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 Returned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하긴 쉬우면 감사해야 할 일이지.’
나태의 여신이 던진 따끔한 질책에 최연승은 정신을 차렸다.
어비스의 바다를 누비는 거대한 유람선을 준비해준다니.
감사해야 할 일이지 실망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어쩐지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비스의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강함이 있는 법인데…’
-……
나태의 여신은 질색했다.
물론 성좌마다 성격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최연승이란 성좌는 꽤 오랫동안 사귀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태한 만큼 여신에게 최연승의 저런 성실함은 이해불가의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배에 타면 던전으로 안내해주는 건가?”
“그게… 조금 다릅니다.”
* * *
모랄레스와 카터.
그리고 두 A급 헌터들을 보좌하기 위해 구성된 상급 헌터들.
사실 이런 어비스 레이드에서 중요한 건 헌터 등급도 등급이지만 경험과 인성이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B+급 헌터보다는, 각종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보좌한 경험이 있는 C-급 헌터가 더 나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보좌하기 위해 모인 헌터들은 신분이 철저하게 증명된 헌터들이었다.
각종 클랜의 정예는 물론이고 미국 정부쪽에서 일하고 있는 헌터들까지.
A급 헌터를 어비스에 던져 넣는 일이니 이 정도는 당연한 투자였다.
사실 대통령도 자기 임기가 끝나가니까 이런 과감한 계획에 투자를 해줬지, 임기 초반이었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
헌터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어비스 레이드는 기존 던전처럼 몬스터들이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성좌의 권속들이 지키고 있는 영역인 만큼 말을 걸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 말을 걸어오는 이 권속들이, 언제 돌변해서 헌터들의 등을 찌를지 몰랐으니까.
“이 배는 께서 소유하신 배. 그분의 권속과 하수인들이 타고 가꾸는 배입니다.”
말이 배였지 규모만 보면 떠다니는 하나의 왕국에 가까웠다.
무슨 방주마냥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배.
안에 뭐가 있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이 배에 타란 건가?”
“그렇습니다.”
“이 배 안에는… 뭐가 있는 거지? 물어봐도 되나?”
헌터들은 지금 말을 거는 권속이 대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가 준비되어 있을지 미리 말해주는 던전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레이드라면…
“이 배 안에는 어비스 곳곳에서 모인 영웅들이 타고 있습니다.”
“?!”
그러나 권속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여러분들도 새로 찾아오신 영웅 중 한 분입니다. 께서는 이 영웅들 중 한 분에게 이 영역의 왕관을 넘겨주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 어떻게? 어떤 몬스터를 해치우면 되지?”
“아닙니다.”
“?”
“몬스터를 해치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 배의 선장이 누군지 알아맞히시면 됩니다.”
“……”
“아니, 고작 그거라고?”
“예! 참 쉽지요?” 권속의 말에 헌터들은 어리둥절했다.
만약 최연승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비스에서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봐라’라고 했겠지만, 불행히도 여기 헌터들은 아무리 경험이 많고 노련해도 어비스에 대한 경험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의 영묘에 입장합니다.] [선장을 찾으십시오!] [성좌가 을 약속합니다!]배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에서도 호화 관람선을 몇 번 타본 적 있는 만큼 헌터들에게 지금 상황이 아예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훨씬 더 넓고, 훨씬 이국적인 것들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어비스의 온갖 종족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친숙한 엘프, 드워프, 오크부터 시작해서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특이한 종족들까지.
“잠깐, 저거… 아닌가??”
“저건 인데요??”
던전에서 아주 가끔씩 발견되는 어비스의 희귀 자원들.
하나만 갖고 돌아가는데 성공해도 헌터 생활을 바로 은퇴할 수 있는 희귀한 식물들이 배 곳곳에 관상용으로 위치한 걸 보자 헌터들의 눈이 뒤집힐 뻔했다.
저런 게 그냥 있다고?
“이거… 레이드 공략 방법은 지금 바로 찾을 필요 없으니, 안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레이드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게 있다면…”
헌터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여긴 출입구에 연결된 정원 구역인 모양이었다.
다른 구역은 과연…?
“잠깐. 여기는 오실 수 없습니다.”
“?”
“여긴 인간 종족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구역입니다.”
“예?”
헌터들은 당황했다.
실컷 구경한 다음,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위층의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의 권속이 나서서 길을 막은 것이다.
‘허용된 구역이 있고 아닌 구역이 있나?’
“잠깐. 저기 엘프는 가지 않소?”
“엘프에게는 허용된 구역입니다.”
그 말에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추리에 들어갔다.
“아… 엘프 전용 구역인가?”
“이상한데요? 그럼 인간 전용 구역은 어디인 겁니까? 여긴 엘프들도 돌아다니잖아요.”
권속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인간 종족에게 허용된 구역은 여기 배의 가장 아래층뿐입니다. 엘프 종족은 가장 아래층을 포함한 다른 층을 이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
“……”
지구 출신 인간 헌터들은 정색했다.
이런 종족차별주의적인 배를 봤나!
“이거 큰일인데요? 선장을 찾는 게 승리조건인데, 이렇게 이동 제한이 걸리면.”
“엘프를 데리고 왔어야 했나? 그보다 너무 비열한 거 아닌가? 왜 하필 인간은 가장 아래층만이야?”
헌터들은 일단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책을 고민했다.
사실 배의 가장 아래층만 허용된다고 해서 열악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호화로웠다.
배 안은 마치 역사 배경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앤티크한 풍경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나다니는 의 권속들이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을 챙겨줬고(지구에서는 먹을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어비스의 희귀한 동식물들과 아티팩트들을 구경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끝도 없는 어비스의 바다를 볼 수도 있었으니까.
확실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목숨 걸고 들어온 던전에서 이런 관광 비슷한 기분을 내는 건 드문 일인 것이다.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여기도 이 정도인데 대체 위층에는 뭐가 있는 거지?’
‘성좌들이 지낸다는 환상의 궁전이 있을지도…’
그렇게 고민하던 헌터들에게 웬 엘프 하나가 다가왔다.
“위로 가고 싶나?”
“!”
“경계하지 말라고. 인간들. 요즘 어비스에서 너희 종족 소문을 많이 듣고 있지.”
엘프 특유의 비단 셔츠로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엘프 전사는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모랄레스는 경계하며 물었다.
“그쪽도 이 영역에 도전하러 온 건가?”
“그런 셈이지.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큰 욕심은 없어. 내 주인님께서 가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왔을 뿐.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있는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 한 명이 되는 것을 노리는 건 너무 가능성 없는 일이지. 나는 그보다 좀 다른 걸 노리고 있지.”
“카르달리 나무나 엘프 붓꽃 같은 희귀한 자원들을 노리는 건가?”
헌터의 말에 엘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게 뭐가 희귀하다는 거야? 아. 이런… 그렇군. 인간들에게는 희귀할 수도 있겠군.”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엘프가 헌터들을 쳐다보는 눈빛에 ‘촌스럽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헌터들은 왠지 모를 굴욕에 얼굴을 붉혔다.
지구에서 활동할 때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굴욕!
“내가 원하는 건 보수뿐이야. 인간 종족들이 요즘 어비스에서 그 영역을 늘려가고 있다면서? 인간 종족들의 돈과 보물들은 꽤 쓸만하겠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현지 조력자를 돈으로 섭외할 수 있다면 그건 싸게 먹히는 일이었다.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의 도움을 받는 대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기로.
“이야. 역시 인간들.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 자. 마시자고. 이것만 마시고 올라가자!”
엘프는 잔을 들었다. 다른 헌터들도 들고 있던 잔을 들었다. 그리고 마셨다.
“…??”
쿵!
헌터 한 명이 쓰러졌다. 엘프는 비웃으며 외쳤다.
“멍청한 인간 놈들! 너희 같은 뜨내기 종족에게 기회를 줄 것 같으냐? 여기 왕국은 엘프들의 것이다!”
“……”
“……”
헌터들은 경악했다.
아니 이 미친 엘프 새끼가!?
“죽여 버려!”
헌터들이 무기를 뽑으려고 하자 의 권속이 급히 달려왔다.
“배 안에서의 싸움은 금지입니다. 배 밖으로 추방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저 엘프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저 엘프 놈이 잔에 독을 탔어!”
“증거가 있습니까?”
“……”
“……”
헌터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엘프가 무슨 방법으로 넣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거를 대는 것은 무리였다.
“증거가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싸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다음에 싸움을 일으킬 경우 배 밖으로 추방하겠습니다.”
멀리서 엘프가 히죽거리더니 위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헌터들은 이 어비스의 매운 맛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 배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레이드보다 더 어려운 레이드였다.
어비스에서 온 수많은 종족 놈들의 방해를 뚫고 목표를 쟁취해야 한다!
* * *
“어비스 놈들이 좀 기괴하게 놀긴 하지.”
이야기를 들은 최연승은 공감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비스의 종족들이 인간을 보면서 ‘아니 저렇게 못된 짓을 창의적으로 잘 하다니? 배워야겠다!’라고 말하지만, 어비스 종족들도 인간 못지않게 못된 짓을 잘하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왕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이 어비스 필멸자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으리라.
밀폐된 공간. 한정된 목표.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어비스의 미궁!
‘성좌들은 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고 기괴한 짓을 하면서 즐기는 거지? 자극이 없으면 견디질 못하나?’
[가 악마들 사는 곳에서 객잔을 차린 성좌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고…]고양이 성좌가 보기에 악마들 사이에 객잔 차려서 성장과 수련을 준비한 최연승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쓰러진 헌터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 뒤에도 쉽진 않았습니다. 결국 전원 포기를 선언하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혹시 바다를 헤엄쳐서 뭍으로 기어 올라온 건가?”
“아닙니다. 포기를 선언하자 그냥 돌려보내줬습니다.”
카터는 순간 최연승의 표정에 아쉬움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잘못 본 거겠지.’
“최연승 헌터. 제가 도전해봤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이 어비스 레이드는 해볼 만한 도전입니다. 예산과 지원을 조금만 해주신다면…”
헌터들은 말하면서도 최연승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정권 초기에 이런 위험한 도전을 하는 것이 좀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지구 상황도 아직 멀쩡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악신 성좌들의 침공이 이곳저곳을 앓게 하고 있었으니…
‘거절되려나?’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
“정,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지.”
‘아아…!’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최연승의 대답에 형언할 수 없는 든든함을 느꼈다.
자기밖에 모르는 헌터들과 달리 진심으로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헌터!
‘내 돈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돈을 쓰는 일이라 기쁘군.’
그러는 사이 최연승은 속으로 흐뭇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