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0)
나의 악당들 040화
11. 비밀통로(1)
그라니아와 아르날은 용병답게 체 력이 좋은 편이었고, 루크 씨도 스 스로 자신 있게 말한 것처럼 어지간 한 젊은이만큼이나 건강했다.
그래서인지 셋 모두 꽤 묵직한 짐 가방을 멘 채였음에도 다들 걸음이 썩 가벼워 보였다.
동료가 늘어난 덕분에 엘렌은 자신 의 슬링백에 더해 조그만 배낭 하나 만 달랑 멘 채였다.
붕대와 지혈제, 연고, 각종 해독제 등 가벼운 약품 위주라서 그리 무겁 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수색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 질수록 가볍던 걸음 역시 점차 무거 워졌다.
어깨는 쳐졌고, 시선은 바닥을 향 했으며, 가끔씩 들려오는 소음에 대 한 반응도 무뎌져 갔다.
반면 내 감각은 점점 더 날카로워 졌다. 지도를 보며 선두에 서는 동 시에 지친 동료들의 몫까지 사방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카로워진 감각 덕분에, 나는 찰박거리는 발소리 사이에서도 수상한 기척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 다.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멈춰선 동료 들에게 조용히 하라 신호한 뒤, 나 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기를 잠시, 저 멀리서 웅웅거 리는 메아리가 들려왔고, 나는 벽면 에 바싹 붙어 귀를 가져다 댔다.
“빌어먹을—–대체 –을.”
“닥치고——처맞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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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몇 개쯤 들려오긴 했지만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파악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어 림짐작해 본 뒤 동료들을 돌아보았 다.
“사람이야. 적어도 두 명 이상.”
“사람? 용병인가?”
아르날의 중얼거림에 나는 그라니 아에게 질문했다.
“우리 말고 성주의 의뢰를 받은 용 병들이 있어?”
“내가 알기론 없는데.”
“ 하나도‘?”
“응. 그도 그럴 게, 애초에 우리가 의뢰를 받은 건 네 협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어. 안 그 래도 병력이 부족한 판국에 굳이 고 만고만한 실력의 용병들을 내려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깔끔히 깎은 턱을 매만지던 루크 씨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슬슬 하수도 출 입을 통제하는 것 같았네. 설마 병 사들이 내려왔을 리는 없고….”
루크 씨가 말끝을 흐리자, 나는 재 차 벽에 귀를 대어 정체불명의 인기 척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를 멈췄는지 말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지만, 전보다 커진 발 소리가 놈들이 근처를 지나고 있음 을 짐작하게 했다.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데.”
“서쪽? 하지만 거긴….”
나는 계속 귀를 기울인 채 그라니 아에게 설계도를 건네었다. 이상하 다는 듯 중얼거리던 그라니아는 조 심스레 설계도를 펼치더니 이맛살을 좁혔다.
“4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은 세 개… 그중 서북쪽에 있는 계 단은 무너졌으니 남은 건 남쪽에 하 나, 동북쪽에 하나가 전부인데.”
“올라가는 게 아니란 소리지.”
“그럼,”
“따라가 보자.”
나직한 제안에 동료들의 얼굴이 잠 시 굳어졌다.
송장벌레나 좀비, 랫맨 따위보다 정 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더 위협적 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표정을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하수도에 내려온 게 벌써 세 번째 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난 건 처음이 야.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봐야겠어.”
“혹시, 부랑자들 아닐까? 마을에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지하에서 살 아간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아르날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봐야 2층이나 3층에 숨어 살겠지, 뭐하러 4층까지 내려오겠 어? 랫맨들의 영역에서 사는 건 그 리 쉬운 일이 아니야.” 이런, 조금씩 발소리가 희미해진다. 서둘러야겠는데….
“일단 움직이자. 어떤 놈들인지 짐 작 가는 바가 있어.”
“니기미.”
머리에는 붉은 두건을 두르고 어깨 에는 짧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조용 히 욕을 지껄였다. 그러자 뒤를 따 르던 이들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 다.
“아주 그냥, 개 같은 신세구만.”
누군가에게 말한 것이라기엔 작고, 혼잣말이라기엔 큰 목소리였다.
붉은 두건의 사내, 아니, ‘빠른 발의 토발드’ 밑에서 꽤 오랫동안 부하 노 릇을 해온 대머리는 지금이 나서야 할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어디 불편하심까, 토발드 님?”
“불편하냐고? 암, 불편하지. 지긋 지긋한 돼지우리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불편해 뒤질 것 같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쇼. 조만간 도 시가 떨어지면 실컷 즐길 수 있지
않겠슴까?”
대머리의 말에도 토발드는 인상을 찌푸린 채 툴툴댈 뿐이었다.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도시 가 함락되고도 즐길 거리가 남아 있 을 것 같아? 좋은 음식도, 보드라운 계집도, 값비싼 보물도 도적 놈들의 손을 타면 쓰레기가 될 뿐이야.”
‘토발드 님도 도적 놈이지 않슴 까?’라는 말을 간신히 삼키곤, 대머 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번에 두목, 아니, 남작님이 연설 하는 거 못 들으셨슴까? 여기 아주 눌러앉아 버릴 심산인 것 같던데… 농투성이 깡촌 잡아먹듯 하진 않을 검다.”
“우리 쪽만 해도 천이 훌쩍 넘는 데, 해적 놈들까지 기어들어 온다고 생각해 봐라. 니기미, 통제가 되겠 냐? 칼부림이나 안 나면 다행이지.”
투덜거리던 토발드는 괜히 속이 쓰 려서 침을 탁 뱉었다.
‘서열이고 뭐고, X팔. 그게 다 무 슨 소용이야.’
토발드는 무법자 생활이 지겨웠다.
등짝에 칼을 맞는 건 예사였고, 재 수 없으면 괴물의 밥이 될 수도 있 었다.
귀족 가문들이 토벌군을 일으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으며, 잔악 한 두목이 장난삼아 눈깔을 뽑아버 리진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토발드는 밥 먹듯이 사람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지만, 안정된 삶을 동경했다. 든든한 성곽 안에 가게를 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커다란 술집 하나면 평생 놀고먹 을 텐데.’
어둡고 축축한 하수도를 지나는 중 에 이런 망상에 잠긴 이유는, 지난 밤의 기억 때문이었다.
토발드는 사우스하버의 내통자에게 서신을 전달했다.
내통자는 상당한 부자였고, 토발드 와 부하들을 자신의 저택에 숨기곤 좋은 술과 기름진 음식,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제공했다.
예상치 못한 대접에 멍청한 부하들 은 낄낄거리며 즐길 뿐이었다. 하지 만 토발드는 행복한 와중에도 고통 을 느꼈다.
선량한 사람들도, 안전을 보장하는 질서도, 실타래처럼 풀어진 긴장도 그에겐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에 도시를 점령하면 한몫 크게 챙겨서 튀어야겠어. 미테 르게란트로 가야지. 말은 안 통하겠 지만, 금만 충분히 있으면….’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는 토발드의 계획이 대충 완성될 무렵, 마적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토발드 님, 열면 되겠슴까?”
“뭘 물어보고 앉았어. 빨리 까.”
“옙.”
대머리를 포함한 여덟 명의 부하들 은 기다렸다는 듯 하수도의 벽면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횃불을 비춰가며 벽에서 갈 라진 틈을 찾더니 손바닥만 한 길이 의 쇠못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뽑혀 나온 쇠못이 열두 개에 이르 렀을 무렵, 잠자코 벽에 등을 기대 고 있던 토발드가 돌연 나직하게 고 함을 내질렀다.
“쉬잇! 모두 멈춰!”
돌벽을 떼어내기라도 할 듯 자세를 취하고 있던 부하들이 즉시 동작을 멈추었다.
토발드가 이리저리 눈알을 돌리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자, 대머리 가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랫맨임까?”
“아니, 랫맨은 아니야.”
토발드의 눈이 긴장으로 빛나는 것 을 발견한 대머리는 잠시 미간을 찌 푸리더니 재차 속닥거렸다.
“그냥 넘어가는 게 낫지 않겠슴까? 서둘러서 작업하면 순식간에 닫아버 릴….”
“아니, 아니야.”
날카롭게 눈을 빛낸 토발드는 품에 서 조그만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뒤를 밟힐지도 몰라. 다들 횃불 꺼.”
토발드의 표정에서 단호함을 읽은 대머리는 등 뒤에서 단창을 뽑아 들 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마적들은 중앙 수로에 횃불을 던져 넣곤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아홉 사내가 버티고 선 하수도의 통로가 정적에 빠져들었다.
마적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눈 만 굴리며 사방을 훑어보았다.
홍채가 커질 대로 커져 있었지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었다.
토발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았기 에 얼른 유리병에 든 내용물을 들이 켰다. 그러자 그의 눈이 연한 녹색 으로 빛나며 어둠 속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안배가 무색하게도, 어두운 통로 너머에서 희미한 발소 리와 함께 불빛이 어른거리기 시작 했다.
저벅저벅.
“츳
토발드가 짧은 바람 소리를 내자, 대머리를 선두로 네 명의 마적이 인 기척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조심스럽 게 움직였다.
모퉁이에 이르러 멈춰선 마적들은 잔뜩 숨을 죽인 채 기척의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발소리는 느긋하다 못해 답 답할 정도로 느렸다.
덕분에 대머리는 다가오는 이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었고, 이내 그들 이 세 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츠츳
토발드 역시 이를 알아차렸는지, 근처의 부하 둘에게 신호를 보내어 대머리 쪽으로 합류시켰다.
이제 모퉁이에 도사린 마적의 수는 여섯. 모퉁이를 도는 순간을 노려 두 명이 하나씩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 순간, 돌연 뒤에서 파공음이 들
려왔다.
쐐애액, 퍽!
“꺼흑!”
토발드 곁에 있던 두 마적 중 하 나가 답답한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 졌다. 그의 가슴엔 어느새 화살촉이 튀어나와 있었다.
경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토발 드가 빽 고함을 질렀다.
“이런 썅, 뒤다!”
그가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뒤쪽에 서 웬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불덩이 는 토발드의 발치에서 쨍그랑 소리 를 내더니 커다랗게 화염을 피워 올 렸다.
화르륵!
“떠그럴, 이건 뭐야!”
“조심해! 자리를 지켜!”
마적들의 눈에 불덩이로 보인 것은 불이 붙은 화염병이었다. 주홍빛 불 꽃이 어둠을 몰아냄과 동시에 웬 인 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으, 으악! 저건 뭐야!”
인영을 발견한 마적은 그 괴상한 모습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칼과 방패를 든 인영은 몸을 한껏 낮춘 채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 었다. 인간 같지 않은 몸놀림과 길 게 늘어지는 핏빛 안광도 기이하기 짝이 없었지만, 더 이상한 것은 그 의 차림새였다.
그는 철투구를 썼지만 웃통은 벗은 채였고, 완갑과 정강이받이를 찼지 만 발은 맨발이었다. 거기에 더해 인영의 칼은 피를 머금은 듯 검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 0 O 99
—=7*
갑작스레 불꽃이 치솟은 탓에 토발 드의 시야는 녹색 빛과 붉은 화광이 이리저리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였다.
당황한 토발드가 두어 차례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짐승처럼 달려든 인영은 칼을 휘둘러 그의 곁에 있던 마적의 목을 날려 버렸다.
써컹!
“끄으, 제기랄!”
그사이에 시야를 회복한 토발드는 괴이한 행색의 습격자에게 칼을 내 질렀다.
그러나 습격자는 방패로 토발드의 아밍 소드를 받아내곤 뒤로 훌쩍 물 러섰고.
쐐애액!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화살이 토 발드에게 날아들었다.
w_크 99
토발드는 대규모 마적단에서 간부 행세를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덕분에 간신히 어깨를 비틀어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냈지 만.
푸욱!
옆구리에 칼을 찔리고 말았다.
짐승 같은 몸놀림의 습격자가 빈틈 을 노리고 공격해 온 것이다.
“끄허, 이런 니기-”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고통 에 토발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아밍 소드를 내리 그었지만, 습격자는 또다시 방패로 공격을 튕겨낸 뒤 재차 칼을 휘둘렀 다.
혈기사의 피를 머금은 ‘펄션 오브 라이언투스’, 아니, ‘사자이빨의 언 월도’는 요사스러운 빛을 뿌렸고.
쩌컥.
머리가 쪼개진 ‘빠른 발의 토발드’ 는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