들이 그 말에 호응하자, 도일 은 앵거스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 러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소. 부디 뜻대로 하시오, 모 나드 경.”
“예, 공자님!”
만면에 미소를 띤 모나드는 풀헬름 을 눌러썼다. 그러곤 종자에게서 기 다란 마상창을 받아 곧장 고삐를 채 쳤다.
“네 이놈, 랭볼트!”
군세 앞으로 나선 모나드는 창끝으 로 랭볼트를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 렀다.
“나는 마르바와 비티안의 주인이신 트리스탄 백작님의 기사이자, 발푸 르 가문의 상속자인 기사 모나드다! 함부로 혀를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흐음?”
자신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랭볼트 가 팔짱을 낀 채 콧수염만 매만지고 있자, 모나드는 무어라 괴성을 지르 더니 박차를 찼다. 팔팔한 갈색 전 투마가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거 리를 좁혔다.
두두두두-!
무기도 뽑지 않은 채 모나드의 돌 진을 바라보던 랭볼트는 뒤늦게 고 삐를 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으아아압!”
우렁찬 고함과 함께 모나드의 마상 창이 랭볼트의 가슴에 작렬하기 직 전.
챙!
번쩍, 검광이 일었다.
천 명도 넘는 병사들 중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본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도일은 물론이고, 기사들 역시 랭볼트의 움직임을 제 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투둑, 투둑.
갈색 전투마가 속도를 늦출 즈음, 모나드는 마치 나무토막처럼 뻣뻣해 진 채 낙마하고 말았다. 형편없이 바닥에 처박힌 모나드는 풀헬름의 T자 홈 사이로 피를 줄줄 흘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와아아-!
저 멀리 롱빌에서 환호가 터져 나 온 반면, 트리스탄 백작의 군대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자.”
랭볼트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칼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평범한 장검 보다 훨씬 폭이 좁은 검이었다.
검을 경쾌하게 휘둘러 피를 털어낸 랭볼트는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거리에서 군세를 돌아보았다.
“다음 도전자, 있나?”
정적에 휩싸인 군대를 돌아보며, 랭볼트 경은 콧수염을 매만졌다.
“으와. 바르게 찔러써요.”
흉벽 사이에 선 뭉치가 탄성을 홀 리자, 옆에 서 있던 엘렌이 미심쩍 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보이긴 했어?”
“네. 요러케, 요러케-”
칼을 뽑는 시늉을 한 뭉치는 허리 와 팔을 위쪽으로 쭉 펴 보였다. 유 연한 몸동작과 길쭉한 팔다리로 괴 상한 자세를 취하자, 엘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건데, 그게?”
“……그게, 요러케요, 칼로, 우음.”
뭉치가 어물거리는 모습에 나는 피 식 미소를 지었다.
“뭉치가 눈이 좋네. 정확히 봤어.”
“에헤.”
뭉치가 내 손길을 즐기며 방실거리 는 모습을, 엘렌이 물끄러미 바라보 았다.
이내 그 시선이 내 쪽을 향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해주 었다.
“기창(W槍)이 가슴을 찌르기 직전 에 칼을 뽑아서 십자막이로 창대를 밀어 올린 거야. 그와 동시에 칼날 을 눕혀서 눈을 찌른 거고.”
말이 쉽지, 상식을 벗어난 미친 기 예였다. 말과 기수의 무게가 실린 기창을 치우고, 손가락 한 마디 폭 의 투구 홈에 칼을 꽂아 넣은 거니 까.
“ 아하.”
그러나 엘렌은 그쪽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슬쩍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 개를 휙 돌렸다.
마침 랭볼트 경이 이쪽으로 말을 내달려오고 있었다.
“죽여-!”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는 고함 은, 음, 도일의 목소리군.
적들은 기사도고 관례고 다 집어치 우기로 했는지, 랭볼트 경을 향해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궁수, 준비-!”
훈련대장 체스터의 고함에 문루와 목책에 선 궁수들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엘렌 역시 눈을 빛내며 적 들을 살폈다.
화살 비를 피해 도망쳐오는 랭볼트 경은, 망토를 끌러 마치 풍차처럼 휘돌리고 있었다.
가끔 내리꽂히는 화살들은 두터운 망토에 휘말리거나 판금갑옷과 마갑 에 튕겨 나갔다. 저 망토, 마도구였 나?
“하하하-!”
그리고, 랭볼트 경은 그 난리 중에 도 껄껄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전에 지하군주와 싸울 때도 느 낀 거지만, 뇌가 아드레날린에 절여 진 사람 같다.
저쪽에서 몇몇 기사들이 뛰쳐나왔 지만, 우리 쪽 궁수들의 사거리에 들어오기 전에 말머리를 돌렸다. 랭 볼트 경과는 달리 정신이 온전한 기 사들인가 보다.
관문으로 들어서는 랭볼트 경을 롱 빌의 병사들이 벼락같은 환호로 맞 이했다.
우리 쪽이 기세를 올리는 사이, 당장 에라도 공격을 해올 것 같던 적군은 멀찍이 물러나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