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6)
나의 악당들 186화
43. 발버둥(6)
커다란 손바닥이 머릿결을 부드럽 게 쓸어 만지자 뭉치의 눈이 절반쯤 감겼다. 그녀는 집중하여 손길을 음 미하면서도 코끝을 움찔거렸다.
“……포이, 땀 낫써요.” “아, 미안. 냄새나?”
“에, 아니, 갠찬슴미다.”
포이닉스가 슬쩍 손을 빼려고 하 자, 뭉치는 서둘러 반걸음쯤 앞으로 나섰다.
성큼 다가온 얼굴에 눈을 끔뻑거리 기도 잠시, 포이닉스는 다시 미소를 짓더니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갈고리 화살, 다 만든 거야?”
“네, 다 만든 거임미다.”
“밧줄이 시위랑 엉켜서 애먹더니, 어떻게 해결했어?”
“헤, 바침때 잇씀미다.”
뭉치는 팔뚝에 매단 조그만 쇠뇌를 내보였다.
쇠뇌의 누름식 방아쇠 뒤편에는 웬 나무토막이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갈고리 화살에 달린 줄이 걸리지 않 도록 뭉툭하게 깎아둔 모양새였다.
“이런 걸 달아두면 걸리적거리지 않아?”
“갠참슴미다, 뗄 수 이써요.”
딸깍.
뭉치가 간단한 동작으로 받침대를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해 보이자, 포 이닉스는 작게 감탄했다.
“우와, 이것도 직접 만들었어?”
“네에—”
그녀는 포이닉스의 목소리를 좋아 했다. 아무에게나 들려주지 않는, 솜 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말이다.
포이닉스는 일견 차가운 얼굴에 냉 막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뭉치에게는 항상 다정한 어조로 말을 걸어주었 다. 그녀가 멧돼지였던 시절에도 그 랬고, 인간이 된 지금도-조금은 덜 하지만-마찬가지였다.
별것 아닌 일에도 칭찬을 하고 눈 을 마주칠 때마다 애정 어린 말을 쏟아내는 포이닉스를, 뭉치는 좋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구, 우리 뭉치. 손재주도 좋 네.”
“헤.”
굳은살이 배긴 손끝이 코를 슬쩍 꼬집어오자 뭉치는 고개를 숙이며 다리를 꼬아댔다.
그녀는 포이닉스의 체취를 좋아했 다. 포근한 담요와 잘 볶은 견과류 를 떠오르게 하는 체취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뭉치는 매일 밤 포이닉스의 이불 속을 파고 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은 밀한 행복감에 젖어 들면서도 한편 으로는 아쉬움을 느꼈다.
몸을 씻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포이닉스의 습관 때문이다. 진한 체취가 비누향기에 가려지는 것을, 뭉치는 내심 못마땅해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뭉치에게 아 주 귀한 시간이었다. 포이닉스의 품 을 향해 무심코 반걸음 다가간 덕분 에 은은한 땀 냄새가, 진한 체취가 온전히 전해졌으니까.
조금쯤 뜨거워진 숨결이 가을바람 에 흩어지는 걸 야속하게 느낄 만 큼, 뭉치는 포이닉스를 좋아했다.
그녀가 손을 올려 붉어진 목덜미를 숨길 무렵 포이닉스가 문득 뒤를 돌 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영주관에서 뻗어 나온 돌길이었다.
“엘렌! 걷지 말라니까?”
그 돌길을 따라서 엘렌이 발을 질 질 끌며 걸어왔다. 그녀는 위아래로 가벼운 리넨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난, *헤엑* 틀렸어. 먼저, 가-”
“……뭐, 얼마나 뛰었다고 그런 비 장한 대사가 나오냐. 얼른 뛰기나 해!”
“으으 ”
엘렌은 울상을 지은 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걷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속도였지만 포이닉스는 손뼉을 쳐가며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허리 펴고, 턱 당겨!”
마침내 둘의 앞에 멈춰선 엘렌은 무릎을 짚은 채 숨을 골랐다. 포이 닉스는 그녀의 상체를 일으키며 등 을 두들겼다.
“가슴 쭉 펴고, 호흡은 깊고 편안 하게 쉬라니까.”
“편안하질, *하으* 않은데, 어떻게 *흐헥* 편안하게 숨을 쉬어, 이 멍 청아-”
그 투덜거림에 포이닉스가 낄낄 웃 어대자, 엘렌은 도끼눈을 떴다.
“웃겨? 나는, * 후으* 죽을 것 같 은데, 넌 웃겨?”
“응, 웃긴데?”
“이씨,”
엘렌이 꼭 쥔 두 주먹을 들어 투 닥거리려던 차, 포이닉스는 그녀를 잽싸게 제압하여 번쩍 들어 올렸다.
“으엣, 야-!”
“이야, 아직도 팔팔하네. 좀 더 뛸 까?”
포이닉스는 금세 얌전해진 엘렌을 안아 들고 경사로 쪽으로 향했다.
“ 에,”
멍하니 서 있던 뭉치도 잽싸게 둘 을 따라갔다.
포이닉스는 경사로에서 볕을 쬐고 있던 이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누곤 엘렌을 목책 가까이, 그림자가 드리 운 풀밭에 눕혔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와 손목, 발목에 묶어 두었던 모래주머니들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자, 한쪽 다리 들어 봐.”
엘렌은 퍽 고분고분한 태도로 오른 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포이닉스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뭉친 근육과 관 절을 풀어주었다.
으음.” 미간을 찌푸린 것도 잠시, 엘렌은 다리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에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 다.
포이닉스는 그녀의 반응이 반가운 지 옆에 선 뭉치가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안마를 계속 이어갔다.
그런 그들에게 아미아스 패거리가 다가왔다. 리더 아미아스가 각진 턱 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 까? 엘렌 님께는 좀 벅차 보이는 데……
포이닉스는 피식 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벅차긴 뭘 벅차. 얘 스탯 값하려 면 멀었어.”
“스탯, 이 뭡니까?”
“……음,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할 만하다고. 그치, 엘렌?”
질문을 받은 엘렌이 인상을 찌푸리 며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자 포이닉 스는 그녀의 종아리를 꾸욱 눌렀다.
“아웃, 아, 아파!”
“여기가 엄청 뭉쳤네. 평소에 스트
레칭 좀 하라니까.”
“살살, 살살 좀 해!”
웃는 낯으로 엘렌을 달려준 포이닉 스가 아미아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쉬는 거 방해했나? 우린 신경 쓰 지 말고 앉아있어.”
“……음, 포이닉스 님. 그런 게 아 니라.”
“응?”
아미아스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 자, 보다 못한 빡빡이 스티드먼이 앞으로 나섰다.
“아미아스가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무슨 얘기?”
“그야, 저 답답한 놈이 입을 열어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포이닉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아미아스는 마른 침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저, 제네사와 혼인을 하려고 합니 다.”
“어?”
아미아스의 말이 좀 의외였는지, 포이닉스는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웬 결혼?”
“사실 갑자기는 아니고, 이미 전부 터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습니 다.”
아미아스가 자신들의 연애사를 간 략히 설명하자, 포이닉스는 흥미진 진한 기색으로 듣다가 고개를 주억 거렸다.
“……난 까맣게 몰랐네. 뭐, 어쨌든 잘됐네. 축하해.”
“그래서 말인데……. 저희는 롱빌 에 정착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예.”
포이닉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제네사는 라발턴 출신이고, 너는 리드번에서 왔잖아.”
“예, 맞습니다.”
“근데 왜 여기에 정착을 해? 뭐 해 먹고 살려고?”
“실은••••••
아미아스는 아랫입술을 적시며 말 을 이었다.
“훈련대장에게서 좋은 제안을 받았 습니다.”
“훈련대장? 체스터?”
“ 예.”
“갑자기 그 아저씨가 왜?”
“이번 전쟁 동안 제가 마음에 들었 던 모양입니다. 하사관으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군요.”
“하사관?”
“예. 그, 기회가 되면 자기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도……
아미아스가 말끝을 흐리자 포이닉 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질문했 다.
“그래서, 넌 하고 싶고?”
“예. 영지에 나름대로 정도 붙인 데다가, 지금은 좀 힘들어도 미래에 발전할 가능성이 크잖습니까.”
아미아스 패거리는 그라두일 산에 금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 롱빌의 전망을 밝게 예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너나 콜이나 군대에서 고생깨나 했다며. 그런데도 다시 군인이 되려 고?”
“그때처럼 말단 병사는 아니잖습니 까. 듣자 하니 군대도 늘린다고 들 었는데, 운이 좋으면 지휘관 노릇을 할 수도 있겠죠.”
« o 으 w — n •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것도 잠 시, 포이닉스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됐네.”
“•…”예?”
“잘됐다고. 제네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너랑 결혼 한다면 걱정할 것 없겠다.”
포이닉스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 던 탓인지, 아미아스는 떨떠름한 표 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제가 롱빌에 남아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당연하지. 뭐가 문젠데?”
“아니, 그게,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해주실 거라곤.”
이번에는 포이닉스의 표정이 묘해 졌다.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어딨어? 네가 남고 싶으면 남는 거지.”
“음, 그게.”
포이닉스와 아미아스가 서로의 뜻 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대화가 빙빙 돌자, 주근깨 미라가 끼어들었다.
“아미아스의 말은, 그간 포이닉스 님께 빚진 게 있는데 멋대로 남아버 리기가 죄송하다는 뜻이에요.”
“난 너희가 일한 만큼 돈을 준 것 뿐인데, 서로 빚지고 말고 할 게 뭐 가 있어.”
“으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양심이 좀 찔리는데……
미라가 말끝을 흐리자 궁수 콜이 대신 입을 열었다.
“포이닉스 님, 용병에게 무술을 가 르쳐주거나 단련을 시켜주는 고용주 는 없습니다.”
“그냥 운동 좀 같이 한 거 가지고 뭘,” “두 달도 안 돼서 금화를 서른 장 씩이나 벌게 해주는 고용주는 더더 욱 없고, 마도구를 나눠주는 고용주 는 절대로 없습니다.”
콜은 아미아스 쪽을 흘끗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분명 은혜를 입었고, 아미 아스는 그걸 저버리는 겁니다. 부끄 러워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아미아스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잠깐 침묵 이 흐르고, 포이닉스는 떨떠름한 표 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하냐. 아미아스가 나쁜 짓을 한 것
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무슨 큰 은혜를 베풀 었다고. 너희들 죽을 뻔한 게 몇 번 인데, 위험수당까지 치면 본전이나 간신히 챙겨준 거지.”
“하지만 포이닉스 님,”
콜이 무어라 말하려 하자, 포이닉 스가 얼른 말을 가로채었다.
“아, 그만. 내가 괜찮다는데 왜 네 가 토를 달아?”
“ O ”
“어쨌든, 잘 생각했어. 위험천만한 용병 생활보다 정착해서 사는 게 훨 씬 낫지.”
포이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미아 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미아스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감 사를 표하자 포이닉스가 문득 다른 용병들, 그러니까, 스티드먼과 미라, 콜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부려 먹고 있었네. 너희들은? 계속 따라올 거야?”
가볍게 던진 질문에, 세 용병은 저 들끼리 무거운 시선을 나누었다. 셋 중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스티드먼이 었다.
“전 갑니다.”
“가긴 어딜 가. 따라온다고?”
“예.”
“너, 용병대를 꾸리는 게 꿈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간 모아둔 돈이면 조그맣게라도 시작할 수 있을 텐 데.”
스티드먼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 었다.
“연못에 피라미들 모아놓고 대가리 노릇을 하느니, 큰물에서 경험을 쌓 는 게 낫습니다. 마음 같아선 포이 닉스 님 옆에 한 10년 붙어 있다가 서른쯤 되면 그때 용병을 크게 모으 고 싶,”
“잠깐, 뭐라고?”
포이닉스는 충격받은 얼굴로 스티 드먼에게 되물었다.
“10년 붙어 있다가 서른쯤 되면?”
“……예.”
“너 몇 살인데?”
“다음 달이면 스물인데요.”
“그, 그 얼굴에?”
스티드먼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이번엔 미라가 나섰다.
“저도 따라갈게요.”
“하긴. 대도시에 가게를 차리기엔 아직 돈이 좀 부족하지?”
미라가 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포이닉스가 문득 그녀에 게 질문했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헤일라는?”
“……아. 아가씬 집사 할머니랑 차 마시는 중이에요. 벨딘하고 부니도 같이요. 계속 시시한 이야기만 나누 길래 잠시 바람이나 쐴 겸,”
포이닉스가 말없이 눈썹을 긁적거 리자 미라는 합, 하고 입을 다물었 다. 그리곤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 더니,
“으음, 이제 슬슬 들어가야겠네요. 물론 나온 진 얼마 안 됐지만 그래 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 말한 뒤 영주관 쪽으로 사라 져버리는 것이었다.
포이닉스는 그 뒷모습을 보고 쓴웃 음을 짓더니 콜을 돌아보았다.
“넌?”
따라가겠습니다.” 포이닉스가 물끄러미 시선을 던지 자 콜은 조용히 입술을 적셨다.
“전, 강해지고 싶습니다.”
“……강해지고 싶다고?”
“예. 포이닉스 님이나 하탄카 씨처 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포이닉스의 묘한 표정에 콜이 굳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따라가겠습니다.”
“왜 강해지고 싶은데?”
“……전 사내입니다. 강해지고 싶 은 것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콜의 질문에 포이닉스가 피식 웃음
을 터뜨렸다.
‘제일 똘똘한 놈인 줄 알았는데, 제일 바보 같은 말을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콜의 어깨 를 두드렸다.
그때, 경사로에 있던 또 다른 일행 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일행의 정체는 라오 가문의 마법사 남매와 드루이드 자나바스, 마검사 시모스 였다.
“포이닉스 경.”
“시렌 양.”
커다란 눈망울의 여인, 마법사 시 렌은 아미아스 패거리를 살피며 입 을 열었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서 의논하고 계신 거죠?”
“들으셨군요.”
“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에요.”
포이닉스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짓 자 시렌도 마주 웃어 보였다.
“사실, 어제저녁에 편지를 받았거 든요.”
“편지라면?”
“가문에서 온 편지요.”
말하다 말고 시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래덴키’로 달려오지 않으면 호적을 파버릴 기세더라고요.”
“……래덴키라면, 서던쇼어의 항구 도시 아닙니까? 왜 거기로.”
“가문이 있는 ‘바덴’ 지방은 너무 머니까요. 래덴키에 가문의 마법사 들이 올 테니 그들과 합류해서 귀환 하라는 명령이에요.”
포이닉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 자 시렌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 다.
“사실 저흰, 가출을 한 거나 다름 없거든요.”
“……가출이라니,”
포이닉스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자, 드루이드 자나바스가 앞 으로 나섰다.
“얼즈캐슬로 외유를 나온 시렌과 에단을 제가 설득했습니다. 전 원견 (遠見)으로 카라멕의 악행을 예견했 고, 이를 막기 위해 힘이 필요했으 니까요.”
“그럼 시렌 양은 그 말만 듣고 저 멀리 북부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겁 니까?”
“고맙게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한 자나바스가 시렌과 눈 을 마주쳤다. 그 오가는 시선에서 애틋한 무언가를 눈치채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다들 짝을 짓느라 아주 난리 도 아니구만.”
스티드먼의 조그만 툴툴거림을 뒤 로하고, 시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포이닉스 경께 부탁드리 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라면?”
“경의 동료이신 랭볼트 경과 그분 의 일행이 서던쇼어로 향할 거라고 들었는데요.”
“네, 사실입니다.”
“괜찮다면 그 일행에 합류하고 싶 어요. 랭볼트 경은 무명 높은 기사 이신 데다가, 리튼 백작님의 자제분 이기도 하니 여정이 안전해질 것 같 아서……
“하긴, 그렇겠죠. 제가 랭볼트 경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감사드려요.”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인 포이닉스 는 문득 마검사 시모스를 돌아보았 다.
“너도 같이 가는 건가?”
그 뜬금없는 질문에, 시모스는 잠 시 몸을 굳혔다. 그러나 이내 태연 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아, 그렇군.”
포이닉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처럼 뛰어난 검사가 나를 도와 주면 정말 든든할 텐데.”
포이닉스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 자, 시모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 하게 웃어 보였다.
“그, 렇군요.”
“고민 중이라고?”
“……예.”
“랭볼트 경께 말씀을 전하기 전까 지는 결정을 내려줘야겠는데. 늦어 도, 음, 오늘 밤엔 말해줬으면 좋겠 어.”
“……알겠습니다, 포이닉스 님.”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주 변에 모인 이들이 어색함을 느낄 찰 나, 주근깨 미라가 이쪽으로 달려왔 다.
“포이닉스 님-!”
그녀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괴상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질러 왔다.
“남작이, 남작이 돌아왔어요!”
“••••♦•남작?”
쏜살같이 달려온 미라는 숨도 고르 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남작이요!”
“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이어진 미라의 말에, 포이닉스는 물론이고 경사로에 모여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말로리 남작 말이에요, 여기, 롱빌 의 영주!”
“……뭐‘?”
“그가 살아 돌아왔다고요!”
포이닉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 고 있다가 엘렌과 뭉치를 데리고 서 둘러 영주관으로 향했다.
경사로에 남겨진 용병들 사이에 잠 시간 침묵이 흘렀다. 그러기를 잠시, 빡빡이 스티드먼이 허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로리 남작이 살아있어? 그 러면 X팔, 전쟁은 대체 왜 한 거 야?”
그 중얼거림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