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48)
제248화
담담한 내 말에 침묵에 빠진 회의장.
“…너, 너. 미쳤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살라딘이었다.
“아니, 아니. 잠깐만. 그래, 네가 야수검 크랭크 후작을 물리친 것도, 7성기사단장 슈타트를 쓰러뜨린 것도 알아. 하지만, 어?”
탕!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살라딘이 열변을 토했다.
“옥좌에 오른 이들은 완전히 규격 외야! 진짜 괴물이라고! 너, 엘룬하임에서 파울로 화살에 나가떨어졌던 거 기억 안 나? 발리스타에서 도망칠 때 카밀 공작의 일격에 팔 하나가 박살 났던 건?”
과거로 돌아온 후, 거의 모든 사건을 나와 함께 겪었던 살라딘이 하나하나 따졌다.
“왜, 4후작을 이겼으니 너 스스로 그, 막 옥좌에라도 오른 것 같아? 자만심이 주체가 안 돼? 그 정도 주제 파악도 안 되는 머저리였냐?”
살라딘이 답지 않게 독설을 마구 쏟아냈다.
그렇게라도 날 말리고 싶은 거겠지. 만약 입장을 바꿔서 살라딘이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나 또한 말렸을 것이다.
나에게도, 살라딘은 소중한 친우였으니까.
“설마. 나도 믿는 구석 하나 없이 그런 고집을 부릴 만큼 바보가 아니야.”
“믿는 구석이고 자시고 그딴 게 지금 있을 리가…?!”
악다구니를 쓰던 살라딘은 무언가 짐작되는 게 있는지 고장 난 기계처럼 말을 멈췄다.
“사제, 몸속에 있는 그걸 믿고 있는 거야?”
“맞아요, 사저.”
“…쉽지 않을 텐데. 자칫 조급하게 다뤘다가는 오히려 네 몸이 무너질지도 몰라.”
“어차피 이 전쟁에서 지면, 저에게 다음이란 없어요.”
우려를 표하는 람팡에게 담담히 대답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까지 사제를 몰아붙이는 거야?”
람팡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왕가의 총애를 받고 스스로의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는 멋진 사제였다.
베라스 같은 씹어 먹어도 부족할 쓰레기와 달리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제였다.
그런데, 이 사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이렇게 한계까지 몰아넣는 걸까.
안쓰러운 람팡의 눈길에, 나는 그저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녀와 나는 입장이 달랐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실패해도 괜찮았던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모든 하나하나의 일들을 쌓아 올려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특히나 군도를 포섭해서 바다를 장악하는 건 과거로 돌아왔던 초창기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바다를 차지하지 못하면, 신성제국에게 승리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결국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아.’
필라도르 왕국의 반란을 막아 제국과의 내통을 막은 것도, 몬스터 병사들과 그 연구를 없앤 것도. 이바렐라의 입지를 좁히기 위해 애쓴 것도.
모두 다 전쟁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밑 준비일 뿐이었다.
이런 자잘한 수작만으로는 제국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다.
과거로 돌아왔던 그때부터 그려온 그 모든 그림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제국과 자웅을 겨룰 수 있으리라.
나를 몰아붙이는 건, 과거의 실패로 얼룩져 있던 나의 삶과 비참한 결과가 남겼던 짙은 후회다.
이 감정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과거로 돌아온 내가 또다시 실패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주는 공포.
그 공포는, 나에게 있어 죽음보다 무거운 형벌이었다.
이 형벌의 구원은 단 하나뿐이다. 비틀린 나의 과거를 바꾸는 것.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마음은, 이 대륙의 그 누구도 절대로 알아주지 못하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사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생각한 뜻을 관철해 나갈 뿐이다.
“…….”
람팡과 내가 눈을 마주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도 자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내 눈을 바라보던 람팡이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깨달은 것이다. 나를 설득해봤자 들어먹지 않을 거라는 걸.
“…후! 드웨인 공자. 우선 저 바보 같은 사제가 원하는 대로 계획을 짜주세요. 보아하니 말을 해봤자 고집을 꺾을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고.”
“예? 하지만….”
“그 대신.”
드웨인의 말을 묵살한 채 람팡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처음 드웨인 공자가 말했던 대로 가는 거야. 발락은 내가 상대하고, 사제는 사령 중 하나를 맡는 걸로.”
이 이상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겠네.’
“알겠습니다, 사저. 그렇게 하시죠.”
사저의 제안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그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 전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패배는 곧 죽음이다.
그리고 난, 아직 죽을 수 없었다. 모든 과거를 뒤바꾸기 전까지는.
* * *
우우웅!
인적 하나 없는 내 전용 연무장.
고요한 공기 속에서,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아 몸속의 마나를 관조한다.
배 아래쪽, 단단하게 굳어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깎아내고, 녹여내고, 흡수해 왔음에도 여전히 단단하게 배 속에서 굳건히 존재감을 뽐내는 기운.
‘오랜만이네.’
우우웅!
정답게 기운을 마주하려 했지만, 기운은 여전히 내게 웃어주지 않았다.
올리비아로 오기 전, 살라딘이 했던 말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간다.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왜 내단의 힘을 안 쓴 거냐? 그것까지 끌어 올렸으면 좀 더 쉽게 이겼을 텐데.
살라딘은 하탄과의 막고라에서 내단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물었었고.
-와이번의 내단은 남작님 본인의 힘이 아니지요. 외물(外物)의 힘을 빌려 호적수와의 승부에 임하고 싶지 않으셨던 겁니다.
그에 대해 베스킨이 대답을 했었다.
베스킨은 순수하게 정정당당한 무인으로서의 의견을 말했던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킨의 의견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외물(外物).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말이다.
나는 아직, 와이번의 내단을 완벽히 녹여내지 못하고 있었다.
* * *
-아버지, 지금 가문에 남는 마법사 얼마나 있어요?
흡사 맡겨둔 돈이라도 찾아가는 것같이 독촉하는 딸, 아리아 폰 웬디널의 연락에 다리우스 공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롬 공자가 남작위에 오른 걸 축하해주러 보냈더니 영지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모자라,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몇 명이나 있냐구요!
수정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다리우스 공작.
‘아니, 얘가 성격이 원래 이랬나?’
우리 딸이 성격 하나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영지 내 모든 마법사들은 막바지인 디스펠 병기 개발에 투입하느라 남는 여력이 없다. 너도 알잖니.”
-그럼, 왕국 전역에 이야기해서 마법사들을 지원해 주세요. 시간이 없으니 내년 봄, 아니 올해 겨울까지요!
다리우스 공작은 딸이 막무가내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자,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딸, 대체 무슨 일이냐? 일단 좀 알아듣게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니냐.”
다리우스가 침착하게 타이르자, 수정구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아버지. 너무 급한 사항이라 제가 그만 흥분했어요.
“괜찮다, 괜찮아. 타지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들 수도 있지. 그래, 무슨 일이냐?”
-내년 봄, 군도에서 대륙 남부를 향해 총공격을 펼칠 거예요. 그 시작점이 이곳, 올리비아라고 해요.
“뭐야?!!!”
다리우스 공작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이 수정구에 다가가 두 손으로 수정구를 쥔 채 외쳤다.
군도의 야만스러운 해적 놈들이, 감히 내 딸이 있는 땅으로 밀고 들어온다고?!
다리우스의 머릿속에 해적들에게 희롱당하는 아리아의 모습이 상상되어 지나간다.
“이런, 짐승 같은 놈들!!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
-아버지, 조금 진정하시고….
“아무 걱정 하지 말거라! 너는 그저, 이 애비만 믿어!!”
뚝!
아리아의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다리우스 공작이 곧장 다른 장소에 통신을 요청했다.
-예, 프라시아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다리우스 공작이다! 지금 당장 전하를 연결해! 시급한 사안이다!”
수신처는 프라시아 영지. 프란 왕국의 수도였다.
“아니, 아니지. 내가 직접 프라시아로 가겠다!”
다리우스 공작이 겉옷을 챙기며 다급히 움직였다. 아리아의 성격을 생각하면, 피신하란 말을 어차피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테니.
‘해적 놈들, 내 딸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해봐라.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주마!’
* * *
필라도르 왕국의 어전.
“…그래서, 봄에 지원군을 희망한다는 전갈입니다, 전하.”
조용히 보고를 올리는 미다스 후작의 말에 미첼 칸 필라도르 여왕이 가만히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지원이라… 어떻게 생각해요, 후작?”
미첼 여왕의 질문에 미다스 후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필라도르 왕국은 이미 올리비아에 많은 것을 투자했사옵니다. 이 정도면 그에게 의리는 다했다고 생각하옵니다.”
“그건 올리비아에 한 ‘투자’지, ‘지원’은 아니지요.”
팔락!
미첼 여왕이 올리비아에서 전해온 공문을 넘기며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며 괜히 자꾸 간 보려 하지 마요, 후작. 돕고 싶잖아요?”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옵니다.”
“그런가요. 그럼, 저도 개인적인 생각대로 한번 움직여 보지요.”
미첼 여왕이 밖의 시종을 시켜 한 남자를 어전으로 불렀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갑옷에 밀과 낫이 교차하는 엠블럼을 달고 있는 남자.
필라도르 제2왕국기사단장, 융켄이었다. 그는 필라도르 왕국의 반란 당시, 마지노 요새에서 제롬에게 사로잡혔던 청렴한 기사였다.
“융켄, 부탁이 있어서 불렀어요.”
미첼의 말에 융켄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자애로운 전하의 용서로, 저는 목숨을 하나 더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부탁이 아니라 명을 내려주소서.”
“돌아오는 봄에 올리비아로 파견을 가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올리비아라면… 제롬 남작의 일입니까?”
융켄의 눈에 반가움이 깃든다.
제롬 남작, 그가 아니었다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을 운명이 아니었던가.
“네. 해적들이 올리비아로 쳐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대가, 우리 왕국의 지원군을 이끌고 가주길 바라요.”
“제롬 남작은 제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기꺼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융켄 경, 잠깐.”
흔쾌히 고개를 숙인 융켄의 머리 위로 미다스 후작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우리 가문 마크 경과 기사단을 붙여줄 테니, 함께 가도록 하게. 분명 도움이 될 걸세.”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미다스 후작의 말에 융켄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융켄과 미다스 후작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검을 겨눴던 사이.
시간이 지나 앙금은 사라졌다고 하나, 그 멋쩍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미다스 후작이 융켄에게 부탁한 이유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첼 여왕의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것 봐. 후작도 그럴 거면서 괜히 내숭은.”
“…….”
미다스 후작은 미첼 여왕의 말에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 * *
프란 왕국, 필라도르 왕국뿐 아니라 연맹 대부분의 나라에 해적과의 일전을 위해 협조 요청이 들어간 시점.
대륙의 나라는 아니지만, 나라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내며 지원 요청을 받은 곳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발길을 용서치 않는 드래곤 산맥에, 출입을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인 메트 준남작.
그는 반텐과 엘프들의 교역을 총괄하는 이였지만, 오늘은 교역이 아닌 사신으로서 엘룬하임에 찾아왔다.
바스락!
숨 막히는 미모를 가진 엘프가 그가 가져온 편지를 펼쳐보았다.
“제롬 남작의 요청이라… 그가 우리와 교류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 아닌가요?”
“맞습니다, 공주님.”
“이번 일에는 오크나 키클롭스의 손을 빌릴 수 없다지요?”
“그렇다고 합니다, 공주님. 대륙 외부에 공식적으로 관계가 있는 저희와 라이칸스로프에게만 공문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흐음….”
밀리아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아름다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라이칸스로프보다 못해서야, 우리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은데. 애쉬는 어떻게 생각해요?”
“동감입니다.”
“애쉬에게 전권을 줄게요. 바다 위라고 하니까, 정령들을 잘 다루는 레인저 부대로 구성해 봐요.”
밀리아의 말에 애쉬가 허리를 숙였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공주님.”
“어머니는… 역시 안 되겠죠?”
충분하다 못해 과한(?) 지원까지 생각한 밀리아였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수와 시간을 보내시는 데 푹 빠지셔서….”
“쩝, 어쩔 수 없네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수에 그친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우연의 일치인지, 딱 이 시점에 라이칸스로프 측에서도 바우칼라크가 족장 루갈에게 헐레벌떡 뛰어가 같이 가자고 졸랐다가 한 대 얻어맞고 있었다.
제롬이 해왔던 수많은 일들. 그 수많은 행보의 흔적들이, 천천히 대륙의 운명을 바꾸고 있었다.
과연 이 뒤바뀐 운명의 주사위가 과연 어떤 숫자를 가리킬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