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21
제221화
#221. 시민 등급제 코리아 (1)
2022년이 순식간에 저물고 새해가 밝은 2023년 2월 1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했다.
원래라면 작년에 했을 침공.
하지만 SR과 이란의 3시간 전쟁이 하필 그때 터지는 바람에 무기한 보류되어야 했다.
그렇게 보류됐던 러·우 전쟁이 성세류의 묵인과 미국의 상황을 푸틴이 믿으면서 발발했다.
그리고 이런 푸틴의 믿음과 분석은 반만 맞았다.
“멍청한 놈들!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야!”
미국과 SR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은 맞았다.
“그 SR의 성세류가 모처럼 기회를 줬는데 이걸 못 살린다고?!”
실제로 우크라이나에는 SR의 유니폼 쪼가리도 보이지 않았다.
“1주일 안에 키예프를 점령할 수 있다면서?! 벌써 한 달이 지났어! 라스푸티차가 왔다고!”
미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모차르트 그룹 같은 서방의 각종 PMC와 군사 고문, 의용군이 있긴 했다.
하지만 SR 가디언즈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 미군이 있나? 아니면 가디언즈가 있나? 그것도 아니면 우주함이 떠 있나? 이건 사실상 SR과 서방이 우리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먹여 준 거나 다름없다고!”
미군과 가디언즈가 우크라이나에 없다는 것만 해도 러시아에겐 충분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유리함을 러시아는 살리긴커녕 망치기만 했다.
“상대는 젤렌스키의 졸개들이라고! 코미디언의 군대에 우리 붉은군대가 궤멸됐다는 게 말이 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장담컨대 온 세상이 자신과 러시아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SR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군에서 엄청난 무기와 전자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나! 미국이 무기나 군사 정보를 지원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고?!”
푸틴은 수치심과 당혹을 넘어 패닉에 빠져야 했다.
“프리고진, 프리고진에게 준비하라 전해.”
결국 그는 바그너 그룹을 동원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바그너는 위험합니다. 그 세가 너무 커졌습니다.”
“그럼 전쟁을 잘 이끌었어야지, 쇼이구.”
“…….”
“최근 프리고진이 너무 큰 것은 나도 알아. 이제는 단순한 PMC 이상이 되었으니까.”
푸틴은 지나치게 불안해 하는 쇼이구를 비롯한 러시아군 장성들을 보며 차가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
“동양의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지.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그 말씀은?!”
“그래, 서서히 힘을 빼 둬.”
푸틴이 고개를 끄덕이자 러시아군 장성들의 얼굴이 약간이지만 밝아졌다.
“그리고! 절대 한국 같은 일이 우리 러시아에서 일어나지 않게 관리 잘하고.”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모든 병사와 장교의 휴대폰을 AI로 실시간 감시 중입니다.”
푸틴은 실망했다.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눈앞의 머저리들을 쳐 내지 않았다. 독재자에겐 유능한 변절자보단 멍청한 충신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시작되었으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기전이 되었다.
무역로가 막히고,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인플레가 터졌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세상은 더 큰 혼돈과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 * *
로봇세와 기본소득, 대해고 시대, 중국인 스파이 문제, 신냉전, 거기다 러우 전쟁까지.
가뜩이나 불안했던 실업률과 인플레가 더욱 심각해졌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내전은 전 세계의 극우 세력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다.
“한국에서 일어난 혁명과 정화를 미합중국도 본받아야 합니다!”
“문신 같은 이상한 조항만 수정하면 시민 등급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그렇다! 왜 우리가 범죄자, 매국노랑 평등해야 하냐!”
“군인과 애국자가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한국처럼 인성과 준법, 애국심에 따른 시민 등급제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조성하고 가정의 파괴를 외치는 PC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을, 한국처럼 우리 이탈리아도 쓸어 버려야 합니다!”
“범죄만 일으키는 중국인과 이민자를 추방하자! 한국처럼!”
“한국을 본받자! 한국이 곧 미래다!”
한국처럼! 한국처럼! 한국처럼!
유럽 곳곳에서 네오나치와 맥이 비슷한 파시즘 세력들이 대거 영역을 넓혔고, 미국에서는 트럼프와 큐어넌들이 한국의 사례를 이상향이라면서 나팔수가 되어 찬양했다.
세계 전체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원 역사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3차 대전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혼란스러운 것은 비슷한 시기의 원 역사보다 더했다.
세계 각국이 자국 내의 문제에 골머리 썩느라 바빴고, 이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신경 쓸 여력이 제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이 거대한 혼란의 용광로 속에서 한국의 시민 등급제는 척척 진행됐다.
대한민국 서울.
강남역 인근 피부과 병원.
올해 34살인 김호준은 피부과에서 나오면서 팔뚝을 계속 문질렀다.
“드럽게 아프네……. 어휴, 앞으로 이걸 한 달 동안 매일 해야 한다고?!”
방금 지운 문신이 너무나 따가웠기 때문이다.
“흐으, 그래도 사회 기여도가 크게 회복됐어! 1주일만 고생하면 일단 5등급 끄트머리엔 올라가겠다!”
그래도 루나글라스에 표시된 사회 기여도 점수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다.
‘하아, ×발. 차라리 이민을 알아볼까? 좀 위험하더라도 필리핀 같은 데가 여기보단 살 만하겠어.’
한편으로는 급격한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문신도 차별받고,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고, 침도 함부로 못 뱉는 세상이라니. 차라리 감옥이 낫지.’
현재 김호준의 시민 등급은 6등급이었다.
시민등급제가 처음 시작된 날, 국민들은 남녀노소, 자산이나 직업, 과거 이력에 상관없이 4등급의 시민 등급과 사회 기여도 점수를 가지고 공평하게 출발했다.
김호준 또한 맨 처음엔 4등급이었다.
하지만 시민 등급을 받고서 1분 만에 5등급이 되었다.
문신 면적 10제곱센티미터마다 사회 기여도가 30점씩 줄어든다는 시스템 AI의 안내음과 함께 말이다.
철없던 학창 시절 전신에 새긴 이레즈미 문신은 그렇게 족쇄가 되었다.
이에 항의할 수는 없었다.
등급심사청 공무원에게 함부로 폭언이라도 했다간, SKPD(구 한국 경찰)에게 개처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것을 바로 옆에서 꽤나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시민 등급이 더 하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휴, 언제 4등급이 되냐. 5등급도 이렇게 멀어 보이는데…….”
그런데 현재 김호준의 시민 등급은 6등급이었다.
이 말은 5등급이 되고서 또 사고를 쳤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평소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은 법.
그는 시민 등급을 받고 평소처럼 공공장소에서 길빵을 하고, 가래침 뱉고, 담배꽁초까지 버리는 짓을 한 달 내내 했다.
시민 등급이 하나만 내려간 것이 오히려 천운이라고 봐야 했다.
‘이민을 알아보더라도 시민 등급은 최대한 유지해야 해! 여기서 더 떨어지면 사실상 범죄자 취급이라고!’
그래도 김호준의 상황은 주변과 비교하면 굉장히 나은 편에 속했다.
원래 끼리끼리 모인다고, 김호준의 주변에는 죄다 반달 아니면 조폭들만 있었고, 시민 등급제가 시행되자마자 그들 중 8할이 사라져 버렸다.
마약, 불법 도박, 리딩방, 폭행, 고리대금, 사기, 협박 등등, 평소였다면 경찰, 검찰과 짝짜꿍하면서 상부상조하던 것들이 주권 전환이 되자마자 전부 불가능해졌다.
제일 먼저 마약을 밀매하던 형님들이 SKPD에게 사살되거나 8등급으로 시민 등급이 떨어진 채 감옥에 갇혔다.
8등급에 떨어진 순간 이번 삶은 포기해야 한다고 보면 됐다.
8등급부터는 형기를 다 채우고 감옥에서 나와도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악명 높은 신안 염전이나 무인도 같은 곳에서 평생을 제한당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금 그가 이토록 조용히 지내는 것도 그런 최악의 상황은 피하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앞으로 뭐로 돈을 벌어야 하지? 6등급이라서 기본소득도 100만 원이 채 안 되고, 모아 둔 돈도 문신 지우느라 다 떨어져 가고…….’
하지만 조용한 것과 별개로 김호준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개미지옥에 잡힌 것처럼 순간순간이 괴롭기만 했다.
문득, 길을 걷던 김호준의 시선이 강남역에 있는 홀로그램 현수막에 향했다.
홀로그램 현수막에는 제1회 총독부 의회와 시장 선거 문구가 떠다니고 있었다.
‘선거? ×붸, 선거 같은 소리 하네!’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카악, 꿀꺽.
습관처럼 가래침을 뱉으려다가 사회 기여도가 생각나 급히 삼켜야만 했다.
“…….”
사방에서 카메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상에서도 이 채점은 이어졌다.
악플이나 가짜 뉴스를 게시한 경우에는 사회 기여도가 더 크게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요즘엔 괜히 찝찝해서 AI 비서도 쓰지 않았다.
‘빌어먹을 사회 기여도! 빌어먹을 시민 등급제!’
그는 한숨을 쉬고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가 얼굴에 쓴 루나글라스에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민 등급이 아주 선명히 보였다.
이 말은 다른 사람도 6등급인 자신의 시민 등급을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SR의 충견들 같으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평균 등급은 3등급에서 5등급 사이.
가끔 드물게 2등급 이상의 사람도 보였다.
김호준처럼 6등급, 7등급인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루나글라스를 낀 사람들로부터 경멸로 가득 찬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개자식들! 예전이었으면 나랑 눈도 못 마주쳤을 것들이! 눈알을 확 파 버릴까 보다!’
그러나 짜증 난다고 예전처럼 뭐라 욕이나 위협을 할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행위를 하는 순간, SKPD나 SRPD가 출동해 자신을 개 패듯 팰 테니 말이다.
‘내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이 정신 나간 시민 등급제를 환영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더 웃긴 것은 이 신분제에 대한 반발이 예상외로 엄청 적다는 거다.
‘저번에 들으니깐 망명 정부와 지하 정부에서도 엄청 당황한 눈치라고 하던데…….’
김호준 같은 양아치에겐 지옥이지만,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괜찮은 세상으로 보인 모양.
‘이민, 어떻게든 이민을 가자!’
그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어……?’
그러던 중, 루나글라스를 낀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아아, 이 시대의 천룡인들이 저기 계시군.’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3등급은 물론 2등급과 1등급 표식이 당당히 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투표장인가?’
보아하니 총독부 의원과 서울시장 투표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 같았다.
‘표정들이 아주…….’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대놓고 자랑스러움과 선민의식이 짙게 깔렸다.
투표장에 모여 있는 시민 등급 표식 옆에는 유권자임을 상징하는 황금색 표식도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이 시민 국가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3등급 이상의 시민이고, 어떤 전과도 없고, 무엇보다 유권자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었다.
기초 시사 상식부터 확증편향이나 유창성, 선동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는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럽다.’
김호준은 자신도 모르게 부러움을 느꼈다.
단순히 투표권 때문에 부러운 게 아니다.
3등급이면 소득에 상관없이 매달 기본소득만 300만 원은 받을 것이고, 유권자 자격 시험을 통과하면 20퍼센트를 추가로 더 받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내가 고작 300짜리 기본소득을 부러워하다니…….’
동시에 자괴감도 들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온갖 불법 사업들로 월 수천만 원은 그냥 만지던 게 그와 그의 크루였으니까.
‘어서 집에 가서 선플 다는 노가다나 하자. 이민은 이민이고, 지금은 일단 시민 등급부터 올려야 하니깐.’
그는 부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계신 상급 시민들께서 6등급에 불과한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보는지 바로 느껴져서다.
‘젠장! 예전이었으면 저런 눈을 하면 바로 멱살부터 잡았어!’
경멸 어린 시선이 대놓고 그를 향했지만, 김호준은 아무것도 못 했다.
주변에는 SKPD와 SRPD가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고, 지하 정부의 테러 표적인 투표장은 아예 SRGF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둘러 문신을 지우고 그나마 사람대접이라도 받는 5등급 끄트머리 시민이 되는 것뿐이었다.
‘어휴, 이걸 언제 다 없애냐……. 무엇보다 너무 아파!’
과거 생각 없이 새겼던 문신들을 후회하면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피부 재생 시술 때문에 예전보다 지우는 게 싸고 편해졌다지만, 아픈 것은 똑같았다.
타앙! 타앙!
그렇게 서울 도심을 걷는데, 드문드문 SKPD의 것으로 추정되는 총소리가 골목 곳곳에서 들렸다.
아직 총기 회수가 100퍼센트 되지 않았고 저항군과 저등급 시민들이 심심치 않게 테러와 범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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